부산에 산다
김 동 규 수필가
내 나이 서른 살. 느닷없이 난 서울시민이 되었다. 외항선 항해사로서 수년간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대도시 서울에 닻을 내렸던 것. 낯설고 물선 대도시에서 <해운신문> 취재기자로 활동하느라 정신없이 도시의 물결에 휩쓸렸다. 그러면서 결혼하여 가정까지 이루었으니 차츰 서울시민이 되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서울생활에 지쳐 고단한 어느 날, 사촌형님 댁을 찾았다. 형님 내외는 일찍이 맨손으로 고향 벽지를 나와 출세하고 자수성가한 ‘서울시민 부부’였다. 형님은 고향사람들에겐 선망의 인물이기도 했다. 형님의 오지랖에 서울 물을 먹게 된 동네사람들이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적응력이 강하기로 칠팔월 쇠비름을 닮았고 질경이 같은 형수가 말했다. “아제야, 3년은 살아야 진짜 서울사람이 되는 기다!”
서울에 먼저 자리 잡은 형수가 시동생의 변변찮은 서울생활 시작을 염려하여 에둘러 격려의 말을 던졌다. 그 얼마 후 나는 직장을 찾아 부산으로 오고 말았다. 서울 생활은 3년이 채 못 됐다. 그때도 이미 부산은 나의 홈그라운드였다. 부산역을 빠져나오자 뱃고동 소리가, 비릿한 바다내음이 나의 피로한 모세혈관을 파고 들었다. 부산은 항구요, 바다의 도시였다. ‘항도’라는 수식어 없이는 매력 없는 도시 부산은 넓은 가슴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배를 내린 이후, 두 번째 부산생활이 어언 18년이다. 동해로 남지나해로 태평양으로 열려있는 항도를 바라보며 그간 얽히고설킨 마음의 짐들을 하나씩 부려놓았다. 바다 위에서 산 생활을 생각하면 물이 질릴 만도 한데 나는 무시로 물빛이 변하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살고 있다. 바다와 항구 그리고 쉼없이 드나드는 외항선 소리와 컨테이너 차량들을 바라보며 항도 부산을 느끼며 산다.
살아있는 바다, 생동하는 항도, 부산 사람의 기질을 호흡한다. 나는 부산에 정이 들 만큼 들었다. 앞으로 서울이나 다른 객지로 갈 일도 없겠거니와 이제 부산을 떠나기도 싫다. 서울은 더욱 못 살 것 같다. 나는 언젠가부터 집안 사람들에게 ‘부산 아재’로 통한다. “형수, 나는 서울사람이 아이고 부산사람이대이!”오랜만에 늙은 형수님께 애교를 떨었다. 형수의 응답이 자못 용감하고 또 신식이다. “부산아재, 브라보! 파이팅!” 나는 부산사람이다. 부산은 천생 내 스타일이다. 온갖 정이 든 부산이 마냥 좋다.
김동규
1958~ 경남 창녕 출생 / 남지고 / 목포해양대 항해과 / 동아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 외항선 일등항해사 / 해운신문 기자 / 작품집 <바다의 기억> / 한국해기사협회 저널 <海바라기> 편집장 역임 ☞ 상기 글은 작가가 보내온 수필집 [바다의 기억]에 수록된 글이며 애석하게도 그가 떠난 연도마저 알 수가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만 바르면서도 착하디착한 그의 천성을 기억하면서 천상영복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