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4-7.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
세계 제일의 한국인
한국인은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일단, 세계에서 지능지수가 가장 높다. 머리 좋기로 유명한 유대인들도 한국인의 높은 IQ에는 두손 번쩍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하는 120 정도의 지능지수는 전 세계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속한다.
둘째, 전 세계에서 아난다마이드 수치가 가장 낮은 민족이다. 아난다마이드란 ‘행복의 분자’라고도 불리는 특정신경전달물질인데, 뇌에서 분비되면 기분이 고조되고, 통증이 완화되며 만족감이 높아진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한국인은 세포 단위 면적당 아난다마이드 발생 수치가 전 세계 꼴찌다. 참고로 1등의 영예를 차지한 나라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하드웨어 자체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도록 태어났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제일 낙천적인 나이지리아인들이 약간의 물질만 소유해도 큰 만족을 느낀다면, 그에 비해 한국인은 엄청난 부를 소유해도 만족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만족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두고 외국 심리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다니엘 카네만의 전망이론을 뒤집어 놓는 민족’이라고까지 부른다. 다니엘 카네만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로 이득과 손해에 대한 인간의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심리 연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 A는 참여하기만 해도 100% 확률로 1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게임 B는 100만 원을 딸 확률은 89%, 500만 원을 딸 확률은 10%, 그리고 1% 확률로 꽝이 섞여 있다.
누군가 두 개의 게임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참가자 중 90%가 A를 고른다. 위험을 싫어하고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게 일반적인 인간심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의 액수를 높일수록 고민은 줄어든다. 100% 받을 수 있는 돈이 100만 원이 아니라 1억 원이라면 어떨까? 아니, 차라리 통 크게 1조 원을 준다고 치자. 게임에 참여만 해도 무조건 1조 원이 생기는데 누가 이를 마다하고 모험을 고르겠는가.
그런데 웬걸, 한국인들에게 같은 실험을 하면 너도 나도 B를 고른다. 판돈을 올려도 마찬가지다. 중학생 아이들조차 1조 원 따위는 만족을 못하겠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아니, 1조 원이면 연이율 2%만 적용해도 이자가 1년에 200억이다. 이 말인즉슨 1년 365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근면하고 성실하게 매일 5500만 원씩 탕진해야 재산이 늘어난다는 것을 간신히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상상하기 어려운 돈마저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이처럼 전 세계에서 낙천성이 가장 떨어지는 한국인들이 나이지리아인만큼 행복해지려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긴 시간을 일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세계 기록 중에는 근면성 1위라는 것도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 압도적으로 성실하다. 너도나도 성실한 우리끼리 모여 있으니 눈치채지 못했을 뿐, 학회에서 만나는 외국 연구자들은 나만 보면 한국인들 너무 부지런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워낙 이런 얘길 많이 듣다 보니 조금은 민망해서 반박할 때도 있었다.
“한국인들 부지런하긴 하지. 그런데 일본, 대만, 중국도 마찬가지 아냐? 일할 때 보면 그분들도 굉장히 부지런해.”
하지만 그들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너희 한국인은 일 안 할 때도 부지런하잖아.”
맞는 소리라서 감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놀 때도 유난스럽게 부지런하니까.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기 위해 찾아간 놀이공원에서도 엄마들은 아이를 나무란다. “이 시간 되도록 이거밖에 못 놀았어? 자유이용권인데 얼른 더 타!”
유럽 심리학자들은 아예 날 붙잡고 하소연을 한다. 너희 한국인들은 유럽에 놀러오면 복장만 관광객, 행동은 근로자라는 거다. 왜 남의 나라에 쉬러 와서는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 돌아다니냐고 따지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들 아는가. 심지어 유럽 렌터카 업체 직원들은 비슷비슷하게 생긴 동양인 고객이 한국인인지 아닌지 알아맞히는 방법을 알고 있단다. 1주일 정도 차를 대여하고 반납할 때, 운전한 킬로수를 확인하면 바로 파악이 된단나. 멀고 먼 타국 당에서도 시간을 쪼개 가며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놀았을 한국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잠이 오냐, 지금?
정리하자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머리로, 가장 부지런하게, 낙천성 없이 살아가는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사실.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 만에 지금과 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잠을 죄악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0시간 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10시간 쳐 잔다’고 표현한다.
“너 잠이 오냐,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종종 쓰는 말이다. 비난이고 힐난이며 가끔은 무지막지한 욕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뉘앙스를 어떻게 번역할지도 참 난감하다.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인 후배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하고 빈둥거리기에 앉혀 놓고 야단을 친 적이 있었다. 엄한 목소리로 ‘너 잠이 오냐, 지금?’을 영어로 바꿔 말해 보았다.
“Tom, Can you sleep well?”
그러자 상대는 자신 있다는 듯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yes, I can!”
우리나라에서는 홀대를 받고 있지만 인간의 수면은 함부로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의 상태는 심리적 안정감과 거의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 때만 해도 동네 학교마다 커다란 돌덩이에 이런 표어 하나쯤은 멋지게 새겨져 있었다.
‘건강한 체력에 건강한 정신.’
아니 뭐 이런 구닥다리 같은 말이 있나 싶지만 나는 심리학 연구를 거듭할수록 이 말보다 인간의 몸과 정신의 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한 문장을 찾지 못했다.
가끔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볼 때, “우리 선수들, 이제 체력은 바닥났으니 정신력으로 뛰어야 합니다.”라는 중계 멘트를 종종 듣는다. 안타깝지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력과 체력은 같은 동력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정신적으로 꺼내어 쓸 힘이 필요하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몸을 돌보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운동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자는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다음날,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혹시 머리가 안 돌아가거나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을까? 시험 전날 밤을 샌 탓에 정작 시험 날엔 수학 풀이를 망친다거나 영어 단어가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전두엽에 해당하는 논리연산 능력은 잠을 조금 못 자도 크게 손상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잠이 부족해서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은 정작 따로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나쁜 습관을 제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그 다음날 자신의 나쁜 습관을 세상 사람들 앞에 보여 주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시험을 예로 들어보자. 잠을 못 잔 다음날, 머리가 안 돌아가서 수학문제를 못 푸는 게 아니라, 문제 풀이에 대한 나쁜 습관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대충 계산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맞은 답을 이상하게 고치는 습관들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이해했어도 위험한 습관들이 고삐가 풀려 버리니 시험을 망칠 수밖에.
나의 수면 적정 시간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나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질문을 받게 된다.
“자네는 몇 시간 자는 사람인가?”
늘 잠을 줄이고, 시간을 아끼라는 말만 들어왔기에 이런 질문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내가 무척 의아해하자 교수님은 한 번 더 차근차근 물으셨다.
“몇 시간을 잤을 때, 다음날 가장 지혜롭고 행복해지는가를 묻는 걸세.”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왜 그 숫자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을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많은 숫자 중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숫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실제로 사람은 롱슬리퍼와 숏슬리퍼로 나뉜다. 롱슬리퍼의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10시간도 넘게 자는 대단한 롱슬리퍼였지만 한국 어린이들이 읽는 아인슈타인 전기에는 그런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유명한 숏슬리퍼인 에디슨이 하루 3시간만 잤다는 내용은 거의 모든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몇 시간을 자는 사람일까? 나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나의 적정 수면 시간을 알아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추천하는 방법은 수면 일기를 쓰는 것이다. 매일 그날을 정리하는 시간에 나의 기분과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기록해 본다. 점수로 표시해도 좋다. 그리고 그 옆에 숫자 하나를 더 쓰면 좋겠다. 그 전날 나의 수면 시간을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적정 수면 시간을 아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
불안과 무기력, 부정적인 심리가 지배하는 시대, 안정적인 상태로 좋은 결정을 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몸부터 챙기자. 나의 육체적 컨디션을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 것, 위기의 순간 중요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해답은 건강한 체력에 있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4장 ‘불안의 시대에서 행복을 말하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