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을 걸어 도서관에서
간밤에는 날짜 변경선 부근 잠을 깨 새날을 맞은 유월 셋째 목요일이다. 일찍 잠들었으니 일찍 깸은 당연해 한밤중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전날 교육단지 도서관을 들렀던 동선을 떠올려 생활 속 글을 먼저 남겼다. 이 글은 2시간 안 걸려 탈고되어 문학 동인 카페에 올리고 지인들 메일로 넘겼다. 전날 오후 고향으로부터 노각 오이와 호랑이콩이 부쳐 와 콩은 꼬투리를 까 놓았다.
하지를 하루 앞두어 날이 일찍 밝아와 다행으로 여겼다. 아침밥을 일찍 든 후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낮에는 구름이 낄 듯해 평소 준비하던 얼음 생수는 챙기지 않았더랬다. 배낭에는 도서관에서 빌렸던 한시 해설서와 돋보기를 넣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중 창원역에서 내렸다. 6시 30분 유등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차체가 소형인 마을버스는 아침 이른 시각 근교 일터로 나가는 몇몇 승객들과 같이 도계동에서 용강고개를 넘었다. 1번 마을버스도 그랬는데 드물게 여성이 운전하는 버스를 만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에 해당했다. 중년 여기사는 귀에다 피어싱을 했는데 오늘은 흐려서인지 전에 착용했던 선글라스는 끼지 않았더랬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자 승객은 줄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에서 가술을 거쳐 강가 유등까지는 곧장 달려 40분 걸렸다. 종점을 앞둔 유청에 내려 마을 앞 들길을 걸었다. 농가에서 수로와 경계를 이룬 텃밭에 자라는 옥수수는 꽃대가 솟고 수염이 자라 나왔다. 옥수수는 정점에서 피는 수꽃의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암술의 수염으로 묻어 수분이 되면 알갱이가 생기는 원리다. 인간사로 치면 수직적인 가부장 사회였다.
옥수수 이랑 곁에는 담장을 타고 가도록 덕장으로 꾸려진 포도덩굴에서 포도가 영글어 갔다. 외딴 농가와 창고를 지난 들길을 걷다가 지난번 봤던 삼백초가 피우는 꽃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가꾼 약초가 아니고 텃밭 언저리 절로 자라 무성해진 듯했다. 1미터 높이로 자란 잎에 무늬가 희게 들어 희끗희끗했고 꼬부라지게 피는 꽃도 흰색인데, 땅속뿌리까지 희다고 해서 삼백초였다.
당근을 심었던 비닐하우스는 걷고 모내기를 마친 들판이었다. 일부 구역은 아직 토마토를 수확하는 비닐하우스는 남겨 놓았다. 뿌리를 캐려고 벼 대신 심은 연은 잎사귀를 넓혀 자랐는데 꽃봉오리를 맺는 가닥도 보였다. 유등과 유청은 죽동천 하류 강마을이다. 아득히 먼 죽동마을에서 들판을 거쳐 흘러온 죽동천은 강변 배수장에서 샛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합류를 앞둔 지점이었다.
천변에 지번으로 등재되지 않은 자투리땅은 농부들이 텃밭으로 활용해 여러 가지 작물을 가꾸었다. 덩굴이 나가는 호박에서는 꽃을 피워 애호박이 달렸다. 방둑이 길게 이어진 천변 따라 콩을 심어 김을 매어주는 부부도 보였다. 일찍 심은 참깨는 꽃이 피어 벌들이 날아와 꼼지락거렸다. 유청에서 천변을 따라 우암마을을 지나니 열매가 영근 복사나무에 약을 뿌리는 농부도 만났다.
가술이 가까워진 들녘에는 농기계 수리 센터와 창고들이 보였다. 한적한 들길을 지난 국도변에는 초등학교가 나왔다. 학교 울타리와 이웃한 외딴 농가 마당에서는 한 농부가 뭔가를 때우느라 파란 불꽃이 튀었다. 들판 들길과 맞닿은 사택 앞 연못가는 부처꽃이 꽃대로 솟아 피어 화사했다. 묵혀둔 사택 담벼락과 경계를 이룬 곳에 자란 삼잎국화는 잎이 쇠긴 했지만 몇 줌 따 모았다.
삼잎국화 봉지는 편의점에 맡겨두고 마을도서관을 찾아갔다. 엊그제 읽다가 남겨둔 책은 수레에 그대로 놓인 채였다. ‘식물의 책’을 먼저 펼쳤는데 세밀화가가 그림을 곁들여 쓴 식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려고 관찰한 식물이었는데 그 분야 전문가가 되었다. 이후 글쓰기를 심리학과 결합해 내면을 치유하고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이의 따뜻한 마음을 읽어냈다. 2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