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신> 가치 있는 삶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오늘은 좀 덜 골치 아픈 얘기를 해 볼까요? 시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말하자면 인생론적인 담론 말입니다.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학생들을 맞게 될 때면 '너희들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가끔 물어봅니다. 좀 막연함이 없지 않지만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출세'라든가. '돈'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예상했던 답변들입니다.
소위 출세를 해서 세상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좋겠지요.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면서 사는 즐거움도 대단하겠지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근심걱정 없이 정겹게 살아가는 행복한 삶도 얼마나 값진 것입니까?
그러나 로메다 님,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한 시대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역대의 왕후장상들이 지금 다 어디 있습니까? 억만 금을 쥐고 세상을 흔들던 백만장자들이 이 지상에 남겨 놓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생을 투자했지만 그들의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로메다 님, 당신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곤란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이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합니다만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빈둥대며 살아간다면 이는 소중한 한 생애를 낭비하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출세나 돈, 행복 등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제시한다면 이런 생각에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군요.
출세, 돈, 행복― 물론 소중하지만 그것들 자체는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삶의 목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분야에서 출세를 해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든지, 돈을 어떻게 벌어 그 돈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겠다든지, 어떤 가치 있는 삶을 통해서 행복을 어떻게 성취하겠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출세해서 돈 많이 벌어 멋진 배우자를 얻어 호의호식하며 사치스럽게 살겠다는 그러한 행복의 추구가 삶의 목표여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삶의 의미를 '행복'에 두지 않고 '가치'에 둡니다. 때로는 세상이 평가하는 출세에 남보다 뒤늦고 경제적인 궁핍을 겪으며 세속적인 행복을 덜 누리며 살아갈지라도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는 그런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러한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봅니다.
로메다 님, 가치 있는 삶을 자기만의 삶이란 말로 표현한 것이 좀 막연한가요? 그렇다면'창조적인 삶'이란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군요.
좋은 축사와 충분한 사료가 제공되는 가축의 삶은 근심 걱정은 없을지 몰라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창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적 삶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그러한 특권을 만일 포기한다면 그것은 동물들의 삶이나 다름이 없는 암흑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적 삶이란 모방과 답습의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가는 삶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내는 발명가, 새로운 이론을 창안해 내는 학자, 새로운 상품을 생산해 내는 실업가,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 내는 예술가들입니다.
그러나 창조적 삶이란 이런 특수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 주부가 된장찌개를 끓인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는 자기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대로가 아닌 색다른 재료들을 첨가해서 더 맛있는 된장국을 만들어 냈다면 이것이 바로 창조적 삶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그의 아이에게 기성복을 사다 그냥 입히지 않고 천을 떠다 자기 나름대로 남다른 의상을 만들어 입혔다면 이것이 바로 창조적 삶입니다.
남의 흉내만 내면서 남의 뒤만 열심히 따라가는 모방과 답습의 삶은 자기의 삶이 아니라 꼭두각시의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삶은 살지 않아도 무방한 무가치한 허비적인 삶일 뿐입니다.
로메다 님, 당신이 글을 써 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아름다운 창조적 삶입니다. 그런데 로메다 님, 당신의 '글 쓰기'가 창조적 삶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이 쓴 글 속에 '새로운 것'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만일 남들이 이미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다시 쓴 것이라면 그 글은 모방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길은 창조 곧 새로움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로메다 님, 당신의 생애가 과거 어느 누구도 그렇게 살지 못했고 또 앞으로 어느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는 가치 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러한 삶의 문턱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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