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쌀국수 pho는 어떻게 세계 음식이 되었나]
오늘날 pho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세계 주요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표준 메뉴다. 그러나 pho의 역사는 흔히 상정되는 ‘오랜 전통 음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수의 연구와 기록은 pho의 형성을 19세기 말~20세기 초, 베트남 북부로 본다. 즉 pho는 전통의 축적이라기보다 근대적 조건 속에서 탄생한 도시형 음식에 가깝다. pho의 정확한 기원은 문헌 자료가 제한적이어서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조건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다. 이 시기 베트남에서는 소 사육과 도축이 체계화되며 소뼈와 육수 재료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 여기에 기존의 쌀국수 면 문화가 결합해, “맑은 국물 + 쌀국수 + 얇게 썬 고기”라는 조합이 형성되었다.
초기 pho는 하노이와 남딘 일대에서 노점 음식으로 확산되었고, 이동식 좌판을 통해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pho가 베트남 전역으로 퍼진 첫 번째 계기는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의 인구 이동이었다.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한 사람들과 함께 pho도 남하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적 차이가 뚜렷해졌다. 남부에서는 육수가 상대적으로 달아지고, 숙주·허브·라임 등 곁들이가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시점부터 pho는 단일한 레시피가 아니라 지역 변주를 전제로 한 음식이 된다.
세계화의 결정적 전환점은 1975년 전쟁 종결 이후의 대규모 해외 이주였다. 베트남을 떠난 난민과 이민자들은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지에 정착했다. 이 과정에서 식당은 언어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초기 자본이 적게 드는 생계 수단이었고, pho는 자연스럽게 이주 공동체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베트남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pho 전문점이 빠르게 늘어났다. 초기에는 동포 대상 음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베트남계 손님이 증가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도시 외식 문화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맑은 국물, 쌀국수, 허브 중심의 구성은 ‘가볍고 부담 없는 음식’을 선호하던 당시의 외식 트렌드와도 맞물렸다.
프랑스에서도 유사한 과정이 나타났다. 식민지 역사와 이민의 누적 속에서 pho는 특정 민족 음식의 범주를 넘어, 파리 등 대도시에서 일상적인 외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 단계에서 pho는 더 이상 ‘이국적인 요리’가 아니라, 현지 식재료와 외식 시스템 안에서 안정적으로 재현되는 음식이 된다. pho의 세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2007년 ‘pho’가 Shorter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등재된 일이다. 이는 pho가 특정 이민 집단 내부의 음식명을 넘어, 영어권 일반 독자가 이해해야 할 보편적 음식 명사가 되었음을 뜻한다.
이후 베트남 정부는 pho를 국가 문화 자산으로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pho의 날’이 공식화되었고, 2024년에는 남딘Nam Dinh식 pho 등이 국가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는 pho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후에 이루어진 사후적 정리와 승인에 가깝다. pho의 세계적 확산은 단순한 미식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근대 도시 음식으로서의 구조, 전쟁과 분단이 만든 이동, 이주 공동체의 생계 전략, 그리고 글로벌 외식 산업과의 결합이 단계적으로 겹치며 pho는 국경을 넘었다.(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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