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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흔적을 찾아서~"
고성에서~화천까지 (탐방기)
(설악산 울산바위)
정재덕 글중에서
어둠이 가시는 이른새벽
6.25 전쟁의 흔적을 찾아서
고성에서~화천까지,일정을 위해 집을 나선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4년전 어머니께서
천상의 세계에 가신날이다
(양력으로 2021년6월19일)
마음이 착잡하다.
가는길에 삼십여년동안 거르지않고
올랐던 설악산 울산바위 명샨에 올라
영험한 산의 기운을 뱓을 생각이다.
아침일찍 도착한 동해안 속초 설악산
이게 웬일인가
아침부터 기온이 30도가넘는
푹푹찌는 날씨다.
등산준비를 철저히 하고 울산바위로 향한다.
구름 한점없는 청청한 설악산의 풍경
참으로 아름답다.
설악산 소나무의 자태는 압권이다
멀리 울산바위가 투영하게 시야야 들어온다
그 자태가 예술이다.
넓은 계곡을 끼고 가고 또가고 어느듯
발길은 흔들바위 방향으로 오르고있었다
평일인데도 외국인 등산객이 더많은듯하다
내국인들도 많이 보이지만 그숫자는
해마다 줄어드는 느낌이다.
흔들바위 계조암이 보이는 앞에서 잠시
주변 운치를 사진에 담는다
마침 나처럼 혼자 다니는 분이 계셔서
사진을 담는것을 품앗이한다
이곳 계조암 석굴 불상님과의 인연은
삼십여년이 넘는것같다
어쨋든 영험한 기운을 준다고 믿고있다
하산할때 부처님께 예를 올리기로하고
흔들바위를 뒤로하고 울산바위
정상을 향해 오르고 오른다.
날씨가 너무덥다
숨이 턱턱막힌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버티며 한발한발 내딛는다
정상을 얼마 안남기고 일이 터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사람들이 119 119 얼굴이 노랗게 변해가고있어,웅성인다
혼자 오셨나봐,
그때 누군가 "정신있어요"하고 물어온다
가슴은 쥐어뜯고 안절부절 발버둥치며
정신은 가물가물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기적의 "스프레이" (혈관 확장제)
주치의가 긴급한 상황이되면 사용하라고처방한 스프레이가생각났다
등산가방에 손을 넣어 스프레이를 찾아
입안에 두번 뿌렸다
3~4분 지났을까 정신이 돌아오고 숨이 쉬어 진다
기적이 일어난걸까"
정말이지 죽는줄 알았다"
그자리에서 가던길 멈추고 도와주신분들께 깊이감사드린다
기적의 스프레이를 처방한 주치의
양모 박사님께도 감사드린다
울산바위 정상을 앞두고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께서 천상의 세계에 가신날
아들도 저쪽으로 갈뻔하였다
얼마전에 발병한 대상포진으로 최근까지도 아팠는데
무리한 일정이었을까"
참으로 힘든고비를 넘기었다
대상포진, 심근경색이 겹쳐서
그 휴유증이 아니었나싶다.
몸이 회복되고 컨디션이 어느정도
돌아왔을때 고민을 하였다
울산바위 정상으로 갈것인가 하산을 할것인가
큰아들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 산을 이기려고 하지마세요
가시다가 몸이 이상하고 아프시면 모든 미련을
내려놓으시고 즉시 되돌아 오세요
아들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하산을 결심하였다
울산바위에 연례행사처럼 명샨에
기도한다고 다닌것이 삼십여년
정상을 목전에 두고
처음으로 하산을 결심하였다.
눈물이핑돌았다
한계단 한계단 내딛는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다"
흔들바위 계조암에 도착하여 석굴
부처님께 많은 배를 올렸다
오늘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안녕을 축원하였다.
"6.25전쟁의 흔적을 찾아서~"
고성에서 ~화천까지
"고성 통일전망대"
푸른 청정 동해바다
오늘따라 바다색이 짙은 푸른색이다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푸른 바다를끼고 고성 통일전망대 가는길
4차선길이 한산하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도착
서류를 작성 제출하고 간단하게 영상 교육을 시청하고선
제진리 검문소로 향한다.
국도7호선 부산 중구에서 함경북도 온정 남양리까지
국도7호선길이 부산에서 이곳 출입통제소
490km의 길에서 종점이 되어있다
분단의 아픔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제진리 검문소를 통과하여 얼마후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였다.
"고성 통일전망대"
6.25전쟁 발발 75주년
호국 보훈에달
유월에 느끼는 새로운 감정이 복받친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 통일전망대"
6.25전쟁 참혹한 포화속으로 죽고 죽이는 전장터가
역사의 아이러니 인가
안보 관광지로 내외국인 많은 분들이
찾아 오신다고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북한 금강산과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보인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이
선명하게 보이고 낙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낙타봉이라고도 부른다고한다.
구선봉 앞에 있는 송도는 우리 땅이다
전망대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작은섬
송도는 소나무가 서식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안보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기가막힌 신의한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해안 군사분계선의 시작점이라고한다.
송도 군사분계선 시작점이
강화도 임진강 한강하구로 지나가고 있는것이다.
금강산은 산이면서 바다와 맞닿아있는 특이한 면이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의 거리는
16킬로미터에 불과하다고한다
금강산 외금강에는 약2000여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밑에서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선대 옥녀봉 세존봉 집선봉 육선봉 채화봉이 맨위에 위치한다고한다
해금강은
현종암 복선암 만물상 부처바위 사공바위 외추도등
여러개의 섬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뒤에는 말무리반도가 위치하고있다
해금강은 말그대로 바다의 금강
금강의 바다풍경이다
푸른 바다 가까이에서 이채를 띠는 바닷가
호수경치 흰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경치
바닷물에 씻기고 깎여서
마치 사람이 만들어놓은 듯한 기묘한 바위절벽과 기암들
그리고 뭍의 자연미를 자랑하며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과
그 위에 날아예는 뭇새들 해금강의 이 모든 것은
바닷가의 특유한 자연풍치를 이루어
명승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우어준다.
강원도 고성군,
분단의 아픔이 뼈저리게 느껴지느곳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 중 한 곳 동해안 고성의 351 고지
고지의 주인이 수십 차례 바뀌었다
엄청난 포탄을 쏟아부어 356미터였던 산 정상이
5미터 내려 앉을 정도였다니...
우리는 속초와 고성 일부를 지켰지만
고성읍과 금강산을 북한에 내어주었다.
6.25전쟁전에는 고성군이 북한땅 이었지만 6.25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의 활약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국군이 조금만더 힘을 내어서 금강산을 차지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도 필자는 하여본다
남한의 고성군 면적이 약650 정도면
북한의 고성군 면적은 약810 정도가 되는것같다.
전망대에서 좌측으로 보이는369고지
GP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GP이고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 GP라고한다
한때는 남북화해의 장으로 여겨지던 금강산
이데올로기의 산물인가
2008년 7월11일 아침일찍 산책하던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남북대화는 단절되고
금강산으로가는 도로와 철도는 막혔다
얼마전에는 북측에서 도로와 철길를
폭파하여 거대한 둑을 쌓았다고한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뒤로하고 떠나려니
필자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한때는 남북이 오고가고 대화의장으로 이산가족
상봉의장으로 금강산 관광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온몸으로 받았던 금강산
수십대의 버스행열이 지날때마다
이산가족들의 한이 풀리는듯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멀지않아 곧 통일이 될것처럼 부푼기대
희망으로 부풀어오르기를 여러번
미래 통일 대한민국이 그려지는날도 있었다.
남북이 같이 잘살아보자고 외쳤건만
그러나 어쩌랴 ~
아~아 어찌하랴~~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남북이 연결되는 도로와 철길을 폭파시키고
둑을 쌓아버리는 벽을치니
어찌하랴~
동해의 푸른빛 바닷물 하나되어
푸른빛 끝없이 수평선 저너머 펼쳐지는데..
바닷속 물고기 자유로이 오고가는데..
바람도 구름도 자유로이 오고가는데...
오고가던 길이 장벽에 가로막혀
오고 가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데올로기 인가
왜,사람이 하는 일은 오고가지 못하는가?
금강산 산신이시여~
문을 열어라
어둠의 문을 열어라
휴전선 155마일 바닷길 하늘길 모두 열어라
평화 통일의 문을 열어라~~
필자는 이곳에 올때마다 남북이 하나되기를 염원한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뒤로하고 검문소로 향한다.
검문소사병이 내 인적사항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고향이 같다고 처음으로 고향분을 뵙는다고 하면서
반가운 인사를한다.
명파리 해수욕장을 시작으로
동해안 해안도로따라 스케치한다
대진항 화진포 거진항 송지호 해수욕장으로 힐링 하면서
모처럼 외로움과 고독한 스트레스를 풀어본다
이제 필자는 다음 행선지 양구 펀치볼을 향해
간성 진부령으로 차를 돌린다.
"6.25전쟁 포화속으로"
고성에서~화천까지
아버님의 전장터 양구 해안면 펀치볼
양구 해안면 펀치볼 가는길~
간성 에서 진부령 험한길 굽이굽이
돌고돌아 황태포 건조 판매하는 용대리를지나
원통으로 향한다.
원통에서 우회전 서화면 쪽으로 가는데
초행길이라 조심스럽다.
인제군 대곡리 초소-1052고지 코스는 서화면 대곡리에서
을지 삼거리를 지나 1052고지를 왕복하는 구간이다
1953년 가장 치열한 고지전 중 하나를 기린
을지부대 854고지 전적비,미수복 지역 등
역사적 장소를 볼 수 있다
양구 해안면 펀치볼,금강산 향로봉과 비로봉을 비롯해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첩첩산중 길을 따라
펀치볼 가는길이 계속된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무렵 아버님의 전장터
펀치볼이 시야에 들어온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뜨거운 무엇인가 흐르는것 같다
잠시 양구 통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숙박업소 영림장에 짐을풀고 1층에 내려가
동태찌게로 식사를 했는데 맛이 일품이다
사장님 내외분께 감사드린다
식사를 끝내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침일찍 식사를 마치고 답사에 나선다.
"양구 해안면 펀치볼"
해안분지 또는 펀치볼(Punch Bowl)은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침식분지로 펀치볼이라는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 이 곳에 주둔한 미군의 종군기자가
지형의 모습을 펀치를 담는 그릇(볼)을 뜻하는
펀치볼이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고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치열했을까"
아버님의 전장터 이곳 펀치볼에
6.25전쟁 발발 75주년 호국 보훈의달 유월,
이곳 아버님의 전장터에 둘째아들이 찾아왔습니다
1049m 능선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께서 그토록
좋아하시는 술잔을 올리며 절을한다
아버지께서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주셔서
저를 낳아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이곳 펀치볼 전투에서 피아간에 참혹한 전투로 사상자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생존자들은 하늘이 내린 천명이다"라는
이곳 주민들의 말씀을듣고 목이메어 말을 할수가 없었다
오래전 이곳에 처음왔을때 6.25전쟁 펀치볼 에서 아버지의 혹독한 전투를 상상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많은눈물을 쏟았다
적을 죽여야 내가살고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 기가막힌 전장터에서 저 높은곳을 매일 오르고 내리고
하셨을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해발 1049m에 위치한 을지 전망대
을지라는 이름은 이지역을 방어하는
사단의 이름이 을지부대다
을지 전망대는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양구 동북방 27km 군사분계선 으로부터 약1km 남쪽
가칠봉의 능선에 세워졌다
을지전망대에서는 6.25 격전지 해안 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금강산 비로봉과 4개의 봉우리,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 등을 볼 수 있다.
을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측이 코앞이다
가까운 거리는 700~800m란다
저쪽에서 목소리가 높으면 이쪽에서 들린단다
한때는 북측 선녀폭포에서 미인계를 써서 우리 장병들 눈이 호강한적도 있었다고한다
우리 국군장병들은 엄연한 현실의 대치속에 빈틈없이
오늘도 철저한 경계를서고있다.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라는 가칠봉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가칠봉 이야기를 자주하셨다
가칠봉 전투에서 양쪽이 거의다 전멸하였다고 하시면서
그 포화속에서도 총탄이 빗발쳐도 당신께서는
살아남았다고 말씀을하시면서도 가칠봉을 늘
이야기 하실때는 눈가에는 눈물이 늘 맻혀있는것을 보았다.
왠지모를 아련함으로 필자는 가칠봉을 바라보며
필자는 즉흥시를 지어 보았다.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 가칠봉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을 가칠봉
금강산 산신 신선도 무심하시지
어쩌자고 전쟁인가
포화속으로 가칠봉이 무너지는가
상처 투성이구나
가칠봉아 말해다오
가칠봉 품에 안기어
죽어간 젊은 청춘들
그 영혼 어찌되었는가?
그 영혼 가칠봉이 품었는가
젊은 청춘영혼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목숨 바친 영령님들 거두어서
천상의 세계에 보냈는지
가칠봉아 말해다오~
가칠봉이 살려서 보내주신 아버지께서는
전쟁의 휴유증으로 평생 슐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80세 되던해 여름
2006년 7월16일 오후 6시30분경
천상의 세계에 가시었다.
제4땅굴은 보수작업중인지 공사중인지
막혀 있어서 차를 돌려야했다
6.25전쟁에서 참혹했던 해안면 펀치볼
이곳 주민들은 오랜세월 분지안의
땅들을 개간하여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고랭지 무우배추 농사에서 고소득을 올리다가
이제는 시래기 사과 인삼재배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있다.11월초에는 시래기 사과축제도 연다고한다
펀치볼 분지를 이곳저곳 둘러보아도
정리가 잘되어있고 병충해도 없는듯
농사가 잘된것을 볼수 있었다.
"펀치볼 도솔산전투"
6.25전쟁 당시 중동부 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도솔산지구와 펀치볼지구 전투에서 이 격전의 터
산악전 사상 최대의 격전지로서 이른바 죽음의 계곡은
피의 바다였으니 어찌 잊을쏜가
한미 해병대의 공훈과 더불어 펀치볼 확보를 위하여
좌인접에서 가칠봉 방향으로 병행 공격한 육군 5사단과
펀치볼 확보 후 이지역을 방어한
7사단 25사단의 빛나는 투혼이 있었다.
"가칠봉 전투"
국군 제5사단이 2차레에 걸쳐
적2사단과 7사단과 전투를 벌여
사살 2604명과 포로270명등 전과를 거두고
가칠봉을 확보한 전투이다
특히 김일성이 전투를 독려한 것으로
김일성 고지와 스탈린 고지를 수차례에 걸쳐 목전에서
공격하였다
종전후 155마일 휴전선 중 가장 높은곳에서
적을 발 아래 관측할 수있는
고지인 가칠봉(1.242m)을 수중에 넣었다
이 전투로 아군은
전사 824명 부상 4200명의 손실을 입었다
비가 내리는 우중임에도
답사를 끝내고 아버지의 전장터에서 발길을 돌리려니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듯 하여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뭔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펀치볼 돌산령터널 (3km) 나와 화천으로 향한다
강원도 중부 전방의 첩첩산중 대단하다
하늘만 보인다
이 길을 운전하고 가는 나도 대단하다
양구군 두타연 "피의 능선" 코스는 금강산 안내소에서
출발해 두타연과 금강산 가는 옛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금강산등 천혜의 비경을
가까이서 볼 수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피의 능선을 따라가는 코스는 UN 연합군과
중공군과의 치열한 고지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화천 425고지 전투"
화천 북방 철책선 약1.2km 앞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4.25고지는 정전협정을 앞두고
벌어진 우리 국군의 6.25전쟁 마지막 승전인 전투다
화천 발전소 사수 및 휴전선을 38선
으로부터 35km 북상시킨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425고지 전투는 정전 협정을 일주일 앞두고
1953년 7월20일 부터 27일까지 한국군 7사단과
중공군 제 135사단이 화천 425고지 에서
8일간 싸운 고지 전투다
화천 발전소를 사이에 둔 중요한 전투였던 425고지 전투는 육군 7사단이 화천으로 이동한 후 부여받은
6.25전쟁 때 수행한 마지막 전투였다
적은 인원으로 중공군을 섬멸한 마지막 승전보 였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쏟이지는 빗속 어려움 속에서 이번 여정의 종착지
화천 평화의댐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비바람이 무시무시하다
우산을 써도 옷이 흠뻑 젖는다
댐위 도로는 공사중이라고 표지판 세워놓고 통제중이다.
평화의댐 해안터널은 공사중 이라며 통제를 하는데
쏟아지는 비에 어쩌란 말인가?
"화천 평화의댐"
할말은 많으나 지난번 휴전선 탐방기에
언급을 하였으므로 이번 탐방기에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끝으로 6.25전쟁 흔적을 찾아서~
르뽀 탐방기, 두서없이 쓴글에 오타가 있더라도
양해와 이해를 구합니다
설악산 울산바위 가는길 위기를 극복하고
고성 통일전망대
아버님의 전장터 양구 펀치볼
화천 평화의댐까지
여러날의 여정 탐방기에 성원과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깊이감사드립니다
정재덕 글중에서
6.25전쟁 흔적을 찾아서~
"6.25전쟁 포화속으로"
고성에서~화천까지
6.25전쟁 75주년
2025년 6월 25일
글쓴이
남한강영화제 상임고문
마음드리봉사단 중앙상임고문
정재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