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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원문보기 글쓴이: Jennifer
스펄전의 본문 선택과 성경 읽기
런던 남서쪽 웨스트 노우드 공동묘지(West Norwood Cemetery)에 자리한 스펄전의 묘비에는 “그의 주님이요,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찰스 스펄전, 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묘비명 위로 독특하게도 돌로 만들어진 성경책이 마치 그의 삶을 상징하듯, 양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모든 설교자가 그러하듯, 스펄전은 성경을 사랑했고, 그것을 자신의 목회와 설교의 유일한 근원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스펄전은 성경을 어떠한 방식으로 읽었으며, 매주 설교를 위한 본문을 어떻게 선택했을까?
본문 선택이 설교의 승패를 좌우한다
매주 주일이 다가오면 주일 설교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맨 처음 고민하는 문제 중 한 가지는 주일 강단에서 전해야 할 설교 주제와 본문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설교 본문 선택은 종종 많은 설교학 강의나 설교학 책에서 소홀히 다루어지는 영역 중 한 가지다. 본문 선택은 으레 설교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의 선택은 어떤 의미에서 설교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본문은 설교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영적으로 배고프고 허기진 저녁 만찬의 손님들에게 어떤 요리를 내어놓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도 같다.
스펄전이 말하듯, 때때로 하나님은 찬송이나 기도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성도에게 영적 유익을 끼치기도 하신다. 따라서 찬송의 선택과 기도 내용의 선택은 중요한 문제다. 하물며 설교 본문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많은 설교자들이 본문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적용하고, 전달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달리 설교 본문의 선택에 있어서는 동일한 노력과 충분한 숙고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요리실력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스펄전은 설교 준비에서 본문과 주제의 선택에 어떤 설교자보다 큰 의미를 부여했다. 스펄전은 말한다.
“고백하건데, 저는 자주 여러 시간 동안 앉아서 기도하며 설교의 주제를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 연구의 주요 부분입니다.… 마치 사진사의 렌즈 앞에서 이런저런 이미지들이 계속 지나가듯이 설교의 주제들이 제 머리에서 하나씩 지나갑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확 끌리는 것이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은 제게 별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1
따라서 본문의 선택이란 스펄전에게 설교 준비에 있어서 맨 처음 고민해야 하는 큰 과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고민은 설교할 본문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정원에 수만 가지의 아름다운 꽃들 가운데서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고백하건대, 저는 아직도 본문을 선택하는 일에 참으로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진리들이 모두 시급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고 모든 의무들이 새롭게 강조되고 심어주어야 할 것들이며, 교인들의 수많은 영적인 필요들이 전부 공급을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펄전의 본문에 대한 고민은 그의 교회와 회중에게 보다 적절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고민이었다. “비록 모든 성경이 좋고 유익하지만 모든 본문이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이 시기에 적절한 것이 더 낫습니다.… 많은 보석들 중에서 우리는 현재의 정황에 가장 알맞은 보석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1. 본문 선택의 기본 원리: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스펄전은 설교자가 1, 2년의 긴 주일설교문을 가지고 단순히 그것들을 순서를 따라 반복해서 설교하거나 혹은 몇 편의 케케묵은 설교를 그저 순서대로 읽어내려 가는 것을 정죄했다. 스펄전에 따르면 이러한 방법은 “영적 게으름을 조장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스펄전은 어떠한 방법으로 주일날 설교할 본문을 찾았는가?
무엇보다도 스펄전은 설교할 본문을 얻기 위해서 설교자의 무릎을 강조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만일 제게 ‘가장 적합한 본문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께 그것을 달라고 부르짖으십시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며, 회중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들에게 하늘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이는 설교자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양식에 대한 선택 역시 그 분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것이 성경적이며, 현명한 자세다. 스펄전은 설교 본문의 선택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믿는 설교자들을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의 사도신경에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조항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실제로 믿고 행동에 옮기는 예가 드문 것 같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자기들이’ 본문을 선택하고 ‘자기들이’ 그 가르침을 전달하고 ‘자기들이’ 거기에서 내용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2 반면, 이와 달리 경건한 설교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열망한다. “경건한 설교자는 본문을 선택하는 일을 오류가 가득한 자신의 생각에 맡기지 않고 하나님의 전지하신 성령께 의지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그분의 손에 겸손히 내어 놓고 성령께 강림하셔서 정해진 때를 위하여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의 양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어떠한 순간에도 성령께서 자신에게 설교 본문을 주실 것임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예배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라도 그 말씀 얻기를 기다립시다. 우리처럼 즉각적인 감동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차갑고 계산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마는 이런 것들은 우리가 감히 거스릴 수 없는 하나의 마음의 법칙입니다. 권능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2. 적절한 본문을 찾는 실제적인 원리
그렇다면 적절한 본문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펄전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한 구절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거기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면 설교의 주제를 달리 더 찾아 볼 필요가 없습니다. … 어느 본문이 여러분을 사로잡게 되면 적절한 본문을 찾았다고 확신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 그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러한 본문들을 찾을 수 있는가? 스펄전에 따르면 가장 적합한 본문을 구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구하는 것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우리의 설교 주제에 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또한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간구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하여 스스로 손쉽게 주제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우쭐해진다면, 주제를 선정하는 문제에서조차도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씀을 받으십시오.”3
기도를 통하여 확신 가운데 주어진 본문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기도의 응답으로 설교 본문이 주어지게 되면 그 본문이 정말로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똑같이 그저 무미건조한 형식적인 설교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향기와 기름부으심이 거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스펄전은 설교자에게 기도를 드린 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하심을 위해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고 생각들을 집중시키라고 권면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려할 것인가?
첫째, 교회와 회중의 영적인 상태와 필요를 고려한다. 여기에서 경계할 것은 특정 회중에 관한 지나친 관심이다. 스펄전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헌금을 많이 내는 교인들만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가난한 교인에 관해서도 동일한 관심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설교자는 회중의 칭찬을 의식하여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우리는 신실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청중들이 요구하는 그런 곡조를 연주해 주는 악사(樂士)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교인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시고 그것을 말씀의 주제로 삼으십시오.”
둘째, 교회에서 번지고 있는 죄들이 무엇인지 숙고한다. 교인들의 세속적 생활, 탐심, 기도 없음, 분노, 교만, 형제 사랑의 결핍, 비방 등 현재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야 하며 그러한 문제에 합당한 말씀을 설교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교인들의 영적상태를 살피고 이단이나 악한 생각들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면 그것들을 교정할 수 있는 본문을 설교본문으로 정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신중한 목자는 자신의 양떼들을 자주 점검하여 그들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합니다. 어떤 종류의 음식은 조금씩만 주고 어떤 종류의 음식은 풍성하게 공급하고 적절한 약을 투여하는 등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셋째, 그 전에 다룬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핀다. 이전에 행한 설교의 주제들을 검토하여 혹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교리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은 유익하다. 또한 그것의 내용에 있어서 지나치게 교리만 강조하지 않았는지 혹은 실천적인 것에만 신경을 썼는지 혹은 체험만을 강조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성경의 각 책들과 다양한 주제들을 설교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 “진리라는 초상화를 그 특색에 맞추어 균형 있게 다양한 색깔로 그리도록 힘써야 한다.”
3. 본문 선택의 결정적 원리: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하라
그러나 비록 이러한 원리로 본문이 선정되었을지라도 만약 성령의 또 다른 인도하심이 있다면 설교자는 그것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잘 준비해놓은 설교를 취소하고 성령의 즉각적인 도우심에 의지하여 순전히 즉석 설교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법입니다.” 이는 스펄전의 설교 사역 초기부터 일관된 원리다. 스펄전은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경험을 들려주는데 그중 뉴파크스트리트교회에서의 경험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어느 주일 저녁예배 시간. 스펄전은 설교 준비를 아주 착실해 잘해 놓았고, 찬송을 부르며 본문을 찾아놓으려 성경을 폈다. 그러나 그 순간, 마치 사자가 수풀에서 달려 나오듯, 그 반대 쪽 페이지의 다른 성경 구절이 그의 눈에 강하게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본문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스펄전은 우왕좌왕하며 머뭇거렸지만 성령께서 강하게 그 마음을 이끄셔서 준비한 본문을 힘들게 포기하고 새로운 본문으로 즉흥적으로 설교하게 되었다. 스펄전은 즉석에서 첫 번째 대지와 두 번째 대지를 진행시켰지만, 세 번째 대지에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예배당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예배당의 실내등이 갑자기 꺼져버려 교회가 일시에 캄캄한 암흑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스펄전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신 말씀을 따라 세 번째 대지를 설교했다. 스펄전은 원래 준비된 설교 본문과 원고를 따라 세밀히 설교를 진행하고 있었다면 설교가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었음을 토로했다. 예배가 끝나고 몇 가지 모임이 있은 후 두 사람이 스펄전을 찾아와 그날 밤 자신들이 회심했다고 고백했다. 한 사람은 설교의 전반부에서, 한 사람은 갑자기 등이 꺼진 후 듣게 된 새로운 말씀을 통하여 회심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스펄전은 설교의 본문 선택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확신했고 그것에 철저하게 복종하려고 노력했다. 스펄전은 이에 관하여 이렇게 변호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어리석다고 조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혹 이런 것을 책망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기쁩니다. 여러분, 설교에서 무엇보다도 피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실질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기계적인 설교 행위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저마다 목회사역에 가운데서 그런 일들을 체험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을 주시하십시오.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러나 스펄전의 성령의 의존성이 설교자의 설교 준비의 소홀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펄전은 설교 준비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설교를 앞둔 한두 시간쯤 전에 하늘의 사자가 설교의 본문을 저절로 전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설교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요, 그로 인해 본문 없는 강단을 경험할 것임을 경고한다. 오히려 설교자는 설교를 위하여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설교 준비가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 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꿀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제나 교인들을 위하여 영적인 꿀을 저장하는 데에 바빠야 할 것입니다. 설교 사역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목회사역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 목사들은 항상 건초를 만드는 작업에 힘써야 하고, 특히 태양이 떠 있는 동안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준비하는 데도 성경본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경우 스펄전은 성경을 계속해서 읽되, 특별히 한 장을 읽고 각 절마다 깊이 묵상하거나 혹은 한 절을 선택하여 그 구절에 온 정신을 쏟을 것을 권면한다. “그렇게 하면 그렇게 읽는 절이나 장에서 본문을 찾을 수 없다 할지라도 거룩한 주제에 정신을 적극적으로 쏟는 동안 적절한 말씀이 떠오를 것입니다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어 가다가 결국 긴 생각의 흐름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예정된 설교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성경 읽기의 원리
설교주제와 본문의 선택이 일단 끝나면 설교자에게 남겨진 다음 과제는 성경 읽기의 문제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요리를 결정한 후, 재료들을 다듬고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설교의 실제적인 출발점이라는 면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1. 기본 원리: 성경 자체를 읽고 성경으로 목욕하라
스펄전은 당대의 설교를 논하며, 오래전 설교의 선진들의 설교에 비하여 설교에 성경이 지나치게 적게 나타나고 있음을 한탄하곤 했다. “신학의 대가였던 청교도 설교자들의 설교와 비교해보면 오늘날의 설교에는 성경이 지나치게 적게 나타나 있습니다. 청교도 설교자들이 사용한 거의 모든 문장은 성경 말씀에 빛을 던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설교하는 말씀뿐 아니라 설교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말씀이 새로운 조명 아래 놓입니다. 그들은 본문 말씀과 연결되는 다른 구절들로부터 놀라운 빛을 이끌어 내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독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도록 교육시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스펄전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읽을 때에 주석서나 다른 어떤 참고자료들보다 성경 자체를 많이 읽을 것을 권했다. “물탱크에서 마시는 것보다는 샘에서 마시는 것이 언제나 제일 좋습니다. 주석서들보다는 성경 자체를 여러분 스스로 읽는 것이 은총 가운데서 자라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순수한 우유를 마십시오. 반면에 인간의 말인 찌꺼기 우유나 물은 마시지 마십시오.”
이러한 성경 읽기는 주석서나 다른 것을 먼저 대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설교자의 편견을 제어할 뿐 아니라 위로부터 주신 말씀 자체에 귀 기울이며, 설교자의 마음을 그것으로 가득 채우는 데 기여한다. 또한 그것은 설교가 철저하게 본문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게 함으로 설교자의 생각이 아닌 계시의 본문이 설교 속에 흘러넘치도록 돕는다. 스펄전은 말한다. “언제나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제가 성경 본문 속에 누워서 그것으로 흠뻑 젖어 있을 때에 가장 좋은 설교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저는 그 본문으로 목욕을 한 후에 그 속에 누워서 그 본문에 저를 흠뻑 적시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본문이 저를 부드럽게도 하고 견고하게도 하고, 여하튼 그 본문이 제게 해야 할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그 본문에 대해 설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본문의 정신이 여러분을 가득 채우게 되면 어떤 특정한 단어나 문구의 미세한 의미에 대해 개의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향기에 흠뻑 젖어 드십시오. 그러면 그 향기가 여러분에게 풍겨나게 될 것이고 사방으로 퍼져가게 될 것입니다.”4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성경에 어떻게 잠겨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2. 성경 읽기의 구체적인 원리
1) 의미를 파악하라
스펄전에 따르면 성경 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의 파악이다. 만약 전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읽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스펄전은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단지 성경을 몇 장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선한 행동을 했다고 위안 삼는 것을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스펄전은 말한다. “의미 파악이 올바른 성경읽기의 본질입니다. … 이것이 없다면 읽는 것이란 하나의 기계적 운동에 불과하고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따라서 스펄전에게 한 사람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통독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이 읽은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읽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펄전은 하루에 성경의 여러 장들을 읽기보다는 짧은 몇 구절의 정독과 깊은 이해를 권한다.
2) 열린 마음으로 깨어있으라
지금까지 세상의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눌려있던 사람이 성경을 펴자마자 하늘나라의 신비로 들어갈 수는 없다. 하늘의 양식을 먹기 원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며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각성시키시기를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여러분이 성경의 영원한 빛을 감히 보기 전에 먼저 여러분의 눈을 열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거룩한 사역 전에 제사장들이 큰 놋대야에서 발을 씻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여러분의 영혼의 눈을 씻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영혼아, 오라, 깨어나라. 지금 너는 신문을 읽는 것이 아니다. 또 현혹시키는 인간의 시를 음미하려는 것도 아니다. 궁전에서 왕관을 쓴 왕처럼 말씀 속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로 너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일어나라, 나의 영광아, 일어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 내 영혼아, 분발하라. 나는 지금 나로 하여금 그것들을 지키도록 말씀하시는 성경을 묵상하려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헌신의 행위이다. 내 영혼아, 분발하라.’”
3) 읽은 후에는 묵상하라
스펄전에 따르면 성경을 읽는 것은 밀을 거둬들이는 것이며, 묵상하는 것은 밀을 타작하여 방아를 찧어서 빵을 만드는 것과 같다. 또한 성경을 읽는 것이 소가 풀을 뜯는 것이라면 묵상은 말씀을 소화시키며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5 이러한 묵상의 필요는 성경이 가진 독특성 때문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성경책들은 우리가 생각하도록 만들어지고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중 이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가르치십니다. 즉 우리로 생각게 하여 신령한 것들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경의 묵상은 진리의 말씀으로 설교자를 단련시키고 영혼을 더욱 강건하게 세워준다. 따라서 성경을 읽은 후 그것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묵상해야 합니다. 짓밟기 전에는 이 포도송이들은 포도주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기름이 흘러 나오도록 이 올리브들을 바퀴 아래에 놓고 여러 번 눌러야 합니다.”
4) 기도하라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한 또 다른 스펄전의 강조는 기도에 있다. 그것은 성경해석에서 결정적인 요소다. 스펄전은 말한다. “나는 본문의 의미는 다른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해서 가장 잘 해석될 수 있음을 항상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나 혹은 단어들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사전이나 주석을 의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끝났을 때조차, 가장 큰 도움은 기도로부터 온다는 것을 또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6 성경 해석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묵상처럼 성경이 가진 독특성에 기인한다. 곧 모든 책이 그러하듯, 그 책의 의도와 의미를 가장 잘 아는 이는 그 책의 저자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 저자에게 묻는 것이다. “누가 책을 제일 잘 이해합니까? 그 책의 저자입니다. … 우리가 성경을 들고 읽으며 또 그 뜻을 알기 원할 때는 그 뜻을 드러내시도록 성령께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떠한 방식으로 설교자가 본문의 이해에 이르게 하는가? 스펄전은 말한다. “성령께서는 기적을 행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또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셔서 그 자연적인 연관성에 의해 그것을 하나씩 소화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령의 가르침의 진수와 골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울타리와 개천을 지나 그리스도께로
스펄전에 따르면 참된 성경 읽기란 본문의 의미의 파악을 넘어 그것의 영적 의미를 찾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구약의 율법서나 역사서를 다룰 때도 예외가 아니다. 스펄전은 말한다. “구약의 율법 중에 내적인 감각과 의미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레위기에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 … 레위기나 솔로몬의 노래와 같은 그러한 경우에도 단단히 잠겨 있는 귀하고 정선된 하나님 말씀의 교리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읽을 뿐만 아니라 조사하십시오. 영적인 의미에 도달하기까지는 의식적인 교훈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참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예수님을 의식하며 예수님을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교리나 율법보다도 더 크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마 12:6). 스펄전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하거나 느끼지 못한 채 성경을 읽는다면 우리가 비록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통독한다 할지라도 성경은 죽은 책이 될 것이며, 우리의 영혼 역시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성경 읽기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가르침에서 그것을 성취하신 주님께로, 율법에서 그것을 높이신 주님께로, 죄에서 나를 위해 그것을 지신 주님께로, 언약에서 그것의 “예와 아멘”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 나는 성경을 그분의 임재 속에서 읽겠습니다. 주님은 성경의 본질이시며, 이 책의 저자일 뿐 아니라 이 책의 증거시며, 창조자시며 그 전부임을 의식하며 성경을 읽겠습니다.”7
그러므로 스펄전에게 올바른 성경읽기란 모든 본문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스펄전은 이를 힘주어 이렇게 강조한다. “여러분이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한다면 성경은 여러분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추구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스펄전의 성경 읽기는 왜 그의 모든 설교 ― 구약을 본문으로 설교한다 할지라도 ― 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인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설교자의 모든 설교가 궁극적으로 왜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스펄전은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 당시의 많은 설교자들의 설교에 관하여 이렇게 경고했다. “어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보혈에 관하여 설교할 수 없거나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런 설교자들에 관하여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한마디는, 결코 그런 설교를 들으러 가지 마십시오! 결코 그런 설교를 듣지 마십시오! 입니다. 그 안에 보혈이 없는 사역은 죽은 것이요, 죽은 사역은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습니다.”8
그렇다면 본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펄전은 이에 관하여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전혀 말하지 않았던 한 젊은 설교자에게 말했던 웨일즈의 노설교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은 아직 설교하는 법을 모르고 있소. 그곳이 어디 있든지 간에 영국의 작은 모든 마을로부터 런던으로 가는 길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모든 책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께로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설교법이란 내가 이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로 도달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과 그러한 방법으로 일관하여 설교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젊은 설교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르는 길이 없는 책을 내가 찾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 노설교자는 “나는 40년 동안 설교를 해왔어요. 그러나 그러한 성경을 결코 찾아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만약이라도 그러한 본문이 있다면 울타리와 개천을 건너 나의 주님께 이를 때까지 그 길 찾기를 멈추지 않겠소.”
스펄전은 성경을 일생토록 한결같이 사랑했다. 그것은 그에게 언제나 닳지 않는 책이었고, 새로운 책이었고, 새로운 성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리스도와의 깊은 밀회 가운데로 인도하는 감미로운 책이었다. 깊어가는 가을, 한 책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에 빠지자. 그 깊은 사랑에 잠겨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그의 백성을 먹이는 자, 하늘의 기쁨이 되리라.
주)
1. C. H. Spurgeon, Lectures to My Students: Completed & Unabridged (Grand Rapids: Zondervan, 1954), 84~5.
2. Spurgeon, 앞의 책, 85.
3. Spurgeon, 앞의 책, 96.
4. Spurgeon, An All-Round Ministr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00), 124~125.
5. Spurgeon, MTP Vol. LVII (London: Passmore & Alabaster, n.d.), 611.
6. Spurgeon, MTP Vol. LVII (London: Passmore & Alabaster, 1910), 5.
7. Spurgeon, MTP Vol. XXV (London: Passmore & Alabaster, 1886), 829.
8. Spurgeon, MTP Vol. LIV (London: Passmore & Alabaster, 1908), 405.
손동식 | 20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