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신> 당신의 무뎌진 손끝 - 하나의 사물에 100가지 이미지 찾아내는 훈련
로메다 님, 어느 분야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하나의 곡을 익히기 위해서는 수십만 번의 건반을 두드려야 합니다. 학자들이 한 편의 논문을 쓰기 위해 수많은 밤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소설을 공부하는 문학도들도 얼마나 고된 수련을 감행하는지 아십니까? 어휘력을 풍부히 쌓기 위해 거대한 사전을 몇 번씩 독파하기도 하고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세계적인 명작 소설들을 수십 번씩 옮겨 쓰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국의 한 저명한 소설가가 소설 공부를 할 때의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돌>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설정하고 내용이 같지 않은 100가지의 산문 쓰기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돌'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니까 한 20가지쯤 쓸 때까지만 해도 별 어려움을 못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뒤부터서는 점점 쓸거리가 고갈되어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상력의 도움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상상력이란 '만들어 낸 생각' 아닙니까? 상상력을 동원하여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는 드디어 <돌>에 대한 100가지 산문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놀랍게도 큰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의 앞에 어떠한 소재가 주어져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무슨 소재를 가지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치 데생의 실력을 갖춘 화가에겐 어떠한 대상이 주어져도 두렵지 않은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메다 님, 지금부터 우리도 그러한 훈련에 돌입하기로 합니다. 하나의 사물을 설정하고 100개의 이미지를 추출해 봅시다. 우리도 <돌>을 놓고 연습을 해볼까요? 처음엔 유추적 이미지를 다음엔 연상적 이미지를 찾아내 봅시다. 몇 개쯤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몇 십 개쯤은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점점 새로운 이미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를 더 짜보세요. 골돌히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생각이 잘 안 나면 유추와 연상의 고리에 얽매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생각의 폭을 넓혀 보세요. 김종삼이 '북 치는 소년' 속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생각해 내듯이 아주 낯선 생소한 것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말입니다. 무언가 그럴 듯한 이미지가 떠오르면, 네, 그것을 붙잡으세요. 그것이 바로 저번에 우리가 골치 아프다고 잠시 유보해 두었던 창조적 이미지입니다. 그런 창조적 이미지를 계속 찾아내어 100개를 채우세요.
로메다 님, 당신이 만일 하나의 사물을 놓고 100가지 이미지를 찾아내는 훈련을 몇 번만 되풀이한다면 어떠한 사물이 당신 앞에 주어진다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아름답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다상량(多商量)의 힘이고 격물(格物)의 이치입니다.
명 요리사란 주어진 재료가 별것 아니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명 목수는 어떠한 목재가 주어져도 그 목재에 맞는 좋은 가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시인은 어떠한 소재가 주어져도 감동적인 시를 만들어 냅니다. 시인도 일종의 기능인입니다. 언어를 잘 다루는 기술자입니다. 무슨 분야이든 기능인이 되기 위해선 피나는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수많은 상처들로 얼룩진 명장(名匠)들의 손을 보십시오. 마치 명장(名將)들의 가슴에 매달린 훈장처럼 반짝이지 않습니까?
로메다 님, 당신의 손가락 끝 고운 지문들이 다 무디어지도록 자판기의 활자들을 두드리십시오. 당신의 부드러운 중지(中指)의 목이 단단한 볼펜에 눌려 굳은살이 박히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고운 손끝으로도 시를 빚어낼 수 없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이 기억해 주는 '좋은 시'는 굳은살이 박힌 무딘 손끝에서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시는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좋은 시는 아무나 쓸 수 없습니다.
로메다 님, 당신이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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