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보문학> 월간지 2022년 9월호에 오를 예정인 수필 하나를 미리 보았다.
광동 김창호 수필 : '현담윤 장군님 정신을 되살려 대한민국의 진정한 광복과 통일을 이루어어 가야 할 때'
한 편의 수필에서 숱한 역사 이야기와 이와 관련된 등장 인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또한 최근의 국내 정치가들의 이름도 나온다.
고려 문극경선생, 문재인대통령, 조국 전법무부장관, 추미해 전법무부장관, 청년정치인 박지현, 정의당 심상정, 현담윤장군, 이순신장군, 징기스칸, 청나라 누루하치, 박서장군, 김경손장군, 이성계장군, 최천극장군, 창주 이길성선생, 고려 명종, 서경유수 조위총, 고려 이의방, 진시황 분서갱유, 석주 이상용선생, 김동삼선생, 조소앙선생, 안창호선생, 윤생선생, 이우선생, 행촌 이암선생, 이성길선생, 김유신장군, 윤봉길, 경순대왕, 김안국선생, 대원군, 이형관 언론학교, 박제가선생, 정약용선생, 광암 이벽선생, 독일 괴테, 윤익선생/교장, 이형자선생, 이귀남선생 등등.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아서 퍼서 여기에 올린다.
나한테는 글감이 되기에.
세계사, 동양사, 한국정치사, 독립운동가 등에 관한 공부를 더 해야 할 터.
내 댓글 1 :
동양사, 국사, 고려조 현담윤장군의 가문과 일대기를 살펴봅니다.
<e고려신문> 2022. 4. 12.에 오른 내용.
연주현씨 시조 현담윤(玄覃㣧) :
연주(延州)는 평안북도 영변(寧邊)의 고호(高號)이며, 영변군은 영주(迎州)와 무주(撫州)의 합명(合名)이다. 영주는 본래 고려 때의 밀운군(密雲郡)인데 670년(광종 21) 연주(延州)로 고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으며 995년(성종 14) 방어사(防 使)를 두었다가 공민왕(恭愍王) 때 연산부로 승격되고 1413년(조선 태종 13) 도호부로 개편.
현씨(玄氏)의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본래 평안도(平安道) 연주(延州) 출신으로 고려(高麗)의 의종조(毅宗祖)에 장군(將軍)을 지내고 명종(明宗) 때 일어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功)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라 연산군(燕山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은 현담윤(玄覃胤)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시조의 봉군지명(封君地名)인 연주(延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위 글에서 많은 이들의 이름이 나오기에 덕분에 동양사, 국사, 특정 가문의 보학,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 등 국사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내 댓글 2 :
위 글에서 청태조 홍타이지의 병자호란도 나오는군요
1636년 12월 청나라가 침략했고, 인조(선조의 손자)는 경기도 남한산성으로 급히 도망쳤다가 추운 겨울 1월... 겨우 40여일 만에 항복....
지금의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에 있는 석촌호수(옛지명 송파나루터) 인근에서 항복했지요. 맨발로.... 굽신거리며...
그 내력을 새긴 큰 빗돌이 송파구 석촌호수 공원에 있지요. <대청황제공덕비>.
우리 역사는 이게 창피해서 <삼전도비>라고 가짜 이름으로 국사교육을 시키지요.
삼전도는 송파강(현 한강)에 있는 작은 섬 옛지명.
위 글을 읽으면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의 활약상도 엿봅니다.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재일한국학생들이 동경선언을 외쳤지요.
춘원 이광수 등을 포함하여... 동경선언은 1919년 3월 1일 삼일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아쉽게도 춘원 이광수는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어.. 한국전쟁 당시에 이북으로 자진월북했다가 이북에서 죽었지요.
추천합니다 !
내 댓글 3 :
김창호 님의 다른 글..
'판서 김안국 선생님과 관찰사 최숙생 님의 고사...(2022. 7. 1.)
'판서 김안국 선생님과 관찰사 최숙생 님의 고사를 통해 본 윤석열 정부와 국회의 역할|작성자 행복의 정복'
'.... 신라 말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황소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남긴 고운 최치원 선생님께서는 신라에 귀국하여 개혁안인 '시무 10조(時務十條)'를 상소했고, 면암 최익현 선생님께서도 조선말 국란 극복을 위한 많은 상소를 올렸습니다.
...'
위 글에서 고운 최치원, 최숙생, 면암 최익현선생 모두는 경주최씨이지요.
최치원은 경주최씨 시조이고.. 신라 헌강왕조의 고운 최치원에 대해서는 .. 저도 알 것 같군요...
면암 최익현은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에 상소를 올렸고, 1906년 의병활동하시다가 체포되어 일본 대마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단식투쟁하시다가 돌아가셨지요.
덕분에 국사 공부를 더 합니다.
내 댓글 4 :
최명길 선생의 본관은 전주최씨.
국사에서 최명길 선생의 내력은 배웠어도, 최천극 선생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혹시 배웠는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은 탓인지...
뜬구름이나 잡은 상투적인 허구의 문학-글에서 이처럼 사실에 바탕을 둔 수필이기에 반갑습니다.
글을 또 기다립니다.
덕분에 인터넷 등으로 검색해서 더 공부해야 하기에...
광동 김창호 수필작가의 덧글
덧글 1: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명길 선생님의 화의를 있게한 최천극 선생님의 안타까운 활약상도 있지요?
덧글 2:
감사합니다. 소년 시인 윤우의를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혁명가 윤봉길로 변모시킨 선행 역사들입니다.
동시대 인물 안동김씨 가문의 김상헌과 수성최씨 가문의 최천극 선생님을 비교 분석해 글을 한번 써 보아 주시면 어떠실련지요?
괴테의 파우스트를 뛰어넘어 윤봉길 시인님을 잇는 위대한 작가가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료를 더 추가한다.
'보령문학 카페'에서 최명길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서 요약한다.
'녹림' 회원님이 게재.
'국난에 대한 두 가지 자세… 김상헌과 최명길②(2022. 4. 29.)'
1627년 정묘호란, 모두 침묵할 때 적진으로 가서 화친 국토 유린 막아
1636년 9월 임박한 전쟁 대비해 압록강에 군사 배치 주장
1636년 12월 무악재까지 온 적군과 협상 핑계로 시간 끌어 그 사이 인조 산성 피란
1637년 1월 "조선 신하는 명이 아니라 조선을 위한다"며 청과 화친 주도
1638년 청나라 파병 요청에 목숨 걸고 거부해 병사 희생 막아
박세당, "말로 칼날에 맞서 백성을 안정시켰다"
비석에는 '조선의 대신' 최명길
- 충청북도 청주 대율리에 최명길 묘가 있다. 주소는 북이면 대율리 253-3.
사별한 첫 아내와 두 번째 아내 그리고 본인 묘가 있다.
비석에는 '朝鮮 相國 贈諡 文忠 遲川 崔公鳴吉之墓(조선 상국 증시 문충 지천 최공명길지묘)'
- 이조판서 최명길이 적진 동태를 살피겠다고 인조에게 말했다. 인조는 오랑캐에게 강화를 청하면서 진격을 늦추게 하도록 했다.(1636년 12월 14일 '인조실록') 병사 20명이 동행했는데, 최명길이 적진에 이르니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그사이 인조 일행은 수구문(水口門·신당동 광희문)으로 빠져나가 무사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최명길이 귀환했다. 인조가 말했다. "조정 관료들이 모두 경(卿)과 같았다면!"(최명길 신도비명) 최명길은 귀환한 그날 다시 협상단 대표로 청나라 군영에 투입됐다.
- 1637년 1월 18일.
마침내 이조판서 최명길이 항복 국서 초안을 작성했다. 최명길은 홍타이지를 '황제'라고 불렀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화를 내며 국서를 찢어버렸다. 찢어진 국서를 최명길이 주워담았다. 다른 대신들이 날을 미루고 국서 재검토를 요구했다.
최명길과 관련된 병자호란....
1636년 12월에 침략당하고, 1637년 1월에 남한산성에서 기어나와서 현재의 서울 송파구 삼전도에서 맨발로 무릎 끓고 항복했던 인조. 인조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한 번 무릎꿇고 세 번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한다. 한 번씩 절할 때마다 다시 고개를 3회씩 끄덕거리며 반복.
청태조의 공적을 기록한 '대청황제공덕비'.
일제시대 때 홍수로 무너진 삼전도비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 :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1호로 지정.
현재 위치 : 서울 송파구 잠실동 47번지.
송파나루공원 북편. 잠실호수교 북편에 있다.
인근에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 대형건물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세워진 청태종공덕비(淸太宗功德碑)이며,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춘 거비(巨碑)이다.
비양(碑陽)에는 왼쪽에 몽고문(蒙古文), 오른쪽에 만주문(滿洲文), 그리고 비음(碑陰)에는 약 2.1㎝ 크기의 한문 해서가 새겨져 있으며 비액(碑額)은 전서(篆書)로서 “大淸皇帝功德碑(대청황제공덕비)”라고 적혀 있다.
비문(碑文)은 이경석(李景奭)이 짓고 오준(吳竣)이 해서로 썼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전(篆)하였다.
삼전도비는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 북동쪽 모서리 송파대로변에 있는 비석으로 사적 제101호이다.
정식 이름은 만주어로 '대청국의 성스러운 한의 공덕비(ᡩᠠᡳ᠌ᠴᡳᠩ ᡤᡠᡵᡠᠨ ᠊ᡳ᠋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ᡥᠠᠨ ᠊ᡳ᠋ ᡤᡠᠩ ᡝᡵᡩᡝᠮᡠᡳ ᠪᡝᡳ)', 한문으로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청나라 황제가 청태종 홍타이지이므로 '청태종공덕비(淸太宗功德碑)'라고도 한다.
나는 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조선조 역사를 말할 때 나는 '쪼다 이씨조선'이라고 말한다.
'3대 쪼다'
1592년 일본한테 당한 선조
1636년 청나라한테 당한 인조(선조의 손자)
1905년 일본한테 당해서 을사늑약을 체결한 고종
아쉽다.
망해가는 중국 명나라를 숭상하여 ... '명청교체기'에 신흥 국가에 허술하게 대응한 조선조의 국방-외교정책을 엿본다.
1592 ~ 1597년 임진왜란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렸다가 또다시 당한 1636년 병자호란.
신흥 세력인 청나라에 등을 졌다가 오지게 당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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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인 지금(2022년) 대한민국의 국방외교정책은 이떻게 기준(기틀)을 잡고, 유지해야 할까?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들 :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그리고 북한....
* 2022년 8월 현재인 지금 국방부청사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뉴스에는 '대통령실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수시로 보도된다. 사진 뒷배경이 건물이 대통령실?
선제타격을 받아서...?
국가안보의 최고의 부서는 국방부이다. 2022년 현재는....
지도에서 한반도의 위치를 재확인하면... 국제정치현상이... 아쉽다. 그냥 다...
자자...
피곤하면 생기는 증상이 또 도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귀에서 이명이 크게 들린다. 매미가 우는 것처럼, 자동차 소음처럼...
나중에 보탠다.
2022. 8. 13. 토요일.
첫댓글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병자호란 당시 그 남한산성의 역사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최명길 선생님의 화의를 이끌고 참화를 막은 것은 지혜로 무이구곡가의 주자를 음풍명월 하는 이로 진정한 선비의 역할은 임진왜란과 같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하늘의 의가 꽃피어 민귀군경의 자세로 백성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 담긴 무이구곡도를 그린 뒤 창의해 북관대첩을 이루고 장수태왕의 사직단이 있었던 지금의 포천시 수원산 아래 명산리 입향해 또 외침이 있으면 북관대첩과 같은 승전을 이끌 대비해 놓은 창주 이성길 선생님의 의성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싸워 청의 홍타이지 군을 궤멸시킨 최천극 선생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윤우의에서 이성길 선생님을 받들어 살겠다고 봉길로 이름 짓고 고향 예산과 지금의 북경기지역에서 혁명가적 터전을 만들어 놓고 상하이 의거를 하러 떠나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글 고맙습니다.
덕분에 국사, 세계사 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나라 국사, 세계사 등을 제대로 가르쳤나요?
그저 시험 문제용으로나 조금 가르치는 체를 했지요.
국사를 제대로 깊이 가르치면 추한 이면들이 들어나기에... 얼렁뚱땅 적당히 ...
덕분에 역사 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책이 보여주기 않은 뒷면까지도 들여다보는안목을 키워야겠습니다.
대학교수조차도 한국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곤란하면 슬쩍 에둘러서 외국사례로 바꿔지대요.
차마 차마 밝혀서 가르칠 수 없기에....
감사합니다 본관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는 의성이고 중시조님께서 연천 고랑포에 있었던 임강서원과 이천 설봉서원 그리고 여주 기천서원 등에 모셔진 문경공 김안국 할아버지이세요.
행촌 이암 선생님 계열의 학문을 계승하셨으며 대표적인 제자가 말갈사와 거란사가 우리의 민족사로 기록하신 미수 허목 선생님의 할아버지이신 허자 선생님과 호남의 대표적인 유림들이 존경한 하서 김인후 선생님 등이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