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K형도 아시다 시피 내가 이곳 퇴촌에 와서 둥지를 튼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어 간답니다.
참 무심한 세월, 덧 없음를 다시 실감 하지요.
을씨년스럽던 날씨가 오후에 접어들면서 진눈깨비가 되어 내립니다. 그래서 인지 오늘은 여느 때보다 뜸하게 차들이 지나칩니다. 속으로 오늘은
문을 일찍 닫아야지……. 내심 중얼그려가며 오랜만에 컴퓨터와 데이트좀 할까, 이 생각 저 생각 키우다 끝내는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곁에
앉았습니다. 잠시 후 음악이 흐릅니다. 흐르는 노래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따금 찾아와 아직 이곳 생활에 덜 적응되어 떨고 있는
내게 온기가 가득한 난로처럼 따듯이 데워주고 가는 고마운 친구 동수 녀석이 가져다 준 CD, 김난영의 “가인” 얼마 전부터 가사가 맘에
들어 가수 이름까지 외워 두었던 노래이지요.
잔잔히 낮은 톤으로 애절히 음악이 흐름이다. 이 곳에 와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이 초저녁인데도 텅 빈 카페의 벽난로 모서리에
기대어 타오르는 불꽃의 맨 마지막 꼬리 날갯짓을 보노라면 마치 우리의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찡해오고 속절없이 흘려보낸 세월이
더욱 아쉽기만 하답니다. 또한 텅 빈 카페의 적막함이 주는 고독의 색깔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모르게 침묵의 공간을 더 넓게
클로즈업 시키며 분홍빛 색깔로 변색되어 나를 흥분시키기 까지 하지요.
K형!
정말 처음엔 이 침묵이 주는 외로움은 오렌지 향이 스려 있는 가득 찬 마그릿타 칵테일 잔보다 더 차게 느끼며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 같은 것이 아닌 또 다른 한 모습으로 마치 수 억년을 지탱해온 단단한 화석만큼 무거웠으며 내 온몸, 정신, 육체 모두를
온통 굳게 하는 50대 만이 갖는 희한한 고독이었답니다. 그러나 이젠 그 절박하리 만치 날 떨게 했던 애초러웠던 고독감은 세월에, 환경변화에,
계절의 우윳빛 표상에 순응 하듯 무척 친숙해 졌고 이제는 오히려 이를 즐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까지 하여 변화무쌍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점까지 낳게 하였답니다.
K형!
이다지 호젓한 밤 약간의 취기가 스며오고 음악과 벽난로, 텅 빈 카페의 정적으로 이어지는 이맘때쯤이면 나를 못 견디게 하는 지난날들의
가슴 아픈 추억들이 아련
히
떠오릅니다. 벽난로의 장작불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시들어져 간 수년전의 아픈 기억들이 또 다른 의미의 추억으로 승화되어
생각나게 함은 더욱 나를 못 견디게 고독 그 이상으로 휘몰아쳐 오곤 한답니다. 이제는 적어고 훌훌 다 털어 버렸다 생각했는데....
. 이 곳에 와서 거의 5, 6년 만에 그 기막힌, 다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그 녀와의 추억이, 좋고 아름다웠던 일들만 모아 마치 새봄에
좋은 싹을 골라 모종하듯 그리움으로 가슴 깊숙이 닦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못났고, 남자답지 목하고, 나잇값 변변찮고, 종국에는 구제
불능의 나 아닐는지요?
K형!
나의 그 사랑은 5. 6년 전의 이야기 이지요. 그것은 되풀이 되어선 내가 죽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내 나름 데로는 간절한 사랑
이야기랍니다. 이제야 이곳에 와서 다시 그 죽음과도 같은 아픈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생각나는 까닭은 정말 내가 요즘 무척 외로웠나 봅니다.
그래서 그
열정과 같았던 사랑을 다시 한번 해 보고 싶다는 강열한 욕망이 되살아나는 군요. 이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건강하다는 존재가치의 희열일
것입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사랑할 준비가, 받아드릴 여유가 충분히 되어 있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 마음 모두가 그런 대로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으론 내 스스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봅니다. 건강 면에서는 K형. 저는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우람차게
뭔가를 추구하며(믿거나 말거나) 고개를 드는 중량 실린 내 육체의 무거운 침묵의 함성을 종종 듣곤 합니다. 이것은 이곳에 와서 느끼는
실로 수십 년 만의 균형감각일 것입니다. 아마도 맑은 공기, 마음 비운 편안하고 넉넉한 삶의 덕이 아닐는지요.
어쨌든 K형!
나는 그 지독한 사랑으로 인하여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을 시공을 초월하여 마치 정치범이 독방에서 수년을 생활하다 나온 것처럼
그 귀중한 시간들을 한 여자로 인하여 날려 보냈습니다. (쯧쯧쯧! 가엾은 녀석) 이제 그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이 한적한 밤에 K형에게
털어 놓으려고
합니다. K형도 듣고 싶지 않나요? K형을 중학교 입학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해 왔기에 이야기하고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이겠지요. 마치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또한 벽난로 속 타오르는 볼꽃의 향에 취해 갑자기 다 토해내 버려야 후련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누군, 자기만의 소중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고이 간직하여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고 했지만, 도무지 K형에게만은 숨기고 싶지 않아서 또한
이를 계기로 K형도 늙었다고 나이탓 마시고 시들어 가는 육체에 보조를 맞추는 것처럼 감정마저도 무디어져 시들지 마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아직도 젊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어떤 모멘트가 되길 바라는 맘에서 이 어설픈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12월 어느 날 내가 다니던 무역센타 건물 엘리베이터 에서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머리가 유달리 길었고 얼굴은 마치 무리를 떠난 외톨이 사슴마냥 무척 애처로울 정도로 창백하였으며 타인으로 하여금 보호 본능을 유발시키게 할
정도로
나약해 보였고(몸이 허약하다는 뜻이 아님), 마치 최인호의 소설 “겨울 여자”의 이화 같은 여자였습니다. 당시 그녀는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짐을 안고 있었고 이를 보다 못한 내가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자청을 하였지요.(형도 아시다시피 내가 원래 상주촌놈으로 김천 대도시 형들
보다는 정의감, 배려감등이 강한 녀석 아닙니까?) 우리는 이런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시기적으로도 한해가 저무는 세모. 12월이라 마음이
흔들리기 쉬운 때이었지요. 남여가 만나면 쉽게 융화될 수 있는 그런 시기였고요. 이에 우리는 누가 적극적이랄 수 없이 금방 가까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무척 이기적이고 학구적 이였으며(세계 수학경시대회 은상 수상) 여자로서 그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사내라면 이끌릴
수밖에 없는 마력 같은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K형도 아시다시피 나도 나름 데로 촌놈치고는 여자 보는 눈이 여간 까다로운 놈이
아니란 걸아시잖습니까. 그러나 그녀에게 만은 내 감정 통제가 어려웠고 한마디로 불가능하여 속수무책으로 내 모두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한마디
두 마디 던지는 그녀의 유머는 언제나 평범을 뛰어 넘었고 애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몸짓 발짓은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하였으며
주고받는 대화의 화두는 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내는 마술사 였습니다. 그 외에도 그녀와의 모든 것들이 완벽하였습니다.
무려 3, 4년을 우리는
춘향이 이도령처럼 그렇게 저렇게 사랑에 빠졌었지요. 그 사랑의 골짜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40대 사춘기 소년 이였고,
그녀는 몸매가 잘 발달된 조숙한 30대의 사춘기 소녀였습니다. 그녀와 사랑에 깊숙이 빠져 있을 때 내 주위의 친구들이 많은 우려를 했었지요.
당시에는 제 정신이 아닌 내가, 사랑 때문에 체중이 5kg 이상 빠져버린 그 모습이 얼마나 가엾게 보였겠습니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어린
마음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K형, E형, B형에게 그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아마 하루에도 열 너덧 번씩 전화해 주고 그 바쁜 와중에도
찾아와 염려의 조언을 해준 친구들 이였습니다. 또한 가정밖에 모르는 마누라에게도 미안한 마음과 속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속죄의 삶을 살고 있지요.
K형!
그녀는 지성적인 외모와 순박해 보이는 행동들과는 달리 상대방의 마음을 편히 해주는 따뜻하고 순수한 여자는 아니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약간 사이코 기질이 있는 정신 분열 내지는 불안전한 여자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그녀를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마치
중고교시절
영어나 수학선생님중 S가 가미된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듯) 예를 들면 친구들과 또는 둘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느닷없이 일어서며
“나 집에 갈래” 하며 이유나 답변도 없이 총총 걸음으로 재어할 시간도 없이 사라집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매우 잦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였겠습니까? 그 이후는 한두 주 소식도 없고 연락 두절입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그녀는 몇주후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기분 좋은 모습으로 메너 좋게 나타나곤 합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구슬려도 보고 타일러 보기도 했지만 정말로 구제 받을 수 없는
그녀 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떠날 수 가 없었지요. 아마 그러한 나는 그녀가 나의 전부 이었으며 내가 생각해도 치유될
수 없는 중병환자였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만 보지 못하면 음성만이라도 듣지 않고서는 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녀의 전화 목소리 얼굴 안색의
정도에 따라 그 날의 기분이 좌우되곤 했지요. 결국 나는 내가 살기위해 내 스스로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고 대단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당시 나를 내가 판단하기로는 나의 육신, 직장, 가정 모두를 지키기에는 너무나 지쳐 있었습니다. 나는 죽을 각오로 내 자신에 대해 마지막으로
물었지요. “너 이러면 안 되잖아. 월남전쟁까지 참전한 강인한 녀석이잖아. 가정이 있는 놈이 여자 때문에 이러면 하늘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려다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볼 낯이 없잖아.”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며 다짐했지요. “용감히 해어지자고”, “잊겠다고, 잊어버리자고”.
꼭 일년 반이 걸리더군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덮고 무덤덤해 지기까지. 기막힌 세월 이였지요.
K형!
그렇게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간직한 그 지독한 기억들이 이곳 퇴촌에 와서 다시 생각나곤 하는군요. 그 죽음과도 같은 사랑이 완전히
멈췄겠지 여겼는데 말입니다. 또 다시 또 다른 사랑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나는 정말로 정상이 아니지요. 부끄럽습니다. 어디 가서 제발
내 이야기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다지도 못났고 사랑에 굶주린 환자처럼 보이는 이 못난 놈을....., 이탈리아 어느 심리학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10대는 애송이 사랑, 20대는 발전된 풋사랑, 30, 40대는 다 채널 사랑이라고 조사 되었고, 바야흐러 50대에 이러러 서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감정과 감성을 느끼게 되며 완숙한 세대라고 하는데 나는 이 연구보고서에 나를 꿰맞추고 싶은 공감대를 느낀다면 궤변이라
욕하실는지요.
K형!
우린 아직 그렇게 많이 늙지는 않았지요? 우리에게도 아직 청춘이 숨쉬고 있는 거지요? 정말 우리의 청춘, 젊음. 사랑은 시들지
않은 거지요?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내 함성이, 절규가 높고 길게 파장을 일으켜 저 황악산 줄기 송정 뒷산까지 울려 퍼져 우리 2916세대에게
이어져
그 청춘들은 아직도 건재하며 건강하다는 반향을 일으켜 생동감 있는 남은 삶을 보람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한낮 보잘 것
없는 나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올려봅니다. 많은 이해를 바라며 어느 형들보다 착하디착한 2916의 K형들 언제나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의
남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