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4-10. 지혜로운 만족감의 시대
나의 만족감을 아는 것
2020년 팬데믹 초기. 중국 우한에서 낯선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무렵을 떠올려 본다. 한국 사회는 불안과 혐오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커다란 혼란에 휩싸였다. 우리 학교만 해도 해외에서 온 학생들을 예전과 다르게 노려보는 시선들이 눈에 띄곤 했으니 말이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미움, 경멸, 혐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이러스처럼 자연스럽게 번져 나갔다. 무척 우려가 되었지만 심리학자로서 이런 감정들을 하나하나 탓하기 어려웠다. 위험을 싫어하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본능보다 더 강력한 신체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어두운 밤길에 턱 하고 나타나면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 인간이 동물인 이상 신체 기관의 반사적인 반응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결국 동물적 감정을 인간의 이성이 통제해야 하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가다.
그래도 다행히 사회는 성숙했고 시민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높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까닭은 배타와 혐오의 감정이 그리 길게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민족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국가 정책으로 반영되거나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지 않았다. 국민들은 어느 시점이 지나자 지나친 미움이 불필요하다고 생각이라도 한 듯 일상에 집중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동시에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보였다.
차별, 혐오, 멸시. 타인과 다른 문화에 대한 반감을 인간 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지워 버릴 수는 없다. 인류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런 감정들 또한 정말 소중한 존재들과 공존하기 위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열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몸도 외부 물질이 들어오면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반응하지 않는가.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고 고열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 차례 통증이 진정된 이후 단단한 면역 체계가 성장한다. 더 효율적이고 건강한 상태로 거듭나는 것이다. 사회도 그럴 것이다. 경험을 통해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찾아 나간다. 쓸데없는 미움에 불필요하게 소모한 에너지가 아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더 나은 변화의 방식을 찾아낼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사회가 보여 준 심리적 성장과 태도의 발전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깨달았고,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변화를 만들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 낸 지혜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역동적으로 보여 준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우리가 얻은 깨달음은 적지 않다. 무한 개발과 착취, 미국 중심의 경제로 대표되는 야수 자본주의에 한계가 있음을 배웠다. 이는 실제로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이전부터 한목소리로 경고해 온 부분이었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며,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절제한 개발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이제 무한한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삶으로 가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그동안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세계 곳곳의 문제를 극대화시켰고 덕분에 변화의 필요성은 확실해졌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깨달음의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봉쇄, 은폐,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문화를 강조하는 국가들이 방역에 크게 실패하는 모습 또한 뉴스를 통해 확인했다. 정확한 정보 공개와 모두의 안전을 위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한 한국의 시스템이 모범이 된 사례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진화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경쟁보다 공존이 훨씬 더 우수하고 뛰어난 능력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19라는 전 지구적 위기는 우리들의 지혜를 명료하게 만들어 주었다. 인류는 이 사태를 기점으로 더욱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감히 기대해 본다.
나는 여러 차례 우리 사회가 ‘만족감이 지혜로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앞으로의 삶을 행복하게 이어가려면 나의 만족감에 대해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에게 만족감이라는 심리기제는 그다지 정교하게 발달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일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주위에 허다하다.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뇌하수체의 ‘포만중추’라는 부분에 물리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배부름을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위장에 무리가 갈 때까지 음식을 섭취하고 비만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만족감이란 질주하는 인간을 멈출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인 셈이다. 물론 너무 쉽게 만족해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둔감한 만족감으로 살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40평대 집을 사면 50평대를 원하고, 비싼 차를 샀지만 더 좋은 신형 수입차에 눈이 간다. 현대 자본주의는 무한대로 욕망을 추구하라고 부추겼고 많은 질병을 낳았다. 나의 만족감을 똑똑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은 삶을 꾸려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인데 말이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정밀하고 똑똑한 만족감을 배워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낙관적인 주장이 아니 준엄한 선언이다. 만족감이 지혜롭지 않다면 불만족이 지속되고 불행도 계속된다. 만족의 기준은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의 보람만이 나의 만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의 행복의 척도는 바뀔 것이고 바뀌어야만 한다. ‘척도’라는 용어는 학자들 사이에서 두 가지 측면에서 쓰인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쓰는 ‘기준’이라는 뜻의 척도다. 이 책에 앞부분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 want에서 like로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want와 like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want가 사회적으로 추구하도록 자극받아 온 것이라면 like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니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 남게 된 순간에도 당당하게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like다. 비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덜컥 고독을 만나 버렸고 타인의 시선과 멀어진 상태에서 비로소 나의 진짜 like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남의 감탄에 목매던 삶을 살았지만 감탄의 주체를 나로 바꾼다. 나의 like와 나의 만족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나 스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삶’이 다가온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의 색이 미묘하게만 바뀌어도 그걸 알아차리고 감탄한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과 향의 작은 변화에도 크게 감탄을 한다. 나의 경험, 나의 보람이 나 자신이 된다.
척도의 또 다른 뜻은 ‘측정의 단위’다. 심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에겐 ‘리커트 척도’라는 개념이 익숙하다. 심리테스트에서도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의 5단계로 사용하는 척도를 많이 보셨을 것이다. 7점 척도는 당연히 5점 척도보다 세밀하다. 제시된 문장에 대해 얼마만큼 동의하는지 답변하려면 그 사안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 like에 민감해지면 그 대상에 전문가가 된다. 3점 척도나 5점 척도를 넘어서 7점 척도까지 체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그만큼 눈금이 좁아지고 구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소비하고 싶은 상품 또한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구체화 될 것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이를 눈치채고 있다. 한 가지 상품이 대량으로 판매되는 대박 신화는 사라지고 다종소량 제품이 완판이 성공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트랜드를 대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기업의 성패도 나뉘지 않겠는가. 이제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고 부추기던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또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찾아 주고 그것을 북돋아 주는 교육 환경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해 온 자본주의로부터 우리의 후세를 구해 내고, 같은 자원도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지혜를 만들어 낸다. 개성을 살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지혜로운 메커니즘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같은 자원을 가지고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최대로 부유한 삶이 아니라 ‘적정한 삶’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다.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달려가기만 하면 안 되는 세상이다. 짧은 생애에 결론을 내려야 했던 시대에는 만족감을 못 느낄수록 생존에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명과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적정한 만족감과 적정한 멈춤이 없으면 길 잃은 인생을 살게 된다.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 삶의 변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 기술 중에서도 최고로 발달된 하이테크가 아닌 적정 기술이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적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문명과 국가, 개인만이 다른 문명 또는 다른 문화와 공존할 수 있다. 그 ‘적정함’의 위치가 어디인지 찾아가는 계기를 이번 사태를 통해 배웠다고 믿는다. 코로나 19는 그 계기를 앞당긴 촉매제의 역할을 하였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4장 ‘불안의 시대에서 행복을 말하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