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사리에서
교직을 거제에서 마무리 짓고 뭍으로 건너온 지가 3년째다.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면 다행이겠지만, 한편으로 무미건조한 삶일 수 있다. 다가오지 않는 미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기에 인생은 묘수가 한 수 더 있다. 교육단지 여학교에서 지역 만기가 되어 관외 근무지로 배정받은 곳이 거제여서 처음엔 당혹스러웠으나 현실로 받아들여 적응해 잘 지내다 왔다.
연사리에 와실을 정해 주중 머물다 주말에 복귀함을 반복했다. 점심은 학교 급식소에서 때우고 아침저녁은 손수 해결했다. 어쩌다 낀 주중 공휴일은 물론 주말도 뭍으로 건너오질 않고 연안을 트레킹 하거나 산을 올랐다. 고개에 서린 전설을 찾아내고 효자나 열녀를 기린 정려비도 읽어봤다. 마을의 유력 성씨가 어떻게 되고 출향 인사로 유명한 이는 누구인지도 절로 알게 되었다.
거제 근무 3년 가운데 2년은 코로나와 겹쳐 예상 못한 경험을 더 하고 왔다. 지나고 보니 모두 기억 저편의 일들이 되어 아슴푸레해져 간다. 불편한 근무 여건을 반전시켜 휴양지라 생각하고 자연환경과 인문 지리를 샅샅이 정복하고 뭍으로 왔다. 교제의 폭이 좁아 만난 사람이야 적어도, 연안은 헤아릴 수 없이 누볐고 산을 오르내려 지금도 거제 풍광은 눈감고도 선하게 그려낸다.
올해 장마가 시작된 유월 하순 주말이다. 토요일은 우천이라 마금산 온천을 다녀와 교육단지 도서관에서 보냈다. 비가 잠시 주춤해진 일요일은 지난날 근무지 거제 국사봉을 오르려고 길을 나섰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던 지난 사월에 한 차례 다녀온 국사봉이다. 현지에 머문 기간도 그랬지만 퇴직 이후도 해마다 거기를 찾아 자연산 곰취잎을 따서 밥상 위 찬으로 올려 잘 먹는다.
거제 부임 첫해 봄 총선으로 주중 하루 쉬게 된 날 국사봉에 올라 바위 능선 구간을 따라 작은 국사봉으로 건너갔다. 그날 북향 비탈은 산행객 여럿이 다래나무 순을 따느라 두런거리고 있었다. 정글과 같은 숲이라 몇은 타잔처럼 덩굴에 매달려서 순을 따느라 여념 없었다. 그들을 비켜 작은 국사봉으로 건너가면서 나는 곰취 자생지를 찾아냈는데 현지인도 모르는 자연 그대로였다.
거제 근무 3년과 퇴직 이후 봄이면 해마다 거길 찾아가 곰취를 따와 밥상에 올렸다. 지난봄 따온 곰취잎은 이튿날 형제들과 경주 여행지 숙소에서 편육에 쌈을 싸서 먹기도 했다. 무슨 산나물이든 채집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복원이 되는지라 곰취도 그랬다. 새벽 첫차로 신항으로 가는 급행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나가 연사리로 가는 2000번 버스를 탔다.
가덕도에서 거거대교 침매구간에서 연륙교로 나오니 진해 바다와 바위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목 연안에서 옥포를 거쳐 연초로 가면서 차창 밖 풍경에서 한동안 사념에 잠겼다. 연사 종점에서 내려 수월리를 지나 전원주택으로 이루어진 수양마을로 들었다. 국사봉으로 오르는 주작골로 드니 바위틈을 비집고 자란 소나무는 ‘주작골 백년송’이라 명명해 보호수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골짜기에서 등산로를 따라가다 인적 없는 숲에서 덩치 큰 멧돼지가 “꿱!‘하고 헛기침하듯 사라져 긴장했다. 그간 여러 차례 국사봉 산행에서 멧돼지는 처음 만났다. 내가 채집 표적으로 삼는 곰취를 뜯어 먹는 고라니는 만난 적 있었다. 산허리 바위에서 삶은 옥수수를 꺼내 먹으면서도 멧돼지가 나타날까 봐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다가 작은 국사봉 응달로 올라 곰취 자생지를 살폈다.
숲이 우겨져 해마다 누비는 산자락이라도 곰취 군락지를 찾아내기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나뭇잎에는 간밤 내린 물방울이 맺혀 스친 옷자락은 흥건히 젖어왔다. 가까스로 곰취 자생지를 찾았는데 지난번 채집 이후 다시 잎을 펼쳐 비를 맞아 싱그러웠다. 채집량이 많지 않아도 상추를 대신해 몇 끼 쌈으로 먹으면 될 듯했다. 귀로에 용원 어시장을 둘러왔더니 하루해가 꼬박 걸렸다. 2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