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3.11.8.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로마13,8-10 루카14,25-33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버림, 따름, 사랑-"하느님의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내 입으로 그 진실하심을 대대로 전하리라."(시편89,2)
“삶은 선물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Life is a gift! God loves us! We are all brothers and sisters!“
지난 12월6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세계 84개국에서 7500명 어린이들이 모인 가운데
청소년들을 향해 외친 오늘날 주님의 참 제자, 88세 노령의 영원한 젊음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간명하면서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본질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사랑의 메시지인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는 말씀도 멋집니다.
“젊은이들이여! 언제나 기억하라! 삶은 아름다운 선물이다.
하느님은 참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함께하고, 소통하고, 나누고, 주는 놀라운 체험이 있기를 바란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기도하자.
우리 성모님은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다.
언제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하자!”
참으로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교황님인지 깨닫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 만나고 일하는 분이 세계의 영적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님일 것입니다.
정말 한결같이, 끊임없이 주님을 따르는 교황님 모습이 늘 감동입니다.
요즘 강풍이 불고 간간히 비가 오고 나니 단풍잎들은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들 본질로 남아 있는
겨울나무들을 통해 푸른 하늘이, 불암산이 훤히 드러나니 참 좋습니다.
문득 예전 써놨던 “누가 겨울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라는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누가
겨울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
나무마다
푸른하늘
가득하고
가지마다
빛나는 별들
가득 달린 나무들인데
누가
겨울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1998.11.21.
모두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겨울나무들입니다.
가난한 듯 하나 참으로 주님을 배경한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주님만을 따르는 본질적 깊이의 삶을
추구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참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과 독서가 답을 줍니다. 버리고 따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 내용을 나눕니다.
첫째,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말그대로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보다 누구도 앞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용법상 이렇게 번역하지만 제대로의 뜻은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 자신까지도
주님보다 선호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 심지어 자신에게 까지 집착에서의 이탈을 강조합니다.
참으로 이처럼 삶의 중심인 주님을 사랑할 때 사람들에 대한 아가페 사랑도 가능할 것입니다.
초연한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눈밝은 사랑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우선적인 주님 사랑없이 눈먼 맹목적 집착의 사랑이라면 모두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을 늘 기억하는 위령성월 11월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참으로 죽음을 늘 기억한다면, 성 베네딕도의 말씀대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산다면, 비로소 겨울나무처럼 모든 인간 집착을 떨쳐버리고
주님만 따르는 본질적 깊이의 삶에 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어지는 망대의 비유와 전쟁의 비유입니다.
무모하게 주님을 따를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잘 점검하며 자기 정도에 맞게
순리대로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사람 숫자만큼 십자가 양상도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호오好惡나 우열愚劣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무지의 소치입니다.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끝까지 골인 지점까지 한결같이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보다는 늘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날마다 자기 책임의 십자가, 운명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인생 내 어깨에 지고 묵묵히, 한결같이,
죽을 때까지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運命愛의 정신으로 살아감을 뜻합니다.
참으로 책임의 십자가, 운명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참사람이요 구원입니다.
다 버려도 제 십자가만은 끝까지 지고 가야 합니다.
셋째,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루하루 날마다 안팎으로 버리고 비우면서 참으로 소유하되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본질적 삶, 바로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투명한 삶입니다.
세명령 앞에는 “누구든지” 말마디가 붙습니다.
예외없이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이 본질적 세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명령은 단번이 아니 평생현재진행형의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늘 주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자발적 사랑으로 노력해야 할 기본적 수행입니다.
참으로 온전히 자유로운 삶이 주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만 있으면 불완전합니다.
“무엇을 향한 자유입니까?”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한 자유입니다.
순수한 이웃 사랑 아가페 사랑입니다.
참된 이웃사랑을 통해 주님의 참 제자임이 입증됩니다.
참제자의 검증 잣대가 이웃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참 적절하고 고맙습니다.
“아무에게도 빚을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무한한 사랑을 빚지고 있는 사랑의 빚쟁이들입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 해도 이 사랑의 빚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때의 자유는
이런 사랑을 위한 자유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예닮의 여정은 자유의 여정이자 사랑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자유로울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할수록 자유로워집니다.
참사랑과 참자유는 함께 갑니다.
물론 무집착과 무욕의 순수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1.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2.아몰 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3,카르페 디엠(Carpe Diem);오늘 지금 여기를 살라.
다시 한 번 라틴어 세 격언을 마음에 새기며, 주님의 충실한 제자들로서,
버림-따름-사랑의 삶에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복되어라, 거룩히 기뻐할 줄 아는 백성은,
주여, 당신 얼굴의 빛속에 걸으리이다."(시편89,16).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