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 에베소서 1:1-2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용분해 : A. 발신자인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자로 소개함 (1a절)
B. 수신자들로서 에베소 및 에베소 일대의 신설한 성도를 명기함 (1b절)
C. 수신자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축원함(2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예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까지도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하늘 아버지이신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 우리 다함께 우리의 힘과 능력이요,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에베소서 1:1-2절 말씀으로 발신자와 수신자 표기 및 축도로 된 머리말에 대한 말씀입니다. 에베소서는 크게 머리말을 포함하는 1-3장까지의 전반부와 결어를 포함하는 4-6장까지의 후반부로 양분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전반부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구속 공동체인 교회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교리적 차원에서의 사도적 설명이라면, 후반부는 교회 전체와 성도 각자의 바른 모습에 대한 실천적 차원에서의 사도적 훈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 1장은 머리말을 포함한 본서 전반부 1-3장까지의 교리적 차원의 설명의 일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예정의 성취와 그 목적에 대해 서론적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장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1,2에서 바울은 본서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수신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비는 축도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권위있는 헬라어 성경 사본에는 ‘에베소에 있는’ 이라는 말이 생략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 서신을 에베소 교회의 상황에 제한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는 본 서신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본 서신은 에베소 교회를 포함한 인근 소아시아 교회들을 위한 회람 서신으로서, 특정 지교회가 아닌 소아시아 지방의 이방인 성도 전체를 대상으로 기록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하 1:3-23의 내용을 요약 제시하자면, 3-14절은 하나님의 구속 예정의 성취 및 성령의 인침에 대해, 그리고 15-23절은 성도들의 영적 지각(知覺)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및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상으로 볼 때, 3-23절은 3-14절까지와 15-23절까지의 단 두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이 부분에서 바울의 사상이 얼마나 광범위하고도 장엄한 스케일로 제시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3-14은 다시 3-6절, 7-12절, 13.14절의 세 부분으로 비교적 세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3-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 예정에 대해 찬송합니다. 성도들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을 받게 된 것은 창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어 7-12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구속이 성취되었음과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구속 사역의 목적에 대해 밝히는데, 하나님의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를 통일하고자 하시는 것인데, 이 목적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속죄 사역을 수행하심으로써 성도들이 그의 피로 인하여 구속 곧 죄사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어 13,14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구속받은 보증으로서의 성령의 인치심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성도의 구속에 삼위 하나님께서 어떻게 개입하셨는지를 제시함으로써, 성도의 구속이 얼마나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3-6절, 7-12절, 13.14절의 마지막 부분에 세 차례 반복된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라 ( to the praise of Him)’ 는 표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예정과 성취라는 구속사의 스펙트럼 속에서 성도의 구속을 설명하는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감격의 찬송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예정의 성취와 목적을 밝힌 후, 바울은 15-23절에서 본 서신의 독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본 서신에 나타나는 두 번의 중보 기도 중 첫번째 중보 기도로서, 기도 내용의 핵심은 성도들의 영적 지각(知覺)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 섭리 곧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성도의 장래 기업의 풍성함, 성도들에게 베푸신 능력에 대해 더 깊이 깨닫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중보 기도의 말미에 ‘교회의 머리’ 라는 은유 (a metaphore) 로써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곧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며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시도록 승귀의 신분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모든 만유 위에 뛰어난 존재로서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만물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몸’ 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입니다(23절). 이는 곧 온 우주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활동이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여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 예정에 대한 찬송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구속 예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교회와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속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in Christ)' 성취된다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가 교회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예정과 성취와 목적에 대해 다루고 있는 3-14절까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몇 번이나 기록되었는가 한 번 세어 보면, 바울은 비록 성도의 구속 사건에 삼위 하나님이 깊이 개입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곧 성부 하나님의 구속 예정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성취되며, 또한 장래 기업에 대한 성령의 인치심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시는 것입니다(10절).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케 하심으로써 결정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22절).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케 하시기는 하였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통일은 아직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고전 15:27.28). 하나님은 언제나 만유의 주이시지만, 창조 질서의 차원에서 볼 때, 아담 이후로 무너졌던 창조의 질서가 온전히 회복되어 모든 피조물이 전체로서 기꺼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already) 임 하였으나, 아직 (not yet) 완성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를 통일하시려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결정적으로 성취되었으나, 동시에 인간 역사의 과정에서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바로 ‘교회 (the Church)' 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자기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셔서 하나로 통일하실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이는 곧 교회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최종 목적을 완성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 지각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는 단지 성도 개개인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것에 국한되는 기도가 아니며, 바울의 중보 기도에는 교회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대한 원대한 비전 (Vision) 과 벅찬 감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예정과 목적에 따라,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바울의 간절한 기도처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과 장래 기업의 영광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은혜와 평강은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은 바울의 서신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축도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하는 말씀은 당시 고대인들의 일반적인 인사였습니다. 은혜를 비는 것은 헬라인들의 풍속이었고, 평화를 비는 것은 유대인들의 풍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인사 형식을 띤 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울이 비는 은혜와 평강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비는 은혜와 평강은 사실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이며 바울이 본서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의 요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까? 나의 결단으로 시작했습니까? 물론 나타나는 양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십시오. 반드시 거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믿음 이면에는 은혜가 먼저 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다음 장입니다. 2:8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증거합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보십시오. 분명히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규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믿고 내가 결단을 내려 얻은 구원인데, 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구원도, 믿음도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여러분, 홍수 심판에서도 살아남은 노아의 경우를 보십시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창 6:9). 진정 그는 고대의 의인 가운데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겔14:14,20). 하지만 보십시오. 그가 잘나서 의인이 되었습니까? 그 자신이 위대해서 당세의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음을 증거합니다(창6:8). 그렇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항상 성도에게 우선인 것은 은혜입니다. 성도로 하여금 성도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있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상실하는 순간 성도는 사실상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평강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는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평강은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평강을 나타내는 말 '에이레네'는 단순한 마음의 평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가 됨으로써 찾아오는 평강을 말합니다. 좀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면 ‘화목’ 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화목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써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했던 불화를 불식시키시고 완전한 화해, 평화를 이루시고 아울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대립과 반목 역시 소멸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평강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성도는 이러한 평강을 어떠한 이유로든 상실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평강이 상실되고 없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유가 어찌되었든 만일 여러분이 마음에 평강을 잃고, 중심이 흔들리고, 불만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원망이 있다면 무엇을 점검해야 하겠습니까?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 안됩니다. 믿음의 결과는 반드시 평강을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요 14:27).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의 권력, 돈이 주는 그런 안정감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어떠합니까? 권력과 돈이 사람짐과 동시에 평강도 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 이유로든 흔들리고 있고, 불안에 처해 있고, 편안하지 않다면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까지 우리가 얻고 있는 평강이라는 것이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셔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기초한 그러한 마음의 평강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