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卯午破, 어떻게 볼 것인가?
신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형충파해 자체가 흉살이므로 형충파해가 있으면 흉명이라고 판단할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형충파해가 있다고 무조건 흉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형충파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형충파해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명조는 형충파해가 있어서 대발하는 사람이 있고 형충파해로 평생 발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형충파해합은 1차적으로 보아야 할 선간점(先看點)이다. 그래서 필자는 『옥정오결』과 『삼명통회』에서
“천간은 생극제화를 보고 지지는 형충파해를 보라”
고한 것을 잘 따른다면 명리를 배우는 시간을 확 줄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형충파해 중에는 상생관계가 있고 상극관계가 있다. 오늘 과제는 파(破) 중에서도 묘오파를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우선 묘오파는 누가 누구를 파하는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 묘오파는 상생관계이기 때문에 子午沖처럼 극하는 자와 극을 받는 자를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묘오파 이외에도 자묘형(子卯刑) 신해해(申亥害)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상생 관계이다. 이들 상생은 사실상 누가 누구를 제하는지 불명확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경우에 필자는 상형(相刑), 상해(相害), 상파(相破)로 가정하고 명조들을 분석해나간다. 상파란 서로 파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파 중에 申巳破의 경우에는 그냥 파로 부른다. 신사파는 巳가 申을 극하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모두 상파이다. 묘오파를 상파, 즉 서로 파하는 것으로 보고 합과 세력을 찾아 계산하면 누가 손상되는지 답이 나오게 되는데 매우 유용한 결과를 얻었다.
즉, 묘오파는 묘가 오를 파하고 오가 묘를 파하기 때문에 1:1의 같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면 묘와 오는 둘 다 파괴된다. 이때 묘와 오가 파괴되는 것으로 보고 통변하면 적중된다. 만일 2卯1午라면 午가 손상되는 것으로 본다. 卯는 세력이 있어서 무사하지만 午는 약해서 손상되는 것이다. 이때 午가 戌을 보면 午는 무사하게 된다. (기타는 이전에 올린 형충파해합 용법 1,2를 참고 바람)
참고로 지금 거의 10여년 이상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묘오파 통변을 증험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 가설에 어긋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므로 본인은 이 가설이 유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동호인 여러 분도 증험해보기 바란다. 여러 예가 많으나 아래 두 예만 들겠다.
乾 『滴天髓闡微』 「官煞」 p.169.
時 日 月 年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壬 丙 戊 癸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辰 午 午 丑
乙卯甲寅운에 토를 극하고 수를 보호하니 벼슬길이 수직으로 상승했고 癸丑운이 되자 금당에서 주목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壬子운에서는 치중에서 黃堂을 거치게 되었으니 명리가 넉넉했다.
1차 분석 : 양인격은 편관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명조는 戊식신이 壬癸관성을 극하는데 관성의 세력이 왕하기는 하지만 戊식상의 세력 火土가 훨씬 왕하다. 그러므로 水관성의 입장에서는 戊에 의해 손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戊식상을 약화시키거나 금수 재관을 만나서 관성을 왕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마침 대운이 乙卯甲寅인수로 가기 때문에 戊식신을 제하고 水관성을 작동시켜서 벼슬이 직상했고, 북방운에서는 극을 받는 水관성을 보충해주어 벼슬이 연속 상승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석인데, 이 명조는 卯운에 묘오파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습관적으로 묘오파를 분석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와 유사한 명조(바로 다음에 나오는 임철초의 명조등)를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차 분석 : 卯운은 辰과 함께 水木의 세력이 될 수 있다. 午는 兩午이므로 2:2의 상황이다. 그런데 午는 득령하여 왕하고, 또 丑을 害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므로 1午는 卯를 파할 여가가 없다. 그러므로 나머지 1午는 득령한 힘만 얻었으므로 卯辰의 세와 비슷하다. (여기서 월령이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가의 선결과제가 있는데 그 부분은 나중에 다루겠다)
일단 여기서는 午가 월령을 얻은 것은 戌이나 寅의 합을 만난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午는 손상이 없고, 卯도 辰水의 세력을 얻어서 손상이 없다. 그러므로 묘운의 묘오파는 무시하고 넘어가도 좋다. 실제 묘오파가 작동해도 극소한 것이어서인지 기록자는 을묘운에 특별한 흉을 기록하지 않았고 길사만 기록했다.
乾 任鐵樵 음력 1773.04.18 08:31 戊子년 236세 0대운
90 80 70 60 50 40 30 20 10 00 時 日 月 年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壬 丙 戊 癸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辰 午 午 巳
운이 40년간 木火로 행하니 위로는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여 이름을 이루지(成名) 못하였고, 아래로는 田園을 지키지 못하였다. 골육간의 관계는 모두 그림의 떡과 같았고 반평생 사업은 뜬구름 같았다. 卯운에 이르러 골육의 변고가 있었고 가세가 기울고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또한 부친까지 돌아가시고 명리로 호구지책하게 되었다.
1차 분석 : 앞의 명조와 다른 것은 戊식상의 세력이 앞 명조보다 훨씬 왕한 것이 다르다. 戊식신의 제거가 반드시 필요한데 乙卯甲寅 인수운을 만났으나 卯운에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 왜인가? 바로 묘오파 때문이다.
2차 분석 : 앞의 명조는 午 1자가 丑를 해하느라 火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으나 이 명조는 지지에 午午巳 3화가 있고 득령까지 해서 火의 세력이 매우 크다. 卯운에 辰中水가 도우나 水木의 세력은 火의 세력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서 이 묘오파는 卯인수가 손상되고 午는 손상이 없다.
卯인수가 무너지므로 벼슬에 올라가지 못하고 午겁재가 흉신으로 날뛰므로 형제들이 모두 흉사를 벌려서 집안의 재산이 남아나지 않고 가업이 파패한 것이다. 卯인수는 또한 부친으로도 볼 수 있는데 사망했다. 묘오파의 피해가 극심했던 것이다.
생각할 점 : 乙卯甲寅인수운에 丙일간은 매우 왕해진다. 신왕한 명조가 더욱 신왕해졌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신왕때문에 흉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木인수는 분명 戊식신을 극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水관성을 작동시킨다고 보아야한다. 한 마디로 신왕한 명조라고해도 신왕운에 발복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묘오파가 있는 명조들은 반드시 묘오파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청운
========= 임철초 자조 통변 ==========
이 사주 역시 午月 長夏의 丙火이고 앞 사주와 丑字만 바뀌었는데 천지차이가 난다. 丑土는 北方의 濕土이니 능히 丙火의 열기를 식히고 午火의 火氣를 거두어들이면서 또 水를 저장하고 金도 보관한다. 그런데 巳火는 남방의 왕성한 火라 癸水는 絶地에 임한 꼴이다. 한 잔의 물로 짚을 실은 수레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과 같다.
반가운 것은 官殺이 혼잡된 것이고 반갑지 않은 것은 그 淸함에 있다. 저 사주는 戊癸가 合이 되었어도 化는 하지 않았지만 이 사주는 合이 되면서 또 化까지 하니 단지 殺을 돕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 火로 化해서 비겁이 되어 도리어 陽刃을 도와 창광(猖狂)하게 되고 巳中의 庚金은 殺을 돕지 못하니 壬水가 비록 身庫에 통근을 했다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金의 도움이 없는 淸枯한 형상이라고 하겠다.
아울러 운이 40년간 木火로 행하니 劫刃을 생조하는 지지이다. 까닭으로 위로는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여 이름을 이루지(成名) 못하였고, 아래로는 田園을 지키지 못하였다. 골육간의 관계는 모두 그림의 떡과 같았고 반평생 사업은 뜬구름 같았다.
卯운에 이르러 壬水는 절지에 임하고 陽刃이 생조를 만나니 골육의 변고가 있었고 가세가 기울고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기억해보니 命을 배우지 않을 때에 사람을 請하여 推算하여 보니 다만 한 맛으로 포장하여 名利가 如意하리라 하였지만 後에 지내보니 한 털끝만큼도 영험하지 않았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또 나(予)는 천성적으로 편졸(偏拙)하고 성실을 좋아하고 허부(虛浮)는 싫어하였다. 아첨할 줄 모르고 오만함이 많았으니 교류왕래에 매양 딱 잘라 바른 말을 하여 어울리지 못하였다. 내가 늠름(凜凜)하였던 것은 나의 祖와 父의 忠厚한 훈계를 감히 실추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가업이 형편없이 망하여갔으므로 마음에 두었던 命學으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하게 되었다. 대저 六尺의 몸뚱이 멀리 큰 뜻과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한갓 작은 기예로서 웃음거리 밖에 될 수 없었으니 이는 나 스스로 생각해 볼 때 命運이 좋지 못하였기 때문에 매사 이익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까닭으로 물이 말라 꼬리의 자국이 남는 곳의 붕어( 轍之 )는 겨우 몇 말의 물에 적응하여야 하니 한계가 있는 기반(地)이고 곤궁할 때(時) 뿐인 것이다. 애달프다! 어찌 命이 아니겠는가. 순순히 그 바르게 이른 바를 받아들일 뿐이다. (『滴天髓闡微』 「官煞」 p.170. 무릉출판사)
첫댓글 철토님 책에는 여러 고관및 부자들 명조들이 여럿나오는 걸로 압니다. 그 자료들이 철초님 본인께서 임상해서 얻으신건지. 어느분에게 건네받아 얻은 자료인지...개인적으론 철초님 본인께서 임상하셧던 명조인듯 하다 보고 잇읍니다.
고관 들이 철초님에게 간명받을정도면 한때 철초님이 술사로서 명성 날렷던 시절이 잇엇을거라 보앗읍니다.
철초님이 을묘대운때 호구지책으로 명리업에 뛰어 들엇다고 하셧는데.. 을묘대운에는 고전햇던 운이라 적어 두셧고. 이어진 갑인 계축 임자 신해대운인데. 이중 한때라도 명성 날렷던 시절이 잇엇을거라 추정햇읍니다.
말년,.즉 임자 계축 신해대운엔 크게 힘들엇다면 명성날렷던 시절은 갑인 편인대운때로 추정햇읍니다.
철초님..말년에는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힘드셧다가...결국 굶어 돌아가신 걸로 들엇읍니다.
신강 특징중 하나.. 어지간한 운에는 밀려 크게 힘들어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철초님은 극단의 경우까지 밀려. 굴어..돌어가실정도..엿다면. 신강근황은 아닌걸로 보앗읍니다.
철토님 명조 수차 명리마당에 올라 논의된 명조이신데요...초년 병진 정사 대운 화비견대운때 수재로 이름날려 집안의 총애와 기대를 받고 과거 시험을 준비햇다고 그분 글에 나옵니다.
즉 비견겁운에 수재로 총명햇고. 기대와 관심을 받앗다.. 이건.. 비견겁이 희신인 근황일겁니다.
말년 대운이 계축 임자 신해 금수로 강한 재관운이 들어오는데 이말년 재관운에 크게 고전하셧다고 본인의 글에 나옵니다.
이 두근황만으로도 철초님 본인 스스로 신약사주이신 근황임을 알려주신 걸로 보앗읍니다.
철초님 책에 다수의 고관등의 명조가 나오는등 한때 유명인들을 술사로서 접할기회가 잇엇다..그 시기가 갑인 편이내운때 엿을거란 개인적 추정이 잇읍니다만. 이 추정을 제하더라도.
철초님 본인이 소개한 근황만 정리해보면 전형적 신약사주 근황이신대....
왜 신강이라 보시는건지....
철초님 본인 께서 소개해둔 근황들이 신강근황인가요?
개인적으론 신약근황으로 보입니다.
...신강 사주 찾습니다...
실제 근황대비 확인돼는 분으로..나이 40세 이상이시고 배우자 사주 정도만 잇으면 됩니다.
아놔.. 신강 사주... 그 흔하다는 신강 사주 좀 제데로 된거 하나없어요?
정말 흔한거 맞아요?? 정말 ? 리얼리?
네 오묘파에선 기토가 죽을것이고
사신파에서는 경금이 죽고 등 파살도 신중해야 겟더군요
갑병병임건
오술오진
이사주도 신해대운부터 하는일 마다 안풀림
아는분인데 임철초님 명조의 오행이 비슷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