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서예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三道軒정태수
클릭 미리보기/청운 김영배전/2013년 10월 23일(수)~ 29일(화)/한국미술관
청운 김영배, 전서와 전각을 융합한 창신의 서예미학 추구
서예계에서 이론과 실기를 고루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는 청운 김영배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오직 서예의 기본을 닦고, 그 기초 위에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전서와 전각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주목을 받아온 그는 오래 삭혀놓은 술처럼 곰삭은 작품을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그 작품을 둘러보면, 전서에 행초의 필의를 넣는가 하면, 한글판본체의 결구와 장법에 변화를 가한 신선한 작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자신만의 서예술을 가꾸기 위해 一以貫之의 정신으로 정진해 왔다.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나 소회를 들어보았다.
어떻게 붓을 잡고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초등학교 때 서예수업을 받으면서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듣게 되면서 붓글씨에 관심이 많아졌고, 고등학교 때 여가시간이 날 때마다 한글서예를 독습하였다. 대학에 입학하자 서예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묵향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2학년 때 제대로 공부해 보려고 시간을 내어 대구까지 가서 전서와 전각을 배우게 되면서 서예가가 되려는 생각을 굳혔다. 그 때 김기탁 서예지도교수님께(전 상주대총장) 진로를 말씀드렸더니 서예를 하려면 서울에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그래서 국어과 권태을 교수님께서 서울에 거주하는 제자 전광진 교수님(현 성균관대중문학과)을 소개해 주셨고, 전광진 교수님께서 1984년 초정 권창륜 선생님의 문하에 입문하도록 연결해 주셨다. 초정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이론적 배경을 튼튼히 하기위해 경기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미학을 전공해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론과 실기를 접목해 전서와 전각의 현대적인 서예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서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누구이고, 어디에 중점을 두었는지?
초정 권창륜 선생님을 만나면서 예술적인 측면에서 서예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 집필과 용필을 깨우친 뒤 서체별로 다양한 법첩을 하나씩 임서하였다. 선생님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심연서회의 회원들은 선후배관계가 돈독했고, 평소 선생님께 묻기 어려웠던 궁금한 내용들은 막걸리를 나누는 자리에서 선배들의 학서경험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중점을 둔 것은 독첩(讀帖)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임서도 중요하지만 시간날 때 마다 법첩을 눈으로 익히는 독첩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나는 요즘도 늘 고전자료를 가까이에 두고 살펴보고 있다. 그 이유는 곁에 두고 자주 독첩을 하면 그 속에 담긴 진수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습해 온 핵심적인 고전자료를 소개한다면?
처음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한 법첩은 구양순의 ‘구성예천명’이라는 해서였다. 차츰 문자를 새기는 전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전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서 전각을 독습하기 어려워 대구에서 전각과 전서를 배웠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 초정 선생님의 지도로 ‘석고문’,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등 대전과 ‘갑골문’과 ‘금문’류를 쓰고, ‘을영비’, ‘사신비’, ‘장천비’, ‘서악화산묘비’ 등 예서와 ‘장맹룡비’, ‘사마현자묘지명’, ‘원현준묘지명’, ‘원진묘지명’, ‘원정묘지명’, ‘찬용안비’, ‘석문명’ 등의 해서와 ‘난정서’, ‘집자성교서’, ‘흥복사단비’, ‘왕희지십칠첩’, ‘서보’ 등의 행초서를 임서하였다. 기본적인 법첩들을 임서한 뒤에는 임서보다는 창작위주로 전서와 문자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지금까지 익혀 온 고전자료와 전각을 융합하여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제작해볼까 고심하고 있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작품창작을 할 때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박사학위논문은 ‘康有爲『廣藝舟雙楫』의 書藝美學思想硏究’이다. 이 논문에서 강유위는 서양열강의 영토분할로 인해 근대 말기의 중국이 나라의 주권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廣藝舟雙楫』을 지어 정치적으로 실패한 개혁의 뜻을 서예미학 이론서에 주입시켜 서예개혁을 이루려고 하였다. 나는 강유위 『廣藝舟雙楫』의 서예미학사상에 관하여 포괄적으로 연구하였다. 특히 강유위는 유가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양명학적인 元氣論을 철학적으로 사유함으로써 개혁적인 생각을 견지하였고, 이를 서예미학적 차원에서 추출한‘康體’를 만든 내용에 대해 정리하였다.
작품창작에 있어 강유위가 강조한 변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일찍이 왕승건이 서예창작에 있어 신채가 으뜸이고 형질이 그 다음이라고 말했듯이 문자의 외형적인 형질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있는 신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문자가 지닌 형질미와 그 속에서 묻어나는 의경미에 대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창작을 할 때 참고하는 고전자료나 관심이 많은 서체는?
최근 눈여겨보는 자료는 진대 이전에 사용된 금문과 간독자료, 석문명과 같은 원필류의 자료, 초결가와 천자문을 비롯한 초서류와 명대의 초서 등이다. 나의 경우는 여러 서체를 두루 좋아하지만 특히 전서를 좋아한다. 전서는 변화추구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서는 원필로 구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정을 이입할 수 있고 부드러운 필획미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문자학적인 지식을 습득해야 전서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전류를 참고하거나 문자학적 근거를 염두에 두면서 예술적 변형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의 글감내용과 표현기법, 그리고 이런 작품을 창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한데?
글감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유가경전에서 발췌하였고, 노자, 장자의 도가에서 마음에 담아왔던 문장, 불가의 선시 등이 다수다. 이처럼 三家의 글귀로 작품을 많이 구성하였다. 그리고 평소 즐겨 암송하던 시와 문으로 작품을 꾸몄다. 표현기법은 종이 위에 휘호한 작품도 있고, 종이에 죽간형태와 같이 감물과 물감을 혼합한 뒤 줄을 긋고 그 위에 글씨를 쓰듯 편지를 써 보기도 했다. 특히 한글과 전각의 표현에 있어 나름대로의 미감을 투영해 보았다. 지난 6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유럽을 다니며 한글서예를 발표할 때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훈민정음 서문’을 판본체로 써보았고, ‘세종대왕훈민정음’이란 문장을 전각기법으로 새기고 훈민정음 풀이를 판본체로 휘호하였다. 이런 작품을 한 배경은 한글이 해외로 많이 알려지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마음에 가득하였고, 전각을 관인의 형태로 새긴 것은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도장의 인문이 훈민정음과 같은 바른 서체로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 외에도 한문작품은 예서목간과 전서류의 작품이 많은 편이다. 정형화되고 고정화된 서체보다 미분화된 고대 자형에서 많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표작 가운데 ‘훈민정음’, ‘산거추명’, ‘독락원기’ 등이 눈길을 붙잡는데? 이런 작품을 제작한 이유는?
먼저, ‘훈민정음서문’은 판본체로 쓴 한글작품으로 획의 강하고 약하고, 길고 짧고 ,가늘고 굵고, 빠르고 느린 요소들을 상보적으로 표현하였고, 전통적인 의경미를 살려 자유분방하게 드러내 보았다.
다음,‘山居秋暝(산거추명)’은 ‘사산공산비’의 필의를 살려서 쓴 작품이다. 운필속도의 날렵함을 살려내고, 절주감을 주어서 원만하고 지루함을 피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獨樂園記(독락원기)’는 마루에서 거침없이 석문명필의로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간 흐름을 마치 시골의 작은 도랑마다 물이 졸졸 흐르는 느낌으로 살려보았다. 이 작품의 글귀처럼 우리의 삶도 홀로 즐기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양식과 이번 전시에서 아쉬운 점에 대해 말한다면?
현대는 가옥의 구조, 관람자의 시각, 학문의 추구방향, 일반인의 문화수준 등, 모든 것이 다양화 되어가는 시대이다. 그래서 현대인의 문화적 욕구에 소통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연구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대인의 정서에 소통되려면 작은 공간에서도 공감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전서와 전각을 이용하여 글자 수가 많지 않은 소품위주의 작품을 할 생각이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작품제작에 힘을 쏟다보니 다소 경직된 느낌이 없지 않다. 작품제작도 계획만큼 소화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서와 전각이 조화를 이룬 작품을 많이 제작하려 했지만 의도만큼 되지 않은듯하여 과제로 남긴다.
대담 및 정리 : 정태수(서예세상 지기)
이 글은 월간 서예문화 2013년 10월호에 실려있습니다
작품감상
프로필
* 아호 및 성명 ㆍ아호 : 청운(靑耘) ㆍ성명 : 김영배(金榮培) ㆍ당호 : 영화서루(永和書樓),문경산인(聞慶山人) *사사: 초정 권창륜(艸亭權昌倫)ㆍ출생:1963년 경북문경생 * 주소 및 전화 ꊱꊱꊰ-ꊳꊴꊰ서울시 종로구익선동55번지 현대뜨레비앙414호 청운서예․전각연구실 ㆍ사무실: (02) 747-9636, (수) 010-8751-9636 ㆍ까페 : http://cafe.daum.net/yhmyh * 학력 ㆍ2002 경기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서예전공) ㆍ2012 성균관대일반대학원유학과 철학박사학위(동양미학) *공모전 및 초대전 ㆍ1987 제7회대한민국미술대전입선(전각) ㆍ(1998,2003,2005,2006)중국서령인사국제서법전각작품대전우수상. ㆍ(92,93,94,99,01)한국서예청년작가예술의전당 초대작가 ㆍ1996 전각과초서의오늘전(예술의전당) ㆍ1997 한글서예의오늘과 내일전( 예술의전당) ㆍ2000년 대한민국미술대전초대작가 ㆍ2000 부천미술올해의작가선정(부천예총) ㆍ2005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깃발서예전초대(한국소리문화전당) * 심사경력 ㆍ2003 대한민국미술대전(전각) ㆍ2011,2,18 대한민국제5대국새모형심사위원 *전현직 ㆍ2001~03한국미술협회부천지부서예분과위원장및경인미술대전상임운영위원역임 ㆍ2003~13,6 경기대,수원대,세종대,숙명여자대학교,동방대학원,강사역임. ㆍ2002~12.2한국전각학회사무국장역임/(2012~현,이사) ㆍ2007,9,2현,중국서령인사명예사원(전각) ㆍ2012,10~현,중국길수대학장가계학원객좌교수 ㆍ2013,3~현,부천서예문인화협회회장 ㆍ2013.05.명인제13-1003-21호 서예한문전각부문(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ㆍ현,성균관대학교유학대학원(서예전공), 춘천교육대학교, 부천여성회관강사
서예정보의 메카 : 서예세상 http://cafe.daum.net/callipia
첫댓글 청운 김영배 박사는 사현이 고향이며 청중 28회 졸업생입니다. 친구의 개인전 축하하며 30일 점촌 문화원에서 만납시다...
후배님 대단합니다. 무궁한 발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