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엄마의 치마폭에서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이나 박진감 넘치는 상모 돌리기의 동작을 발레와 접목하는 등 ‘한국적인 번안’이 군데군데 눈에 띄고, 동화를 원작으로 한 특징을 살려 어린 무용수들을 대거 등장시킨 것이나 마법사 드롯셀마이어가 전체 이야기를 이끌면서 그의 손짓에 따라 무대가 전환하는 장면, 하얀 눈발이 객석을 꽉 채우는 듯 환상적인 영상이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 작품은 특히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이 주인공 클라라의 어머니인 스탈바움 부인,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 전이 드롯셀마이어 역을 맡아 함께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부부. 서울발레시어터는 두 사람에게 자식과 같은 존재다.
“아이를 낳아 기를까, 발레단을 만들까 갈림길에서 우리는 발레단을 택했어요. 발레단은 저희에게 아이 같은 존재이지요. 아이 키우는 일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속상하고 힘들 때도 많잖아요? 그 아이가 이제 열세 살, 중 1 나이가 되었으니 전환점을 맞을 시기죠.”
기존 발레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창작발레를 꾸준히 발표해 온 서울발레시어터가 고전발레인 〈호두까기 인형〉을 다시 안무해 내놓은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 다음날인 2007년 12월 26일, 잠실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제임스 전 씨는 김인희 단장을 바라보며 “오늘 저 사람 생일인데…”라고 말한다. 공연 후 뒤풀이가 있어 새벽에나 잠들었지만, 이들의 일상은 빈틈이 없다. 이날 오후 발레 강습이 있고, 다음날 바로 모나코로 향한단다. 모나코 발레단의 초청으로 공연을 보고 오는 것. 모나코는 김인희 단장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선화예고 2학년 때 그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꽤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자신감이 무너졌죠. 신체조건도 뒤지는 것 같고. ‘발레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운동회에서 부채춤을 추는 친구의 모습에 반해 무작정 들어선 춤의 길. 무용학원을 다닐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가 때때로 음식을 해 가 학원비를 대신하면서 무용을 배웠다. 선화예중 때 처음 발레를 접하고 선화예고 2학년 때 모나코 유학을 가기까지 그는 맹목적으로 춤에 매달렸다. 무용을 늦게 시작한데다 무리해서 무릎과 발목 관절이 아파 왔다.
<호두까기 인형>에서 드롯셀마이어로 등장한 제임스 전. |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 생활비로 매달 300달러씩 필요했어요. 부모님이 전세금을 빼서 보내주셨죠. 아버지는 비행기표 마련을 위해 벽돌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하셨는데 그때 몸이 망가져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요. 그런 형편에도 어머니는 한 번도 제게 춤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린 학생들이 가정형편과 환경을 탓하며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는 “저를 보며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한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로 발레를 가르치거나 공연 때마다 객석의 일정 부분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 발레단 운영도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40대 중반 나이에도 가냘픈 몸매에 우아한 몸동작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에서 발레리나가 되고, 또 발레단을 꾸리면서 주변으로부터 받은 게 참 많습니다. 그만큼 나눠 주고 살아야죠”라고 말한다.
한국의 창작발레 미국에 수출
모나코 유학에서 돌아와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김인희 단장은 제임스 전을 만나 결혼했다. 제임스 전은 경영학 공부를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발레를 접한 후 줄리어드 무용과에 다시 입학했다. 모던발레의 대명사인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을 거쳐 플로리다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객원 무용수로 유니버설 발레단과 인연을 맺고 김인희 단장과 한무대에 섰다. 그는 김인희 단장과 만남 때문에 잠시 들르러 온 한국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함께 뉴욕으로 가자고 했지만, “어머니를 두고 먼 나라에서 살 수 없다”는 김 단장의 고집에 제임스 전이 한국행을 택한 것.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살 때는 수시로 통화하느라 국제전화비가 엄청 나왔다”고 한다. 제임스 전은 국제전화를 통해 노래를 불러 주며 청혼을 했다.
호흡이 잘 맞는 발레 부부. 그러나 두 사람의 내면에 또 다른 욕구가 꿈틀대고 있었다.
<호두까기 인형>에서 스탈바움 부인으로 등장한 김인희 단장. |
“이제 우리가 만든 발레를 세계인에게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누구든 쉽게 발레를 즐기면 좋을 텐데.”
그리고 민간발레단을 창립하는 ‘일’을 저질렀다.
“둘 중 하나라도 제정신이었으면 할 수 없었을 일이지요.”
공연 한 번 올릴 때마다 엄청난 예산이 드는데다 매달 꼬박꼬박 단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게 개인의 힘으로는 엄두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아한 발레리나였던 김인희 단장은 잔고가 바닥날 때마다 후원자를 찾거나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제임스 전은 “미국의 경우 비영리 문화단체가 생기면 금방 후원자도 생기고 세금 혜택도 받는데, 우리나라와 미국의 상황이 이렇게 다른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제임스 전은 〈현존 1-2-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사계〉 〈백설공주〉 〈피가로의 결혼〉 〈코펠리아〉 등 수십 편의 창작발레를 안무해 내놓으면서 참신하고 기발한 해석으로 조명을 받았다. 창작발레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새로운 지평을 열기 시작한 것. 이 중 〈생명의 선〉과 〈inner moves〉〈variations for 12〉는 미국 네바다 발레단에 로열티를 받고 작품을 수출했다. 2007년 9월 말에는 터키, 이스라엘, 세르비아 3개국을 돌면서 공연했는데, 한국의 탈춤과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안무한 〈마스크〉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면에 감추어진 현대인의 내면을 들추어 내는 작품으로, 국악과 윤이상의 음악에 한국의 춤사위가 발레와 접목돼 ‘한국적 모던 발레’를 지향했다.
“대표적인 고전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 〈지젤〉을 처음 안무했던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런 작품만을 고집했을까요? 사회문화가 달라지면 발레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세계적인 추세도 새롭고 창의적인 작품을 요구하고 있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그가 내심 도전하고 싶은 작품은 낭만발레의 진수라는 〈지젤〉. 그러나 김인희 단장은 “그것만은…”이라며 만류 중이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내한 공연을 보고 발레리나의 꿈을 굳혔던 이 작품을 남편이 해체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표를 먼저 생각하는 단장과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꾼’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안무가 사이. 아내가 ‘보스’이긴 한데, 남편이 보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제임스 전은 그러면서도 동분서주하며 발레단을 꾸리는 아내가 안쓰러운 듯했다.
“저 사람은 천생 춤꾼인데. 다른 걱정 없이 춤만 추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발레를 선보이려던 이들의 꿈도 이제 열세 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서울발레시어터는 2008년 1월 11~13일 ‘서울 열린극장 창동’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을 시작으로, 3월 14~16일에는 국립극장에서 네바다 발레단과 합동공연을 하고, 이어 미국 순회공연을 떠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