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두려워하면서 죽음 앞에 절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죽음이 새롭고 영원한 삶으로 옮아가는 터널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허무로 돌리는 죽음마저도 물리치실 수 있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고 가톨릭교회는 믿는다.
이런 신앙과 희망은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 기도문에 잘 드러난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바로 이런 신앙의 힘으로 마지막까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죽음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약한 존재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 대중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성자(聖者)라고 해도 약점과 잘못이 없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김 추기경은 자신의 허물을 통감하면서 "주님, 이 죄인 김수환을 용서 하소서"라고 자주 기도하였다고 한다. 인간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잘못과 허물을 피해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종의 정화(淨化)과정인 '연옥(煉獄)'을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새 옷을 갈아입기 전에 몸에 묻은 때를 벗기고 먼지를 털어버리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고통과 역경 중에 있는 이에게 부모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의 격려와 관심은 힘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정화 과정에 있는 죽은 이들에게도 다른 사람의 기도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신앙이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김 추기경을 애도하면서 명동성당은 물론 다른 성당에서도 연도(煉禱), 곧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 손희성 가톨릭대교수․신부 -
- 이태윤 요셉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