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 마경덕
담을 타던 호박넝쿨이 재빨리 덩굴손을 거둬들였다. 허공을 더듬던 촉수에 습한 기운이 묻어있었다. 짐승처럼 예민해진 골목으로 불길한 예감이 스며들고 닫힌 문을 열고 집들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불안은 낮은 데로 모여들고,
허공이 소리를 지르며 사선으로 찢어졌다. 무더운 정오가 지붕에서 미끄러지더니 길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골목 가랑이를 타고 사방에서 모여든 길이 몇 겹으로 똬리를 틀었다. 입을 벌린 하수구보다 물의 속도가 더 빨랐다. 빗줄기에 난타를 당한 호박넝쿨이 부르르 떨었다. 지하방 수챗구멍으로 무너진 하늘이 기어나오고 벽은 얼룩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었다.
담요와 모래주머니는 흥분한 물의 대가리와 맞섰지만 골목으로 몰려든 속도는 폭력적이었다. 역류된 골목이 문턱을 넘는 순간, 물이 독니를 드러냈다.
골목에 숨어 살던 물뱀에게 모두 물렸다. 삽날로 물의 몸통을 찍을 수 없었다.
「우리詩」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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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김현식 시인
전남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2006년 <애지>로 등단
현재 대장항문 전문 병원 '송도병원' 부원장
2009년 시집 <나무늘보> 종려나무
1990년대 일본 학술지를 탐독하고 일본병원과 학회를 찾아 다니며, 스스로, 독학으로 조기대장암 연구를 시작
조기대장암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의 의료수준을 세계적인 의료수준으로 끌어올림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면산이 무녀져 내리다니. 그날 나는 암실같은 내시경실에서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평상시 같으면 꽤 막히던 길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순조로웟다. 별일이다 생각하면서도 그날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홀가분하게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났음을 알았다. 게다가 여기저기 침수사건으로 주요 간선도로가 막혀서 차들이 통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그 사잇길을 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없이 평소보다도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뉴스에서 우면산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처참한 도시의 모습을 보며 거대한 자연의 힘에 또다시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미리 산사태에 대비하지 못한 아쉬움에 무척 안타까워 했다. 많은 재해의 직접 원인은 물론 자연의 횡포(?)이겠지만 사실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야기되는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난개발이었음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인재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을 수 없을까.
이러한 재해를 한 편의 시로 빚어내는 시인의 능력과 재치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 시에서는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의 음산한 분위기를 ‘호박넝쿨’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산사태의 전모를 “물뱀”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우면산 산사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지만 시를 읽으면서 그려지는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다. 자연친화적인 치산치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규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이 전해온다. “삽날로 물의 몸통을 ”결코 찍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