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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에서 하룻밤 (천장암 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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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인도. 네팔 여행기- 지난 시간 속에서 발견한 미래.?>>
천장암 추천 0 조회 137 12.04.05 17: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도. 네팔 여행기- 지난 시간 속에서 발견한 미래.>>

 

 

< 글을 시작하면서...>

 

40여년전.7살 무렵

동생과 나는 십 리 밖 친척 집을 향해 무작정 길을 떠난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동무네 집에 놀러 가기 위해 나섰던 것이었는데..

 

동무네 집은  금세 무너질 것만 같은 허름한 초가였고

우린, 어둠컴컴한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린 망둥이를 구어먹으며 한참을 놀았지요.

그러다가 그 것도 심드렁해지자 부모님 허락을 받고 뭐고 생각할 틈 없이

그 먼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팍팍한 자갈 길,

자동차라도 한 대 지나칠라면 뿌연 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지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리고 좁기만한 발걸음으로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어서 꽤 늦은 시간, 우린 겨우 친척 집에 이르렀습니다.

전화 하나 없던 시절,1960년대의 모습입니다.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50을 훌쩍 넘긴 나는 아내와 멀고도 험하다는 인도와 네팔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젠 주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만 주변 어른들의 허락을 받는 과정은 이미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지요.

 

낯설고도 남루한 인도인의 삶.

어린 시절 동생과  길을 걸으며  함께 했던 바로 그 고향의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인도의 오늘은 1960년대 내 어릴적 그 모습입니다.

 

물질적 부족함과는 관계 없이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던 시간들.

아마 인도인들의 현재의 삶 또한 그러하리라 봅니다.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 측은하고 때론 불결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

바로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09년 11월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35일간

아내와 나는 인도, 네팔 배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희미해질 기억과 느낌과 다짐을 글로 남기려 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시간적 혹은 공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재 구성하였습니다. 

 

 

Ⅰ 허상을 버리고 본질을 찾아가는 여행

 

○"언니, 뭐혀. 놀러가자..."

 

소년은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 전에 집어든 낡은 책에서 눈길을 뗄 수 없습니다.

이상허다. 이상허다를 연신해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소년은 다시금 그 낡은 책을 가로로 혹은 세로로 집어들고 다락방 창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햇살에

비추어봅니다.

소년은 지금 다락방 낡은 책더미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거기엔 온갖 신문지 뭉치와 낡은 책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으며  소년은 마치  산을 정복하는 산악인 마냥

비장한 각오로 쌓여있는 책들을 하나 둘씩 들춰봅니다.

그러다가 여느 책들과는 달리 가로로 묶여진 책 한 권에 정신이 팔려있는 중입니다.

 

쿵쾅쾅쾅...

동생이 다락방 문을 세차게 두드리지 않았다면 소년은 온종일 그 다락방을 벗어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언니, 뭐하는겨 또 책 보는겨? 우리 놀러가자. 그려, 그런디 이 책은 왜 요 모양으로 생겼다냐? 워디, 언니,

이걸로 비행기나 접어서 날리자. 그려 그려...

 

소년과 동생은  그 책을 서슴없이 찢어 비행기를 접었습니다.

동생이 접은 종이 비행기는 날쌔게 멀리 날아가지만 소년이 접은 비행기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떨어집니다. 그래도 소년은 불평을 하거나 부러워 하지 않습니다.

활달하고 솜씨 좋은 동생에 비해  주변머리  하나 없는  소년은 뭘 하나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으며

그렇다고  앞지르려는 욕심도 노력도 하려하지 않습니다.

문 밖에 봄이 오는지 가는지 , 꽃이 피었는지 마는지, 어땠는지 도통 관심이 없고 소년에게는 다락방만이 가장

즐거운 놀이터이자 흥미로운 세상일 뿐입니다. 

 

 <인도로 가는 길- 밤 비행기에서>

 

●"형, 뭐해..."

 

 나는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 전에 찾은  컴퓨터 모니터 사이트에서 눈길을 떼지

않습니다.

그래 이거다. 이거다를 연신해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나는 그 사이트를 즐겨 찾기에 붙박아 놓고  아내를 부릅니다. 

지금 인도 여행을 위해 인터넷 웹서핑을하는 중입니다.

그 많고 많은 지역 중에서 인도를 여행의 목적지로 택한 것은 아내가 유독 이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오랫동안 여행 할 수 있는 상품을 고르느라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나 봅니다.

 

어디보자. 음 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 여기로 하자. 25일? 그런데 더 연장 할 수 있다하지 않았어? 열흘

정도 연장하자. 그건...좀, 나중에 생각하자. 그럼 떠나는 거다. 그래! 

 

지천명의 나이, 50이 되기까지 나는 세상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비행기라는 것은 제주도 신혼 여행가기 위해 타 본 것이 유일한 것이었으며  여권이라는 것  하나 없었지요.

그러다가 우리 멋대로 만들어 낸 안식년,

 

그 황홀한 시간 속에서 여행의 진수를 맛본다는 인도 여행을 작심한 것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내가, 더욱이 입맛 까탈스럽기로 정평이난 내가 인도 여행 길에서 제대로 견디기나

할런지... 나도 걱정 되고 아내도 걱정하면서 우린 짐을 단단히 꾸리기 시작합니다.

 

○ 언니...

 

남동생은 형인 나를 언니라 부릅니다.

우리는 형을 그리 불렀습니다.

 

우리 산에 가서 도마뱀을 잡자. 거기 도마뱀이 디게 많다.

나는 동생의 제의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늘상 뒤처지고 소극적인 나를 흉볼까봐

그려그려 재미있겄다라... 어깨를 으쓱거리는 호기까지 부려가며 동생의 뒤를 따라갑니다.

 

우리집은 과수원집입니다.

그 과수원  울타리는 우리집의 큰 城이고  책이나  낡은 신문에서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다락방은

나만의  작은 城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동생은 천방지축.

어디에 새집이 있으며 어디엘 가면 맛있는  열매며 , 신나게 놀 것이 있는지를 훤히 꿰뚫고  있어  

나는 이따끔 동생을 앞잡이로  내세우고 세상 구경을 하곤 합니다.

 

아...동생이 드디어 도마뱀을 잡았군요.

동생은 내게 그 놈의 꼬리를 꼭 잡고 있으라 했습니다. 그리곤 동생은  날쌔게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겁이 많은 나는 그 것을 차마 손으로 잡을 수 없어 발 끝으로 꾹 눌러 놓고 동생이 사라진 숲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능 와...

 

< 인도 쿠시나가르 한 식당에서 만난 도마뱀- 40여 년 전의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여기에서 만났습니다. >

 

아차, 한 순간 발 아래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놓고 저만치로 도망쳤고 소년은 도마뱀이 도망쳐버렸다는 사실도 잊은 채 아직도 살아 꿈틀대는 꼬리만을 마냥 바라다  볼 뿐이었습니다. 

몸통은 저리로 도망쳐버렸는데 왜 난 그 허상에만 매달려 있었는지...

 

●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때 일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본질을 잊고 허상만을 좇아가며 살아가는 지금의 내 모습과 어릴적 모습이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도마뱀의 쓸모 없는 꼬리에 온 정신을  팔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자 , 이젠  나의 일상적인 삶이 마치 도마뱀의 가치 없는 꼬리처럼 느껴져 , 어디론가 달아나버린 내 삶의 실체-본질을 찾아  나서고 싶었습니다. 

 

<함께 읽어 좋을 책>「싯타르타 」헤르만 헤서 지음/ 박병덕 옮김-민음사 2002

 

 

 < 네팔- 석가모니가 태어나신 룸비니 동산에서 > 

 

안락하고  보장된 왕자로서의  삶을 마다하고 혹독한 자신의 고행을 통해 참다운 삶의 가치를 깨달음을 통해 설파한 석가모니.

그 분이  말씀하시고  남겨  놓은 法은 늘 내 곁에 있어   삶의  진정한  본질과 가치를  말해주지만  나는 그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늘 허둥지둥거리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여겨지던 석가모니의 삶.

그러나 그 분의 탄생지인  이 곳을 보고 나서야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가  전설도 신화도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의 삶 속에서 깨달음을 통해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허공에  떠있는  神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喜.怒.哀.樂    生.死.苦.樂의  일상적인 삶의  과정을

겪으면서 살았던 분이기에 그 모든 것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인 나의  일이요,  나의 일 또한 인간인  그 분도 겪었으며  극복할 수 있었던  것들이기에  내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나봅니다.

 

<함께 읽어 좋을 책>「혁명가 붓다 」데이비드 깔루빠나 지음/ 재연 옮김-숨 2008

 

아내가 험한 세상(?) 떠난 다기에 隨行 하기 위해 떠난 修行 길..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내는 날 隨行했다 합니다.

그 과정은 고행이고 修行이라 합니다.

까탈스러운 입맛하며 이 거친 환경에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말입니다.

 

 

< 비행기 안에서의 오랜 시간- 이 한 구석에서 아내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나의 隨行을 통한  자신의

修行을 궁리할까요?>

    

 자- 그럼 서서히 전설의 땅, 인도로 내려가 볼까요.

 

 

<인도- 바라나시의 한 가게:  가게에 상주하는 소 . 시바 神의 도우심으로 장사가 참으로 잘 된다네요.>

 

   

< 네팔 -쿠단 : 석가모니가 출가하여 카빌라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머무셨던 곳  >

 

자, 이제 허상이니 본질이니 이런 얘기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단순히 석가모니의 그림자 만을 좇는 여행이 아니라 실상, 즉 法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되어야겠지만

미혹한 내가 과연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눈으로  보고 사진만을 찍는 그저 그런 여행이 아닌, 온몸으로 부딪히고 느끼는 그런 여행을 해보리라... 

다짐 하나만은 대단합니다. 

 

 

< 네팔-포카라 사랑고트에서 빛을 찾아서 :  한국에서도 게으름 때문에 보지 않았던 일출을 여기에선

두 번이나 보았지요.>

  

<인도- 오르차 : 저리 넓고도 다양한  세상은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야 할 대상들입니다. >

 

 

 

 

 

<네팔-카빌라성 : 석가모니께서 보장된 안락함 속에서 生,死,苦,樂을 느끼시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  곳>

  

안락한 집안 울타리 안을 빙빙 맴돌며 편안함만을 좇았던 어린 시절의 나.

험한 모습, 거친 모습 , 흉한 모습에는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 정반왕은 철옹성처럼 경계를 만들고 아들인 석가모니에게 험하고 거칠고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지요.

그러나 석가모니는 카빌라城 동,서, 남,북 문을 통해 삶과 죽음과 고통과 즐거움을 보았고

그리하여 출가하게 되었다는데...

 

여행 일정기간을 통해 석가모니가 태어나신  네팔의 룸비니 동산 <사진1>과

최초로 설법을 베푸신 인도의 바라나시의 사르나트<사진2>,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법을 베푸신 쿠시나가르의  마타구와르<사진3>,

열반에 드신 열반당<사진4>,

다비가 이루어진  곳<사진5>,

또한 진신 사리가 온전히 남아 있는 람그람<사진6>,

이 모든 곳을 둘러 보았지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는 일정상  둘러볼 수 없었습니다.

 

내게 있어 깨달음이란 아직도  더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의 현장에서 이뤄내야 할 것들이지...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우연찮게 불교 성지 순례 뿐만 아니라 힌두교 성지 순례도 한꺼번에 이루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요.

 

<사진1- 네팔 룸비니 동산: 타르초 사이로 보이는 부처님의 탄생지 >

 

  

<사진2- 인도 사르나트 :  부처님  최초의  설법지  한  수트파에서  개  한 마리가  저리도 편하게 잠을 자고 있었지요.> 

 

 

<사진 3- 인도 쿠시나가르의 마타구와르: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지에 모셔진 불상>

 

 

<사진4- 인도 쿠시나가르의 열반당 :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法만이  남아  있을 터이지요.그 발자욱을

 따라가는 일> 

 

 

<사진5-인도 쿠시나가르의 다비장 : 맨발의 아내. 혜초 스님의 발길을 따라서... 따끈따끈한 햇볕에 발이 

다비나 되지 않을런지...> 

 

 

 <사진6-네팔  람그람에 올린 향과 촛불 : 우린 이 타들어가는 촛불과 향을 보면서 일체 만물은 항상 같은게 없다는 諸行無常을 말했지요. 如夢幻泡影- 삶이란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 

 

종교의 백화점- 우리나라를 그리 표현합니다. 기성 종교에서 신흥 종교까지 많은 종교들이 절대적 진리를

내세우면서 상대의 종교를 헐뜯거나 타 종교를 믿는 사람을 외계인이나 미개인처럼 여기기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지요.

 

때로는 천당의 유혹을, 때로는 지옥의 협박을 일삼으면서요.

 

내세의 삶에 대하여  모든  종교들이 자신있게들 말하지만 ,

천당과 지옥은 지금,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에만 동의 할 뿐,

그리하여,

불확실한 내세가 아니라  현세의 삶에서  천당의 마음을 닮으려 마음 공부에 더 정진을 해야겠습니다.

 

<함께 읽어 좋을 책>「잃어버린 예수」 박영호 지음-교양인 2007

     

어찌됐든  이 곳 인도에서는 타종교를  결코 배타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힌두교라는 빨대에 의해 모두  흡수가 돼서 그런가요?

불교는 물론 이슬람교, 기독교.자이나교, 시크교까지도 인도 사회에선 힌두교와 함께 섞이며 함께 흘러가는

생활이었습니다.

뒤섞임, 때로는 무질서 함. 그래도 부딪힘 없이  잘도 흘러감. 이 것이 진정한 인도의 매력이 아닐까요?

 

<함께 읽어 좋을 책>「이름이 다른 그들의 신을 만나다,」 김나미 지음-고즈인 2004

 

 

<인도-바라나시 갠지즈 강 : 힌두교의 장엄한 푸자 의식 >

 

 

 < 인도-꼴까타 깔리 사원 : 염소의 목을 자르고 제사를 지낸다는 곳- 선연한 핏자욱. 저 검은 염소는  지금

다른  세상에 가 있겠지요. >

 

토막 이야기 :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이제 사원이 정결하다는 희망을 접은지도 오래.

게다가 이 곳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심각히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우리나라 길거리보다도  더러운 신전 바닥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몇 개의 신발을 더 신어도 모자를 판인데.,,

사람들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니 사제가 현지인들을 내쫓고 나를 부릅니다.

 

친절도 하시지...

나는 외국인으로서 특혜를 받았다는 우쭐감에 깔리 신상에 이르렀습니다. 웬걸요. 헌금 그릇을 가리키며

도네이션을 외치는 것입니다. 내 이마에 점으로 찍을 붉은 물감을 들고 오면서요. 싫어... 물론 난 그 곳을

황급히 빠져 나왔습니다. 발바닥을 보니 가관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그 신상을 벗어나 밖에서 양이나 염소의 목을 자르는 곳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 이런 제사를 지낸다 지요.> 

 

: 그리고... 깔리란?-힌두교의 3대 신중 하나인 시바신의 부인이였던 서띠가 죽은 후 시체를 모두 잘라서
세상의 이곳 저곳으로 보냈는데, 그 중에서 손가락이 지금의 사원자리에 떨어져 깔리로 환생하였다 합니다.

이런 전설을 통해 탄생된 이 사원은 그로 인해 깔리를 숭배하는 많은 힌두인들의 방문으로 항상 붐비지요.

 매일 오전에는 깔리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염소의 목을 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도- 꼴까타 이슬람 사원 세정실「우두실」: 입과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예배를 드린다 합니다.

물엔 물고기가... >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한 꼴까다 거리. 그 수 많은 인파를 헤치고 우린 이슬람 사원의 예배 시간에 맞춰 이 곳에 들어왔습니다. 휘황찬란한 신의 모습은 없고 텅 빈 공간 뿐이지만 이들의 경건하고 차분한 예배의식은 여타의 종교에 감히 비견할 수 없는 숭고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들에게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찾았고  이들의 얼굴에서 착한 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도-윗 사진과 같음 : 사실 우린 예배를 목적으로가 아니라 더럽고 피곤한 발을 씻기 위해 이 곳에

왔지요.>

 

...작은 토막 이야기 : 우리 싸부께서 이 사원엔 인도에서 보기 드문 깨끗한 화장실이 있으니까 온 김에 일을 보고가라는 친절한 권유에 화장실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 시골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용  변소

정도였지요. 나는 그저 하던대로 선 채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카운트 다운을 하려는 찰라, 옆 칸에서 일을

보던 무슬림이 헤이, 하면서 손짓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앉아서 일을 보라니. 게다가 소변을.

온갖 자세를 취해 보아도 일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무릎  꿇고서야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퍼도 채 올리지 않은 채  홍당무가 된 얼굴로  일행이 있는 곳으로  허겁지겁 달려 갔지요.

 

...우째 이런 일이

 

 

< 인도- 이 나라에서는  사원이라  하여  구태여  깨끗할  필요가 없는 듯 합니다. 삶이 신앙이기에 신전이란 삶의 한 부분 정도로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신전에 바칠 예물이나 바쳐진 예물을 개든 원숭이든 새든 먼저 차지하는게 임자입니다.

정토와 예토가 따로 없으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번뇌와 보리를 분별함이 헛되도다...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려 봅니다.> 

 

좀 쉬었다 갈까요?

골치 아픈 얘기 잠시 접어두고  편안한 사진이나 글을 몇자 올리겠습니다.

 

 

< 여기가 어딘지 ...여행 내내 속을 썩인 내 카메라 . 어딜가나 앉는게 제일 좋아. 철푸덕. 인도에서 이렇게

마음 놓고 앉을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물지요. 그래서 기념 촬영>

 

: 토막 이야기 - 결정적인 상황이 되면 이 놈의 카메라가 작동을 멈춰버립니다. 이 곳에선 워낙  놀랄만한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얘도 나도 제 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 일행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진을 찍지 못한 그 상황이 결정적 상황이  아니라  찍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황이  결정적으로  생각될 뿐이라구요. 

인도에 오면 이런 멋진 멘트 하나 정도는 시원스레 날려야 되는데..

 

그렇겠지요.  사람들은  가진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의 가치 여부에 관계없이 그것에에 부질없이 

더 큰 의미를 두곤 하지요.

 

 

< 이 놈이나  타고 인도를  시원스레 달려봤으면... 어디가서 이런 몰상식한  행동하지  마세요.  사진 찍고 

경비한테  혼났어요.

 No Problem !

인도에서 이 말 한 마디면 만사 통과: 류시화 시인의 인도 여행기에서 나왔듯이 이  No Problem이란 말, 

 꽤 괜찮은 말입니다. 보물급 말馬 위에서  명품급 말言을 생각해냅니다. >

 

<함께 읽어 좋을 책>「지구별 여행자」류시화 지음-김영사 2002

<함께 읽어 좋을 책>「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열림원 1998

 

 

 

 <인도- 바라나시  :  아무리  공존하는  곳이  인도라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곳에  다툼은 있을 수밖에

없나봅니다.>

  

 

Ⅱ 이제, 인도가  겨우 보인다.

 

인도 여행도 제법 흐르긴 흘렀나 봅니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를 되돌아 볼 정도이니 여유가 생긴 것인지.

그렇겠지요. 하루 모든 순간, 순간들을  긴장 속에서  돌아다 볼 틈도 없이  어찌 이리 흘러 왔는지

한편 웃음이 나오다가도 기가 막히고.

 

이제, 제법 농담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말인데, 나 인도에 온 첫 소감을 말하자면,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진지하게 생각도 해 보았다... 

 

●형...

 

느닷없이 아내는 나를 형이라 부릅니다.

대학 때의 과 커플인 아내는 이따끔 나를 형이라고 부릅니다. 

 

인도 여긴 모든 지역이 다 이래.

델리 공항에 내리자마자 뿌연 먼지와 숨길을 거북하게 만드는 매연 틈에 묻히면서

난감해하는 내게 인도 여행의 선배인 아내가 말을 건넵니다. 

어쩔 수 없지 뭐. 국내 여행이라면 되돌아 갈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선택한 길, 되돌릴 수 없는 길 앞에서 난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인도 여행,

다른 여행과는 달리 이 곳을 여행한다 하면 무슨 道나 닦으려 가는 여행쯤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나 또한 그러했고 下心이니 뭐니하면서 제법 근엄한 마음도 가지고 떠납니다.

마음을 내려놓자. 마음을 내려놓자...

 

 

<경유지 오사카 공항- 내려 놓아야 할 것이 마음일진대  십 수 편의 영화와  e북을 다운 받은 노트북을 공항 바닥에 철부덕 내려놓아 작동이 멈춰버린 것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나. 아직은  No Problem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작은 토막 이야기 :

 

델리 공항을 벗어나면서 엄청난 교통 혼잡이 준비나 된 듯 우리 주위를 빽빽히 감싸고 돕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사이드 미러도 없는 택시는 요란한 경적을 울리면서 한 치의 틈이라도 나면 그 틈을 참 교묘히도  빠져 나가면서 그야말로 일품의 곡예 운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에서의 자동차 경적은 상대방에 대한 협박이나 경고가 아니라 일종의 예의인 듯 싶습니다.

자동차 뒤에 Push Horn이나  Horn Please라는 문구를 붙이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신나게 울려대는

경적소리를 우리네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듯 싶습니다.

 

이제부터 내 가진 것, 모두  내려 놓아야 할 것들 뿐입니다.

 

 

< 꼴까타를 떠나 다아르질링으로 가기 위해서- 이 역이 출발역이라 모처럼 여유가 있음 >

 

...작은 토막 이야기 : 인도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바로 기차 여행이 아닌가 합니다.

 

아그라에서 카주라호로 가기 위해 우린 길잡이의 능숙하고 철저한 통솔력에 따라 여유있게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시간 연착. 이 정도야 인도에선 다반사.

우린 기차 연착 사실을  히히덕거리며  내심 즐기도 하고 역사를 날아다니는 원숭이와 살진 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우리가 타게 될 S5 침대 칸을 기다렸지요.

 

길잡이가 몇 번이고 현지인과 심지어는 역사 내의 직원에게까지 확인하였지요.

그래 바로 여기다...

드디어 저 긴 열차가 그 기차의 길이만큼 요란한 경적 소리를 길게 울리며 다가왔습니다.

 

어렵소? S5 칸이 없잖아?  드디어 일행 13명은  가볍게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길잡이가 다시 물어 봅니다.

 

S5 !,  S5!... 아니, 이런! 우리가 타게 될 칸이 아득한 저 뒤라네요. 

아이고. 우리 냅다 뛰기 시작합니다.

길잡이가 저리도 당황하는 걸로 보아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무게운 배낭의 무게는 잊은지 이미 오래.   

 

그러나 우리가 탈 칸은 거기도 아니랍니다.

또 이런! 이런 불평도 할 틈이 없습니다.

기차의 길이는 대략 300m, 

 

참고로 인도 기차는 등급이 정해져 있으며 등급 마다 칸막이가 돼있어 일단 타고서 이동하는 우리네 기차의 구조와는 다릅니다. 정해진 칸에  타야만 하고 정 급하면 아무 칸이나 타고 견딜 만큼  화장실 옆에서 서서

가다가 다음 역에 내려서 잽싸게 제 자리를 찾아 가든가.

 

얼마를 앞으로 달리고 뒤로 달리고 또  앞으로 달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우리를 구경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겨우 제 자리를 찾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S5 란 표지는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올라설 무렵 기차는 떠나가 시작합니다. 우리 일행이 반도 타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마치 대한 늬우스에서 전쟁중에  목숨 걸고  피난 길에 오르는 피난민들의 모습과도 같이 위태롭고 절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는가. 다행이 마지막 일행까지  낙오됨 없이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자유 배낭 여행에 나선 우리  세 명이 마지막 날 ,또 한 차례 겪었습니다.

비록 기차가 오랜 시간 정차했었기 망정이지 ...

 

인도 기차는 어디가 어느 역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안내 방송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차 안에서 밖을 내다

보아도 어느 역이라는 걸 알 수 없어 몇 번이고 물어보고 확인하고 또 다른 몇몇 사람에게 확인을 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답하는 사람들 모두 확신에 차 있지만 모두 다르니까요.

 

심지어는 역무원조차도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아그라에서 잔시 역에 오기 위한 험난한 일정> 

  

 

 <인도- : 저돌적인 저 아이의 눈빛; 에그 무서워라. 불 여기 있수>

 

 <인도의 기차 역사 : 저들의 가난은 숙명일까, 극복의 대상일까...>

 

도시에서의 가난은 시골에서의 가난보다 오히려 더 비참하고 절망적인 듯 싶습니다.

자이푸르 거리 중앙 분리대 틈 사이로 5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뒤로 넘기를 하고 7살 정도의 오빠인 듯한

사내 아이는 손을 내밀고.

혹은 이제 겨우 우리나라 나이로 여고생 정도의 어린 엄마가 새까맣게 찌든 빈 우유통을 들고 까마귀 같은

거센 목소리로 구걸을 하는 모습.

 

가난이야 어느 나라건 없을 수 없지만 절대 빈곤층이 여느 나라보다 많은 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함께 읽어 좋을 책>「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강수정 옮김-김영사 2007

 

 

< 인도- 쿠시나가르의 가난하지만 한적한 농촌 마을 > 

 

   

<인도- 삶이라는 것, 무거운  짐인듯 싶소.>

 

 

<인도-오르차 : 하지만  누가 어떻게 그 짐을 감당하느냐에 따라 삶이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로도 느껴질 수 있겠지요.>

 

토막 이야기 : 맑은 원색이 오르차라는 작은 동네를 참 예쁘게 가꾸고 있었습니다.

강렬한 햇살과 더불어 원색이 주는 짜릿한  느낌에 홀려 비몽사몽 헤매고 있을 때 사진 속의 바로 이 여인네가 등장한 것입니다.

배경과는 달리 말끔하고 예쁜 이 여인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려 하자 뭐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money라고 말하는 줄 알고 돈을 주었지요.

그러자 이 여인네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서야 겨우 알았지요. 그러나 멈칫거리는 그녀에게 돈을 쥐어 주고는 한결 가볍고도 미안함 마음으로 셔터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착하고 예쁜 젊은 처자, 오해해서 미안해유...

 

 

<인도- 오르차 : 내 정신을 홀리던 강렬한 햇살과  색깔. 바로 그 원료 >

 

<인도- 오르차, 작지만 참 아름다운 동네였지요. >

 

 

Ⅱ 삶과 죽음은 아주 친한 벗이었네...

 

○ 언니,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

 

그래. 우리 워디 갈까? 저너머에 생여집(상여집)이 있어야. 거기 가보자. 거긴 무섭지 않을까. 그래도 한 번

가보자...

 

동생이 앞장 서고 겁많은 소년은 그 뒤를 쭈삣거리며  따라 나섭니다.

논과 들에서는 밭갈이 하는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이 아른거리는 아지랭이 사이로 아른아른  포근한 봄풍경을

이룹니다.

 

 

 <네팔- 룸비니의 겨울 풍경-밭갈이 하는 한 젊은 농부네 가족. >

 

소년과 동생은 무덤가의 삐비를 뽑아 씹으며 상여집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엔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상여를 쓰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혐오 대상인 이 것을 마을 멀찍한 산자락에 보관하곤 했었지요.

그 근처를 지나칠라면 마치 죽은 영혼이 달려드는 것 같은 오싹함에 어마 나 살려... 후다닥  달음질치곤

했었습니다. 음습한 솔밭 사이 그리고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공간이니 만큼 그 음산함은 더했던가 싶습니다.

 

이게 뭐라니? 잉 그건 송장 뼈랴. 송장 뼈...

송장 뼈가 상여집 근처에 있을리라 당연히 없을 터이지만 우린 그리 믿었습니다.

야, 무십다. 우리 그만 가자. 그럴까...

 

 

<인도- 바라나시 화장장 : 뒤에 보이는 불꽃이 윤회를 끊기 위해 타오르는 시체의 불꽃> 

 

토막 이야기 : 우린 화장하는 모습을 더 가까이 지켜보기 위해 불꽃이 넘실대는 곳 바로 코 앞까지 다가섰습니다. 어둠이 깔리면서 불꽃은 붉은 혀를 낼름거리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윤회의 고리를 녹여내고 있었고 검둥개 두 마리가  지척에서 하염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이 팔려 있는 우리 곁으로 어느 틈에  할아버지 한 분이 슬며시 다가와 친절히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별일이다... 속으로 이 노인네의 친절을 경계하던 차에 서너 마디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드디어 그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Money ! 

우린 책자에서 본대로 단호히 이를 거부 했지요. 이 할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험악히 바뀌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우리는 ?아내는 것이엇습니다. 다시는 이 곳에 오지 말라며...

?겨 나오면서 나는 등 뒤에서 마지막  恨을 터뜨리는 망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펑....펑...펑...

 

 

 

 <인도-바라나시 갠지즈 강: 저 새들처럼 가벼운 해탈을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졸고 있는걸까...>

 

인도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바라나시의 갠지즈 강이라지요.

삶과 죽음이 한 줄기로 섞여 흐르고 그 물을 힌두교인들의 살아있는 성수로.

한켠에서는 사람과 짐승들의  몸을 씻고 빨래를 하며  서로 섞고  섞이며 수천 년 동안

막힘 없이 흘러오고 가는 인도의 상징, 갠지즈 강.

이 곳에선 정토니 예토니 聖이니 俗이니 이런 고상한 말도 필요 없을 듯 합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기고 섞이며... 

 

 

  <인도-바라나시 갠지즈 강에서 독특하게  빨래하는 모습. 이렇게 빨아도 빨래는 참 깨끗합니다.>

 

 

<인도-바라나시 가트에 정갈하게 널려 있는 빨래>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에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인도 여행의 대선배님께서 화장장 근처에 있는 음악실(?)로 우리를 인도하였습니다.

아마 이 곳은 음악학교인 듯 합니다.

멋지고 꽤 수준 높은 인도 음악이 나지막한 조명을 배경으로 때론 경쾌하고도 웅장하게 그리고 잔잔히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조명이 밝아지는군요.

여태까지 흐릿한 조명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도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서 자가 발전기를

돌리다보니 그리 됐노라고...

하여튼 끊임 없는 인도의 돌발 상황.

 

그리고 안내 멘트가 이어집니다.

댄스가 이어지겠노라고.

이 누추한(?)-우리나라로 치면 마을회관 간이 창고 분위라 생각하면 됩니다.-곳에서 어여쁜 무희가 과연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좀 이어 등장한 늙수구레한 중년 아저씨.

평상복 윗주머니에 볼펜 한 자루 꽂은, 마치 마을 잔치에 참석했다가 막 돌아온 시골 아저씨 모습입니다.

 

아마 무대를 준비하러 오신 분 인듯 합니다.

그 때까지 우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희로 나타난 그 중년 아저씨.

경쾌한 인도 음악에 맞춰 요염하고도 나긋나긋한 춤을 추는 것이엇습니다.

 

야리야리한 사리로 보일듯 말듯 날렵한 몸을 가린 어여쁜 무희를 기대했건만...

 

밖에서는 들려오는 음메... 소울음 소리를 추임새 삼아 ,

화장장으로 사체를 운반하는 사람들의 장송곡과 저벅거리는 발자국소리

 

그리고 

화장터옆  마을회관 부설 외양간(?)에서, 우리는 이웃집 인도 아저씨의 교태에 빠져

척박하게만 느꼈던 인도의 시간을  혼란과  달콤함을 버무려 맛있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도- 바라나시의 明과 暗- 화장이 끝난 후 잿더미 사이에서 아이와 개가 무언가를 찾고 있음:

사진 제공-길동무 김영환 >

 

 

 <인도- 바라나시의 明과 暗- 화장장 바로 근처에서 인도 舞男의 교태로운 몸짓: 사진 제공-길동무 김영환 >

 

이래서 인도인가 봅니다.

섞고 섞여가면서 흘러가고,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게 진정 인도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는 화장장 모습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네팔에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문화권을 가진 두 나라는 국경선을 넘자마자 확연히

이질적인 문화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네팔이 보다 차분하고 여유있는 반면 인도는 혼란하고 긴박하면서 정리가 덜 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럼 사진 촬영이 허용된 네팔 화장장으로 가볼까요.

 

 

<네팔 -파슈파티 만다르 사원 화장장- 올해 EBS 국제 다큐에서 『신의 아이들』 이란 제목으로 방송된 바로 이곳- 타다만 장작과 진흙뻘에 떨어진 동전을 줍기 위해 아이들이 강바닥을 뒤지고 있습니다. 물론 화장된

재는 이 강에 버려지지요.>

 

 

< 윗 사진과 배경이 같음-저기 계단에 비스듬이 누워 계신 분이 떠나실 분이고,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 아이는 동전을 줍지요.죽는 것은 죽는 사람의 일. 산 사람은 사는 일을 해야겠지요.> 

 

 

< 네팔- 마을 회관 같은 출입국 관리 사무소 : 룸비니에서 평화로운 열흘을 마감하고 긴박한 인도로 다시

출발!>

 

 

Ⅲ 이들과 그들은 바로 내 이웃이었다

 

●여행 나흘 째, 우린 아그라로 향했습니다. 

어느 여행에서든지 사실, 난 유적지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교과서나 TV에서 혹은 잡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하고 경 탄하고  부러워하는  정도일 뿐,  그 유적지에 얽힌 전문 지식이 이젠 이 나이에 뭔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 뿐입니다.

다만 나라마다 지역마다 독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고 싶었기에 이번 배낭 여행을 통해 맘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타지마할묘는 아주 흔한 그림이므로 먼 데서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인도- 아그라 뒷동산에서: 실루엣 앞에서 .그래도 우리 모습만큼은 제대로 남겨야겠지요. >

 

 

 

 

 

<네팔- 카투만두의 박타푸르 성에서 아이들과 오재미 놀이하는 미모의 한국  여인  >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유적지에서 기가 죽고 쇼핑 센터에 가서  진을 빼고 마치 슬라이드 화면처럼 휙휙 지나가는 경치가 아니라

내가 뒹굴고 내가 만지고 함께 나누는 여행. 오다가다 더 머물고 싶으면 한 나절이 됐든 하루가 됐든 퍼질러 앉아 있다가 쏘다니고 싶으면 나가고, 쉬고 싶으면  방구석에 뒹굴대는 여행.

그런 여행을 이번 배낭 여행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인도- 카주라호의 한 사원에 소풍 나온 학샹(?)들-얘들은 노래를 무척 좋아하지요.

내게 노래 시켰으나 나는 단호히  거절함, 결국 아내가 수많은 아이들이 모인 가운데 산토끼를 율동에 맞춰서 부름. 한국에서도 않던 짓을. > 

  

< 인도-  카주라호에서: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자   어른, 애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옴.  이 나라 사람들은 자전거 펑크가 나도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대한 관심을 보임. 카메라가 광각이 아니라서 사진에 찍히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음.>

  

<인도- 카주라호 :역동적인 미투나상을 바라보시는 어르신- 나이를 초월하는 인도인의 관심, 역시 본능은

아름다워라.>

   

<네팔- 포카라에서의 현지인들과 흥겨운 시간>

 

  

Ⅳ 인도와 네팔에 젖다.

 

이제 여기에서는  여기식 삶을 배웁니다.

힌두의 나라에선 힌두의 생각을, 불교 사원에서는 불교 정신에,  인도인과  네팔인과 나는, 그들과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에 흠뻑 젖어 봅니다.

  

<인도-갠지즈 강에서: 소원을 담은 꽃 촛불을 갠지즈 강에 띄움.>

 

  

 <다아르질링- 한 티벳 불교 사원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마니차>

  

<다아르질링-인도 여행의 백미, 서늘한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는 아내> 

  

<카투만두의  티벳 불교 사원인  꼼바에서- 돌리기만 해도 經을 읽는 것과 같다는 마니차>

  

< 카투만두-현지에서 사 입은 옷과 가방   : 한 장에  우리 돈으로 3,000원 내외>

 

<네팔-포카라  티벳 난민촌에서:  할머니께서는 아내에게 티벳 옷을 입혀 주었지요. 마네킹이 아님> 

   

 <네팔-  룸비니의 한국 사찰 대성석가사  :  여행자의  천국.  오아시스 .  떠나는  날  주지  스님께서 마련하신  짜이를 대접받는 우리 일행 .>

 

토막 이야기: <하나> .네팔 룸비니 국제 사원 구역 내에 있는 한국 사찰 대성석가사는 97년 착공되어 2006년 대웅전 지붕 공사가 끝나 골조가 완성되어 있지요. 언제 완공될지 모르나 인도 네팔 여행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숙식과 편안함을 제공하고 비용은 여행객들이 알아서 내는 보시로 운영되고 있다합니다.

 

걸망 하나 , 지팡이 하나 들고 다니며 여행객들에게 세심한 배려와 위트와 가슴 포근한  말씀을 아낌

없이 나눠 주시는 법신 주지 스님. 

열흘간  머무르면서 법당에 차분히 앉아 염불하시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건만   난  이 스님의  삶에서  살아있는 부처님의 마음과 짜이보다도 더 따스하고 달콤한  자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  .한국에서 모 유력 일간지 기자가 찾아왔더랍니다.

발행 부수나 영향력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신문사의 기자였다지요. 이 절에 관한 기사를 써서 도움을 주겠다는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빚이 많지만 우리 절엔 빚이 없다. 기사가 나가면 나라에서 절 공사에 필요한 돈을 지원해주겠지만 빚도 많은 나라의 돈을 받고 싶지 않다.

우리 절 공사는 저리 늦어지고 있지만 돈이 모아지는 대로 하면 될 터이고 다행이 빚은 없으니,

빚 있는 나랏돈을 받고 싶지는 않다... 이런 말을 했다지요.

 

<셋> . 한국에서 의료 자원 봉사단이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은 게시판에 올라있는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열악한 의료 환경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네팔 주민을 위한 의료봉사는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지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합니다.

문제는 한 아이가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는 중에 이 주지

스님이 수술비를 부담하겠다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절 재정이 결코 여유있는 것도 아닌데... 

 

당장   골조만  휑덩그레  서있는  법당  공사도  서둘러  진행해야  할 판에 결코 적지 않은 이 아이의 수술비를 감당하면 佛事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텐데... 그랬더니 이 스님께서 한 마디

 

“ 사람  佛事가 우선이지요...”

  

 

<네팔-포카라의 티벳 난민촌 :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옷감이나 소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팔아가며 살지요.  티벳의 역사도 이 길고도 튼튼한 실처럼 오래 이어져 포근하고 멋진 무늬로 남기 바랬습니다. > 

 

토막 이야기:  옷감 짜는 것을 구경하던 아내. 잠깐 잠이 들자 이들은 옷감이며 이불을 덮어 주었지요. 내가 들어가자 아내는 그제서야 잠이 깨었고 한 여자가 잉-우는 시늉을 하며 아픈 흉내를 내라고

아내에게 코치를 해주었답니다. 푹 자다 가라는 배려였지요.우린 이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했는데, 인정을 넘치도록 받고 돌아왔습니다. 참 많이 착하게 사는 이들이 고맙습니다.  

 

<함께 읽어 좋을 책>「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 정희재 지음-샘터 2006

  

 <카투만두로 향하는 버스 : 장장 17시간 버스 걸렸지요. 참아야하고 그래서 어쨋든 시간은 흘러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기다리는데는 이력이 나있습니다.>

 

꼬리 글: 기다리고 참지를 못하던 내 성격이 인도에서는 잘 기다리고 잘 참았습니다.

시간은 어차피 흘러걸 터이고  喜.怒.愛.樂이라는 감정,  또한 시간과 더불어 어차피 흘러가면서

 바뀔 터이니...

 

한국에 돌아와  언제까지 이 약발의 효과가 이어 갈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 소나울리 국경에서 쿠시나가르로 향하는 시끄럽고 혼란한 로컬 버스 : 만원 버스에서 현지인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외국인인 내게 자리를 양보해 준 고마운 인도인들에게 감동 받았지요.>

 

 

< 카투만두의 외곽 : 그래도 우린 이들에 비하면 호강스럽게 지냈습니다.-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다니는

 버스>

 

 

< 글을 마무리 하면서...>

 

시작은 알겠으나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인도. 네팔 배낭 여행.

당황스럽고 난처하고 불편했지만 흥미진진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그때의 사진과 메모첩을 들추니

그 시간들이 새록새록 그립기까지 합니다.

무질서하고 혼란함 속에서 정지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인도와 네팔.

가끔씩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흥겹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생활 방식을 우리식의 관점에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삶은 내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무작정  친척 집을 찾아가면서 보았던

 그 모습이 마치 재연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여 오히려 정겨움이 있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면서  뒤섞이면서 함께 흘러가는 인도와 네팔.

이제 그 먼 길을 추억 속에 묻을 때입니다.

 

지금부터는 미래로 향하는 여행 길에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 네팔- 룸비니의 마지막 날 석양 : 인도와 네팔은 일출, 일몰의 태양이 매우 장관입니다.> 

 

  

<네팔-열흘간 체류했던 룸비니에서 아내 : 안녕, 네팔...  잘 있거라, 여우야-

 

밤만  되면  이 숲속에서 여우들이 스님의  저녁 예불 소리에 맞춰   떼지어  울어대지요.   하루는  여우

한 마리가  흘킷거리며 지나가기도 했답니다. >

  

 <인도-델리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여행 마지막 날 : 안녕, 인도- >

 

토막 이야기 :  좁기만한  일상 속을  맴돌며  살아가며 또 다른 세상을 두려워 했던 나. 

 

이제는  眼.耳.鼻.舌.身.意   모든 감각의 門을  활짝 열고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며 , 가두려고만  했던

나만의 틀에서 벗어나  참다운 깨달음의  세상에 이를 것을 다짐하며 마지막 여정의 문을 나섭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 내가 찾고자 하는 도마뱀의 몸통과도 같은-본질 혹은 실체는 아직 잡지 못했지만  숲의 움직임만은 어렴풋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좀 더 찾아 보아야 할 듯 합니다. 

 

 

<  메모 첩에서...  >

 

09.11.15

첫눈이 내린다.

새벽 3시에 기상. 승용차를 몰고 인천으로 향함.

처가에 차를 세워놓고 인천공항에 오전7시 도착.

일행과 첫 만남.  9시 45분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림. 일행중 한 아가씨가 멀미를 함.

약을 꺼내 주려다가 들고 있던 노트북을 떨어뜨림.

下心인가, 下物인가...

 

결국 이 녀석 작동을 안함.

앞 날이 캄캄하다.

로밍을 하지 않은 핸드폰도 걱정.

결코 쉽지만은 여행이 될 듯.

 

맛살라 향신료 냄새 가득한 에어 인디아나 비행기를 갈아 탐.

오래고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밤 12시 45분 델리에 도착.

 

뿌연 먼지와 소음과 매연.

그리고 혼잡한 거리.

 

09.11.16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를 나섬.

엄청난 인구와 경적 소리.

먼지와 짐승들의 배설물과 쓰레기들.

 

내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여기로 오게 되었나.

후회막급. 어차피 선택한 것 이제 즐기는 수밖에.

 

09.11.17

코끼리를 타고  암베르 성에 오름.

내가 탄 코끼리 늙어서 인지 계속 추월 당함.

오늘은 완전 자유 여행.

<점봉3리> 라는 한글이 새겨진 트레이닝복  차림의 아저씨를 만남.

한국에 돌아와 그 동네가 경기도 여주에 있는 동네임을 확인.

 

굶는데 장사 없음.

3일을 굶었는데 저녁에 탄두리라는 양념 닭 불고기를 맛있게 먹음.

 

印度에는  人道가  없구나...

 

09.11.18

아그라로 가는 버스를 탐.

온 동네가 폭격 맞은 것처럼 새 것이 없는 나라.

건널목에서 기차가 한 번 지나가면  30분 이상은 극심한 교통 혼잡.

아그라 뒷동산에서 순박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

공작새의 울음소리가 저리도 흉칙하구나. 역시 외모가 중요한게 아녀...

이슬람 무덤을 봄.

 

09.11.19

타지마할 묘 관람.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날을 기념하여 공짜로 관람.

차창 밖으로 쓰레기나 바나나 껍질을 당당히 버리는 재미 터득.

어차피 짐승들의 먹잇감.

밤12시 아그라를 떠나 잔시 역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이동.

4시간 기다림. 역사에 아무 데나 누워있는 인도인.

그들이 모두 거지인가 했음.

 

기차 칸을 찾지 못해 생사를 건 달리기.

인도 기차 무지 길다 300m라니...

 

09.11.20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 놓치고 오토 릭샤로 오르차로 향함.

아름답고 소박한 동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행복함을 느낌.

아이들과 그림 흥정. 실패.

내가 아이 초상화를 그려 줌. 아이들 재미있어 함.

11년간 지어 단 하루만 머물렀다는 웅장한 성을 관람.

티켓을 끊지 않고 문지기에게 뇌물을 쓰고 뒷거래 관람.

 

짚차를 대여. 고난 끝에 카주라호에 도착.

 

09.11.22

작은 힌두 사원에서 푸자 의식에 참여. 이마에 붉은 점 찍고 다님.

에로틱한 미투나상. 지친 내 본능을 충동질하다.

사원에서 아내는  아이들 앞에서 산토끼 노래 부름.

밤 11시 숙소를 출발. 도중에 기사는 친구를 만나 차를 한참 세워놓고 수다를 떨다가 서서히 이동. 

깜깜한 들판에서 펑크나서 고침.

1시간 30분 가량 달린 후 역에 도착. 밤 하늘 별빛이 무척 아름다움.

2시간 기차 연착. 역 구내에 정전. 원숭이 떼가 출몰.

 

09.11.23

바라나시 갠지즈 강의 화장 모습.

갠지즈 강에서 인도의 흐름을 봄. 무척 혼란스러움. 사전에 겁을 준 것보다는 덜함.

 

09.11.24

인도, 빨리 떠나고는 싶지만 흥미있는 나라.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인도.

사르나트 관람, 부처님의 신비한 미소 가슴에 잔잔히 파고 듦. 

저녁에 화장장 근처 음악 학교에서 음악과 인도 춤 관람..

인근 로칼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주인 집 아저씨 침방울 튕기며 끈질기게 말 걸어옴.

독립운동 자금 운반하듯이 맥주를 쌀 포대 자루에 비밀스럽게 담아옴.

 

09.11.25

아침에 갠지즈 강 다시 감.

어느 노인네의 이끌림에 전신 맛사지 받음. 무척 시원함.

1000루피를 요구 . 600루피만 주고 도망치듯 빠져 나옴.

일행중 가장 활발하고 건강한 분이 탈 났음.

길거리는 소란스러움. 경적소리.게다가 부족한 전기를 대신하는 엄청난 발전기 소음과 매연.

 

오후 9시 58분

기차 3시간 연착 또 다시 2시간 연착...그러는 것이 7시간 연착.

이 상황 속에서 내 입에서 짐승 관련 단어가 나옴.

플랫홈은 한 마디로 동물 동장.

개, 쥐는 물론 원숭이. 도마뱀. 심지어 플랫홈에 소까지 등장.

끔찍한 화장실.

기차가 오자마자 거지처럼 맨바닥에 누워있던 사람들, 돌연 승객으로 바뀜.

 

09.11.26.오후 4시27분

여전히 열차 탑승  중. 길고 긴 여정 참을 만하다.

인도이니까...

 

09.11.27. 오전 7시23분

꼴까타에 도착.

엄청 혼란스러움.  도시에  짐승이 없는게 신기함.

인도는 짐승만 가둬 놓아도 100년은 발전할거라는 생각이 듦.

변압기 바로 아래 여행객 국적의 맛에 한참 어설프게 접근하는 음식점.

라면 비슷한 것 먹음. 맥주 6병을 숙소에서 나눔.

마침 착한 어린 양이 들어와 노래 불러 줌.

 

09.11.27.오후 12시

꼴까타 자유 여행.

전철을 탐. 지하철 안에서는 촬영 금지.

혼잡하고 정신 없는 깔리 사원 관람. 무섭다.

제물로 희생된 염소의 핏자욱. 그 옆에 매여 있는 어린 염소. 그리고 그 시체를 먹어 댈 개떼들.

 

이슬람 사원을 다녀 옴.

정결한 몸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움.

화장실에서의 해프닝. 무릎 꿇고 소변을 봄.

 

오후 2시 43분

걸어서 자인 사원에 도착.

까만 부처상. 생물을 죽이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이나교.

맨발과 마스크. 심지어 수도 꼭지까지 헝겊으로 감싸 생명 존중의 신앙적 삶을 봄.

정직한 그들이기에 장사도 잘 된다함.

우리나라는 정직하면 굶어 죽는데...

 

오후11시

정시에 열차가 떠남. 이건 인도의 기적.

당연한 것은 바로 여기가 출발점.

기차 안 무척 소란스러움. 공중 도덕, 그런 것 없음. 인도인 목청 엄청 크고 말이 많다.

 

09.11.28 오전 3시 10분

기차에서 내려 짚차로 다아르질링으로 향함.

역 근처에서 생선 썩는 냄새.

산길 험하고 도로 사정 열악. 도로 주변의 마을이 참 정겹다.

포장 도로나 비포장 도로가 별 구별이 안감.

영국 지배 당시 만든  TOY RAIL이 인상적. 지그재그로 산 정상까지 이어짐.

맑아져야 할 산 계곡이 매연으로 가득.

비가 와야만 씻긴다니 언제 비가 오려나.

 

짚차로 3시간, 저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서늘하게 보인다.

와...

쌀쌀한 겨울 날씨. 장갑과 목도리를 사서 중무장.

 

09.11.29 오후 5시 58분

불교 사원에서 천수천안 11면 보살을 봄.

가는 도중에 친절한 여학생의 안내로 길을 쉽게 찾음.

주지 스님의 친절한 안내. 동네가 참 깨끗하다.

 

09.11.29

새벽 4시 기상. Tiger Hill에서 일출을 봄. 우리나라에서도 보지 않았던 일출.

과연 해가 제대로 뜨긴 뜰까? 농담을 섞여가며 장엄한 일출을 바라봄.

아침을 먹시 위해 들른 식당. 가슴에 KOREA가 새겨진 옷을 입은 식당 주인.

 

09.11.30  오전 8시 47분

파업이란다.

파업이 시작되기 전에 국경을 넘기 위해 야반 도주하듯 새벽 2시에 기상.

어슴프레 밝아오는 햇살에 우리가 밤새 달려온 길이 절벽이었다는 것을 알고 경악.

세상살이,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끌려서는 아니 되겠구나.  박지원의 [一夜九渡河記]가 생각 남.

 

드디어 네팔 국경에 도착.

이건 마을 회관도 않되는 곳이 출입국 관리 사무소라니.

양식도 없는 장부를 그려가면서 사무처리.

그나마 13명 중 2명 것만 남겨 놓고 자기 일을 본 후 다시 처리하는 인도인.

 

하여튼 걸어서 네팔 진입.

비자를 받고 마을에서 대망의 20시간 Local 버스 기다림.

임시로 숙소 대실하여 일부 누워서 기다림.

 

09.12.1

17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카투만두에 도착.

중간 중간에 들렀던 끔찍한 화장실. 우욱...

성공회. 불교사원. 힌두교 사원. 자이나 사원 구경

 

09.12.2

카투만두에서 결혼 기념일 맞음. 네팔의 적나라한 화장장 구경.

박타프라에서 즐거운 시간 맞음. 저녁에 작은성이라는 한국어로 쓰여진 주점에서 뚱바 마심.

정종과 막걸리 맛. 길잡이가 마련한 결혼 기념일 케?.

 

09.12.3

8시간 버스 타고 포카라에 도착.

인터넷 접속. 한국 식당<서울 뚝배기>에서 한국 음식과 소주 마심. 한국 음식 맛있음.

소주, 이 맛이 아닌데...

 

09.12.4

티벳 난민촌 다녀 옴.

옷감과 소품을 만들어 팜. 인정이 매우 좋음.

저녁에 길잡이의 네팔 지인초대로 파티에 참석.

삼겹살에 이 나라 소주로 흥겨운 시간.

 

09.12.5

룸비니 한국 사찰 <대성석가사>에 도착. 이 곳에서 일행과 헤어짐.

또 다시 파업 소식에 오자마자 일정을 앞당겨 일행 떠남. 황량함.

한국 무 김치와 고추장, 된장국을 먹고 기력 회복.

 

09. 12.6

까마귀 꽉꽉소리에 눈이 떠짐.

새벽 5시 예불 참례. 주지 스님의 배려로 전기 장판 얻음. 20명 이나 들어설 방을

우리 부부 2명이 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 다녀옴.

저녁 예불 소리에 맞춰 울어대는 여우떼 울음소리.

금강경을 펼처 봄. 아무 것도 없다니. 眞我도 윤회도 없는 걸까?

 

09.12.7

짚차 대여. 한국에서 오신 명안 스님과 카빌라성 다녀 옴.

생각보다 성은 작은 규모. 인근은 너른 평야와 물이 풍부함.

그래도 이들의 생활은 매우 가난함.

오후엔 명안 스님께서 호텔에서 커피를 사줌.

여행 길을 밝혀 준 또 한 분의 길잡이.

매일 룸비니 동산을 다녀올 예정인 아내 제의에 한 번 끊은 표를 계속 쓰기로 허락 받음.

룸비니 동산 경비원, 느닷없이 자리 피고 이슬람 의식 치룸.

종교의 다양성과 포용하는 이들의 삶이 낯설음.

 

09.12.8

람그람 방문 계획이 네팔인의 파업으로 또 다시 취소.

명안 스님과 자전거 빌려 국제 사원을 둘러봄. 아담하고 정갈한 독일 사원그리고 공사 중인 일본 사원.

숲 속에서 여우 한 마리가 흘킷거리며 지나감. 

 

09.12.9

빈둥빈둥. 한국 사찰에서 여유있는 시간.

주지 스님의 유머가 참 재미있다.

피곤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염가의 숙식을 제공하고 

사찰 건립에 분주하신 주지 스님.

 

09.12.10

명안 스님 룸비니를 떠난다 함.

룸비니 동산에서 앉아 졸고 있는데 외국인이 내가 참선을 하는줄 알고 사진을 찍어 감.

나를 제외한 보리수 나무 아래 눈을 감고 계신 저 분들 모두 참선을 하겠지...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묻힌 <람그람>과  마야데비의 친정 고향 다녀 옴.

Local 버스 정류장이 마치 폐차장 같다.

룸비니에서는 느릿하지만 각 국가의 사찰이 건립되고 있다.

언제 완공될까. 완공되자 마자 또 다시 낡아지겠지.

 

09.12.12

매일 매일 반복되는 생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행자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저리 고행을 할까. 

 

09.12.15

아침 8시 짚차를 대여하여 네팔 국경을  통과.

네팔의 차분한 분위기에 비해 인도의 혼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소나울리에서 로칼 버스를 타고 쿠시나가르로 향함. 완전 완행 버스.

스리랑카 절에서 머무르길 원했으나 빈 방이 없다하여 한국 절 대한사에 여장을 품.

화장실에 물도 안 나오고 모기떼 극성. 최악의 숙소.

 

09.12.16

부처님 다비 성지와 마지막 설법 성지 . 열반 성지를 둘러 봄.

저녁 밥을 먹다 정전. 입이 보이지 않아서 밥 숟각락 처리 못함.

그래도 웃음은 찾았음.

 

09.12.17

쿠시나가르를 떠나  고락뿌르 역으로 향함. 만원 버스. 외국인인 내게 자리를  양보해줌.

운적석 뒤 . 마치 60년대 한국 모습. 친절한 인도인.

에어컨 석이 있는 기차 B2. 몇 차례 확인을 해보았지만 결국 기차는 저 먼 데서 정차.

다행이 정차 시간이 길어서 다행.

 

09.12.18

델리에 도착. 인도 여행의 첫날 머물던 곳. 이제 이런 혼람함에도 순조롭게 적응.

 

09. 12.19

시내 관광. 마치 세운 상가 혹은 남대문 시장에 와 있는 느낌.

선물을 고름.

이선생님께서  공항까지 배웅.

1시간 연발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향해 출발.

 

09.12.20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 도착. 겨울의 계절을 느낌.

대한항공을 찾아 헤맴. 한국행 비행기를 탐.

참 깨끗하고  정리된 분위기.

인천공항에 오후 8시 무사히 안착. 무척 춥다.

 

아,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구나.

한국이 이토록 깨끗하고 질서있는 나라인줄 여태 모르고 살았구나.

때는 겨울,  이미 끝나버린 가을과 이미 시작된 겨울.

또 춥다.  < 마침 09.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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