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67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풍어제’]
풍어제
날라리 음조가 애간장을 녹이는 구나
부두를 얼기설기 엮은 오색 천들이
선창을 더욱 숨 가쁘게 빙빙 돌리는 구나
큰무당이 성주거리 굿 길게 뽑고
제주가 해신에게 읍하며 제문을 불사를 때,
선주들은 음복 값으로 돼지콧구멍에
바다 빛 지폐를 지르는 구나
어허라 육지에서는 졸이었던 돼지머리는
오늘날 해신과 맞짱 뜨는 몸,
연기론緣起論은 포구에서 재림하나니
꽹과리와 북이 슬쩍 소리를 비틀자
호사꾼들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고
구경꾼들은 차양 아래 술판으로 몰려가는 구나
그렇지 바다로 나가려면 육신이고 뭐고
안팎이 모두 낭창한 물이어야 하구말구
낮술에 불콰한 선창엔 때마침 간 맞춘 해풍이
누항 갯마을 풍진을 털어주는 구나
나도 뱃놈 너도 불뱃놈
우린 부숙된 생선냄새 자욱한 포구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 굴신하며
풍어제 기간을 신독해야 한다
바지락 국물에 탁배기 기울이며
애시당초 감도 잡히지 않던 만선 꿈도
조심스레 눈빛으로 서로 나누고,
달포 지나면 돌아온다던 왕십리 미쓰 김 소식도
주모에게 졸라서는 안된다
그까짓 기름값도 안나오는
한나절 출어도 오늘은 쉴란다
그런데 말이지, 굿거리장단에 아슴히 출렁이는
그리운 옛적 파시波市의 환영이며 환청은 뭔가
에헤이야 에헤이 어랏차
탁배기 몇 주전자에 혀가 꼬불어 질지언정
모두가 요즘은 죽었다는 신명을 기꺼이 일으켜 깨워
덩더쿵 덩더더쿵
풍어제 가락에 학이 되어 일어나야지
아무렴 우린 모두 웅숭깊은 채꾼들이야
누구는 팽하니 풀어 던진 콧물이 시름풀이라 눙치고,
누구는 짓무른 눈시울 문지르며
태평성대라고 주억거리며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풍어제>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포구의 토속적 생명력과 그 이면에 가려진 어민들의 쓸쓸한 현실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수작입니다.
이 시의 탁월한 점과 구조적 특징을 세 가지 관점에서 비평해 드립니다.
1. 세속과 신성의 기막힌 조화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신성한 종교 의식(굿)'과 '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능청스럽게 버무려낸 점입니다.
⚫돼지머리의 반전 : 육지에서는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던 돼지머리가, 포구에 오자마자 "해신과 맞짱 뜨는 몸"으로 격상됩니다. 시인은 돈 몇 장에 신을 달래려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돼지콧구멍에 지르는 지폐)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도, 그것이 곧 거대한 바다 앞에 선 인간의 간절한 생존 양식임을 꿰뚫어 봅니다.
⚫연기론(緣起論)의 재림 : 불교의 심오한 교리인 '연기론(모든 것은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법칙)'을 포구의 시끌벅적한 굿판에서 발견하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인간과 바다, 돼지와 해신, 술판과 굿판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각화합니다.
2. '낭창한 물'의 감각과 비장미
시의 중반부에서 서정성은 절정에 달합니다.
"그렇지 바다로 나가려면 육신이고 뭐고 / 안팎이 모두 낭창한 물이어야 하구말구“
이 구절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에 맞서기 위해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해줍니다. 뻣뻣하게 굳은 육신과 아집으로는 바다를 이길 수 없기에, 스스로 물처럼 유연해져야('낭창해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그 깨달음 뒤에 오는 현실은 고달픕니다. "기름값도 안 나오는 한나절 출어"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지금의 포구는 과거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애시당초 감도 잡히지 않던 만선 꿈"이나 돌아오지 않는 "왕십리 미쓰 김 소식"은 현대 어촌이 마주한 쓸쓸한 결핍과 소외를 대변합니다.
3. '신명'을 통한 절망의 초극(超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주저앉거나 한탄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시의 후반부는 꽹과리와 북소리 같은 청각적 리듬감(덩더쿵 덩더더쿵)을 타고 급격히 고조됩니다.
⚫파시(波市)의 환영 : 지금은 사라진 옛 파시(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의 활기를 환청으로 들으며, 어민들은 "요즘은 죽었다는 신명"을 억지로라도 기어이 흔들어 깨웁니다.
⚫숭고한 채꾼들 : 시인은 이들을 단순한 '뱃놈'이 아니라 "웅숭깊은 채꾼들"이라 부릅니다. 삶의 깊이를 아는 진짜 어부들이라는 뜻입니다. 코를 팽 풀며 시름을 날리고, 진물 나는 눈을 문지르면서도 "태평성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주억거리는) 마지막 모습은 해학을 넘어선 먹먹한 비장미(悲壯美)를 선사합니다.
💡 총 평
한기홍의 <풍어제>는 부숙된 생선 비린내와 탁배기 냄새가 진동하는 날것의 현장감이 살아 숨 쉬는 시입니다. 거친 포구의 언어 속에 불교적 사유와 현대적 비극을 녹여내었으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끝내 춤판을 벌여 신명을 돋우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한(恨)과 흥(興)의 정서'를 완벽하게 복원해 낸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