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12월 8일) 오전 10시
워싱턴DC, 토머스 프리드먼(Friedman·55)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여비서는 분주했다.
쉴 새 없이 전화를 받으며 이메일을 체크했다. 프리드먼은 문을 걸어 잠그고 칼럼을 쓰고 있었다. 워싱턴의 지인과 아침 식사를 하고, 헤지펀드 매니저와 만난 뒤 출근한 프리드먼의 머릿속은 수요일자에 게재될 칼럼 생각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떠오른 악상(樂想)을 기록해야만 하는 작곡가처럼,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15분 미뤘다.
"프리드먼은 곧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내년 1월 5일까지 인터뷰를 하지 않습니다."
여비서 그윈 고든(Gordon)은
브라질 유력 신문의 인터뷰 요청 전화를 기자의 면전에서 거절했다. 여비서는 숨을 돌리며 "프리드먼은 24/7(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한다"며 "주말이나 휴일에 쉬고 나오면 스케줄을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선정한 세계 경영 사상가 20인 중 2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세계는 평평하다' 등 책을 낼 때마다 수백만 권씩 팔리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퓰리처상을 세번 수상해 더 이상 수상 자격이 없는 저널리스트.
그러나 프리드먼의 사무실은 여느 저널리스트의 방처럼 적당히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았다. 사무실 바닥에는 그의 신간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수백 권이 쌓여 있었고, 문 옆 게시판에는 '에너지 독립 선언' '갤런당 40마일 연비를 내는 자동차 개발' 등 그의 최근 관심사를 반영하는 선전 포스터 등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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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머스 프리드먼 /그래픽=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사진=afp
세계화와 시장 개방의 전도사였던 그는 요즘 환경 혁명의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도 뜨겁고(지구 온난화), 평평하고(세계화), 붐비는(인구 증가), 세 가지 현상이 결합된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녹색 혁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시 말해 '지옥의 연료'이자 '더러운 연료'인 화석 연료(석유와 석탄 등)에 기반한 성장 시스템에서 '천국의 연료'이자 '깨끗한 연료'인 풍력과 수력·태양력 등 신·재생에너지 성장 시스템으로 모든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해주는 '에너지 테크놀로지(ET)'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이나 국가가 미래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프리드먼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번 경제위기를 레버리지(차입)의 방대한 규모, 레버리지의 세계화와 복잡성, 그리고 글로벌 경제의 중심인
미국에서 위기가 터졌다는 점에서 '금융 핵폭탄(financial nuclear bomb)'이라고 규정했다. 현재 미국에게는 '모든 사람을 구제하든지' 아니면 '전체 시스템을 버리는' 두 가지의 극단의 선택만 남아 있을 뿐이며,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제3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 '빅3' 구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위적 개입을 비판하는 외국의 목소리에 대해 "이 문제에 있어 누가 자유로운가"라고 반문했다.
프리드먼과의 인터뷰는 워싱턴에 있는 뉴욕타임스빌딩 7층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 동안 끊임없이 조어(造語)를 만들어내고, 비유를 들려고 애썼다. 가령
북한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북한이 주식이라면 공매도(short·空賣渡)하겠다"라든지, 모럴해저드 문제를 설명하면서 열심히 맞벌이하는 프리드먼 부부와 이웃집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를 비교하는 식이다.
―당신은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세계화는 월가발(發) 서브프라임 위기마저 세계화시켰다. 이번
금융위기는 세계화의 또 다른 그늘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세계화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얘기해 왔다. 다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세계화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고,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좋은 면을 최대한 끌어내고, 나쁜 면은 완화시키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월가에서 시작됐지만, 세계로 확산됐다. 특히 개도국들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당신은 세계화를 통해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골든 아치'의 풍요가 전파된다고 설파했지만, 지금 개도국들은 '골든 아치' 대신 '더블 딥'(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다시 꺾이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개도국은 세계화의 손쉬운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게 아닌가.
"그것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은 세계화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국가다.
삼성, 대우 등 글로벌 기업들을 배출했다. 만약 세계화가 아니었다면 한국의 현재 생활수준은 한참 뒤처졌을 것이다. 나는 한국 이상으로 세계화의 혜택을 본 나라를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은 물건을 만들어 글로벌하게 판매했다. 문제는 세계화가 아니라 개별 국가가 얼마나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느냐는 것이다. 좋은 펀더멘털과 은행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갖추고, 높은 저축과 훌륭한 금융 소프트웨어를 갖춘 국가는 이번 위기에서 충격을 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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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머스 프리드먼이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코드 레드'의 시대는 가고 '코드 그린'의 시대가 온다프리드먼은 보통 키에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말투는 빠르지 않았지만, 흔히 기자들이 그렇듯 성격은 꽤 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질문을 들으면 금방 핵심을 파악하고, 질문이 끝나기 전에 답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씩 재미있는 비유를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매우 진지한 인물로 보였다.
―미국의 문제는 무엇인가.
"미국의 금융 소프트웨어는 썩고, 부패했다. 사람들은 결코 판매하거나 구입해서는 안 되는 상품을 팔았다. 모기지를 제공하면서 계약금도 없고, 2년간 원금을 조금도 낼 필요가 없는 상품을 팔았다. 이런 모기지를 묶어 증권으로 팔았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감독당국과 신용평가사는 이런 상품에 'AAA' 도장을 찍었다. 우리의 금융 소프트웨어는 '탐욕 바이러스'에 감염돼 부패했다. 우리의 금융 소프트웨어를 청소하고, 금융 하드드라이브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안티 바이러스 처방'을 받아야 한다.
―안티 바이러스 처방을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금융기관에 대한 보다 많은 규제를 의미하는가.
"물론 어떤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반드시 더 많은 규제가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전체적으로 규제가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티 바이러스 처방에서 중요한 게 두 가지다. 먼저 레버리지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돈으로 베팅하는 금액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돈으로만 30대1의 베팅을 하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이 남자의 돈으로 30대 1의 베팅을 하고, 다시 저 여자의 돈으로 30대 1의 베팅을 하는 식으로 일을 벌였다가 잘못되면 핵 폭발이 일어난다. 둘째는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볼 수 있으면 위험을 측정할 수 있다."
―파생상품은 미국 금융산업 혁신의 산물이고, 최상의 기술 상품이 아닌가. 파생상품이 왜 이처럼 위험해졌는가.
"과잉(excess) 때문이다. 너무 많이, 너무 멀리 나가면 결국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을 갖고 플레이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상품이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높이고 마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돈에서 돈을 만든다. 보다 나은 비행기를 만들고, 달로 로켓을 쏘아올리는 공학 대신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돈에서 돈을 만드는 공학을 사용한다. 이는 빗방울에 내기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빗방울이 먼저 창문에 도달할 것인지 알아맞히는 식이다. 이것은 새로운 대우 자동차와 삼성 스테레오를 만드는 게 아니다. 돈에서 돈을 만드는 이런 일이 시작되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달려든다. 일이 잘못되면 금세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위험한 금융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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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머스 프리드먼 /afp
■"선택지는 단 두 가지, '다 구제하거나' '다 죽거나'"
―미국 정부는 현재 조 달러 단위의 경기 부양책을 거론하고 있다. 상상이 잘 가지 않을 만큼 큰돈이다. 이런 식으로 돈을 쏟아 붓는 정책이 단기적으로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이다. 여기에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나와 아내는 둘 다 직장이 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일정 금액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모기지로 집을 샀다. 모기지 원리금 상환을 거르지 않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나 내 옆집 사람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얻었다. 계약금도 없고, 2년 동안은 원금 상환도 할 필요가 없었다. 집값이 계속 오를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모기지를 갚지 못하자 은행에서 와서 옆집 프리드먼 부부가 내는 모기지의 절반으로 깎아 주겠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서 모기지를 밀리지 않았지만 옆집 사람은 제대로 된 소득도 없이 집을 사놓고 모기지가 밀리니까 다시 할인받는 불공평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을 구제(bail out)하는 것이다. 전혀 구제받을 가치가 없고, 구제돼서는 안 되는 사람까지 모두 구제하는 옵션이다. 아니면 전체 시스템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보다 공평하고 책임감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제3의 메뉴는 없다. 왜냐하면 잘못해서 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 가령 나쁜 은행가와 모기지 소유자, 집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 데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 등을 벌주기 시작하면 시스템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빅3'를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동차 빅3는 구제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빅3는 우리가 닥친 문제의 전형적인 예다. 바로 내 이웃과 같다. 그는 보다 책임감 있게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내 이웃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두면 내 집값이 떨어진다. 나는 파산한 집 옆에 살고 있고, 은행은 파산된 집을 절반 가격에 팔아 치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집값이 떨어져 훨씬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이것이 GM 등 빅3의 딜레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파산하지 않게 하려면 빅3를 구제해야 된다."
―결국 빅3를 구제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얘긴가.
"불가피하다. 속담에 이런 얘기가 있다. 당신에게 1000달러를 빚졌다면 그것은 내 문제다. 하지만 100만달러를 빚졌다면 그것은 당신 문제다. 이것이 GM 스토리다."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빅3 구제 움직임을 보면서 같은 요구를 자국 정부에 하고 있다. 빅3 구제가 자칫 보호무역주의 혹은 민족주의 물결이 일도록 자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하지만 솔직히 한국은 한국의 자동차 회사를 돕고 있고, 유럽은 자신들의 자동차 회사를 돕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숫처녀(virgin)는 없다. 조심해야 한다. (웃음)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그래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지향해 오지 않았는가.
"맞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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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머스 프리드먼 /위키피디아
"하루빨리 ET(energy technology)를 만나야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경제 위기를 놓고 미국이라는 수퍼 파워가 쇠퇴하는 신호로 보고 있다. 동의하는가.
"당신의 돈을 지금 어디에 맡기고 있는가. 러시아 은행인가, 중국 은행인가, 인도 은행인가 아니면 씨티은행인가. 그래도 씨티은행에 돈을 넣지 않는가. 미국의 파워가 약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됐지만 나는 돈을 미국 은행에 맡긴다.
미국 경제는 혁신을 할 능력이 있는 경제다. 땅에 파이프를 묻고 오일을 빨아먹는 경제와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해 대량 생산을 하는 경제와 비교해보라. 어떤 경제를 지지하겠는가. 어떤 나라의 은행에 돈을 맡기고, 주식시장에 투자하겠는가. 당연히 미국이다."
―이번 경제 위기가 세계화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심각한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엔 너무 이르다."
■"우리는 구제만 해서는 안되고 새로운 산업을 건설해야 한다"
―오바마노믹스(Obamanomics)는 새로운 뉴딜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새로운 뉴딜정책은 대체에너지 등 녹색 성장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가.
"요즘 유행하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구제(bail out)만 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것을 건설(build up)해야 한다. 이 위기를 지나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존 산업만으로는 안 된다. 다음 산업은 ET(에너지 테크놀로지) 산업이다. 청정 수력 에너지, 청정 공기 시스템과 같은 산업이다. 이것이 가장 거대한 차기 글로벌 산업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ET 혁명의 리더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오바마노믹스는 녹색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책에서 녹색 성장은 반드시 전체 시스템이 함께 돌아가는 접근을 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노믹스는 시스템적 접근을 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차기 오바마 행정부는 전체 그림을 그려 가고 있는 단계다. 따라서 아직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주문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
―ET 혁명이 다음 정부에서 이른 시일 내에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ET 혁명은 규제(regulation)가 아니라 혁신(innovations) 솔루션을 필요로 한다. 그러려면 적절한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고, 가격이 이를 이끌어야 한다. 소비자들의 행동과 수요를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휘발유세(稅)와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세금을 도입하지 않은 채 무작정 디트로이트에 가서 '그린 카'(친환경차)를 만들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GM에 프리우스(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만 만들라고 해도 휘발유세가 없다면 소비자들은 사지 않을 것이다. (휘발유세나 탄소세로 휘발유 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비로소 소비자들이 휘발유를 적게 쓰거나 안 쓰는 친환경차를 구매할 것이란 의미·
편집자 주) 대신 중고 SUV(지프형 차)를 살 거다. (웃음) 오바마 당선인은 녹색 성장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매우 현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촉발하는 중요한 열쇠는 가격이라는 점이다. 휘발유세와 탄소세가 있어야 소비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래야 시스템적 접근을 할 수 있다."
■"유가 하락에도 ET 혁명은 유효"
―고공 행진을 하던 유가가 추락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ET혁명은 김이 좀 빠진 것 아닌가.
"맞다. 그런 우려를 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책을 쓸 당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 선이었지만 지금은 40달러 선이다. 하지만 가격 이외에 다른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후 변화와 지정학적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1970년대에는 오일을 소비하면서 단지 가격만 생각하면 됐다. 지금은 오일을 소비할 때 이것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과 핵 무기 개발을 추구하는 이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는 높은 유가는 이란을 비롯한 산유국들의 독재 정치체제, 즉 석유 독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격도 여전히 중요하다. 모든 훌륭한 그린 제품을 만들어도 가격 인센티브(incentive)가 없으면 소비자들이 구입을 하지 않을 것이다. 휘발유세와 탄소세를 도입해 가격 인센티브가 생겨야 진정으로 소비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데, 지금이 ET 혁명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보는가.
"나는 경제 위기 이전에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믿는다. 경제 침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단순히 구제가 아니라 새로운 건설이 필요하다. 당신은 GM의 대형 SUV인 '허머(Hummer)'를 몰아서 이 경제 침체에서 탈출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아니다. 아마도 또 다른 경제 침체에 도달할 뿐이다. 나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원한다."
―당신은 새로운 시대의 국가 전략으로 '코드 그린(Code Green·녹색 성장 전략을 지칭하는 프리드먼의 조어)'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냉전(冷戰)시대의 전략인 '코드 레드(Code Red·적색경보·공산주의에 대한 대응 전략)'와 달리 '코드 그린'시대에는 소련과 같은 분명한 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목도와 응집력이 떨어지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코드 그린 시대에도 기후 변화 그리고 오일 파워에 의존하는 독재 국가와 같은 외부적 위협이 있다. 더구나 코드 그린 시대에는 기회도 함께 있다. 다음에 오는 거대한 글로벌 산업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에너지 테크놀로지를 소유한 국가는 경제 안보, 에너지 안보, 국가 안보, 혁신 기업을 확보할 수 있고 지구적 차원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나는 이 국가가 미국이길 바라고, 당신은 그것이 한국이길 원할 것이다. 단순히 위협만 부각해서는 안 되고 이런 기회가 함께 강조돼야 한다."
―당신은 그린 성장 전략의 모델로 덴마크를 꼽는다. 덴마크는 인구 550만명의 소국(小國)이다. 그린 성장 전략은 니치 마켓(틈새시장)에 만족할 수 있는 소규모 국가에나 적당한 모델이 아닌가.
"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답은 '노(No)'다. 미국과 같은 대국(大國)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미국은 큰 내수 시장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걸 미국 스스로는 놓치고 있고, 다른 소국들이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판매되는 윈드 터빈 3개 중 1개는 덴마크 제품이다. 그 기술을 미국에서 가져간 것인데도 말이다. 또 셀룰로오스 에탄올을 만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효소(酵素) 회사가 다니스코(Danisco)와 노보자임스(Novozymes)인데,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둘 다 덴마크 회사다. 다시 말해 기회는 많은데 미국이 놓치고 있을 뿐이다."
―과거 경제 혁명들은 기술 혁명이 주도했다. ET 혁명에선 아직까지 이런 기술 혁명이 보이지 않는데.
"그것은 시장의 형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적절한 가격과 표준, 규제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10만명의 혁신가를 자극하고, 10만개의 차고에서 연구가 일어나고, 10만개의 그린 제품 실험이 진행될 것이다. 이 가운데 1000개는 유망할 것이고, 100개는 매우 멋질 것이며, 이 가운데 2개는 차기 '그린
마이크로소프트'와 '그린
구글'이 될 것이다."
■"나는 최경주의 팬"
그는 골프를 좋아한다. 워싱턴 DC 외곽 베데스다(Bethesda)에 있는 그의 집이 골프장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평탄하지 않은 땅에서 플레이를 하고, 때로 공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튄다는 점에서 골프는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핸디캡은 5라고 했다.
―당신은 책에서 골프 얘기를 종종 한다. 골프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내게 골프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나는 가끔 프로 골퍼의 캐디도 한다. 지난 4월 시니어골프대회에서는 US오픈 챔피언에 두 번 오른 앤디 노스(North)의 캐디를 했다. 오늘 아침에는 프로 골퍼 톰 왓슨(Watson)과 정치에 관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나는 미네소타에서 아버지와 함께 골프를 하면서 성장했다. 나는
최경주의 팬이다. 한국은 내가 골프를 해보지 못한 몇 안 되는 국가다. 아름다운 한국 골프장에서 플레이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골프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아마도 다음 번 책이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빠져 나온 뒤, 책에 서명을 받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들어가기 위해 비서에게 부탁했다. 비서가 잠긴 문을 두드리자, 매우 신경이 곤두선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곧장 칼럼을 쓰고 있었다. 비서는 "칼럼을 쓸 때는 전화를 포함해 모든 것을 단절하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