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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08
S#1. 화원회의실 / 낮
도화서 원로들(김덕성, 신한평, 자비대령화원 등) 모여 앉아있고, 뒤로는 이인문, 김홍도, 한종일 등 젊은 화원들이 서 있다.
맨 끝자리에 윤복과 효원도 서있는 가운데,
가운데 앉은 장벽수, 근엄하게 둘러본다.
장벽수 : 열흘 후, 어진화사를 위한 경합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 때 까지, 어진화사를 맡을 책임화원은
경합에 나갈 준비를 하도록 하십시오.
S#2. 몽타주
장벽수 소리, 몽타주 위에 깔리며,
. 정조 서재/낮 / 정조 앞에서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홍도...
장벽수(소리) : 경합에 나갈 화원은 주상전하와 조정 대신들의 천거,
. 빈청, 낮 / 화원의 이름과 그림이 쓰여진 두루마리를 넘겨보는 대신들.
그 중에서 ‘이인문’이라고 쓰여진 산수화를 맨 위에 올려놓고, 나머지는 다른 쪽으로 미뤄놓는다.
장벽수(소리) : 그리고 도화서 제조를 맡은 예판 어르신과 도화서 내부의 천거를 바탕으로 결정됩니다.
. 예조판서의 집 사랑채, 낮/ 귀한 도자기를 만지는 예조판서. 만족스런 얼굴로 도자기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빙긋 웃으며 고개 드는 이희달.
장벽수(소리) : 이렇게 선발된 책임화원은 어진화사를 함께 수행할 동참화사를 선택하여 경합에 나가도록 하십시오.
. 도화서, 화원회의실, 낮 / 자비대령화원들, 모여서 이야기하며 끄덕거린다.
그리고, 자비대령화원. 가 일어나 인사하자, 자비대령화원들, 끄덕이며 박수치고, 자비대령화원의 어깨를 두드린다.
S#3. 경륜당(화원 회의실 및 교수실) 앞 마당 / 낮
회의실 밖으로 나오는 도화서 화원들,
홍도, 이인문과 이야기하며 지나가고, 윤복, 다른 화원들 뒤에서 걸어오는데, (윤복 뒤로 효원 걸어온다)..
만보와 술태, 고봉이 윤복과 효원 옆으로 온다.
고봉 : 뭐래, 뭐래? 응? 정말 어진화사를 한다는 것이냐? 언제? 응?
효원 : 열흘 후. 어진화사를 위한 경합을 시행한다고 하신다.
술태 : 여, 열흘? (윤복 보고) 너두 나가는 것이냐?
윤복 : 갓 화원이 되었는데 무슨 수로 나간단 말이냐?
술태 : 왜? 어차피 주상께서 단원을 아끼시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럼 니 놈두 따논 당상 아니냐?
윤복 : 나 같은 신입 화원이 가당키나 한 소리냐?
술태 : 이 바보 같은 놈! 이건 너한테 천재일우의 기회야. 어진화사를 하면, 가문의 영광이요 개인의 광영이란 말이다.
만보 : 암! 단원 선생님 바짓가랭이를 붙들어서라도 나가야지.
고봉 : (효원에게) 넌 어진화사 나가게 되면 논공행상(주 : 공적의 크고 작음 따위를 논의하여 그에 알맞은 상을 줌)때
무얼 빌거냐?
효원 : 난 자비대령 화원이 되게 해달라 빌거다.
고봉 : 와.. 효원이는 이제 규장각으로 가겠구나.
술태 : 난 집 한 채만 달라 그럴거다. 만보 형님은?
만보 : 글쎄... 난, 여인?
술태 : (윤복에게) 넌 뭘 빌거냐?
윤복 : 글쎄...
(insert : 장파형장, 윤복의 옆에서 무릎 꿇고 ‘제가 했습니다’ 하던 영복의 모습. 영복을 보는 윤복의 모습.)
윤복 : 그럼... 단청소로 쫓겨간 사람을 도화서로 데려올 수도 있단 말이오?
만보, 술태, 고봉, 효원 : 설마... 너...?
윤복 : (눈 반짝이며 보다가 달려가면)
만보 : 어딜 가느냐?
윤복 : 가 볼 데가 있소!
S#4. 도화서 / 홍도의 방 / 낮
홍도, 윤복 보고 있고,
윤복 :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님과 함께 어진화사 경합에 나가고 싶습니다. 저에게 초상화를 가르쳐 주십시오.
홍도 : 이제 갓 신입화원 된 놈이, 배짱 한번 좋구나?
윤복 : 꼭... 꼭 배우고 싶습니다...
홍도 : 네가 이리 매달릴 만한 이유가 있느냐?
윤복 : 어진화사를 잘 해내면 논공행상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홍도 : 그런데?
윤복 : 저 때문에 단청소로 쫓겨간 형을, 다시 도화서로 데려 오고 싶습니다..
홍도 : (윤복을 보다가) 초상을 그려본 적이 있느냐?
윤복 : 생도 시절에 공신도 모작을 한 적은 있습니다.
홍도 : 모작? 종잇장 베끼는 거랑, 사람을 실제로 보고 그리는 것은 천지 차이다.
초상은 사람의 생김새 뿐 아니라 그 정신, 성격까지 모조리 다 옮기는 그림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윤복 :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님! 해 내겠습니다..(간절하게 보면)
홍도 : (윤복 보다가) 초상화는 반나절을 줘도 그려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십 년을 줘도 그리지 못하는 자가 있다.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만 깨치면, 그 다음은 오십보백보,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니가 어느 쪽인지, (윤복 보면) 할 수 있는 쪽인지, 없는 쪽인지...
윤복 : (홍도 보며) 배우겠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스승님.
홍도 : .... (지그시 바라보며)
S#5. 정순왕후의 처소 / 낮
정순왕후, 조영승과 김귀주 함께 있고.
정순왕후 : 주상께서 갑작스레 어진화사를 한다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조영승 : 죄인의 아들이라는 미약한 토대를 이 기회에 다지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귀주 : 어진 한 장으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를 일입니다.
정순왕후 : 어진을 그린다는 것은 화폭에 혼을 담는 것입니다. ... 죽은 사람일지라도, 어진이 살아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순왕후, 고민하는 얼굴 보이고, 정순왕후를 끼고 화면 빙글 돌면,
S#6. 정순왕후의 처소 / 낮
정순왕후 뒷모습 보이고, 김상궁이 엎드려 있다.
‘자막 : 년 전’
정순왕후 : 주상께서 화공들을 은밀히 불러들인 연유가 무엇이라 하더냐?
김상궁 : (좌우 둘러보고) 주상전하께서 화공들에게 사도세자 저하의 생김생김을 자세히 말씀하시어,
그 얼굴을 그리게 하셨다 하옵니다.
정순왕후 : 무엇이라? 세자의 얼굴을 그렸다?
김상궁 : 예. 그리고, 화공들로 하여금 몇 번이고 초를 뜨도록 하고 친히 감동을 하여 고치도록 하시어..
사도세자 저하의 예진(주 : 아직 왕이 되지 못한 자의 어진)이 곧 ... 완성될 것이라 하옵니다.
정순왕후 : 무어라?!! (주먹쥔 손 벌벌 떨다가) 사가에 가야겠다. 미행을 준비하거라. 당장.
김상궁 : 예. 마마. (나가면)
S#7. 조영승의 집 / 사랑채 / 낮
발이 드리워진 사랑채 안방.
민복을 한 정순왕후가 앉아있고, 발 너머에 조영승, 김귀주 앉아있고,
정순왕후 : 주상께서 직접 세자의 어진을 그려 그 아이를 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장차 세손이 왕이 된 연후에, 그 때 아비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남겨두겠다는 것 아닙니까?
조영승 : 만일 어린 세손이 왕이 된 후 이 일을 다시 꺼내기라도 하는 날엔, 세자 저하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우리를 모조리 죽여 없애려 할 것입니다.
정순왕후 : (주먹 쥐었다 폈다 초조한데) 그 화공들을 찾아내어 없애야 합니다. (조영승과 김귀주 보며) 금일 밤에!
조영승 : 하여... 그 일을 해줄 자를 알아보았습니다.
정순왕후 : 누구입니까?
조영승 : (바깥 향해) 들어오게!
김조년 : (문 열고 들어와 방 맨 끝에 엎드리면) 김조년이라 하옵니다.
S#8. 강수항의 집 / 사화서 / 밤
그림(사도세자의 어진)을 그리고 있는 강수항과 그 옆으로 물감을 개고 있는 서징.
집중해서 색을 칠하고 있는 강수항, 서징에게 붓을 건네면, 서징은 익숙하게 붓을 바꿔 준다.
심혈을 기울여 붓질하는 강수항의 모습.
S#9. 강수항의 집 / 안방 / 밤
잠들어 있는 강수항. 문 스르르 열리며, 검은 그림자가 들어와 강수항 옆에 조용히 앉는다.
강수항, 눈을 뜨면, 검은 그림자(설청), 재빨리 강수항의 입을 막는다.
강수항, 신음소리 내고 조용해지면, 검은 그림자, 어딘가로 고개 돌리고,
S#10. 서징의 집 / 부엌 / 밤
칼이 휙! 스치고 지나가면, 서징, 털썩 쓰러진다.
설청, 피투성이 된 서징과 명의 시체를 뒤로하고 서징의 집 부엌에서 빠져나가고,
S#11. 정순왕후의 처소 / 밤
김상궁, 정순왕후 앞에 앉아있다.
김상궁 : 그 일을 알고 있는 자는 모조리 처단하였다 하옵니다.
정순왕후 : 제대로 마무리를 하였다 말이지?
김상궁 : 그러하옵니다.
S#12. 정순왕후의 처소 / 낮 - 현재
정순왕후 : 깨끗하게 처리된 줄 알았는데...
S#13. 도화서 밖 / 낮 / 과거
홍도, 화원들(장벽수, 이인문, 신한평 포함)에게 끌려 나오며,
뒷짐지고 바라보는 장벽수, 걱정스레 홍도를 보는 신한평, 홍도를 잡아주는 이인문.
홍도 : 나 하나 없어진다구 이 일이 덮어질 줄 아십니까?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장벽수 : 이 무슨 행팬가? 엉뚱한데 미련두지 말고 묘향산에 가서 호랑이 그릴 궁리나 하게.
홍도 : 스승님과 벗의 억울한 사정을 내 꼭 밝혀 내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요!
S#14. 정순왕후의 처소 / 낮
정순왕후 걱정스런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고,
정순왕후 : 김홍도.. 그 자는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상이 즉위하자 바로 불러들인 것도 수상하고,
무시로 김홍도를 불러들이는 것도 꺼림직 합니다. 만약 주상이 그자의 붓을 빌려, 몇 년 전 사라진 그 그림을
되살릴 방도를 찾는 것이라면..
조영승 : (놀라서 정순왕후 보는) 그런 망극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심려치 마세요.
정순왕후 : 막아야 합니다. 김홍도 그 자가 어진화사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김귀주 : 그렇다면 그 자를 능히 능가할 자를 찾아내어, 화사 경합에서 콧대를 납작 눌러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조영승 : 허나, 그림으로 단원을 이길 자가 과연 있겠는가?
정순왕후 : 찾으세요! 조선천지를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합니다!
김귀주 : 김조년 그 자라면, 혹?
정순왕후 : 그 자가 누굽니까?
김귀주 : 몇 년 전 그때 일을 처리했던 그 자 말입니다. 그림 보는 눈도 맵기로 정평이 나 있지요.
조영승 : 허허.. 손에 피묻히는 일이야 어찌 했다 쳐도, 그깟 장사치의 안목을 믿고 어찌 이런 큰 일을 믿고 맡기겠습니까?
아니 되옵니다.
정순왕후 : (서안치며) 외숙은 아직도 이 일의 화급을 정녕 모르시는겁니까! 당장 그 자에게 연통을 넣으세요.
내 직접 그 자를 찾을 터이니..
김귀주 : 예 마마...
조영승 : ...
정순왕후 : 일각이 급합니다.
S#15. 정조의 개인 서재 / 낮
정조, 서류들 점검 끝내고 내려 놓으면, 홍국영이 서류 치운다.
정조 : 저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홍국영 : 아직 뾰족한 움직임은 없사옵니다.
정조 : 단원이라면... 그 자라면, 어진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깥 보며, 소리) 기다리시지요. 아바마마...
S#16. 김조년의 집 / 사랑채 / 밤
방안에는 김귀주, 조영승가 앉아 있고, 김조년이 두루마리가 있는 그림걸이 옆에 앉아있다.
방 반대쪽 끝에, 발이 드리워진 안쪽에 정순왕후가 앉아 있다.
조년 : 아시다시피, 조선 최고의 화원 단원을 꺾을 자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허나, 이걸 보십시오.
두루마리를 만 끈이 툭! 풀리자, 족자가 주루루 흘러내린다.
촤르르- 펴지는 그림 속에 자리 잡은 사람. [서직수 초상]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선비의 모습을 보자 놀라는 사람들.
김조년 : (서직수 초상 옆에 앉아) 초상을 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부채로 얼굴 가리키며) 얼굴입니다. 이 그림은 단원과
또 다른 화원이 함께 얼굴과 의습을 나누어 그린 것입니다. 허면, 응당 단원이 얼굴을 그렸어야 할 터인데...
조영승 :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김조년 : 그랬다면 이 사람이 어른들을 이리 불러모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 그림에서 단원은, (부채로 몸뚱이 가리키며) 여길 그렸지요.
김귀주 : 허면, 단원보다 뛰어난 자가 있다는 말인가?
김조년 : (머리 조아리며) 예 분명 있습니다. 단원보다 뛰어난 화원이.
정순왕후 : 그 자가 누구인가?
김조년 : 이 자는 좁디좁은 조선 화단을 벗어나 청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산.관. 이명기라 하옵니다.
정순왕후 : 그 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가?
김조년 : (은근한 미소띠며) 이미... 한양으로 오고 있습니다.
정순왕후 : (서직수 초상 꼼꼼히 보며) 화산관 이명기...
S#17. 다리 위 / 낮
다리를 건너는 홍도와 윤복.
건너편에서 수려하게 장식된 흑마를 탄 이명기가 멋진 청나라 풍 옷을 입고, 긴 가죽 채찍을 들고 홍도와 윤복 쪽으로 오고 있다.
윤복 : 스승님. 무엇을 보러 가는 것입니까?
홍도 : 사람 그림을 그리려면 사람을 보러 가지. 무얼 보러 가겠느냐?
윤복 : 스승님, 스승님은 약관의 나이에 어진화사를 했었다고 하던데...
홍도 : 그래. 했었지.
윤복 : (홍도 앞으로 가며) 어땠습니까? 어진화사를 하면 정말 며칠동안 한 마디도 말을 할 수 없습니까?
하는데, 윤복 돌아서는 기세에 말이 놀라 다리 들면,
홍도가 얼른 윤복 팔목 잡아끌어 두 사람, 옆으로 피하고..
홍도 : 괜찮느냐?
윤복 : (끄덕이고)
이명기 : (홍도와 윤복 이야기하는 사이에, 동시- 얼른 말 만지며) 워워... 많이 놀랐느냐?
(말 뒷목털에 귀 대고) 그래그래. 괜찮아. 괜찮다.
홍도 : (말 탄 사람에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말을 타려거든 조심해서 몰아야 할 것 아니오?
이명기 : (말 뒷목털에 얼굴 댄 채) 잠깐 기다리거라.. 흑룡아.. (고개 들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말은 청나라 황실에서부터
내려오는 귀한 혈통인데, (하다가, 홍도 보고, 우월한 미소) 아니, 이게 누군가? 단원 아닌가?
자네는 어찌 세월이 지나도 격조라는 것이 생기지 않는가?
홍도 : (이명기 보고) 화산관? 네 녀석이 어찌 한양에?
이명기 : (빙글빙글 웃으며) 저런.. 쯧쯧... (눈치 보고 선 쬐끄만 윤복 흘끔 보고) 저 놈은 또 뭔가? 막종인가?
홍도 : 조선땅은 격이 안 맞는다더니, 왜 또 왔는가?
이명기 : 조선땅에 나랏님 용안을 그릴 자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윤복 : 아는 분이십니까?
이명기 : 그래. 아는 분이시다. 네놈은 어서 우리 흑룡이한테 사과부터 하거라.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까불락거리다니,
흑룡이가 얼마나 놀랐겠느냐? (흑룡 쓰다듬으며) 그렇지 흑룡?
윤복 : (황당한 표정으로) 예?
홍도 :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똑같애. 사람이 말을 하려면, 말에서 내려야지, 어찌 이리 예의가 없나?
이명기 : 어디 사람 같아야 말이지. 내 눈엔 어느 비렁뱅이이 화원이랑, 버르장머리 없는 막종 밖에 보이지 않는데?
윤복 : 이보시오! 우리 스승님이 누군지 알고나 하는 말이오? 이 분이 바로 그 유명한 단원 선생님이시란 말이오! 조
선 최고의 화원, 단원!
이명기 : (하하하 과장되게 웃다가) 가관이로군. 자네 막종은 눈이 동태로군? 조선 최고의 화원? 하하.
천박하기 짝이없군. 그렇지 흑룡아.
윤복 : 무엇이오? (말 앞에 서면)
이명기 : (들고 있던 채찍으로 윤복 팔 툭 치고)
윤복 : 아! (팔 잡으면)
이명기 : 무뢰배에겐 역시 말보다 매군. 난 바빠서 가보겠네. 사과는 다음에 받지. (가며)
윤복 : 뭐 저런 자가 다 있습니까?
홍도 : 성질 까칠하기로는 하늘 아래 으뜸인 놈이다.
윤복 : 대체 어떻게 아는 자입니까?
홍도 : 저 자가 바로 화산관 이명기다. 이번 경합에 나온다면.. 가장 꺾기 힘든 놈이 될 것이다.
윤복 : (말 타고 가는 뒷태 보며) 저런 자가요?
S#18.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낮
단정한 몸가짐의 깐깐하게 생긴 남자, 이명기. 장벽수 단계연(자주색 벼루) 쓸어보며 빙긋 웃는다.
장벽수 : (청국 단계연 쓰다듬으며) 고맙네, 고마워. 청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이 귀한 단계연을 쓰게 되다니.
자주색 돌은 그 중에서도 최상품 아닌가?
이명기 : (옷 털며) 알아는 보시는군요.
장벽수 : (못마땅하지만 감추며) 흠, 그래, 청국 생활은 어땠는가? 뭐, 새로운 것이 있던가?
이명기 : (찻잔 들이키고, 말 끊으며) 이번 어진화사에 나올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장벽수 : 글쎄... 자네라면 걱정할 것 없는 자들이네.
S#19. 도화서 / 화원회의실 / 낮
자비대령화원(최석), 자비대령화원 옷을 입고 하얀 종이 펼친다.
장벽수(소리) : 자비대령화원 최석,
하얀 종이에 실처럼 가늘게 붉은 선을 긋는 모습 보이며(주 : 인찰을 긋는 일),
장벽수(소리) : 백 번을 그어도 똑같은 선이 나오는 노련한 화원이네, 그러나 지나치게 틀에 박힌 그림만 그리는 것이 흠이지.
그리고,
S#20. 도화서 / 작업장 / 낮
이인문, 작업장에서 산수화 펼쳐보고 있고,
장벽수(소리) : 이인문. 주로 산수에 능한 자이나 성정이 차분하여 초상화나 의궤와 같이
정치(주 : 정확하고 치밀하다)한 그림에도 제법 쓸모가 되는 자네.
S#21. 계월옥 / 안방 / 낮
비뚤어진 갓 쓰고 기생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희달(대).
장벽수(소리) : 이희달. 넘쳐는 재물로 겨우 경합에 참여하게 된 자이니, 신경 쓸 필요 없고,
S#22. 신한평의 집 / 사화서 / 낮
사화서 안에서 수묵화 그리는 화공 두 명을 흐뭇하게 보는 신한평의 모습.
장벽수(소리) : 신한평. 선왕때부터 원자비대령화원으로 있었고, 어진화사도 세 번이나 수행했지만 돈 맛을 보고 게을러졌지.
아직도 필선이 정치한 줄 착각하고 있네, 아, 이 자가 어진화사에 나가는 것은 아니고,
사화서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윤복의 모습.
장벽수(소리) : 이 아이가 단원과 함께 경합을 하게 될 신윤복이네. 신한평의 아들로, 의궤반차도같이 격식에 맞는 그림은
흥이 없고 속화를 주로 그리는 아이니, 정갈한 필선이 나오지는 않을 걸세. 그리고...
S#23. 도화서 / 작업장 / 낮
정자세로 앉아 반차도에 들어가는 작은 사람들을 그리는 장효원의 모습.
장벽수(소리) : 우리 청죽. 어릴 때부터 엄격한 도화서 양식을 몸으로 익혀, 필선이 정치하기 이를데 없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S#24. 계곡 일각 / 낮
계곡에서 대금을 불고 있는 김홍도의 모습. 그 앞으로 막 그려진 ‘주상관매도’ 놓여 있고, 화구들 보인다.
장벽수(소리) : 단원. 이 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능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작은 그림부터 큰 그림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때 마다, 다른 사람이 그린 듯 호방하고 자유로운데다 주상전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자네가 상대하기 벅찰지도 모르네.
S#25.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낮
장벽수, 이명기 보고 있고..
장벽수 : 어떤가? 승산이 있겠는가?
이명기 : (찻잔든 손 멈칫하며, 불쾌한) 승산이요? 허허... 참으로 개구진 말씀이십니다.
장벽수 : 그래도, 단원 그 자는 만만치가 않을 텐데.
이명기 : 단원이라... (깐깐한 말투) 사람들이 단원, 단원 그 이름에 속아있는 꼴을 보면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속화나 찌끄리면 딱 맞는 수준이지요. 그런 자가 이름자를 내밀 수 있다니, 청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장벽수 : 아무튼 자네가 잘 해주게. 자네가 ‘통’을 받아, 꼭 우리 효원이를 동참화사로 하여 어진화사를 수행해야 하네. 알겠는가?
이명기 : (여유있는 미소) 저한테 고마워하시게 될겁니다. (벌떡 일어나며)
장벽수 : 그래, 내 자네만 믿네. 우리 효원이의 명운이 자네에게 달렸어.
이명기 : (뒤돌아 서서 듣다가 대답도 않고 비웃으며 나간다)....
장벽수 : ..건방진 놈 (뒷모습보다가 창밖으로 시선던지며)
공씨(소리) : 아, 그러니, 어느 기집이 마음이 동하지 않겠느냐고?
S#26. 광통교 / 낮
열 명쯤 되는 남녀 모여 앉아(남자끼리, 여자끼리) 앉아있고..
윤복과 홍도, 그들 사이에 서서 공씨 보고 있고,
가운데 공씨가 서서 부채 휘둘러가며,
공씨(소리) : (윤복과 홍도 이야기하는 위로 깔리는 공씨의 말) 안그렇소? 하여, 아씨는 끓어오르는 연정을 참지 못하였으니,
서책을 읽어도 개청이 얼굴, 수를 놓아도 개청이 얼굴, 밥숟갈을 들어도 개청이 얼굴만 떠오르는지라-.
이조좌랑, 형조판서, 온갖 벼슬을 다 지낸 집안의 여식이, 단 한번, (쓰개치마 쓰는 흉내) 요래, 응? 요래 보았던,
그- 사당패 꼭두쇠를, 차마- 잊지 못하여서 밤새 허벅지를 찌르다가 종년을 시켜 서찰을 전한지라!
사람들 : 저런!
공씨 : 화설, 개청이 짝에선 또 어떠하냐? 아씨는 서찰을 전해놓고 이제나, 저제나 애가 닳아 ‘공연한 짓을 했나’ 팩 했다가,
또 갑자기 그리워졌다가 부침개 뒤집듯 기뻤다 슬펐다 요동질을 하는데... 개청이한테 연통이 온지라!
사람들 : 그렇지!
윤복 :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홍도 : (공씨얼굴 가리키며) 사람의 얼굴에는 삼정오악(주 : 삼정-사람 얼굴의 특징이 되는 세부분, 오악-사람 얼굴의 특징이 되는
다섯 언덕-이마, 코, 광대뼈, 턱)이 있다. 삼.정. (공씨의 얼굴 천천히 삼등분 되고:CG), 오.악 (공씨 얼굴중 다섯부위가-
이마,코,광대뼈,턱- 빛으로 강조된다:CG)
윤복 : (아직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삼정... 오악.
홍도 : 사람의 얼굴을 그리려면 말이다, 사람마다 이 삼정오악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볼 수 있어야 된다.
윤복 : 삼정, 오악의 차이요?
홍도 : (사람들 가리키며) 보거라. 많이 보고, 많이 찾아내면 네 마음 속에도 저 삼정오악이 그려질 것이다.
윤복 : (사람들 보는데... 공씨가 말할 때 마다, 입 헤-- 벌리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
웃을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람, 찡그리는 사람, 코를 벌름벌름 거리는 사람, ‘우앙’ 울고 있는 꼬마의 얼굴)
공씨 : (앞, 강독 대사 끝과 이어지는 부분) 하여, 가채를 뒤집어쓰고, 쓰개치마 곱-게 착, 쓰고, 요래, 요래, 엉덩이를 휘둘러가며
약조한 대로 버드나무 아래로 가 섰다- 이거요. 헌데!!
사람들 : 어찌 되었소? 응?
공씨 : 거기까지가 권지일(=제 권)이오. 다음 이야기는 익일 미시에, 소인은 닷냥, 대인은 열냥, 미인은 두냥 가져오시오.
그럼 이 몸은 바빠서 이만..
남정네 : 네 이놈! (가로 막으며) 어딜 가느냐!
홍도 : 많이 봤냐?
윤복 : (갸우뚱하며)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홍도 : (일어서며) 가자.
윤복 : 더 보지 않고 말입니까?
홍도 : 아무래도 네 놈한테 초상이 뭔지 보여주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윤복 : 초상에 대해서.. 무얼 보여준다는 겁니까?
홍도 :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보여주마. (가면)
S#27. 도화서 / 화서 보관실 / 밤
철컥철컥 소리가 나고, 화서보관실 문이 삐걱- 열린다.
홍도 : (들어서며) 어서 오거라. 이 곳이 바로 도화서의 심장 화서 보관실이다. 처음 와 봤지?
윤복 : 예..(둘러보며)
홍도 : 따라오너라.
홍도, 앞장서서 가면, 윤복, 앞서가는 홍도가 들고 있는 등잔 일렁이는 것 보며, 겁이 덜컥 나는데...
홍도, 모퉁이 돌아서는 홍도. 홍도 등에 부딪히는 윤복.
홍도 : (등잔 주며) 들고 있거라.
윤복 : (등잔 받아들면)
홍도 : (앞으로 가, ‘병’렬 세째칸에 놓인 족자들을 뒤적이며) 사람의 얼굴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냐?
윤복 : (겁이나서 홍도 옷자락을 꼭 붙잡고) 얼굴에서... 음, 중정(주 : 눈썹에서 코 끝사이)이요.
홍도 : 무엇이 그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알려줄 수 있느...(하다가 돌아보고) 너 지금 뭐하냐?
윤복 : (화들짝 손떼며) 눈이요, 눈 아닙니까?
홍도 : (겁먹은 윤복을 보며, 픽 웃음나며) 그리고 또?
윤복 : 음.. (홍도 얼굴 보며) 북악(주: 오악중 아래 부분, 턱)? 턱 말입니다.
홍도 : (족자 하나 찾아내 끈 풀어 옆에 걸며) 그럼, 이 얼굴을 보고, 무엇이 이 사람을 말해주는지 보거라.
윤복 : ?
홍도 : (족자 풀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허연 얼굴!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윤복, 압도적으로 흰 빛을 뿜어내는 그 그림 보자 놀라는데,
홍도 : 말해 보거라. 이 그림은 무엇이 이 사람의 특징을 말해준다 할 수 있느냐?
윤복 : (얼굴 보다가, 뭐라고 하려다 말 못하고)
홍도 : 아무 말도 못 하겠지?
윤복 : (끄덕이면)
홍도 : 그것이 바로, 초상의 힘이다. 그림 속에 사람을 베껴 그리는 것이 아니야. 초상이란, 그 사람을 그대로
그림 속에 되살리는 것이다.
윤복, 윤두서 자화상 보면, 자화상 속 사람 튀어나올 듯 수염이 꿈틀거리자(CG),
윤복, 두려워 툭! 주저 앉는다.
윤복 : (숨막힌 듯 고개 돌리는) ... 무섭습니다... 스승님.
홍도 : 고개 돌리지 말고 똑바로 보거라. 그림 속 사람을 뚫어지게 볼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초상을 절대로 그릴 수 없다.
한 사람의 혼까지 화폭 속에 옮기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윤복 : (망설이는 눈으로 홍도 보면)
홍도 : 자, 어서. 이것을 피하면, 주상전하를 똑바로 보아야 하는, 어진화사는 불가하다.
다시 윤두서 초상 보면, 추상같이 쳐다보는 윤두서의 허연 얼굴이 암흑 속에 둥실 떠있다.
윤복, 침 꿀꺽 삼키고 윤두서의 얼굴을 그대로 바라보면...
그림 사라지고, 윤복 앞에 윤복과 꼭같은 자세로 무릎 꿇고 앉은 윤두서만 남는다.
십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 앉아 있는 윤두서의 얼굴을 마주보는 윤복.(CG)
윤복 : (손 뻗어 수염 만지며) 한 올 한 올, 터럭이... 마치 불꽃처럼... 모든 것이 살아있습니다! (홍도 보면)
홍도 : (벽에 기대 선 채) 그것이 바로 초상의 정신을 제대로 옮기는 경지다. 삼정이니 오악이니, 그런 것은 정신을 얻은 후에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들이다. (윤두서 초상 가리키며) 저 얼굴을 잊지 마라.
윤복 : (돌아보면)
실제 사람은 사라지고, 윤두서 초상만 걸려 있다.
홍도, 등불 들고 옆으로 걸으면, 윤두서 초상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홍도 : 가자.
윤복 : 예 (잠시서서 초상화쪽 보다가 따라간다)
S#28. 도화서 / 홍도의 방 / 낮
홍도, 방으로 들어서면...
윤복이 화선지를 수북이 쌓아놓고 앉아 얼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 : 삼정오부를 그린 그림)
홍도 : 그래? 허면, (윤복 앞에 의자 놓고 앉으며) 내 얼굴을 공부해 보거라. 삼정 오악을, 나눌 수 있겠느냐?
윤복 : (홍도 얼굴 보며) 예. (가로로 손가락 가리키며) 여기가 삼정. (얼굴을 한 군데씩 손가락질 하며) 여기가 오악.
홍도 : 그래? 그럼, (입 활짝 벌리고 웃으며) 이러면, 어떻게 되느냐? 아까랑 삼정오악이 똑같느냐?
윤복 : 아니요. 바뀌었습니다.
홍도 : 그럼, (찡그리며) 이건?
윤복 : 바뀌었습니다.
홍도 : 자, (붓 윤복에게 주며, 자기 얼굴 가리켜) 그리라우.
윤복 : 예?
홍도 : (얼굴 가리키며) 여기 그려놓고, 삼정 오악이 때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서 익히거라.
서책 속에 있는 삼정오악은 죽은 자의 삼정오악이다. 살아있는 삼정오악을 느껴보거라.
윤복 :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홍도 : 답답한 놈.. (윤복 얼굴에 ‘남악’ ‘북악’ 먹물로 글씨 쓰며) 삼-정- 오- 악. 됐다. 하하. (주 : 삼정-머리끝에서눈썹(상정),
눈썹에서 코끝(중정),코끝에서 턱끝(하정),오악-남악(이마),북악(턱끝),서악(왼쪽광대뼈),동악(오른쪽광대뼈),중악(코))
윤복 : (얼른 벼룻물에 얼굴 비춰보고, 식식거리며) 아- 이것이군요. 그럼 저도, (먹 묻혀 홍도의 얼굴에 삼정오악 그리면)
홍도 : (진지하게) 시작해 보자.
S#29. 도화서 / 홍도의 방 / 낮 / 몽타주
. 홍도의 방/ 이렇게 저렇게 찡그리는 홍도의 얼굴.
윤복, 홍도의 얼굴 수없이 받아 그리고,
. 홍도의 방 / 윤복이도 얼굴을 이리저리 찡그리고, 홍도가 그 모양 받아 그린다.
홍도, 그림 그리다가 마구 찡그린 윤복의 얼굴이 귀여워 잠시 멈칫 하는데..
윤복 : 왜 그러십니까?
홍도 : 아니다.
홍도와 윤복, 다시 그림을 그리고..
S#30. 단청소 / 조색실 앞 / 낮
영복, 조색실 보는 위로,
S#31. 단청소 / 마당 / 낮 (회상)
단청공들 사이에서 마조치와 허옥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다.
영복이 그들옆에서 아교를 저으며 듣고있다.
허옥 : 안료를 무얼 쓰는지가 그렇게 중요하냐? 다 그게 그거지.
마조치 : 모르는 소리. 어진화사같이 큰 화사는, 안료가 정말 중요한거야. 그 재료가 다 보석인것도 모르냐?
허옥 : 재료가 보석이면 뭐하냐 어차피 거의 다 독물인데?
마조치 : 보석이라도 다같은 보석인줄..아! (뒷통수 붙잡고) 누구냐! 이씨, (돌아보면 백백선생님이다) 아 선생님!
(급히 머리 숙이고)
허심 : (마조치의 뒷통수를 치며 나타나서) 재료가 보석이냐 독물이냐가 문제냐, 신시까지 일을 끝내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이놈들아!
단청공들 : 예 어르신~ (부리나케 흩어진다)
허옥 : 할아버지! 무슨 안료를 쓰느냐에 따라, 어진이 그렇게 달라진다는 말이 정말이야??
허심 : 정.말.이.야? 인석이...(인상쓰면)
허옥 : (삐죽대며) 정말이.어...요?
허심 : 그래, 그 색이 문제가 되면, 그 어진은 세초(주 : 씻어서 지움)되어 사라질수도 있지. 어떤 안료를 쓰느냐에 따라
초상의 인물이 살아나느냐 죽어 있느냐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영복 : (안가고 옆에서 진지하게 듣다가) 그게 정말입니까 백백선생님?
허심 :(영복 돌아보며) 아니 네 놈은 그걸 알아서 뭣하려구 말을 섞느냐? 어서 아교작업을 마치거라! (호통치며 들어간다)
영복 : (눈 반짝이고)
S#32. 단청소 / 조색실 앞 / 낮
영복, 조색실 문고리 잡고 있는데,
허옥 : 어? 거긴 왜 들어가?
영복 : 여쭤볼 말이 있어.
허옥 : 안돼. 할아버지는 안료를 만들 때 누가 들어오면 불같이 화를 내신단 말야!
영복 : (문고리 당기면)
허옥 : 어? 안된다니까?
S#33. 단청소 / 조색실 / 낮
허심, 막자에 안료를 빻고 있는데, 영복이 들어온다.
뒤따라 허옥도 오고.
허심 : 무슨 짓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영복 : 백백 선생님. (무릎 꿇고) 색을 가르쳐 주십시오. 최고의 안료를 만들고 싶습니다.
허심 : 너 같은 애송이가 다룰 것이 아니다. 어서 나가거라!!
영복 : 백백 선생님!
허옥 : (영복 잡아 끌며) 너 왜 그래? 어서 나와!
영복 : (허옥 뿌리치며) 백백 선생님!! 가르쳐 주십시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허심 : 나가라 하지 않느냐!!! (허옥에게) 뭐하냐? 저 놈을 어서 내쫓지 않고!!
허옥 : (영복 옷자락 끌며) 얼른 나와!!
영복 : (바위처럼 버티며) 백백 선생님!
허옥 : 나오라니까! (영복 옷자락 끌다 벌렁 넘어지면)
안료병들 흔들리며 허옥에게 쏟아지는데,
영복, 안료병이 떨어짐과 동시에 넘어져 있는 허옥을 온 몸으로 감싼다.
허옥, 놀라 영복 보면,
영복 : (급히) 괜찮으냐?
하는데, 안료병, 흔들흔들 하다가 영복 등으로 떨어지고, 등에 닿아 뚜껑 열리며 치익- 소리를 내며 옷을 태우는 안료.
영복, 소리 지르고,
허옥 : 안돼!! (등을 만지려면)
허심 : (허옥의 손 잡으며) 손대지 마라! 살을 녹이는 물(주 : 염산)이다.
진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영복의 얼굴, 바가지(흙이 담긴)를 들고 황급히 와, 영복의 등에 흙을 뿌린다.
염산이 닿은 자리, 옷이 녹아 살과 엉겨 붙어 있고,
허옥, 안쓰럽고 속상해 영복 보고...
S#34. 단청소 / 허심의 방 / 낮
영복 어깨 드러나 있고, 허옥이 영복의 어깨에 붕대 감아주고 있다.
붕대 감아주다 다친 곳 건드리자 움찔! 하는 영복.
허옥 : (속상한 마음 감추려고 더 독하게) 누가 도와 달랬다고?
영복 : (허옥의 말 무시하며) 선생님, 제발 색을 가르쳐 주십시오.
허심 : (못 이기는 척 돌아보며) 네가 다룰 것은 그렇게 위험한 것이다. 그래도 하겠느냐?
영복 : (다친 쪽 어깨 잡고) 가르쳐 주십시오.
허옥 : (영복 보고) 이렇게 되고도 그런 말이 나와? 안돼. 하지 마. 할아버지, 안돼요. 안돼.
허심 : (영복의 진지한 눈 본다)
S#35. 신한평의 집 / 윤복의 방 / 밤
윤복, 종이에 사람 얼굴 그려놓고 삼정오악을 그리는데,
영복(소리) : 윤복아!
윤복 : (돌아보면)
영복 : 어진화사 경합에 나가게 되었다며? (들어온다)
윤복 : 아직 갈길이 머오. 형님! (팔 당기며) 잠깐 앉아 보시오.
(시간경과) 영복의 얼굴 뜯어보며 손가락대고 삼정 오악을 짚으며 얼굴을 그리고 있다.
영복은 초상화에 몰두한 윤복의 얼굴 보며 짠 한데.
윤복 : (그리다 영복 보고 찡그렸다 또 그리고) 삼정 오악을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거지..? (그림 보다가 영복에게 바싹 다가앉아
얼굴보고, 좌절) 너무 어렵소..나 때문에 괜히 단원선생님까지 경합에서 떨어지면 어쩌지? 쟁쟁한 자들과 경합해야하는데..
영복 : 너무 걱정하지 마.
윤복 : (그림 그리며) 왜?
영복 : 넌 잘 할 수 있을 거다.
윤복 : 이제 겨우 화원이 되었는데, 어떻게? 나 같은 얼치기가 몇십년씩 초상만 그린 사람들과 대적한단 말이오?
영복 : 아니야. 넌 정말,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야.
윤복 : (영복 보다가) 가만히 계시오..
영복 : 왜? 무얼 하려고?
윤복 : (종이 펼치며) 그려 보겠소. 내가 제일 잘 아는 얼굴이니까.
종이 펼쳐놓고, 영복의 얼굴 뜯어보는 윤복... 마치 각인하듯, 영복의 코앞에 가 영복 보면.....
(윤두서의 초상을 본 것 처럼, 아주 가까운 거리)
영복 : (그런 윤복보며 소리) 윤복아 네가 진정 원하는 색을 만들어주마.
윤복 : (얌전히 있는 영복보며, 소리) 조금만 기다려 형...어진화사만 마치면 형을 반드시 도화서로 돌아오게 할테니..
윤복, 영복의 얼굴 보다가, 종이 보면... 종이 속에 그대로 들어 있는 영복의 얼굴. (CG)
그리고 영복의 얼굴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삼정오악 표시(CG).
윤복 : 형.. (영복 보고) 고마워. (목탄 들고, 선 긋기 시작)
S#36. 김조년의 집 / 연못가 / 밤
김조년과 이명기, 연못가 거니는데..(정향의 가야금 소리 들린다)
김조년 : 반갑네, 반가워. 그래, 청국 생활에 부족한 것은 없었는가?
이명기 : 덕분에 늘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보내주신 흑마는 정말 명마더군요.
김조년 : 바쁜줄 알면서도, 중요한 일이라 자넬 잠시 불렀네. (떠보듯이) 정녕 단원 그자를 이길수 있겠는가?
이미 화선의 경지에 오른 조선 최고의 화원 아닌가?
이명기 : (웃으며) 화선이요? 허 참. 내허외식(內虛外飾)이라.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지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입니다. 하하.
김조년 : 하지만, 그 자는 늘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씩 더 뛰어나지 않은가? 정말 괜찮겠는가?
이명기 :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그렇게 걱정되십니까? ...기실 단원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김조년 : 약점?
이명기 : 그 자가 왜 도석 인물화나 속화같이 필치가 요동치는 그림만 즐겨 그리는 줄 아십니까?
김조년 : 왜 인가?
이명기 : (은밀히) 연유는 초상화같이 정치한 그림은 잘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는 말입니다, (김조년의 귓가에 은밀히 얘기한다)
김조년 : (놀라는) 정말인가? 그게 사실인가?
이명기 : (당연하다는 듯 웃고, 가야금 소리나는 쪽 보며) 오랜만에 들을만한 가얏고 소리군요.
(소리 따라 손가락 움직이며, 농현하는 부분에서) 그렇지! 맛을 아는군.
김조년 : (이명기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는데)
S#37. 궁 안 / 낮
김홍도 안경을 꺼내끼며 줄서며 따라가고,
윤복, 장효원, 이명기, 이희달, 자비대령화원, 최석이 장벽수의 뒤를 따른다. 신한평도 보인다.
도화서 화원들 그 뒤로 따라가는,
장벽수(소리) : (이명기를 보는 홍도의 모습 위로) 주상 전하께서 즉위하시고 첫 어진화사 경합이다.
(홍도를 보는 이명기 모습위로) 경합은 하루만에 치러질 것이며, (이명기를 보는 윤복의 모습위로)
네 조 중 한조만이 ‘통’할 것이네, (윤복을 보는 효원 모습 위로) 모두들 도화서 화원으로서 최선을 다 하길 바라네.
효원 지나가면, 윤복과 홍도, 걸어가는 모습 보인다.
긴장한 듯 바닥 어딘가 보며 걷는 윤복.
홍도 : 니 놈 생각을 맞춰 볼까?
윤복 : (홍도 보면)
홍도 : (이명기 뒷모습 위로) 저 사람은 청나라에서 왔다는데, (이인문 위로) 몇십년씩 그림을 그린 최고의 화원을 당할 수 있나,
(자비대령화원 위로) 초상화만 십년을 그린 사람을 내가 당할 수 있나,
(윤복이 보는 홍도 얼굴 위로) 그리다가 떨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오만 걱정이 다 되지? 그럴 거야.
윤복 : .....예.
홍도 : 어떤 상황에서도 말이다,
윤복 : (홍도 보면)
홍도 : 옆에 백만 대군이 지나가는 전쟁터에서도, 화원이 대적할 상대는, (손가락 보이며) 하나다.
윤복 : 무엇입니까?
홍도 : (눈 앞에 네모 종이 모양 손으로 그리며) 빈 종이.
윤복 : 종이..
홍도 : 그래. 어디에 있어도, 화원은 그것만 정복하면 된다. 빈 종이를, 니 붓끝으로 정복해서, 그림으로 채우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잊어. 알겠지?
윤복 : (조금 편해진 얼굴로 홍도 보며) ....예. 스승님.
- 8 부 엔딩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