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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하나님(창 39:19-23)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와 복이 가득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는 만물과 인류의 창조와 이스라엘의 태동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믿음의 조상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하셨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승리의 삶,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름다운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역사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과 심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뜻을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입니다.
이삭은 말씀 묵상의 사람이요,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다투지 않고, 물러서는 양보의 사람입니다.
야곱은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며 힘들게 살다가, 영적인 복을 얻게 된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정든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타향살이와 요셉을 만나려고, 애굽으로 내려간 타국살이였습니다. 그의 삶은 나그네 삶이었으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요셉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했던 충성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던 가나안에서의 삶입니다.
둘째는 군대 장관 보디발 집에서의 종살이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 죄수로서의 삶입니다.
셋째는 애굽의 총리로서의 삶입니다.
창세기 37:3-4절 말씀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아멘.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가족관계가 아주 복잡했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아도, 아버지는 한 사람인데, 어머니는 네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는 십 삼명이지만, 동생 베냐민을 빼면, 어머니가 다른 이복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들이 살아계시지만, 요셉과 베냐민에게는 어머니 라헬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으면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보아도, 다른 자녀들은 그들을 낳은 어머니들이 있지만, 맨 마지막인 요셉과 베냐민에게는 라헬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눈길 한번 더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이 특별히 사랑했던 라헬의 자녀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자녀들보다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버지인 야곱은 여러 아들들보다도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를 위하여, 특별히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편애했다고 할까요? 다른 자녀들이 보았을 때, 요셉을 향한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그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한 것이나, 그들이 잘못한 것을 아버지 야곱에게 그대로 고해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오늘 형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물으면, 요셉은 있는 그대로, 다 고했기 때문에, 형들이 또 그가 고자질할까봐, 그의 앞에서 말하는 것을 불편해 했습니다. 동생이지만, 같이 말하는 것이 편안하지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했을 때, 형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꿈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7)라고 말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창 37:8)
꿈을 그대로 해석하면, 나중에, 형들보다 요셉이 더 높아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형들은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아버지 야곱은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라고 꾸짖었습니다.
그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아들의 꿈을 듣고, 아들을 꾸짖었지만,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꿈을 꾸어야 할 것입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그래도, 훗날, 뭔가 달성하고자 하는 그런 목표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바라고, 원하고, 기대하는 그런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무엇을 이루고 싶습니까?
사도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그 소망을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시 71:5)고 말했습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망의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꿈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망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오래 갑니다. 금방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소망이 끊어져 버리고, 사라져 버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같다고 해도, 어머니는 다 달랐기 때문에, 요셉을 향한 형들의 미움과 시기가 남달랐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던 형들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요셉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왜 금방 알아보았을까요? 남들과는 다르게, 채색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은 그렇게 좋은 옷을 입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인데, 형들은 요셉을 보자, 기뻐하기보다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를 죽이고자 서로 모의했습니다.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 37:19)
그때, 형들 가운데, 르우벤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형들은 요셉을 잡아, 그를 죽이고자, 그의 채색옷을 벗기고,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덩이 옆에 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
마침 그때,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갔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을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그 옷에 짐승의 피에 젖셔, 아버지 야곱에게 보냈습니다.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형들, 실제로, 돈을 받고 요셉을 팔아버린 형들, 그들은 동생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 야곱을 속였습니다. 속임수의 달인인 야곱을 아들들이 속였습니다.
여러분! 훗날, 요셉과 형들이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렇게 팔려간 동생은 아마도 형들을 원망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또 갈았을 것입니다.
“두고 보자. 반드시 이 원수를 갚아주마”
실제로, 형들과 요셉이 만났을 때, 형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동생 요셉이 그들의 생명을 뺏을까봐,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내려와 함께 살았던 아버지 야곱이 죽게 되었을 때에도, 형들은 동생 요셉이 그들에게 복수할까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소망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하나님께 원망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당한 것보다 더 많이, 형들을 심판하리라”고 해도, 형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도 않았고, 형들에게 복수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어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형님들 덕분에, 내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삶을 힘들게 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보다는 더 보살펴주고, 그의 자녀들까지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참 쉽지 않는 그런 용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소망의 사람, 그리고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에게 복수하면, 서로에게 아픔만 가중될 뿐이지만, 용서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됩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께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대답하셨습니다.
한두 번 용서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용서하기 보다는 쉽게 분노합니다.
그런데,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용서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는 것이 옳은 삶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미움은 버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갔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을 때,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사랑받는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낯선 땅, 낯선 사람들로부터 구박받는 종이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신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귀한 아들의 자리에서, 천하디 천한 종의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보디발의 시중을 듣는 것도 서툴렀습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낯선 타국에서의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요셉은 주저앉아 신세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서러워, 울지 않았습니다. 힘들어,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 않았습니다. 꾀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해야 하든, 주인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조건 열심을 다해 일했습니다.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편하게 쉴 날이 없었습니다. 잠시 앉아, 쉴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어디 제대로 쉬는 시간, 쉬는 날이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루 해 뜨기 전,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야 했습니다. 하루를 마치기 전, 주인이 잠든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졌습니다. 주인 보디발의 눈에 띄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맡겨버렸습니다.
이제는 허리 펴고 살만한데, 예기치 못했던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에게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해도,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주 멀고 먼 옛날, 종의 말을 믿겠습니까? 여주인의 말을 믿겠습니까?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하소연한다고 해도, 그의 말을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주인 말 한 마디가 법인 그런 시대였기에, 그가 하소연한들,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어쩌면, 그 길만이 살 길이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 그런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사람을 시켜, 요셉을 죽이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 그를 도와주겠습니까?
보디발의 집 안에 자유롭게 있는 것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감옥 안에 잡혀 들어가 있는 것이, 요셉으로서는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잡혀 들어간 그 감옥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북한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지 않습니까? 김정은 옆에서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던 사람이 한동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아니면, 몇 년 후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쫓겨났다가, 다시 부름을 받은 경우입니다. 사상재교육을 받고,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요셉이 갇힌 감옥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죄수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감옥이었습니다. 왕 곁에서, 왕을 보필하다가, 한 순간, 왕의 마음이 바뀌어, 왕의 눈에 나게 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그런 감옥이었습니다. 그렇다가, 왕의 마음이 바뀌면, 다시 복귀하게 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다시 제자리로 복귀되지 않았습니까?
한 마디로, 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왕을 직접 섬기는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종인 요셉, 이방인인 요셉이 그런 높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과 어떻게 감히 이야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감옥 안에서, 그들을 만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꿈을 해석해주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감옥에 들어온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옥 안에서,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의 꿈을 해석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요셉이 바로 앞에 불려 나가,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좋은 모습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좋은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좋은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바로 왕에 불려나가서, 왕의 꿈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의 꿈 해석을 듣고 있던 바로는 그 해석이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에, 그에게 총리 자리를 맡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되어질 일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들에 대한 분명한 대처방법도 알고 있었기에, 바로는 망설임이 없이, 요셉에게, 총리 자리를 맡긴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기에, 예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아멘.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이 누군가에게, 그의 집의 가정 총무의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고 한다면, 그는 실력자였을 것입니다. 그 크고 높은 주인 집의 제반 사무를 맡아 처리하려고 한다면, 그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나의 착오도 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주인의 눈에 들었다고 해도, 보통 실력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감옥의 간수장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맡겼다고 한다면, 그를 신뢰했을 뿐만 아니라, 웬만큼 실력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일년 후에, 석방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몇 년 동안, 감옥 안에, 무작정 갇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을 아무 탈 없이 잘 처리하려고 한다면, 실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간수장이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다 맡겼기 때문에, 실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생깁니다. 그래야,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은 성취될 때, 아름답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사랑받는 귀한 아들의 자리에서, 천하디 천한 종의 자리로 팔려갔지만, 실망하지 않고,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어진 일에 충성했습니다. 인정받았습니다.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감옥 안에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간수장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가롭게 놀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충성했습니다. 애굽의 넓은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앞으로 다가올 7년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거든,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때,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도,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감옥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총리의 자리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날을 아직 누리지 못했습니다. 곧, 금방, 가장 좋은 날이 와서, 가장 좋을 것을 마음껏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직 주님을 믿고 따라감으로,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 주옵소서.
아프거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혀 주옵소서.
우리의 꿈이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