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속까지 모택동과 김일성 추종자였던 정율성을 극진히 기리고자 하는 전라도 광주 강기정 시장의 행태를 두고 논란이 많다. 이 논란과 관련해 강기정이 자신의 하는 짓을 합리화하면서 들고있는 게 바로 윤이상과의 형평성이다. 김일성 추종자였던 윤이상 기념관과 기념공원이 윤의 고향 통영에 있는데, 정율성의 기념관 등이 그의 고향인 광주에 세워지는 게 무슨 문제라는 것이다. 형평성 등을 빌미로 한 이런 궤변성의 빈약한 주장을 반박할 논리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어차피 강기정 류에게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정율성의 중국공산당 당원시절의 모습)
그런 만큼 강기정이 그런 궤변으로 나온다면 해결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윤이상 기념관과 기념공원도 차제에 싹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공정할 것이니 정율성 기리는 짓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한편으로 기실로 철저한 김일성주의자였던 윤이상을 한국에서 기리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통영에 있는 ’윤이상기념관‘ 입구)
그럼에도 그렇게 된 건 결국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좌파정권 탓이었다. 강기정 류들이 정율성을 기리고자 하는 건 이런 류의 흐름과 작금의 한국내 좌파 기승의 틈새를 타 윤 대통령 정부를 엿 먹여 그 세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차제에 윤이상의 흔적도 말끔하게 없애버리면 이런 논란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닌가.
윤이상을 생각하면 떠 오르는 의외의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독일의 유명작가였던 <삶의 한 가운데(mitte des lebens)>의 루이제 린저(1911-2002)다. 루이제 린저가 해외 여류로 어떤 연고로 충실한 김일성주의자가 된 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1980년대를 통털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제일 많이 만났던 사람이 루이제 린저다.
(김일성을 만나고 있는 윤이상)
루이제 린저는 한편으로 1980년대 독일에서 음악가로 성공한 윤이상과도 친분관계를 유지해 김일성 추종의 김일성 우상화를 함께 도모한 측면이 많은데, 결국은 김일성을 추종하고 김일성 우상화에 조력한 이런 전력이 그녀의 사후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
루이제 린저는 <윤이상, 삶과 음악의 세계>라는 윤이상 전기도 썼으며, 둘 간의 대담집인 <상처입은 용>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내용 대부분이 윤이상의 음악과 철학적인 바탕에 관한 것인데, 척박한, 그리고 ’동백림사건‘으로 고난을 받은 남한 땅에서 독일로 가 명성을 쌓은 윤이상의 음악가로서의 성공 등을 이야기하면서 북한과 김일성의 혜택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는 루이제 린저)
사족삼아 루이제 린저에 관해 한 말을 보탠다면, 그녀는 서방세계에 김일성의 연인으로 알려져있었다는 것, 그리고 루이제 린저 또한 죽기까지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일성과의 이런 관계를 배경으로 루이제 린저는 독일을 비롯한 서방세계를 대상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전파자 노릇을 했다. 1980년대 그 무렵 캄보디아 국왕을 역임한 노로돔 시하누크도 김일성 추종자로서 평향을 많이 드나들었다. 그렇게 해서 루이제 린저, 시하누크, 김일성 세 명이 평양에서 함께 자주 만났던 동향도 당시 북한의 선전매체들에 의해 전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