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뫼(증산)마을과 동해 추암해변 사이의 언덕에 위치한 "이사부사자공원"은 신라시대 장군 이사부의 개척정신과 업적, 얼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한 가족형 테마공원 입니다. 주차장 진입구 광장 우측에는 증산마을 성황당을 중심으로 시원한 반달형 분수조형물과 두 마리의 용맹한 사자를 몰고 달리는 청년상이 있으며, 등성이 전망타워까지의 비탈에는 여러층의 계단이 있는데, 그 가운데로는 물이 흐르고, 그 중간 중간에 커다란 물고기들도 만들어 붙여 놓아서 이색적인데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릅니다. 야간에는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조명을 밝혀서 생동감을 더해준답니다. 주차장 왼편으로 전망타워까지 올라가는 찻길은 장애우 차량만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왼편엔 사계절썰매장이 있는데, 특히 여름에는 시원한 물썰매도 즐길수 있고, 인근 해수욕장 개장시에는 물놀이와 물썰매를 함께 즐길수 있답니다. 썰매장 위편과, 반대편 언덕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바다가 보이는 놀이터"와 "기차가 보이는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고,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어서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증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외공연장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증산해변으로 내려가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울창한 대나무숲 사이를 거닐면서 마음을 힐링 할 수 있습니다.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전망타워는 가운데 건물과 좌우로 날개를 펼친듯 보이는 3층건물로, 1층엔 여러가지 나무 사자상들이, 2층과 3층엔 이사부장군영정, 독도 실시간영상, 유려한 솜씨로 밪어진 유리공예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야외 전망대도 있고,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풍경이 아주 장관입니다. 동해 추암해변의 촛대바위도 보이고, 수로부인 설화를 토대로 지어진 해가사터 "임해정"도 보입니다. 추암해변의 낡은 민가는 거의가 헐리고 새로운 면모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이사부사자공원과 추암해변을 연결하는 도로도 한창 공사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사부사자공원에는 나무사자 전국공예대전 역대 수상작을 비롯해서 골프치는 여인사자상, 가족사랑. 허허실실, 어린 자매상 등 조각작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볼거리가 많은데, 천국의계단 야간조명은 볼 수가 없어서 서운하지만, 그렇게 성수기도 아닌데 몇 안되는 민박집 숙박료가 비싸서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이사부사자공원의 이용시간은 09시~18시(동절기는 17시까지)이며, 이용요금은 기본 5,000원, 삼척시 유료관광시설 이용자는 4,500원, 30인이상 단체는 4,000원, 경노 등은 2,500원으로 할인(국공휴일, 주말은 할인 제외) 됩니다. 주차료는 무료. 끝으로 이사부장군의 약력과 활약상을 펨플릿과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사부: 신라 내물왕 4대손인 이사부는 지증왕 6년 실직주(현재의 삼척)의 군주로 임명된 뒤 동해의 요충지 우산국(울릉도와 독도)을 신라의 영토로 복속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지증왕 13년(512년)에 실직주 오십천 하구에서 우산국을 향해 출정 하였다. 섬나라 우산국은 사방이 험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고, 우혜왕과 그의 백성들도 아주 용맹스러워서 그들과 맞서 싸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사부장군에겐 묘안이 있었으니 바로 나무로 만든 사자였다. 음력 6월, 호수처럼 잔잔한 실직의 앞바다에서 사나운 형상의 나무사자들을 배마다 싣고 출정한 신라 선단은 기세도 등등하게 우산국 앞바다에 이르렀다. 거세게 맞서는 우혜왕과 우산국 백성들을 향해 이사부장군이 소리쳤다. "우혜왕은 잘 듣거라! 너의 왕국과 백성들을 지키고싶다면 당장 우리 신라군에게 항복하고 신라의 백성이 되거라.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배에 싣고 온 이 사자들을 풀어서 너의 백성들을 모두 밟아 죽이겠다." 이사부장군의 호령과 사자의 무서운 형상을 보고 공포에 휩싸인 우혜왕은 결국 항복하게 되었고 그의 왕국을 신라에 바쳤다. 그리하여 지증왕 13년(서기 512년)부터 우산국은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고, 이날의 전투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되었다. 이후 이사부는 진흥왕 2년(541년) 에는 신라의 관직중 2번째 등급인 이찬이 되었고, 545년에는 국사편찬의 필요성을 왕에게 진언하여 신라인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토록 하였다. 진흥왕 11년(550년)에는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을 함락하고, 고구려가 백제의 금헌성을 함락하면서 이 두 나라의 전쟁을 틈타 진흥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는 이 두 곳을 점령하여 성을 증축하고 군사를 주둔시켜 금헌성을 탈환하려는 고구려 군사를 다시 격파하는 공로를 세움으로써 신라가 함경도 남부까지 영토를 확장하는데 기여하였고, 562년에는 반란을 일으킨 대가야를 멸망시켜 낙동강 하류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공로를 세웠다.이웃나라 일본이 제국주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 때, 이사부장군의 해양 개척 업적이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