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야고1,12)
오늘은 한국천주교회의 특별한 날로서, 2014년 복자품에 오르신 124위 순교 복자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기념일입니다. 지난 2014년 8월 16일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으로 선출되신 후 아시아 교회 가운데 첫 방문국으로 우리나라를 선택하시고 4박 5일간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 짧지만 여운 깊은 교황님의 방한 가운데 교황님께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서울 광화문에서 천주교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로 시복하는 시복식을 거행하셨습니다. ‘복자’란 가톨릭교회가 죽은 사람의 덕행성(德行性)을 증거하여 부르는 존칭으로, 그 경칭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이러한 존칭에는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 등이 있으며 복자 위에 올리기 위한 교회의식을 시복식(諡福式)이라고 합니다. 곧 성인으로 공경되기 그 이전 단계로서 복자품에 올리게 되며 복자품에 이어 시성식을 거쳐 성인품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 동료 순교자들은 모두 한국천주교회 초기 순교자들로서, 신해, 신유, 기해, 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 가운데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순교사실들이 새롭게 드러나고 각 지역에서 현양되던 분들이십니다. 이 분들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믿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말씀을 주시며 그들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밀알 하나로 그대로 썩어 없어질 뿐이지만 그 밀알이 죽어 씨앗이 되면 그것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이 자연의 진리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 신앙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곧,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내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오직 하느님만을 생각하고 그 분께 대한 믿음만을 가지려 노력할 때, 그 작은 나의 믿음이 온 땅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하나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뜻이 다음의 말씀 안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작은 나를 버리고 크고 넓고 깊은 하느님의 뜻에 나의 온 신뢰를 둘 수 있는 간절한 믿음.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바로 이 진리를 이야기하십니다.
이 같은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오늘 독서의 말씀 안에서도 그대로 발견됩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마카베오 하권의 말씀으로 이교인들에게 의해 부정한 음식으로 여겨지는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을 지경에 처하게 된 율법학자 엘아자르가 그들의 그 같은 위협의 상황 하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념과 믿음을 지켜내는 모습을 전합니다. 엘아자르는 자신에게 음식을 강요하며 그의 처지를 생각하여 임금의 명령이니 먹는 체라도 하라며 권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2마카 6,26-28)
아흔 살이나 되는 엘아자르가 자신의 삶의 거의 마지막 순간이라 할 수 있는 그 시기에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맞닥뜨려 보이는 그의 이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그는 나이 많은 자신이 그 위협에 굴복하여 부정한 음식을 먹는다면 그 모습이 젊은이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는 나이든 이의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에 오욕과 치욕이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의 행동 준칙으로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기준, 곧 인간의 벌을 피하기 위해 살아서나 죽어서나 피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길에 비추어 자신을 결코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피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길. 엘아자르의 이 표현은 그가 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며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준칙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우리 한국 순교 성인 가운데에서 오늘 독서의 엘아자르가 표현한 그대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성인이 계십니다. 바로 구산성지에서 현양하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이 그러합니다. 경기도 하남 구산에서 태어난 김성우 안토니오는 유방제 신부로부터 보례를 받고 신부를 모시고 평신도 회장직을 수행합니다. 유방제 신부의 뒤를 이어 모방신부가 조선 땅에 들어오자 신부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조선의 말과 풍습을 가르쳐드리며 신부를 보필합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자 공소회장직을 수행하던 김성우 안토니오 역시 사학의 괴수로 잡혀 지목되어 모진 고문 끝에 순교하게 됩니다. 고문을 당하던 중, 배교를 강요하는 재판관에서 성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
살든지 죽든지 오직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순교의 월계관으로 쓴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이 고백은 오늘 독서의 엘아자르의 말과 공명을 이루며 우리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작은 나를 버리고 크고 넓고 깊은 하느님의 뜻에 나의 온 신뢰를 둘 수 있는 간절한 믿음. 그 믿음을 이야기하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과 한 목소리로 그 성인의 후예들로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믿음을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 역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은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시편 34(33),5ㄴ)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통과하는 이들은 그 시험의 끝에 생명의 화관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겨울을 이겨낸 꽃이 활짝 피어나듯 우리의 삶 역시 시험을 통과한 끝에 결실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목숨으로 신앙을 지켜낸 우리의 신앙선조들을 기억하는 오늘, 신앙의 선조들이 보여주신 그 믿음이 모범을 우리 역시 우리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서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 우리 역시 삶의 시련을 견디어 냄으로서 우리의 삶 안에서 신앙의 화관을 얻게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야고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