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손발이 닳도록 배를 만든 대가였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상식 밖이었고 아이러니의 반복이었다. 경영악화의 책임을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가 져야 하는 논리부터 그랬다. 노동력이 싼 나라에 공장을 세워 일감을 몰아주고 자국의 조선소는 일감이 없으니 정리해고가 방법이라는 회사의 입장은 비정하다기 보다는 뻔뻔했다. 이런 입장을 기꺼이 옹호한 정부는 법 질서와 국민의 안전을 떠받들면서도 크레인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한 생명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아직 오지 않은 결말은 낯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쌍용차와 기륭전자의 기억을 끌어내고 있다.
쌍용차의 파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진압됐고 회사는 일부 조합원들의 복직을 약속했지만 결국 들어주지 않았다. 파업 조합원들은 이후 동료와 그 가족의 주검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기륭전자의 싸움은 6년을 끌었다. 복직을 얻어냈지만 오랜 동안의 처절한 싸움 끝에 남은 사람은 불과 10여명. 이긴 쪽은 없었다.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정리해고의 결말은 이 두 가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며 1,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시민은 1만 명이 넘는다. 기업가의 이윤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회에 대한 자성이 부른 행렬이었다. 한 사람의 '무모'하고, '위험'하고, '지독'한 고공농성이 왜 불가피했는지를 직접 확인하러 간 눈들이었다. 이런 현실이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님을 아는 같은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이 삶의 밑천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좌절이 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므로 희망버스엔 희망이 아니라 각자의 절망이 실렸다. 괴물처럼 버티고 선 85호 절망 크레인에 각자의 절망을 걸어두고 올 수는 없을까"
한 언론은 '40미터 크레인에 부산이 갇혔다'고 썼다. 틀렸다. 부당하고 낡은 '돈의 굴레'에 대한민국 스스로 고립됐다고 썼어야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인지 오늘로 200일이다. 84호 크레인은 시운전을 마치고 85호 크레인으로의 접근을 준비하고 있고 경찰특공대는 84호 크레인으로의 탑승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소금꽃'은 하루 하루 낙하를 꿈꾼다.
사진가들이 한진중공업 사태의 기록을 보내왔다. 이들은 이 시대 가장 약한 가장들의 뒷모습을 담았다. 기름 때에 찌들어 배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해고를 당하던 순간을 찍었다. 어린 아이들의 현재로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매수된 폭력의 살벌함과 무정한 기업가의 뻔뻔함을 기록했다.
한진의 결말은 바뀔 수 있을까? 3차 희망버스는 30일 떠난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그의 고공농성의 배경에는 정리해고에 반발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김주익 열사가 있다. 그녀는 그가 올랐던 85호 크레인을 다시 올랐다.
▲ 김진숙의 고공농성이 24일로 200일을 맞았다. 그는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다. 어떤 이들의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