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門山(운문산) 이야기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의 경주(반대로 하행선은 경주 가기전)바로
윗쪽에 있는 나들목이 건천 나들목인데, 건천 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하여 국도 20호선 청도 방향으로 진입하여 경주시 산내면
으로 가다보면 단척산이 있다. 이곳이 김유신장군이 수련하던 곳
으로 전해진다.
여길 지나서 운문댐(청도)방향으로 진행하여 운문사쪽으로 가면
운문사와 울산(석남사)방향으로 넘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울산방향으로 약간 올라가면 왼쪽이 신라의 화랑이
무예를 연마 하던 곳의 한군데로 알려져있다..
운문산에는 한때 울산항으로 침투한 공비가 은거하고 있었는데,
예비역해군 대위 출신인 "정두표"라는 분은 군에서 전역후에
사업하다 망하여 가족들과 헤어져 운문산에서 火田(화전)을 일구고
있었는데, 어느날 공비들이 정두표씨에게 찾아가서 청도시장에
나가 양식과 생필품을 구해 달라고 했단다, 아울러 신고하면
죽이겠다고 하였는데도 정두표씨는 청도경찰서로 찾아가서 자초
지종을 얘기한 후 경찰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권총 한자루를
빌리고 양식을 구해 산으로 올라간 그분은 양식을 전해주며 품
속에서 권총을 꺼내 두목을 쏴죽이고 그 또한 다른공비의 총을
맞고 죽음을 맞았다 한다. 그후 청도 경찰서에서는 軍의 출동에
앞서 7명이 수색하러 운문산으로 올랐고 6명은 공비의 저격을 받
아서 죽었다고 전하여지는데, 억수로 운이 좋았던 한 사람은 소변
을 볼려고 뒤에쳐져서 볼일을 보던중에 총성을 듣고는 그대로 넘어
져서 죽은채 가만히 있었던 덕택에 목숨은 구하였다 한다..
얼마후 군의 출동으로 운문산을 수색하였으나 더이상의 공비를
발견 하지는 못하였다고 들었다.
그후 '정두표'씨의 의로운 죽음이 알려져 청도초등학교 출신인 그는
청도초등학교 바로 앞에 유족을 위한 '장한문방구' 라는 문구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최근에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과 인접한 운문산 정상(경남
경북 경계선)에서 운문사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운문산휴양림 숙박
시설" 인근에 정두표씨의 추모비가 건립되어 그분의 높은 뜻이 기록
되어 있다..
雲門寺(운문사) 이야기
운문사는 신라고찰로 고려태조 왕건도 다녀가신 곳으로,
울산 울주 상북면의 석남사, 예산의 수덕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비구니의 수도도량이다. (예전에는 비구도 계셨지만)
그리고 제가 여러곳의 이름있는 사찰을 둘러 보았지만 절(寺)전체가
평지에 가지런히 있는 사찰은 거의 없었다..
운문사는 봄의 木蓮이 볼만하고 벚꽃도 유명하지만 가을엔 바위와
어우러진 단풍이 볼만하고 여름철 피서도 괜찮은 곳이기도 하다..
여러문화재가 있지만 500년 넘은 소나무가 장관이다.
1273년(충렬왕 3년)운문사에서 주지로 계시던 一然스님(속명 金見明
경북 경산출생)이 삼국유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운문사 (대웅보전)
아침 저녁 예불을 모시는 대웅보전에 저녁예불을 드리기 위한 스님들의
발길이 분주합니다.
대웅보전에는 삼세불인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모셨고 양쪽의
협시보살로는 4대보살인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이 봉안되어 있었습니다.
운문사 (삼층 석탑)
대웅보전 앞에 배치된 쌍탑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형식으로 통일
신라 말기인 9세기경의 화강석제. 높이 5.4m의 3층 석탑입니다.
운문사
요즈음의 사찰들은 앞을 다투어 건물자랑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천박한 물질과잉을 드러내고 있으나 운문사의 여러 당우와 요사채
들은 도량의 품위와 높은 격조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운문사 (처친 소나무)
경내로 들어서면 봄, 가을로 막걸리 열 두말을 마신다는 가지가 땅에
붙을 듯한 소나무가 보이는데 바로 그 유명한 처진 소나무입니다.
나무 밑둥의 둘레가 3.5m나 되고 수령은 500년이 넘으며,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