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현장을 촬영한 총천연색 보도사진에 우리는 쉽게 자극되면서도 또한 쉽사리 외면하거나 잊어버리지만, 흰색으로 새롭게 재현된 작품 앞에 서니 숙연해지면서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파괴된 테러·재해 현장을 흰색 모형으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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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톤도〉, Pigmentprint, 127x90cm, 2014 |
미디어는 아무렇지 않게 온갖 사건사고 기사들을 쏟아내고, 사람들은 이런 뉴스들을 가볍게 소비하면서 이내 무시해버립니다. 그렇다고 사건 자체나 이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자세를 비판하는 게 제 작품의 의도는 아닙니다. 누구를 비판하거나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접하는 나 자신, 더 나아가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며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껴보자는 의미지요.”
작업을 하면서 그는 결코 방관자의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관련 기사를 이리저리 뒤져 사진을 찾아내고 현장을 모형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는 비극을 겪은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고 한다. 그들이 계속 꿈에 나오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정신적 공황을 겪기도 했다. 그는 왜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면서 비극의 현장을 직시하려고 할까?
중앙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하인두 작가의 아들로(어머니 유민자, 누나 하태임도 서양화가다) 2001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그는 앞날이 촉망되는 작가였다. 하지만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꾸 위축되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외면해버리는 쓰레기통, 맨홀 뚜껑 같은 물건들에 감정이입을 했다. 그것들을 자그마한 모형으로 만들어 액자 안에 넣거나 전시대 위에 올려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다음 벤치나 교통표지판, 쓰레기통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작은 모형으로 만든 후 실제 공간에 놓고 사진 촬영을 했다. 축소된 모형 때문에 주변의 나지막한 담장이 높은 옹벽으로, 자그마한 화단이 우거진 숲으로 보인다. 관점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깨닫게 하는 이 작품에 그는 〈Ich sehe was, was du nicht siehst-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본다〉는 제목을 붙였다. 독일인이면 누구나 아는 스무고개 같은 놀이 제목이다. 이 작품들로 독일에서 개인전을 했다. ‘White’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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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
“독일에서 만난 아랍 친구에게 ‘너희들은 왜 비겁하게 테러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했더니,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져 사촌과 친구들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등하교나 출퇴근을 하던 형제자매와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느냐?’고 했죠. 국제사회에 하소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폭테러 같이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는 테러나 전쟁, 재난 현장을 촬영한 보도사진을 흰색 플라스틱 모형으로 재현한 후 다시 사진으로 촬영했다. 처음에는 관점에 따라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건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의미에서 흰색을 택했지만, 매일같이 생산되는 끔찍한 보도사진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잊어버리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자는 의미로 바뀌었다.
“세상의 온갖 끔찍한 사건사고는 미디어를 통해 반복 소비되면서 사람들을 무디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미디어는 뉴스를 더욱 자극적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White’ 시리즈는 파괴된 건물과 잔해 등 사건사고로 폐허가 된 장면을 다루지만 흰색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요소를 제거합니다.”
우리 내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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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 sehe was, was du nicht siehst〉, Pigment print _ facemount, 120x72cm, 2008 |
그는 2014년 작품부터 본격적으로 인물을 등장시켰다. ‘소년’ ‘소녀’ ‘피에타’란 제목이 붙은 하얀 조각상은 언뜻 그리스-로마의 고전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년은 곡괭이를 들고 있고, 소녀는 커다란 가방을 둘러멘 채 뭔가를 줍고 있다. 성모자상과 같은 모습의 어머니와 아들은 기아에 허덕인 듯 깡말랐다. 아크릴판 표면을 레이저로 얕게 깎아 만든 ‘얼굴’ 연작에서 인물들은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사진작품에서 인물을 배제했다면, 조각은 인물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구호단체의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 사진을 조각으로 만든 작품으로, 구호단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았습니다. 구호단체는 기부를 촉진하기 위해 최대한 슬픔과 연민을 자극하는 사진을 연출하죠. 하지만 굶주림 혹은 전쟁으로 생존의 위기에 놓인 사진 속 인물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일 뿐, 결코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사진이 구호단체에 의해 전 세계에 퍼져나가는지도 모를 거예요. 약간의 기부금으로 값싼 면죄부를 받으려는 우리들이 정말 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진정성을 돌아보고 싶었죠.”
철두철미 자성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는 우리 내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품도 내놓고 있다. 〈Playing war games〉에서는 흰 A4용지로 건물이나 트럭 등을 모형으로 만든 후 동료 작가들로 하여금 비비탄총으로 난사하게 하고, 이 장면을 영상 촬영했다. 비비탄을 맞은 종이 건물은 퍽퍽 파열음을 내며 찢어지면서 폭력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유튜브에 올라온 실제 전쟁 동영상을 보니, 사막에서 도망치는 탈레반 요원을 정조준해서 쓰러뜨리면서 박수 치고 좋아하더라고요. 익스트림 스포츠나 게임처럼 전쟁을 즐기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저도 한때 슈팅게임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이런 폭력성, 파괴 본능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그는 자신 역시 타인의 비극을 이용해 이름을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 또한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런 작업을 계속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작업은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거지요. 저도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에 ‘함께 고민해보자’고 이야기를 거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세로 자성(自省)을 거듭하는 작가와 함께 우리도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야 할 것 같다. 오는 9월 8일부터 한 달간 서울 리나갤러리에서 하태범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