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0년도 훨씬 넘은 자유당시절 당시 민주당 박순천여사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자유당 국회의원 후보의 비방에
‘암탉이 울면 알이라도 하나씩 낳지만 수탉이 시도때도 없이 울면 모가지 비틀어져 죽는다.’라는 말을 하였다.
또 유신시절에 당시 민주투사였던 김영삼 전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아무리 억압하여도
‘민주화는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라는 뜻이였다.
산이름에 대한 필자의 뜬금없는 단상(斷想)이다.
산이름이 계명산(닭鷄,울鳴)이니 닭이 울면 날이 새므로 여명(黎明)을 뜻하는 이름이고,
아담한 육산인 남산은 봉황(鳳凰)이 살았다고 해서 ‘금봉산(金鳳山)’으로도 부른다.
계명산과 남산(금봉산) 사이에 있는 고개는 마즈막재(마지막재).
옛날 남산 아래에 사형수들의 처형장이 있었다.
단양, 청풍 등지의 죄수들이 사형장으로 끌려올 때 이 고개는 고향쪽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고, 또 사형장이 가까워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마즈막재에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있다.
1253년 방호별감 김윤후 장군의 지휘 아래 관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3개월 동안 몽고군을 막아 싸웠고,이 승전을 기리기 위해서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전날부터 일기예보는 중부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린다.
특히 중부지방인 충청도 지역에 눈이 많이 온다고 하니 12월 들어 첫 눈산행이 예감되었다.
북으로 내달리는 차창으로 눈발이 휘날린다.
계명지맥 (鷄鳴枝脈)은 백두대간의 마역봉(마패봉) 동쪽 1.2km지점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지릅재-북바위산(779m)-망대봉(730m)-대미산(680.8m)-
발치-남산(636.1m)-마지막재-계명산(775m)을 지나 달천이 남한강에 합수되는 충주시 탄금대교 앞에서 부용지맥을 마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36.4km의
산줄기로 달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충주교회(충북 충주시 용산동 1769번지,남산1길 28)를 입력하여 검은 승용차가 나오는 남산1길 입구('남산등산로'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멈춘다.
대형버스가 올라가기에는 도로가 너무 협소하다.
남산1길 입구에는 '순복음 행복한 교회'가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곧장 올라가면 충주교회가 바라 보인다.
'남산 빌리지'도 지나고...
산아래까지 쭈욱 올라와서...
공중화장실이 있는 실질적인 들머리를 만난다.
안내도를 일별하고,화장도 하고...
20여 분 만에 깔딱고개 시비가 있는 깔딱고개에 다다른다.
깔딱고개의 오름짓은 나무계단을 밟으면서 숨을 깔딱거려야만...
고갯마루에 올라설 수 있다.
고갯마루의 이정표
엊그제 내린 눈으로 등로가 온통 하얗게 덮혀있다.
서산대사는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가지 마라,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윽고 닿은 전망대에선 한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남쪽 방향이니 월악산이 어림될 듯하였지만 가늠할 수 없고...
돌아본 일행들의 모습에서...
활기를 느낀다.
충주산성에 닿았다.
정상은 마주보이는 지척 고스락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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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정상석이 버티고 선 정상에서 기념 촬영
오석 정상석에도 하얗게 눈이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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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귀퉁이에서 대충 요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갈 길을 재촉하며 성곽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눈 덮힌 충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잘 생긴 소나무를 만나면 좌측 성 외곽으로 나간다.
일행 두 사람이 늦은 식사로 합류하지 못했다.
몇 번을 부르며 기다리다 합류하곤 모처럼 충주호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충주호 조망은 꼴랑 이게 전부.
첫번째 임도를 크로스 하고,두 번째 임도에서도 크로스 하여 살짝 오른다.
두 번째 임도 한켠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가흥창 안내판이 서있다.
가흥창(可興倉)은 충주시 가흥면에 있는 조창으로 영남지역 세곡미를 경창으로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던 창고로 고려시대에는 덕흥창, 조선초기에는 경원창으로 불렸다고 한다.
세번째 임도 역시 시설물의 좌측 휀스를 타고 가다 네번째 임도에선 아예 임도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계명산의 모습.
철탑이 있는 이정표에선 등산로입구쪽(임도)이 아니고,철탑 좌측의 능선마루를 따른다.
이정표 좌측 도로위에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보인다. 저곳으로 계명산 산길이 이어진다.
531번 도로와 마즈막재의 넓은 공간. 도로변의 마즈막재 표석에서 대몽전승기념탑으로 오르면 계명산 가는 길.
마즈막재 표석뒤 철탑으로 우리가 내려온 길.
그리고 마즈막재 표석에서 바라보는 대몽전승기념탑 오르는 길.
기념탑 안내문
1253이란 숫자는 전승기념 연도. (기념탑 뒤로 계명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보인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부분을 제패한 최강의 몽골군마저 벌벌 떨었던 고려의 장군이 있었으니 바로 용인지역의 승려였던 김윤후 장군이다.
40여 년 동안 계속된 고려와 몽골의 싸움에서 김윤후는 2번이나 몽골군을 패퇴시켰다.
그는 몽골의 2차 침입 때인 1232년(고종 19년) 당시 침입 총사령관이자 몽골군의 중심인물인 살리타 장군을 화살로 쏴 사살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두 번째 승리는 1252년 몽골이 고려 정벌을 끝내겠다는 각오로 전략적 요충지인 충주로 들어왔을 때로 끝까지 항전하는 김윤후와 몽골군의 싸움은 70여 일을
넘겼다.
그 사이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고 투항을 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김윤후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노획한 소와 말을 모두 나눠주고 항쟁의지를 고취시켰다.
이는 신분제 사회였던 고려시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로 결국 몽골군은 충주에서 패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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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
가파른 계명산길을 오르노라니 아이젠엔 젖은 낙엽이 켜켜이 박히고,자꾸만 지구는 만류인력을 시험하고 있다.
중력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건 뉴턴의 사과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하라.ㅋㅋ
위의 이정표가 있는 이 지점이 전망대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위는 온통 백색천국.
싸락눈이 흩뿌리는 산정에서 유달리 포근한 눈산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호사일 텐데 주위 조망까지도 욕심을 내다니...
누군가 "생각이 많으면 바다로 가고,버릴 게 많으면 산으로 가라."라고 했다지 않은가?
그저 있는 그대로를 즐기면 될 일을... ㅉㅉ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올라선 이곳이 정상이렸다 하였지만...
여기가 아니고...
더 진행하며...
첫눈을 소복이 덮어 쓰고있는 산길을 따라 고스락에 올라서지만...
이곳도 정상이 아니넹.
두 번을 속고 난 뒤에야 계명산 정수리에 올라 설 수가 있었다.
남산과 같이 신,구 정상석이 모서리로 마주보고 있는 정상.
오늘은 충청도의 표준석인 오석 앞에서 인증샷을 서두른다. 10여 년 전엔...
요게서 필름카메라로 요롷게 찍었넹.
몇몇 일행들이 정상에서 머물더니 다 내려가고 없다.
정상의 잘 생긴 소나무 한그루를 잡은 후 하산을 서두른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하종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우리는 범골2.0km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하종갈림길에서의 또다른 이정표
바위를 타고 넘으며 산길을 가노라면 이런 분재같은 소나무를 여럿 볼 수 있다.
어느 정원사가 계명산에다 이런 분재를 가꾸어 놓았나? 한참이나 눈길을 머물게 한다.
그리곤 다시 돌아본 계명산.
또다시 만나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분재
쉼터를 지나...
개활지에 내려서면...
산행은 종료된다.
임도 입구에서의 안내도
이제 마을을 바라보며 사과나무 과수원길을 따라간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등산로 입구 푯말을 만나고,더 아래로 내려서면...
'충주호좌안공원휴게소'가 나온다.
궂은 날씨에 휴게소 공원엔 인적이 없다.
급하게 먹는 콩나물 국밥과 막걸리 두 잔은 무탈산행의 자축(自祝)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는 내가 내려온 山을 올려다 본다.
아직도 그곳엔 山이 있었다.
"길과 풍경은 서로 배신되고 있다.
길의 횡포,풍경의 반란이 자행되는가 하면 인간의 길과 시대의 풍경이 서로 야합하여 타락한 통속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도인(道人)은 인간의 길을 제대로 가고자 하는 사람일 수가 있었다.
행인(行人)은 목적지의 도착에만 골몰하여 풍경이 모반을 일으키든 말든 상관을 않는다.
그들에게 길은 노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태순 저 '나의 국토 나의 산하'에서...>
첫댓글 같은 코스로 다녀온길 복습하듯이 한번더 보며 함께한 산행길 즐거웠습니다.
대단한 열정이십니다.밀양에서 동참하신 열의도 그러하지만 산길을 동네한바퀴하듯 성큼성큼 걸으시는 모습 또한 부럽습니다.
함께할 산행이 또 언제일진 모르지만 그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계명산 갈려고 했다가 눈 소식에 질려서 그 전날 빡신 산행도 있고해서
적설 산행을 피하여 전라도 아무 미답산를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죄송 하옵고 다음 기회에 남산 계명산 갈 기회가 생기면 산마루 대장님의
확실한 산행기를 참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첫 적설산행 축하 하옵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든지 기회(미답의 산)가 되면 천성산님은 산에서 뵈올 수 있겠지요.
하도 많이 좇아다니신 분이라 그 기회는 언제가 될지 잘 모르지만 이래저래 엮어서 맞추어 주세요.
언제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산을 대하는 모습을 늘 본받습니다.천성산님의 사람좋아보이는 담백한 미소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