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족과 신라
동이족인 묘족은 신라의 선조이다.
한나족(흉노족) 중 일부, 즉 치우천왕은 황제와 싸워
이겨,
남쪽으로 내려와 변한을 확대해 청구국(혹은 구려)을 세우고, 이들이
묘족이 된다.
(배달국 신시의 신한, 마한은 그대로
있다)
이 묘족은 후에 동쪽으로 이동해 신라가 되고,
일부는 서쪽으로 가서 진시황의 진나라를 세운다.
일부는 남쪽으로 가서 태국 등 동남 아시아의 왕족이
되고,
일부는 티벳까지 가고,
일부는 더 가서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되어, 올림푸스 산의 신화를
만든다.
아래 글은 이에 관한 일부 사료이다
우리의 사명은 아직 중국에 남은 묘족들의 후예를 찾아,(性氏로
찾아야)
이들이 우리 한조선 민족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검자-
출처:http://blog.daum.net/najaegun/3281
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
진시황때 서복(徐福)이라는 방사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 것처럼 당시 한종은 한국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때 데리고 간 사람들이 라(羅)씨족과 로(盧)씨 씨족이다. 라국(羅國)과 로국(盧國)은 현재 후베이성 샹판 근처에 있었는데 기원전 690년 초나라에 정복되어 각각 라(羅)씨와 로(盧)씨성을 하사받고 남쪽으로 강제 이주당해 오늘날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와 후난성 펑황(鳳凰)현 일대에서 속국으로 지냈다고 한다. 양 교수는 이런 내용을 좌전(左傳) 등 고문헌에서 찾아냈다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진시황 말기 한종이라는 방사가 이들 라국과 노국 사람 3천여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갔으며 이들이 한국에 정착해서 각각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을 세웠고 진한이 신라(新羅.새로운 라국)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의 초기 국가명칭이 `사로국'인 것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이 부분 논증과정에서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한국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인용하고 있다.
한국(韓國)이라는 명칭도 이런데서 연유됐다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특히 신라가 일찍부터 한자를 사용한 것도 진나라 말기 중국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의 라(羅)씨와 로(盧)씨 본가는 후베이성 샹판 지역이라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일부에서 한국의 로씨의 본이 산둥(山東)성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산둥에 세운 나라(盧子國)를 세운 사람들은 한반도로 건너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런 가설로 인해 신라문화의 원류는 초나라 문화 특히 라(羅)와 로(盧)씨 문화이고, 그 결과 현재 한국의 경상북도 북부나 강원도 일대에 초나라 지명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양 교수의 결론이다.
출처:lwt@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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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루(중국어 간체자: 曹璐, 병음: Cáo Lù, 1987년 8월 30일 ~ )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가수로 과거 걸 그룹 피에스타의 구성원이었다.
후난성 장가계 출신으로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먀오족(묘족)이며, 2004년 중국에서 솔로로 데뷔하여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10대 신인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1]
중국에서는 장나라와 같은 기획사에서 활동했으며,[2] 장나라가 대한민국에서 중문 에디션 음반인 《비상》을 발매할 당시 홍보 활동을 도우면서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었다.[3]
학력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008학번)[4]
TV 방송[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