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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422금] 셧다운제, 첫발은 뗀 셈이지만
청소년의 온라인게임을 규제하는 셧다운제를 담은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의결만 남겨 놓았다. 이르면 10월부터는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시간(자정~오전 6시) 온라인게임 접속을 차단한다. 청소년들의 지나친 게임 몰입과 중독을 막기 위한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게임업체와 문화관광부의 산업논리에 밀려 법안 곳곳에 구멍이 많아 실효성이 걱정스럽다. 연령을 여성가족부가 주장한 만 19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낮춘 데다, 인터넷을 통한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으로 대상을 한정했고 그나마 모바일 게임의 경우 적용을 2년 유예했다. 학부모들은 청소년들의 인터넷 이용실태를 감안하면 시간대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정안전부의 지난해 인터넷중독 실태조사를 보면 이런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청소년(만9~19세)의 인터넷 중독률은 12.4%(87만7,000명)로, 성인의 2배가 넘는다. 셧다운 대상에서 제외된 만 16~19세의 고교생 중독률 역시 11.4%로 평균과 비슷하다. 23시 이후 인터넷 이용도 만9~12세는 2.1%, 만13~15세는 6.4%에 불과하다. 반면 19시~22시는 40%가 넘는다.
법제처는 지난달 논란이 된 모바일게임에 대해 "셧다운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당연한 결론이다. 셧다운제는 특정 하드웨어(PC)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온라인게임)를 규제하려는 것인데도 2년 동안 70만이 넘는 스마트폰 이용 청소년에게는'특혜'를 주는 꼴이 돼버렸다. 심야에 게임을 하려는 청소년들이 모바일 기기로 몰릴 것은 뻔하다.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건강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생산성 손실까지 합쳐 연간 1조7,450억 원으로 추계되는 게임중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만큼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만 따질 일이 아니다. 심각해지고 있는 청소년 게임중독을 셧다운제만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민등록 도용 방지, 유해차단프로그램 설치, 공동 거주공간에 PC설치, 모바일 기기 사용제한 등 사회와 가정에서의 꾸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422금] 사법개혁, 판검사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라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엊그제 전체회의를 열어, 판검사 퇴직자의 전관예우 제한과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 6개월 이상 실무수습 의무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이달 중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특별수사청 설치와 대법관 증원 문제 등은 6월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모처럼 국회가 주도적으로 사법개혁안을 논의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핵심적 내용에 대해 합의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미루기로 함에 따라 추진 동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특히 검찰과 법원이 모두 나서 의원들을 상대로 거센 로비를 벌여온 터여서 2개월 뒤 과연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안 자체에 강력 반발하면서 대안조차 국회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 사개특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중수부 폐지안에 찬성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검찰은 스스로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중수부가 폐지되면 그나마 검찰이 해온 권력형 비리 등 ‘거악’을 척결하는 수사가 위축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존치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갖추지 못한 검찰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는 박연차 사건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 들어 논란이 돼온 여러 사건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법치’를 앞세우게 되면서 검찰의 힘이 엄청나게 세졌다. 제도적으로도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공소권까지 모두 갖는 검찰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지금 검찰이 모든 게 다원화되는 시대에 예외를 인정받을 만큼 도덕적이거나 정의롭지도 않다.
이제 검찰도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됐다. 감당하지도 못할 권한을 양손에 쥐고 욕을 먹느니 이번 기회에 조직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권한을 내려놓을 생각을 해야 한다. 6월 국회에선 특별수사청이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든 기존 검찰에서 독립된 별도의 기구가 판검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대법관 증원 여부도 이번에 마무리돼야 한다. 법원은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면서 상고심사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법관 증원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사건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나, ‘3심제’에 익숙한 국민들의 박탈감을 해소할 설득력 있는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
어렵게 만들어진 사법개혁의 기회를 살려낼 책임은 여야 의원들에게 있다. 당사자인 법원과 검찰보다 국민의 시각에서 지혜를 발휘해주기를 여야 지도부와 사개특위 위원들에게 당부한다.
[조선일보 사설-20110422금] 그 소동 피우고 휘발유 값 내린 곳은 100곳 중 1곳
소비자시민모임이 전국 8239개 주유소(SK계열 제외)를 조사한 결과 지난 6일 이후 18일까지 휘발유 값을 L당 100원 다 내린 주유소는 91곳으로 1.1%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14일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 값이 묘하다"고 발언한 이후 정부는 100일 가까이 휘발유 값 인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는 이렇게 허망한 걸로 나타났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관료들이 나서 휘발유 값을 강제 인하하려 했을 때부터 "행정력을 동원한 밀어붙이기는 시대를 잘못 읽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금방 값을 내릴 듯이 태스크포스팀을 발족했고,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지식경제부가 총출동해 정유회사들을 압박했다. 정유회사들이 반발하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내가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직접 원가(原價)를 계산해보겠다"고까지 했다. 그러고도 값 인하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찾지 못하자 관료들은 '눈 딱 감고 정부 체면을 살려달라'고 정유업계에 매달리기에 이르렀고, 지난 3일 SK를 시작으로 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가 L당 100원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도 값을 내린 곳은 1.1%에 불과하다니 '혹시 더 싼 곳이 있을까' 하며 주유소를 옮겨다녔던 운전자들만 헛고생시킨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직영점들조차 값을 내리지 않은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 말을 꺼냈던 대통령과 회계사 자격증까지 꺼내 들었던 장관의 체면만 구길 대로 구긴 셈이다. 덩달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까지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장관·관료부터 소비자들까지 모두 패자(敗者)가 된 반면, 4대 정유회사들은 올 1분기에도 80~314%까지 순익을 늘려 회사당 3000억 내지 1조원까지 순이익을 냈다고 한다. 이들은 휘발유 값 논쟁이 한창이던 2월에도 정부와 소비자를 비웃듯 임직원들에게 300~600%씩 성과급을 주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가 무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휘발유 값을 내려 서민층의 고통을 덜어 주겠다고 작정했다면 공연히 힘에 부친 우격다짐을 벌일 게 아니라 정유사들의 이익 구조와 유류세 등을 면밀하게 종합 검토해야 한다. 그러고서 정부도 양보할 것을 양보하면서 정유사들의 협조를 부탁하는 게 백번 나을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10422금] 뉴타운 특혜법 추진하는 ‘타운돌이’ 의원들
애물단지로 전락한 뉴타운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확대하거나 용적률 등의 특혜를 주는 법안이 잇달아 의원입법으로 발의되고 있다. 여야 의원이 따로 없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걸어 재미를 본 이른바 ‘타운돌이’들이 내년 총선에서 거꾸로 뉴타운으로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들은 한결같이 뉴타운 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산 지원이나 특혜를 통해서라도 사업추진 속도를 높이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선심성 입법’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들 뉴타운 특혜법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한 나머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은 그제 현재 200~250%인 뉴타운 용적률을 500%까지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조합운영비 등 일부 경비를 50% 이내에서 보조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지난달에는 차명진 의원이 용적률을 추가로 높이면 이에 따른 임대주택건립 의무비율을 낮춰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뉴타운 기반시설 설치비의 10~50%를 국가가 지원토록 돼 있는 것을 30~50%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하는가 하면, 김상의 의원도 국가와 자치단체의 지원을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용적률 상한선 2배 상향 조정은 도시 난개발을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가 많다. 뉴타운의 사업성을 높이면 빨리 추진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용적률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그 폭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뉴타운이 아닌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려는지 묻고 싶다. 정부 예산 지원을 크게 확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뉴타운 사업의 불씨만 꺼지지 않게 살려 뉴타운 공약이 차기 총선에서 역풍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원들의 후안무치가 훤히 드러난다.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주거불안 확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해법은 찾아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 불패신화가 살아 있던 시절에 구상된 뉴타운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특혜까지 줘가면서 뉴타운으로 개발할 것이 아니라, 여론을 수렴해 세입자를 포함한 지역주민들의 주거 안정을 꾀하는 쪽으로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10422금] 농협 무사안일 척결에 명운 걸어라
농협 전산망이 마비돼 금융 업무가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지 열흘이 됐다. 그런데도 복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물론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원인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전산망에 외부 침입 흔적이 있다면서 해킹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침입 경로와 범인은 결국 밝혀질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벌어진 원인에 농협이 책임질 부분은 무엇인지, 그 책임은 누가 어떤 형태로 져야 하는지가 남은 문제이다.
이번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농협이 평소 전산망을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해 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규정에는 석달에 한번씩 전산망 계정 비밀번호를 바꾸도록 돼 있지만 농협은 이를 무시하고 길게는 6년 9개월 동안 그대로 방치했다가 금감원 검사에서 걸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산망 내 비밀번호 수백 가지를 ‘1’ 또는 ‘0000’처럼 누구나 유추할 만한 숫자로 사용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농협 직원조차도, 자기 개인 통장에는 비밀번호가 행여 새 나갈까 우려해 이같은 숫자를 쓰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2000만명의 고객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무성의하게 관리해 왔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신뢰성 또한 땅에 떨어졌다. 사태 발생 후 농협은 진상을 밝혀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보다 사실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했다. 전산망 복구 시점을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모두 식언(食言)으로 끝나는 바람에 고객들이 더욱 골탕을 먹었다. 연체 거래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 또한 불발탄이 됐다. 하기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스스로 “비상임이어서 책임질 일이 없다.”고 말하는 조직에 무슨 믿음이 가겠는가.
올해 초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농협은 지점 1150곳과 고객 2000만명을 보유한 초대형 금융기관으로 거듭났다. 그런데도 농민을 상대로 대출해 주면서 쉽게 돈을 벌어 끼리끼리 직원들 배만 채우던 구태를 아직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농협은 조직 내 무사안일 척결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지금 같은 풍토를 스스로 일신하지 못한다면 부득이 외부에서 메스를 들이밀 수밖에 없다. 농협은, 농협 직원들만을 위하라고 만든 조직이 아님을 마음 깊이 새기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422금] 국민연금은 정부 쌈짓돈도 투기자금도 아니다
* 연금규모 이상 비대가 금융시장 왜곡, 스웨덴식 민간지정 운용 등 개혁 시급
국민연금이 고위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연금 규모의 비대화에 따른 필연적 수순이라고 보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어 마냥 환영할 수는 없다. 최근 정부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신성장동력 투자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결과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절차가 적법하고 고의 · 중대과실이 없으면 면책해주는 유인책도 발표되었다. 국민연금은 또 2015년까지 해외투자를 70조원 늘려 100조원으로 확대하고,소형 빌딩 등 실물투자에도 30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는 작년 말 현재 324조원으로 일본 노르웨이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4위다. 2015년 500조원,2040년엔 2400조원으로 불어나 1위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또 중기 목표수익률을 연 6.7%로 잡은 만큼 채권 투자만으로는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파생상품,헤지펀드와 원유 금 같은 상품에까지 투자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다. 문제는 투자위험이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이 노후대비를 위해 월급의 9%를 꼬박꼬박 떼어 적립한 강제저축이다. 정부가 돈을 넣은 정부기금이 결코 아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쌈짓돈쯤으로 여겨 정책 목적에 끌어다 쓰려는 시도는 노후자금의 필수적 조건인 안정성을 정면에서 해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선정한 신성장동력이 과연 위험없이 고수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손실을 면책한다는 것도 정부 스스로 리스크가 크다고 보는 증거다. 국민연금은 적립 규모가 커질수록 더 철저한 안전장치를 갖춰야 마땅하다. 하물며 감사 면제 등은 전혀 논리가 맞지 않다. 부동산 등 위험자산 투자 확대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연금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3년간 평균 수익률이 대부분 마이너스였다. 주식과 부동산 등에서 깨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2년 연속 10%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지만 2008년 금융위기 충격으로 손실이 날 뻔했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유일한 노후대비책인 국민이 절대다수다. 이들의 노후를 위험자산에 걸게 되는 것은 부도덕하다. 차제에 국민연금 적립 · 운용체계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비대해질수록 민간 금융시장의 풀은 줄어든다. 국내 금융시장 낙후성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
차라리 스웨덴처럼 연금을 공공과 민간으로 분리해 적립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스웨덴은 1990년대 연금개혁을 통해 18.5%인 연금보험료 중 2.5%포인트(연금보험료의 13.5%)를 연금 내 개인위탁계정으로 분리해 국민 각자가 운용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위탁계정은 뮤추얼펀드 등에 투자돼 금융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국민연금의 커진 덩치가 개발정책이나 위험자산에 맘껏 투자해도 좋다는 허가증은 결코 아니다. 정부와 연금 측의 최근 의사결정은 너무도 위험하다. 경제규모에 비해 국민연금이 이상비대해지고 있다. 연금 운용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110422금] 공기업 물갈이 인사 또 `제식구 챙기기` 안돼
현 정부 출범 초기에 공공기관장들이 대거 교체됐기 때문에 상당수 기관장들이 조만간 새로 선임돼야 할 상황이다. 오는 5월부터 12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장만 해도 130여 명에 이른다. 조환익 KOTRA 사장과 유창무 무역보험공사 사장이 임기 몇 개월을 남겨두고 사의를 표명한 것은 기관장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인사는 사실상 현 정부의 마지막 공공기관장 인사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전직 관료, 민간인들 사이에 기관장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민간인 출신이 사장인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전력과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대규모 에너지 공기업 사장 자리에 현 정권 창출에 도움을 주었거나 정치권 실세와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쉽게 해볼 수 있다.
이런 논공행상식 인사로 전문 분야와는 무관한 사람을 앉히면 절대 안 되겠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가 가장 잘못했다고 지적되는 사항 중 하나가 인사 문제다. 이번에 또다시 공기업 인사를 엉망으로 한다면 국민이 느끼는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며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러자면 청와대나 정치권이 사장후보 선임 절차에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곤란하다.
공명정대한 인사를 위해서는 사장추천위원회부터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공기업 사장이 될 만한 리더십과 식견, 전문성, 미래 비전 제시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인물을 뽑아야 한다. 지금까지 청와대나 정치권이 미리 사장 후보를 낙점해놓고 위원회가 짜맞추기식으로 인물을 평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차라리 아예 임명제로 직행해버리는 게 낫다.
공기업 사장은 국민을 대신해 공기업을 경영하는 대리인이다. 공기업 전체로 445조원이나 되는 자산을 잘 관리하고 270조원을 넘는 부채가 늘어나지 않게 잘 관리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인물이 사장으로 일해야 한다. 이번 인사가 공기업 사장 선임의 관행을 확 바꿨다고 평가받을 만큼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송평인(논설위원)-20110422금] 도산서원과 KAIST기사
조선시대 퇴계 이황(退溪 李滉) 하면 서원(書院)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사립학교인 서당에 국가 보조를 끌어와 서원으로 발전시킨 교육 개혁가였다. 경북 풍기(현 영주)의 백운동서당을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으로 격상시키는 데 공헌한 이가 바로 퇴계다.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예안(현 안동)에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을 지었다. 도산서당은 퇴계 사후 나라의 지원을 받아 도산서원이 됐다.
성균관이 국립대라면 서원은 국가 보조의 사립대다. 퇴계는 국립학교는 나라의 법령에 얽매여 서원만큼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봤다. 그 자신 젊은 시절 성균관에 공부하러 올라갔다가 실망이 커 곧 낙향했다. 서원은 교과목과 학칙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원 진흥 운동이었다.
오늘날 KAIST는 옛 성균관처럼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국립대다. 전액 장학금으로 우수한 학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강점이다. 문제는 입학 이후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교수 정년 심사 강화, 학점과 장학금의 연계 등 ‘서남표 총장식 개혁’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퇴계와 서 총장은 출발점은 달랐지만 관학(官學)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도산서원이나 KAIST나 모두 한 시대의 최고 명문학교다. 평가와 그에 따른 상벌 없이는 경쟁력도 없다는 것은 고금(古今)의 진리다. 서원에도 성적표가 있고 성적이 나빠 퇴출당하는 학생이 있었다. 과목마다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하면 순(純)이라는 평가를 얻었고 불합격하면 불(不)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한번 불합격은 일불(一不), 두 번 불합격은 이불(二不)이었다. 보통 서원에서는 팔불(八不), 명문 서원에서는 오불(五不)이면 퇴출시켰다.
올해 KAIST에서 4명의 학생이 자살했고 그중 1명은 학점 미달로 인한 장학금 삭감에 고민했던 경우다. 경쟁력 제고는 멈출 수 없다. 다만 경쟁의 강화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배려와 함께 가야 한다. KAIST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주로 하는 학교지만 어릴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경쟁에만 내몰려온 학생들이 많은 만큼 인성(人性)교육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옛 도산서원은 수신(修身)을 주로 하는 학교였다. 그제 마침 ‘신(新)도산서원’이라고 할 만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옛 도산서원 뒷산 너머 퇴계 종택 인근에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새로 문을 열었다. 이참에 KAIST 학생들에게 며칠간이라도 수련원 입원(入院)을 권해보고 싶다. 멘터니 뭐니 해서 상담을 강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공부하는 자세 역시 퇴계에게 배울 게 많다.
무엇보다 성적에 실망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퇴계가 아들 준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의 재능이 우월함에도 남의 밑에 놓이는 대우를 받는 것은 해로울 게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나의 재능이 보잘것없음에도 불구하고 요행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이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옛 사람은 비록 자신을 꾸짖는 것을 귀하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거나 절박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인간성 넘치는 퇴계의 말도 귀 기울여 봄 직하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남중(논설위원)-20110422금] 남성 육아휴직
동물 세계에서 수컷이 새끼 양육에 몰두하는 예는 숱하다. 남아메리카 황금사자타마린 원숭이 수컷은 새끼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안고 다니며 돌본다. 먹이를 줄 때만 암컷에게 건넨다. 펭귄의 부성애도 눈물겹다. 펭귄 암컷이 알을 낳고 먹이를 구하러 가면 수컷이 알을 품는다. 2~3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않고 알만 품느라 무게가 40%나 줄기도 한다.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을 수컷이 도맡는 경우가 많다.
인간 세상에서 육아는 주로 여성 몫이다. 본디 여성이 아기를 남성보다 잘 돌봐서인가. 연구자들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아버지 연구가’인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 파케 교수는 신생아와 아버지를 관찰했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똑같은 정도로 아기와 말을 하고 뽀뽀하고 놀아준단다. 배고픔이나 불안, 지루함 같은 아기의 상태도 똑같이 알아차린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난 즉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아이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란다. 육아에서 아버지가 근본적으로 열등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남성인 이강옥 영남대 교수가 육아 경험을 기록한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에서 “나의 모성은 무르익어 내 빈약한 젖꼭지에서도 젖이 흘러내리는 듯했다”고 했을까.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심리학팀은 아이들이 태어난 뒤 4~6년 동안 아버지와 노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후 아이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과 놀 때 보여준 친숙한 관계를 지속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육아 참여가 끼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남성의 육아 참여는 북유럽을 넘어 이젠 세계적 대세다. 미국에선 아내 대신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트로피 남편(trophy husband)’이 확산 중이다. 일본에선 후생성이 ‘육아를 하지 않는 남자는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전국에 배포했을 정도다.
한국에선 지난해 육아휴직한 남성이 819명으로 전년보다 63% 늘었다고 한다. 올 1분기엔 27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 육아휴직자의 1.9% 수준으로 아직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하거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란다. 육아휴직 의무화 같은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그러나 남성의 육아를 이상히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데 당당히 육아휴직을 선언하는 간 큰 아빠들이 대폭 늘 수 있을까.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422금] 책임의 알리바이
음주운전 유머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를 훌쩍 넘은 두 사람이 불콰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알다시피 이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술취한 차가 갈지자로 비틀거린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상대편 차와 충돌할 뻔하자 한 사람이 기겁해서 외쳤다. “아이쿠, 차 좀 똑바로 몰아!” 또 한 사람이 혀가 꼬부라져 대꾸했다. “아니, 자네가 운전하는 게 아니었어?” 둘 다 핸들을 안 잡았다니 만일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일까.
“책임을 가진 자만이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다.” 독일의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1903~93)의 말이다. 그는 <책임의 원칙>(1979)이라는 책에서 책임은 당사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같은 사고라도 개인과 공인(公人)은 책임이 다르다. 이를테면 앞서 든 유머에서 앉은 곳이 운전석인지 조수석인지와 운전자가 기사냐 승객이냐에 따라 사고 책임은 달라진다. 만일 기사가 핸들을 놓고 조수석에 앉았다면 이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책임은 한자로 ‘꾸짖을 책(責)’과 ‘맡길 임(任)’이다.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따져서 엄히 꾸짖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이 일을 맡긴 공인들 중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면피를 위해서라면 철면피한 변명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누군들…” “잘못된 관행”이라는 말은 이들이 종종 쓰는 표현이다. 사람의 잘못보다는 환경을 탓하는 변명들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모두의 책임이라면 누구도 꾸짖을 수 없게 된다. <두 글자의 철학>(2005)이라는 책을 낸 김용석 교수는 이를 ‘책임 알리바이의 역설’이라고 지칭한다.
알리바이는 ‘현장 부재 증명’인데, 용의자들이 모두 “나는 알리바이가 없다”고 주장하면 어찌될까. 모두가 현장에 있었다면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 너도 나도 범인을 자처하면 진범이 누구인지는 아리송해진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이 이와 똑같다는 게 김용석 교수의 지적이다. 모두가 책임이라는 말은 책임을 희석시키는 변명에 불과하다.
농협 전산망 대란과 관련해 최원병 중앙회 회장이 국회에서 “저를 비롯해 간부와 모든 직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서는 처음 하는 말이겠지만 국민들로서는 많이 듣던 소리다. 하지만 이는 결코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다. 음주운전 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운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박준호(정치부기자)-20110422금] 남 탓만 한 저축銀 청문회
여야 의원들은 저축은행 부실화 문제를 따지기 위해 20ㆍ21일 이틀간 열린 청문회를 앞두고 잔뜩 벼른 눈치였다. 일부 의원들에겐 철저하게 파헤쳐보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졌다. 실제로 청문회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공격하는 칼날만 날카로웠지 자기 진영의 과오를 인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여당 의원들은 이헌재ㆍ진념 두 전직 경제부총리에게 저축은행으로의 명칭 변경과 소액 신용대출 확대를 추궁했지만 꼿꼿한 반박 앞에 가로막힐 뿐이었다. 게다가 두 전직 부총리가 재임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10년 전 일로 이들에게만 저축은행 부실의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 많은 시일이 흘렀다. 나비효과라고 주장하는 게 더 낫겠다. 이들을 비난해 현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 인수합병에 인센티브를 적용했고, 무리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감독하지 못했던 실패를 감출 순 없다.
현 정부에서 경제 수장을 지낸 이들은 야당 의원들의 공격 표적이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벌인 조치들을 비판했다. 하지만 8ㆍ8클럽 조치를 시행하고, 저축은행이 2006년 이후 부동산 폭등에 편승해 너도나도 PF대출에 뛰어들었던 건 참여정부 시절이다. 윤 장관은 현 정부 경제 수장이지만 참여정부 금융정책의 책임자기도 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잘못한 일을 비난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건 어떤 뻔뻔함인가.
여야 모두 이번 청문회가 4ㆍ27 재보궐선거에 미칠 영향에 크게 관심을 쏟았다. 청문회를 준비한 이들 모두 전현직 경제ㆍ금융정책 책임자들이 청문회에 선 것 자체에만 의의를 두고 있었다. 자기반성이 있었다면 유권자들의 마음을 좀더 움직이지 않았을까.
윤 장관이 청문회장에서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저축은행 문제가 정상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야 입장에서 윤 장관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했다면 스스로의 과오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