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잠깐 딸
송희제
오늘 나는 어느 자매가 오랫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본인의 딸처럼 돌본 두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희미한 기억이 순간 어제 일처럼 갑자기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내 아들 둘이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때이다. 그때 난 20년간 직장생활 후 공직에서 은퇴했다. 바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자로서 활발하게 봉사 생활을 할 때다. 성당에서 레지오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봉사하였다. 그 레지오 단원 중 60대인 한 분에게 딱한 일이 생겼다. 그분 두 아들은 서울에 있었는데, 큰아들은 이혼했고 둘째 아들은 독신이었다. 그분 딸은 대구에 살았고 손녀 둘이 있었다. 그분 사위는 당시 군 장교였다. 그분 딸은 그때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종종 대구에 있는 그녀 딸 가정을 돌보러 다녔다. 더구나 초등 5학년인 큰 외손녀는 대전 우리 아파트 사는 외할머니인 그분이 데리고 살았다.
그 남편은 당시 광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다. 그분은 주말부부였는데, 남편이 심한 방광암을 앓아 종합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야 할 처지였다. 그분은 상황이 너무 심각하여 진퇴양난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옆 동에 사는 그분이 너무 딱하여. 내 남편과 두 아들의 동의를 얻어 초등학교 5학년인 그분 큰손녀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돌보기로 하였다. 우리 아파트는 방이 세 개라 아들 둘은 한 방에, 여자 ' 연지'라는 아이는 따로 방을 쓰게 하였다. 그때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줄 때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3개씩 싸느라 난 더 바빴다. 5학년, 4학년, 3학년 순으로 도시락을 가장 먼저 연지에게 챙겨 주고, 두 아들은 그다음에 챙겨 주었다. 그날 배운 숙제까지도 세 애들을 돌보기에 바빴다. 연지란 아인 잠을 온방을 돌며 험히 자서 혹 감기 들세라 나는 그 아이가 걷어차는 이불을 덮어 주느라 자주 깨기도 했다. 다행히 두 아들은 갑자기 한집에 살게 된 그 아일 누나라고 부르며 잘 놀았고, 시험 성적도 모두 올랐다. 그녀의 아빠가 그녀를 보러 왔을 때 너무 감사해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한 지 두 달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연지 외할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상태가 좋아져서, 그녀는 옆집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돌아갔다.
연지는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과 떨어져서 학교에 다녔다. 연지 엄마의 우울증 증상은 그리 나아지지 않은 듯했다. 같은 동네 옆 동에 살면서도 어쩌다 스치면 우린 친 모녀처럼 그렇게 반가워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몸이 안 좋아 종합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연지도 들었는지 수술 전날 연지로부터 쪽지 편지까지 왔다.
"아녜스 아줌마에게"
(별 지 첨부)
당시 연지의 진심 어린 편지를 보고 얼마나 가슴 뭉클하며 뿌듯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종합병원에서 개복하는 수술을 하여 입원을 열흘 남짓하였다. 난 두 아들이 있으나 여자아이처럼 잔정이나 세심한 배려는 없다. 당시 난 연지의 쪽지 편지를 받고 퍽 기쁘고 고마워 그 아이가 내 딸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 후 난 그 아파트서 이사 나와 연지네 소식을 모른 채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그 아파트 교우로부터 연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가깝게 지내오던 그분이 돌아가셨다기에 장례식장에 갔다. 한참 오랜만이라 서로의 세세한 소식은 몰랐지만, 워낙 여러모로 열성적이고 신앙심도 좋고 외로운 분이라 문상을 한 것이다. 상가에 들어서서 상주들에게 인사를 드리니 30대 여인이 된 연지가 곧바로 나를 알아보고 반기었다.
"어마! 아녜스 아줌마 아니세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저 연지예요. 저 어릴 때 그렇게 정성스럽게 저를 돌봐주셨는데, 그 신세도 못 갚고 여기서 뵙네요. 엄마 아빠! 저 어릴 때 몇 달간 숙식하며 다 돌봐주시던 임시 엄마 아녜스 아줌마예요."
하니 그 애 부모는 반갑게 내게 와서 정색하며 고맙단 말을 연발했다. 연지는 그간 살아온 얘기며, 엄마의 그 우울증인 지병도 이젠 나아 엄마 걱정도 덜게 되었다는 말도 했다. 결혼 9년 만에 임신이 되어 외할머니도 그 사실을 알고 돌아가셨단 말을 했다. 두 달 후면 저도 엄마가 된다며 어릴 때도 예뻤던 그 아인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동산만 한 배를 어루만졌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같이 해온 연지 할머니의 장례식장도 문상하고, 임시 딸로 당분간 돌본 후 그리웠던 연지도 만났다. 그 후 연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연지 할아버진 서울 아들이 모셔갔단 소식만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두 달 후엔 저도 엄마가 된다고 기뻐하던 그 연지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난 동생도 딸도 없는 막내고 두 아들의 어미인지라 '상냥하고 정겨운 딸이 있으면'하는 건 늘 아쉬운 나의 바람이다. 오늘따라 그 연지가 딸처럼 그리워 달려가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