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1∼4) 일본인이 웃는 세상, 의병은 통곡한다 [出處] 교보문고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1(국치편) ▲ 이태룡 지음 / 중명 / 2006.08.06.出刊 / 296쪽 / 12,000원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2(의병편) ▲ 이태룡 지음 / 중명 / 2006.08.06.出刊 / 301쪽 / 12,000원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3(일화편) ▲ 이태룡 지음 / 중명 / 2007.12.28.出刊 / 287쪽 / 12,000원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4(답사편) ▲ 이태룡 지음 / 중명 / 2007.12.28.出刊 / 404쪽 / 15,000원 [책소개] 한말 의병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보는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우리 근대사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장 반민족적 행위의 중심에는 갑신, 갑오, 을미, 을사왜란 때의 부왜역적과 독립신문, 독립협회, 일진회가 있었음을 밝히는 데 참고가 되는 자료를 정리하였다. 이 책은 갑신왜란부터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배달겨레의 올곧은 삶은 무엇이었고, 왜 국치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의 행적은 어떠했으며, 어떤 단체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반민족 행위를 했는지를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살펴본다. 제1권에는 나라를 일제한테 빼앗기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실었다. 제2권에는 아직 발굴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는 80여 명의 의병장 행적을 정리하고, 정리 과정에서 의병장 급 70여 명과 130여 명의 의병들의 행적을 부분적으로 실었다. 제3권에는 부왜역적들의 행적과 일제의 만행, 의병들의 삶과 의병투쟁의 형태, 병기와 탄약 등에 대한 자료를 담았다. 제4권에는 저자가 1988년부터 1995년까지 8년간 전국 의병 투쟁지를 답사한 내용을 담았다. ------------------------------------------------------------------------------------------------------------ [저자소개] 이태룡 1955년 경남 고성 출생 경상대학교 대학원졸. 문학박사 <주요 논저> ‘최익현의 순창의병과 유소연구’(배달말) ‘이석용 의병장 연구’(의병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영암 국사봉과 호남의병’(호남의병 100주년 학술회의. 전남사학회) ‘한말 경남지역 의병연구’ 『의병 찾아가는 길』(1.2권) 『국사봉에서 바라본 호남의병』등 <주요 경력> 민족사관고교, 김해고교, 김해여고, 양산남부고 교사 역임. 현재 양산물금고교 교사로 민족 문제연구소, 신암선생기념사업회, 오민실천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1(국치편) 머리말 필자의 말 제1장 한말 민족사와 의병 1. 국권회복기(國權恢復期) 민족사 2. 의병의 뜻매김과 뿌리 3. 의병 투쟁의 의의 제2장 한말 시대 상황 1. 갑신왜란 1). 포경사로 임명된 김옥균 2). 의복제도의 변경 3). 김옥균과 죽첨 일본공사 4). 대궐 침범한 일본군 5). 부왜인, 일본으로 도망가다 6). 일본 공사관은 불타고 7). 갑신5적 보호하는 일본 8). 김옥균 양화진에서 효수되다 9). 상하이에서 ‘대역부도’ 처형되다 2. 갑오농민봉기 1). 고부에서의 봉기 2). 전봉준 등장하다 3). 홍계훈 양호초토사로 임명되다 4). 홍계훈 전주로 향하다 5). 갑오농민군 전주성 점령하다 6). 청국에 구원병 요청하다 7). 청국군 조선에 오다 8). 격렬해진 갑오농민군 9). 무자비하게 토벌된 갑오농민군 10). 갑오농민군 지도자 붙잡히다 11). 갑오농민군 두령 체포 위해 경상감사 출장시켜라 12). 군사용 정우장(停牛場) 설치 13). 조선 남도의 민란을 근치하는 책 14). 갑오농민군 진압의 선후책 15). 김개남 참수 경위 요청하다 16). 갑오농민군 우두머리 넘겨 달라 17). 갑오농민군 일본군에게 인도하라 18). 영호남 동학 대접주 김인배 등 주살되다 19). 일본 군함의 척후 활동 20). 충청도 갑오농민군과 대원군 21). 흥선 대원군 설유문 내다 22). 대원군과 이준용을 보는 일제의 시각 3. 갑오왜란 1). 인천에 도착한 일본군 2). 일본군 도성 허물고 진입하다 3). 교정청 설치하다 4). 일제의 협박이 심해지다 5). 조선 점령군 편성되다 6). 일본공사가 이끌고 온 병사는 호위병인가 7). 군대 파견 명분의 일제 문서 8). 내정개혁 빙자한 침공의 내막 9). 갑오왜란 명분에 반박하는 문서 10). 일본군 대궐로 쳐들어가다 11). 갑오왜란의 모습 12). 청일전쟁 치르기 위한 권모술수 13). 표리부동한 일본군의 언동 14). 강제로 맺은 조일 맹약 15). 대궐 안에 주둔하던 일본군 철수 16). 조선 정부 주무르는 군국기무처 17). 고종의 왕권 무시하는 일본공사 18). 일제의 내정 간섭 구실 만들기 전략 4. 청일전쟁 1). 전쟁 불사하는 두 나라 2). 청국군 충돌에 따른 일제의 훈령 3). 조선 변란 처리에 관한 회답 4). 일본군 추가 병력 파견 통지 5). 조선에서 일본군 철수는 우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6). 청국군의 동정에 대한 비밀 보고서 7). 청일 두 나라의 속셈 8). 성환전투로 청일전쟁 시작되다 9). 청국 자존심 고승호 격침되다 10). 일본군 양덕으로 진군하다 11). 청일전쟁 싱겁게 끝나다 5. 을미왜란 1). 일제 조선 왕후 민비 살해하다 2). 거짓 공문서 주고받은 일본공사와 부왜인 3). 왕후 민비가 폐위되다 4). 민비를 폐위하는 데 반대하다 5). 민비 살해를 은폐 조작하다 6). 일제의 장단에 춤추는 부왜인 7).일제의 범죄 행위 숨기기 위한 전략 8). 민비 폐위에 거짓 유감 표명하다 9). 일제의 계략에 놀아난 대원군 10). 왕후 민비의 위호 복위되다 11).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역적 처리 12). 왕후 승하의 칙명 내리다 6. 전기 의병 투쟁 1). 전기 의병 일어나다 2). 단발령 시행과 고종의 삭발 3). 전국 각지에서 떨쳐 일어선 의병 4). 홍주의병 일어나다 5). 호남의병 일어나다 6). 을미왜란과 단발령에 대한 반발의 결과 7). 홍주의병에게 특지 내리다 8). 해산되는 호남의병 7. 아관파천 1). 고종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다 2). 부왜 내각 무너지다 8. 독립신문 1). 한글 신문 발행 비용이 많지 않나 2). 신문기자는 선택해 놓았다 3). 한글 신문 나에게 맡겨 달라 4). 한글 신문기자 적합한 인물 있나 5). 한글 신문 창립비로 기밀금 지불하고 싶다 6). 신문 창립비 보내겠다 7). 신문 발행 기계 구입하겠다 8). 법제국 참사관을 보낼까 9). 신문 창립비 보낸다 9. 독립협회 1). 벼락감투 쓴 김홍륙 2). 김홍륙 유배되다 3). 김홍륙 고종 암살 교사죄로 사형되다 4). 김홍륙 사형에 반발한 독립협회 5). 독립협회의 부당함을 지적한 신기선 6). 독립협회 두령에게 내려진 벌태 7). 독립협회 기운 잃다 8). 중추원 관제 개편하다 9). 외국 입적 금지시키다 10. 고종의 인재 등용 1). 곽종석에게 의정부 참찬 제수하다 2). 이용익과 보성전문 3). 이용익 내장원 쌀 팔다 4). 일본으로 끌려간 이용익 5). 고종의 특사 이용익 11. 간도협약 1). 이범윤의 활약상 2). 간도 땅이 청국으로 넘어가다. 12. 러일전쟁 1) 기습당한 러시아 2). 전보국과 우체사 탈취당하다 3). 러시아 함대 격파되다 13. 제1차 한일협약 1). 내정개혁안으로 허수아비된 대한제국 2). 고문정치 시작되다 14. 일진회 1). 일진회는 독립협회를 이었나 2). 손병희 일본에서 돌아오다 3). 일본에서 돌아온 손병희의 행적 4). 정부 흔들기하는 일진회 5). 일진회 간부는 독립협회 간부 6). 일진회의 무소불위 7). 일진회 정부 협박 가중하다 8). 일제 흉계를 드러내다 9). 일진회 횡포에 전주부민 일어나다 10). 일진회의 반민족 행위들 11). 합방론 제기한 일진회 15. 을사늑약 1). 을사늑약과 사회 분위기 2). 고종과 이등박문의 담판 3). 런던신문에 실린 을사늑약 무효론 4). 을사 애국지사의 언행과 순국 5). 김봉학의 순국에 황제가 제문을 내리다 6). 민영환의 장례식 황제가 경례하다 8). 기산도, 이근택 처단 실패하다 16. 후기 의병 투쟁 1). 후기 의병 투쟁 시작되다 2). 전사한 일본 병사의 목 가득 싣고 3). 후기 호남의병 일어나다 4). 유인석이 평안북도에서 또 거의하다 17. 고종의 퇴위와 정미7조약 1). 칼을 들고 고종 협박하는 이완용 2). 정권을 통감부로 넘긴 정미7조약 3). 경찰권이 일제에게로 넘어가다 4). 군대 해산당하다 5). 군대 해산에 거부한 군인들 18. 국채보상운동 19. 안중근 의거 1). 의병장 안중근, 이등박문 처단하다 2). 안중근의 동료와 두 아우 3). 고종, 이등박문 죽음에 크게 웃다 4). 이등박문의 장례와 부왜인의 조문 5). 평양 변호사 안병찬의 기개 6). 의병장 안중근 순국하다 20. 부왜역적과 경술국치 1). 대궐 안에서의 풍문과 박영효 2). 호가호위하는 박영효 3). 국왕 협박하는 박영효.이준필 4). 김옥균에 대한 일제의 관심 5). 홍종우에 대한 포상 반대하다 6). 부왜역적 이완용, 의병 토벌 사정하다 7). 부왜역적 송병준의 호언장담 8). 부왜역적 송병준의 망동 9). 순종 황제의 칙유(勅諭) 10). 일본 황제의 조(詔)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2(의병편) 머리말 필자의 말 제1장 국권회복기 의병투쟁 1. 전기 의병투쟁 2. 후기 의병투쟁 제2장 새로 발굴한 의병장 행적 1. 강두필(姜斗弼) 2. 강문경(姜文景) 3. 강사문(姜士文) 4. 고부성(高夫成) 5. 공태원(孔泰元) 6. 기좌창의소(畿左倡義所) 의병 7. 권중설(權重卨), 고재식(高在植) 8. 김관수(金寬洙) 9. 김교승(金敎升) 10. 김영엽(金永燁) 11. 김용수(金龍洙), 서윤협(徐潤俠) 12. 김운선(金雲仙) 13. 김정한(金禎漢) 14. 김준식(金俊植) 15. 김참봉(金參奉) 16. 남청운(南淸雲) 17. 문정봉(文正鳳) 18. 민영팔(閔泳八) 19. 민창식((閔昌植) 20. 박사화(朴士化) 21. 박순근(朴順根) 22. 박용식(朴鏞植) 23. 박우일(朴雨日) 24. 박장록(朴長祿) 25. 박정빈(朴正斌) 26. 박화남(朴華南) 27. 방인관(方寅寬) 28. 서광도(徐光導) 29. 신경칠(辛敬七) 30. 신대여(申大汝) 31. 신도술(辛道述) 32. 신보현(申保玄) 33. 신영서((申永西) 34. 안암우(安岩于) 35. 안춘경(安春敬) 36. 안판구(安判九) 37. 연성칠(延成七) 38. 염기덕(廉基德 39. 오양선(吳良善) 40. 우중렬(禹中烈) 41. 유학근(柳學根) 42. 유학준(柳學俊) 43. 윤세파(尹稅坡) 44. 이관도(李寬道) 45. 이두순(李斗順) 46. 이두항(李斗恒) 47. 이두희(李斗羲) 48. 이문거(李文擧) 49. 이성덕(李聖德) 50. 이성화(李成化) 51. 이순필(李淳弼) 52. 이윤례(李允禮) 53. 이익삼(李益三) 54. 이종협(李鍾協) 55. 이춘삼(李春三) 56. 임봉구(任鳳九) 57. 임창근(林昌根) 58. 전상진(全尙鎭) 59. 전성서(全聖西) 60. 정기철(鄭基哲) 61. 정대홍(鄭大洪), 정대인(鄭大仁) 62. 정문칠(鄭文七) 63. 정성현(鄭聖玄) 64. 정인국(鄭寅國) 65. 정제환(鄭濟煥) 66. 조사윤(曺士允) 67. 제주의병 68. 채기문(蔡其文) 69. 최경천(崔敬天) 70. 최덕준(崔德俊) 71. 최성재(崔成裁) 72. 한용수(韓龍守) 73. 허덕천(許德天) 74. 황명준(黃明俊) 75. 홍부삼(洪夫三) 76. 홍원유(洪元裕)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3(일화편) 머리말 - 10 필자의 말 - 14 1. 갑신왜란 난신적자 부왜역적-19 홍순목의 속죄-20 조영하 며느리 홍만식의 딸-20 김옥균 가족의 비극-21 박영효ㆍ박영교 가족의 비극-21 서재필 가족의 비극-22 서광범 가족의 비극-22 역적의 집터 연못으로-23 민영익, 상처는 아물었으나-23 역적 가문의 항렬자 변경-24 부왜역적 김옥균 상하이로 향하다-24 김옥균의 시체, 능지처참 못하게 하다-27 김옥균 살해사건에 대한 일제의 관심-28 김옥균파의 보복에 대한 조선 정부의 정보 요청-31 부왜역적 처단 계획자 이일직 일파에 관하여-32 홍종우와 김옥균 시체의 이송에 관하여-33 홍종우와 김옥균 시체의 출발-34 김옥균 시체 실은 청국 군함의 마산포 도착-34 김옥균 시체 훼손 못하게 하라-35 김옥균의 시체 처리에 관한 조선 정부의 답변-35 홍종우와 김옥균 시체 도착시 유의하라-36 청국 군함 도착하다-36 김옥균 시체 옮겨지다-37 김옥균 시체 한양호에 실려서-37 김옥균 암살 사건에 관한 내왕 전신문-38 김옥균 효수되다-40 김옥균의 처와 딸에 대한 배려 지시-41 홍종우의 처벌을 총리아문에 요구하기로-41 홍종우에 관한 풍설-42 홍종우 중상하는데 반대하다-47 거사후 현령과의 문담하는 홍종우-49 2. 갑오농민봉기 민영준, 고종 눈가리다-53 가짜 동학당에게 속은 일-54 동학당 공초기-55 3. 갑오왜란 조선 국왕 감금되다-66 병기까지 빼앗긴 형국이었으니-67 궁궐 내 주둔 일병의 광화문 밖 철수 의사-70 궁궐호위 일병과 조선병 교체 협의-72 일본 경찰관의 궁궐내 주재 거부-74 궁궐호위 이양에 관한 협의-74 압류중인 조선의 무기 반환에관한협의-75 궁문장 김기홍의 상소-76 갑오왜란 이후 조선을 일본 보호국으로-78 일제가 본 조선의 내정상황-80 일제가 말하는 내정 간섭이유-83 청국과 교전하는 의미-86 갑신왜란 인물들, 사면.귀국시켜 기용하라-88 갑신역적 사면되다-90 4. 청일전쟁 평양지방 청국군에 관한 탐정보고-93 평양 청국군 정찰기-95 청국과 전쟁하기 위하여 파병된 일본군-98 공사관 호위병이라고 칭하다-100 일본 해병의 입경 및 출발 대비하다-106 청국과의 충돌 발생시 조선 국왕 붙들어라-107 조선인 중에서 부왜인 확보 지시-110 청국의 협상교섭 거부에대한 일본의태도-111 조선에 개혁 요구 추진중 이권확보하라-112 조희일관서선유사되다-113 5. 을미왜란 을미왜란이 훈련대 병정의 소란인가!-115 교활하게 시치미떼다-116 왕후 민씨 변란중 승하했다?-117 뻔뻔스런 일본공사의 애도표시-117 을미왜란 알리바이 조작하기-118 완전 범죄 노린 일제의 조작문-124 대원군에 대한 불신이 커지다-125 일제가 걸림돌로 생각했던 이준용-126 을미왜란을 대원군이 비밀리 꾸민것처럼-127 을미왜란이 대원군과 약속한 결과처럼-128 귀국하면서 부왜내각 우두머리에게-129 노욕은 노망의 지름길인가-130 을미왜란 조작의 제물 대원군, 용도폐기되다-130 6. 아관파천 조선분할 점령 음모까지-134 7. 대한제국 태극기 국기로 제정하다-145 영남 지방 수령하기 어려웠다-146 고종의 비자금-146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147 단군과 천조가 형제라?-147 8. 의병 투쟁의 형태와 변천 창의가에 어려 있는 기좌창의소 의병의 얼-148 승려 철수시켜라-153 당당한 유시연 의진의 의병-154 송병준ㆍ이등박문 암살 계획-155 박 처사의 삶-156 의병장 이강년 유해 이장-158 술취한 의병 체포되다-159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의병-159 의병장 부인의 자살-160 화적 생매장하다-161 현대판 계백 장군-161 의병의 은거지 암굴을 보면서-162 한 맺힌 2번국도-163 남도3백리 의병로-166 의병친구와의 대화-168 의병숨겨주고 시치미떼기-169 북한.연해주 의병장 인상착의-170 추풍사무통장-171 머리를 깎지않아 살려주다-173 시체위에 붙인방-174 우편체송인호위병공격-176 불탄 삼수순사주재소-177 고분 도굴범 일본인 생매장-178 의병사냥꾼, 의병에게 가슴채여-180 일본말 혼용자 참살하다-181 일어학교 일본인 교사 혼쭐나서 입원하다-181 일본주의자는 국적이다-183 시장 북새통에 뒤통수쳐서 죽이다-183 철로에 돌놓아 탈선유도하다-185 변장술의 명수 유시연의병장-185 의병에 의해 불태워진 민가39호-186 밀고한 마을24호 불태우다-186 비협조 부호가 불태우다-187 고금도 유배자 26명, 의병과 기맥 통하다-188 일본군 편의제공 거부한 하해유씨마을-189 보성 사람들의 의식-190 우국지정의 푸념-190 마을주민의 의병체포-191 폭도모습으로 전락된 의병의 행위-192 소도둑으로 변한 의병-193 '의병'이라는 색깔 덧씌우기 진정서-193 9. 의병자금 이윤용 일족납치사건-195 나를풀어주면 상여금은 원대로주겠다-197 전군수 납치하여 몸값요구하다-198 월급받기도했던의병-199 궁내부대신 위조인장 이용하다-199 정부인에게 보낸 군용금조달요청서-200 세금징수를 못하겠다-202 군용금모금의 한계-203 10. 병기와 탄약 의병들의 병기수집-206 선교사의 엽총을 빼앗다-207 의병에게 총기ㆍ탄약의공급-208 화승총의 위력이 이랬으니-208 화승총은 새총인가?-208 화승총이 천보총으로바뀌다-209 양총수준의 화승총휴대의병-210 덕용산 진지의 대포-211 구식대포 지녔던 의병-213 대포쏘는 의병-213 일본경찰 총탄 밀매하다-214 소의 오줌으로 제조했던 화약-216 의병들이 사용한 탄환-217 총기매입에 사용된 이용익유산-217 최천유의병장 소지했던 무기류-219 산남의진 해산과 총기보관-220 총기를 목숨처럼 여긴 함경도 포수들-223 11. 일본인과 부왜인의 이모저모 박영효 망동으로 친위영 설치하다-225 일본공사관 서기관이 김가진에게-227 김가진이 삼촌준 서기관에게-228 삼촌준이 김서리대신에게-228 김종한 궁내서리의 답서-229 삼촌준이 김궁내서리대신께-230 김굉집을 총리로 중임토록 권고하라-230 박영효, 역모 탄로나자 경성 탈출하다-231 일본인의 부왜인 감싸기는 계속되고-233 남정철 첩으로 미인계쓰다-237 개, 돼지만도 못한 이근택아!-238 가짜수염 떨어뜨린 자객의 실수-238 남대문에 걸린 현수막-239 이근택 죽이려고 연습하다-239 이근택이 벼락출세한 이유-241 의병장 체포하는 부왜관찰사-241 이지용아내, 일본인과 간통하다-242 부왜인의 첩 거부한 진주기생 산홍-244 며느리와 간통한 이완용외-245 의병체포위한 견교한 술수-246 의병장과 일본군 헌병대장과의 회담-248 일본군 연대장의 회유책으로 무너지다-249 전남 보성 내시천에서의 의병회유-250 무덤까지 파헤쳐진 조인환 의병장-251 해주지방재판소 검사의 훈수-252 습격당한 일진회 사무소-254 일진회원 6백명 피난가다-255 처단된 일진회원만 9천 2백명-256 전등사 고서 강탈하고는 '보호한다'고?-256 윤웅렬의 파렴치한 모습-257 부왜군수의 훈시-259 부왜군수의 피신-260 친척구제위해 의병장체포-261 사면요청 대가로 동료 밀고하다-261 일제의 굶주린 개가되어-264 귀순후 한봉수와 그모친의 모습-265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266 백구두 신었던 일제주구의 부왜행위-266 함경남도 제3순사대 임재덕의 부왜행위-267 부왜군수, 의병 회유 집회에서 봉변당하다-269 혼쭐난 광주군수 홍난유-271 의병토벌에 앞장선 전직무관, 군수.서장으로-272 부왜관찰사 신응희의 계책, 호구조사-273 군수가 면장에게 보낸 협박공문-274 각 면ㆍ리에 밀정을 두어 의병 정탐하자-275 의병적발에는 민적조사가 특효-276 밀정 사역비 월8원-276 부왜 단체 대한협회 대구지부 결의-277 의병 규탄 연설하는 대한협회 사람들-279 변장대와 밀정의 보고-282 변장순사대구성-283 변장대의 오인사격-284 잔인한 학살의 현장-284 밀정 고명화의 비밀보고서-285 한국근대사와 의병투쟁 4(답사편) 머리말 -10 필자의 말 -14 복재 민용호 -17 신암 노응규 -37 운강 이강년 -62 운암 백남규 -80 청은 권용일 -86 산재 이만원 -94 삼계당 원용팔 -105 중남 이인영 -116 특무 민긍호 -127 장산 신돌석 -143 도암 신태식 -161 보현산 정기어린 산남의진 -175 금포 노병대 -196 성암 장윤덕 -205 정재 이석용 -216 문태서 장군 -235 해산 전기홍 -252 남일 심수택 -272 담산 안규홍 -288 양진여ㆍ상기부자 -308 죽파 오성술 -826 윤조 민종식 -338 복암 이설 -349 지산 김복한 -358 규당 안병찬 -368 우록 유준근 -379 운초 문석환 -396 ------------------------------------------------------------------------------------------------------------ [출판사 서평] 우리는 역사를 바로 보고 있는가.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의 현재를 재고,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과거사정리라는 이름아래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활동들이 바르게 행해지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란 특정한 이해집단에서 판가름할 사안이 아니라 정확한 시각과 객관적인 자료와 신빙성 있는 증언들에 의하여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특정한 사람들이 검증한 과거사라는 것은 자칫 그 주체 자들이 바뀔 경우에는 또 다른 평가가 내려질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재조명은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가들에 의해 제대로 재조명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좋은 정보자료로서 가치 있는 작업의 산물이라고 감히 추천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와 상대적인 역사 역사라는 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8월 15일을 우리는 ‘광복절'이라고 하지만, 일본인은 ‘패전기념일'로 부르며, 일제가 1894년 7월 23일 일본군 5천여 명을 동원하여 궁궐을 침범한 것을 일본은 ‘갑오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우리는 ‘갑오왜란’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용어자체에서도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이 역사의 사건들인 것이다. 또한 역사란 개인의 일상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건화하거나 당대의 중심 층들의 일을 다루는 작업이므로 개인적인 시각이나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서 비롯된 단어의 문제도 고려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바로 보는 시각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대사의 재조명 역사는 단지 지나간 과거의 사실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역사의 산물이며, 역사적 변화의 한 과정이다. 우리의 근대사는 현대사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근대사가 남긴 유산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특히 우리는 근대사를 제대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에 있다. 우리 근대사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국치를 당하는 시련의 역사였고,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즉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들의 활발한 활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나라를 빼앗김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이지만 우리 손으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흘러오다가 나중에야 그 역사를 복원해야만 했던 시기의 역사라서, 우리 근대사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편견과 오류로 인한 역사 기록의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는 보다 적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제대로 조명되어야 할 역사가 우리 근대사의 역사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의의와 측면에서 갑신왜란부터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배달겨레의 올곧은 삶은 무엇이었고, 왜 국치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의 행적은 어떠했으며, 어떤 무리가 일제 앞잡이가 되어 반민족 행위를 했는지를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살펴본 산 증인이 될 만한 역사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은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데, ‘일본 화폐를 사용하자', '조선 최고의 정치가는 이완용이다', ‘동양 최대의 정치가는 이등박문이다', ‘비도를 토벌하자’ 등을 외쳤던 ‘독립신문 등의 가면을 벗겨서 실체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실상 독립협회의 초대회장은 안경수로, 그는 을미왜란 때 부왜내각의 군부대신으로 왕비 살해를 주도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독립협회 초대 이사장은 이완용이었고, 2대 회장은 이완용, 3대 회장(직무대리) 윤치호(尹致昊)다. 윤치호는 갑신왜란에 가담했고, 안경수와 함께 역모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부친 윤웅렬이 경술국치 때 남작을 받았다. 그도 일본으로부터 귀족원 의원을 받았으며 전형적인 부왜역적이었다. 이외에도 우리가 존경의 대상으로 배워왔던 인물들 중에는 친일파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을 이 책은 제대로 파헤쳐 주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 기록의 역사 어떻게 보면 우리 근대사는 나라를 빼앗긴 수치도 수치려니와 그 기록에 있어서 무관심한 측면, 무책임하게 버려두었던 역사라는 데서 더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제는 그 부끄러운 일들을 털어내고 근대사를 제대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권력층의 친일과 약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열정으로 목숨을 건 의병들의 역사가 공존한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의병들의 활약상은 곡해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많다. 이 책은 그러한 측면들을 최대한 밝혀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의병투쟁에 대한 당시 일본 경찰의 비밀 기록에는 1907년 12월부터 1908년 12월까지만 1,976차례 의병과 전투를 벌였으며, 일본 경찰과 토왜전을 벌였던 의병이 15만 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을 능가하고 있다. 하지만 의병투쟁에 관한 우리의 문헌 자료는 흡족할 만큼 많지 않다. 일부 의병장이 남긴 ‘창의록(倡義錄)’ 형태가 있지만, 한말 의병 사를 조명하기에는 미흡하다. 그러나 일제의 기록은 비교적 방대하다. 그런데다가 『한국독립운동사』는 일본글을 번역한 것인데다가 국·한자 혼용으로 기록되어 있고, 도서관 보관용이어서 일반 독자들이 그것을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독립운동사“ 발간 이후 근대사와 의병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나왔는데도 이를 총체적으로 정리를 하지 못한 채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러 온 것은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이제, 이들 문헌들이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몇몇 학자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도 상아탑의 연구실에서 찔끔찔끔 연구 결과물로 나와서도 안 될 상황이다. 참여정부 등에서 진행 중인 일련의 연구들이 제대로 그 결과물을 창출해 내기를 기대할 뿐이다. 필자는 우리 근대사에서 겨레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기꺼이 바친 의병들의 삶과 함께 가장 반민족적 행위의 중심에는 갑신ㆍ갑오ㆍ을미ㆍ을사왜란 때의 부왜역적과 독립신문ㆍ독립협회ㆍ일진회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
출처: 容亨互悌 원문보기 글쓴이: 同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