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감작용의 향기
작년부터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한 평 남짓한 텃밭을 임대 받아 경작해오고 있다. 봄에 신청자가 많아서 제비뽑기를 하였는데 운이 좋아서 금년에도 당첨이 되었다. 4월 초에 상추 모종과 열무 씨앗을 무상으로 지급 받아서 소중하게 씨 뿌리고 모종을 심었더니 5월부터 상추를 심심찮게 따서 샐러드도 해먹고, 상추쌈을 싸서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리면 상긋한 맛이 일품이다.
촘촘하게 씨앗을 뿌려서 되게 자란 열무는 듬성듬성 속아서 열무김치를 담가 먹으니 새큼한 맛이 밥맛을 돋운다. 한 일주일이 지나니 열무는 대궁이 나오고 쇠기 시작하여 모두 뽑아서 이웃집도 나누어 주고 살짝 삶아서 무침을 해먹으니 그것도 별미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열무를 뽑고 난 밭에 마땅히 심을게 없어 들깻잎을 심어 재미를 보았듯이 금년에도 들깨모종 한 판을 사서 좀 뵈다싶게 심었다. 오랜 가믐중에 열심히 물을 주었더니 이젠 제법 자라서 들깨 밭에서 고소하고 향긋한 그 특유의 냄새를 느끼게 된다.
배추나 무는 해충 벌레의 공격에 속수무책인데 비하여 들깨는 심은 대로 물만 거르지 않고 주면 벌레 먹는 일도 없고 손바닥만큼씩 잎이 커져서 들깨 특유의 향기를 맡으며 쌈으로 먹을 수 있어 좋다.
들깻잎은 왜 벌레가 먹지 않을까?
모든 식물에는 타감작용(他感作用)이라는 자기 방어 작용을 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타감작용(Allelopathie)은 식물이 성장하면서 일정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경쟁이 되는 주변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작용을 말한다.
소나무의 낙엽은 주변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어린 소나무 까지도 자라지 못하게 하며, 단풍나무의 빨강 단풍잎도 땅에 떨어져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집에서 가꾸며 향기를 맡으며 즐거워하는 허브식물도 이에 해당하며 마늘과고추의 매운맛도 타감 물질의 일종 인 것이다.
구문초(驅蚊草)는 독특한 냄새를 발산하여 모기를 쫓는다고 한다.
이 세상은 살아남기 위한 별별 수단을 다써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들깻잎도 해충을 쫓아내려고 향긋한 냄새를 발산하고 있는데 우리 사람들은 그 향기가 좋아서 식용으로 즐기고 있으니
만사가 모두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식물과 식물 간, 동물과 동물 간에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남으려는 노력과, 생산자(식물)와 소비자(동물)의 피나는 존재를 위한 투쟁 속에서
인간 사회는 예외 일 수 있을까 반문해본다.
남의 독한 허물을 탓하지 말고, 협력자의 입장에서 달콤한 향기로 바꾸어 맡아 보면서 사는 것이 삶의 방편일 수도 있겠다.
금년에도 들깻잎에 찬 보리밥 싸서 그 향기 그윽하게 맛보면서 허허한 영혼을 살찌워 보련다.
2017.5.27.(토)
수필가 박 병 무
첫댓글 자주듣던 텃밭농사 재미 톡톡히 보고 계시네요 .. ㅎ
심심치 않게 일손도 되고 취미 운동을 하며 자연과 가까이 접하며 채소와의 교감도 큰것 같습니다.
이야길 듣고 보니 타감작용(他感作用)이라는 자기방어 작용을 하는거 였군요.
산행하다가도 채소에 밥(물)주려고 일찍 하산하던 모습이 생생해 집니다.
작은 화분 하나 키우며 즐기는 생각을 하니 화정님의 채소밭 농사는 대농인셈이지요
다음주 산행시엔 텃밭열무김치와 상추쌈장도 구경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