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칭송받았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고,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비운의 예술가. 그런 선생을 기리기 위해 통영시는 지난 2010년 생가 터 부근에 공원을 짓고 기념관을 세웠다. 그동안 선생의 이름이 아닌 지명을 따 '도천테마기념관'으로 불린 이곳은 선생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올해 '윤이상기념관'으로 명칭을 바꿨다. 그리고 선생의 귀향을 축하라도 하듯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 방문객을 맞았다.
윤이상 탄생 100년, 기념관 새단장
윤이상 선생의 소년기 향수가 깃든 통영시 도천동 일원에 자리한 윤이상기념공원(옛 도천테마공원)에는 대지 가장자리를 따라 가로로 길게 뻗은 건물이 있다. 석 달에 걸친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9월 15일 새롭게 문을 연 윤이상기념관이다. 통영시는 4억2000만원을 들여 지상 2층 규모의 기념관(연면적 898㎡)을 재정비했다. 윤이상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는 2층 전시실은 관람 편의를 개선하고, 전시 콘텐츠의 내용을 보강했다. 1층 실내공연장은 프린지 공연과 세미나 등 지역예술인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로비는 휴게시설이 부족하다는 기존 방문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카페가 들어설 계획이다. 기념관 부속 건물인 '베를린하우스'도 돋보인다. 직원 관사로 쓰이던 2층 전체를 선생의 독일 자택을 축소한 모습으로 꾸며 생전 삶을 엿볼 수 있게 했다. 1층은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고 미래의 음악가를 양성하기 위해 윤이상 음악도서관으로 활용한다.
윤이상 생애와 음악적 업적 핵심 개괄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한 탐방은 2층에서 시작한다. 석재 계단을 타고 올라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선생의 흉상이 시선을 끈다. 뒷벽은 선생이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뜨기까지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표와 작품 목록으로 채워져 있다. 새 단장한 전시실은 기존 윤이상 선생의 생애를 다룬 콘텐츠에 음악적 업적까지 더해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예술 세계를 돌아보는 데 더욱 집중한다. 이를 위해 콘텐츠를 유럽 유학 전과 후, 음악 세계 등 3가지 주제로 나눠 전시했다. 관람객은 전시 패널이 부착된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고향 통영에서 14살 때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한 이후 항일 활동에 가담한 일, 39살 때 독일로 떠나 음악적 업적을 쌓던 중 닥친 동베를린사건, 시련을 딛고 음악가로서 정상
에 서기까지 윤이상 선생의 이야기에 사진과 유품을 보태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전시물도 다수 보강됐다. 일제강점기 경찰을 피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첼로, 항상 품고 다녔던 소형 태극기, 독일에서 받은 메달과 훈장, 여권, 편지, 친필악보 등 기존 전시돼 있던 유품을 비롯해 선생이 생전 즐겨들었던 음반과 책, 그림 등을 만난다.
독일 자택 재현한 '베를린하우스'
바뀐 전시실의 가장 큰 특징은 윤이상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다루는 데 있어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선생의 1993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강의 내용을 발췌한 부분은 그의 음악 세계 중 가장 깊은 곳 까지 관람객을 안내한다. 선생의 대표적인 작곡 기법인 '주요 음(Hauptton)'과 '주요음향(Hauptklang)'에 대한 해설도 담았다. 전시실을 나서 베를린하우스로 간다. 윤이상 선생의 독일 베를린 자택을 축소, 재현한 이곳은 선생이 생전 사용하던 물건들로 꾸며졌다. 2층 다락방에 마련된 서재는 생전 선생이 읽고 공부했던 책과 필기구, 안경, 오디오 등을 전시해 선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맞은편 공간은 피아노와 소파, 탁자, 카펫 등 선생의 손때가 묻은 가구들로 응접실 분위기를 재현했다. 모두 선생의 딸인 윤정씨가 독일에서 직접 가져온 유품들이다. 딸과 아내 이수자 여사가 직접 가구를 배치해 실제 베를린 자택 내부와 매우 흡사한 모습이다. 타계하기 전까지 직접 몰던 1988년형 벤츠 승용차도 실물로 만날 수 있다.
'윤이상 이름 되찾기' 시민이 주도
이중도 윤이상기념관 팀장은 "재개관 이후 평일에만 하루 200명 이상이 다녀가 단체관람객이 있는 날이면 해설 인력이 빠듯할 정도"라고 말했다. 바뀐 시설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윤이상' 이름 석자의 귀환을 반기는 분위기가 기념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선생을 둘러싼 이념 논란으로 도천테마기념관으로 불렸던 윤이상기념관은 지난 9월 11일 열린 통영시의회 제181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도천테마기념관 설치 및 관리 운영조례'를 '윤이상기념관 설치 및 운영 조례'로 변경하는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됨에 따라 제 이름을 찾게 됐다. 이는 시민의 목소리에서 비롯됐다. 지난 8월 통영 시민단체 '황금파도'가 "통영시가 국내 최초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선정된 것은 윤이상 선생의 업적이 큰 역할을 한 것"이라며 윤이상기념관으로 개명할 것을 시의회에 건의한 것. 한편 통영시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인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공연 주제를 대부분 선생의 음악으로 기획하고 있다. 특히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는 지난 9월 선생의 작품으로 유럽 투어 공연에 나서 큰 호응을 얻었다. 시는 선생의서거일인 오는 11월 3일 공식 개명 행사를 갖고 윤이상기념관의 새 단장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