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의 마음공부 >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대박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을 보며 얻은 깨달음 |
글 | 스텔라 박
닭장사 하느라 형사의 본업을 망각한 주인공들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망각한 우리들을 보는 느낌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연일 대박 고공행진이다.
2019년 1월 말에 개봉한 이 영화는 보고 나온 이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현재까지 누적관객 1600만,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 영화를 많이 본다. 1600만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는 말은 국민 3명 중 한 사람이 그 영화를 봤다는 말이다. 갓난 아기, 10대 이하,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국민이다 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극한직업>이 어떤 영화인지, 안 보신 분들도 있을 터이니 아주 짧고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영화 속에서 마약반 전담 형사들은 마약범들을 검거하기 위해 마약범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건물 건너편의 치킨집에 잠복해 있다가 그 치킨집이 문을 닫는다니까, 급기야 치킨집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영화, <극한직업> 중 한 장면
처음에는 그냥 잠복해 있기 위한 장소로 치킨집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손님들이 자꾸 들이닥친다. 매번 치킨집에 닭이 없다고 그냥 보내는 것도 의심스러울 것 같아, 닭을 튀겨 팔기 시작하는데… 첫 손님이 소셜미디어에 너무 맛있다는 내용을 올리면서 졸지에 대박 맛집이 된다.
형사들은 마약반 소탕이라는 본분을 입고 열심히 닭 장사를 한다.
그러다가 마약팀 보스가 떴는데도 닭 장사를 하다가 놓쳐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깨닫는다. 아, 맞아. 우리는 지금 범인 잡으려고 잠복하고 있는 형사들이지…
마야의 세상에 속아 우리들의 본성을 망각하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어찌나 똑같던지, 영화를 보며 무릎을 내려쳤다.
욕망 너머의 것을 욕망하라
우리의 본성, 표현을 바꾸자면 불성, 주인공, 참나, 자재신, 관자재보살, 근원(Source), 브라흐만, 그 무엇으로 불리고 있을지라도 본성의 성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씌여진 정보가 없는, 그러니 과거가 없는, 미래의 계획도 없는,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의 세계인, 현존인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고 있는 역할놀이에 완전히 취해 있다. 그리고 그 마야의 세상을 변치 않는다고 믿고, 변치 않기를 바라고, 행복이라 여기고, 나의 것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진정한 내가 아니기에 무상하며, 고통이며, 자성이 없다. 무상한 것은 무상하다고 알아차리며 내가 개입하려 하지 않고 내려놓으면 된다.
그런데 마야의 세상이라는 것이 어쩜 이렇게도 감쪽 같은지… 우리들은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서도 속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마야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이다. 끊임없는 에고의 놀음, 끊임없는 마음의 연기작용에 대해 계속 살펴보고 있자면 이 세계에 대해 염오가 일어난다. 그리고 마음의 연기작용이 계속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게 된다.
우습겠지만 그 ‘욕망’이 있어 내가 사라진다. 그 욕망이 에고를 죽게 만든다. 그러니 욕망은 내가 나를 만나게 해주는 원인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인 욕망이 있었기에 이 무상한 고통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고, 결국 에고의 죽음을 결과하는 것이다.
뱀의 입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 있다. 뱀은 인류의 모든 문화권에서 죽음과 함께 부활, 새로운 탄생을 의미했다. 이 상징은 우로보로스(Uroboros)라고 불리는데 영원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자족을 의미한다. 나는 이 상징이야말로 “깨달음으로 에고가 죽고 진정한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참나)를 만나기 위해 내(나라고 우리들이 믿고 있던 것)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죽은 곳에서 진정한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내가 죽은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는 사실 계속 존재했었구나. 깨달은 후, 우리는 죽은 채로 존재한다. 이미 죽고 다시 태어나지 않았으니 이제 죽을 일도 없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뱀의 입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Uroboros) 상징

탐진치가 사라진 지점, 열반
니까야에 적혀 있는 우리들의 본래 모습
디가니까야 27장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 인류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기록이다. 세존께서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받으실 때마다 그닥 속시원하게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안고 사는 것에 대해서도 늘 뭐라고 한 말씀 하셨었다. 그런 의문이 지금 중생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해지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디가니까야 27장의 말씀을 단지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신화라던가, 카스트제도에 대한 상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읽어가다 보면 어떻게 중생들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망각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채, 고통받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다.
“바셋타여! 오랜 기간을 지나간 후 언젠가는 이 세계가 무너지는 시간이 온다. 이 세계가 무너질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光音天)으로 모습을 바꾸어 태어난다…..”로 이어지는 니까야 구절을 보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은 “정신력으로 형성되고 환희를 먹으며 제 몸에서 빛을 내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깨끗하고 복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을 존재했던 우리들은 어쩌다가 우리의 본래 모습을 망각하고 삶이라는 매트릭스 속에 놓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욕망’ 때문이었다.
라사라는 우유제품 같기도 하고 꿀 같은 맛이 나는 먹을 것을 보고 탐욕에 물들기 쉬운 자가 욕망을 일으킨다. 라사를 작은 덩어리로 빚어 나눠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인간의 몸에서 나던 빛도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의 빛이 사라지자 태양과 달이, 그리고 별이 나타났다. 중생의 몸은 빛이 사라지고 거칠어졌으며 용모의 차이가 생겨났다. 잘 생긴 자들이 못 생긴 자들을 경멸하며 거만해졌을 때 먹을 것인 라사가 사라졌다.
욕망, 그리고 동족에 대한 경멸과 거만함의 반복으로 인간의 삶은 점점 힘들어진다. 그리고 식량은 계속해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라사가 사라지자 팝파타카라고 하는 버섯류가 나타났지만 인간들은 계속해서 욕망하고 동족을 경멸하며 거만을 떤다. 그로 인해 탑파타카가 사라지고 덩굴풀(바다라타)이 대체 식품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의 몸은 이것을 먹고서 더 거칠어지고 용모의 차이도 더욱 심해졌다. 잘 생긴 중생이 못 생긴 자들을 경멸하며 거만해졌을 때 바다라타라는 덩굴풀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당신이 모르는 영적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당신이 망각한 것(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주는 것뿐입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그곳에는 경작하지 않은 쌀이 나타난다. 쌀을 주식을 삼자 인간의 몸은 더 거칠어지고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 대한 욕정이 일어났고 섹스를 하게 된다. 섹스하는 모습을 가리기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중략…
욕망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깨어나려면 일단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삶이 고통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들이 가장 큰 쾌락으로 여기는 삶의 경험, 행복으로 여기는 삶의 경험들… 즉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해도, 아무리 어여쁜 여인들과의 섹스가 즐겁다 해도, 아무리 돈버는 재미가 크다 해도, 이는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은 고통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 무상한 것을 영원히 갖고자 한다.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욕망이다.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좋다고’ 욕망하는 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변하고, 고통이고, 나라고 할만한 자성이 없음을 철견해야한다. 그러다 보면 무상, 고, 무아의 역할 놀이를 벗어난 고요한 지점을 만나게 된다.
‘함(Doing)이 없는 존재(Being)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죽은 곳에서 본래부터 있었던 진아를 만나게 되고 진아가 이끄는 대로 우주의 춤을 추며 존재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주인공인 마약반의 고상기 반장의 대사를 옮겨본다.
“이것들이 진짜… 야, 정신 안 차릴래? 우리가 지금 닭 장사하는 거야?
야, 맨날 닭 튀기고 테이블 닦다 보니까 니들이 뭔지 잊어버렸어?
야, 그럼 이 참에 아예 사표 쓰고 본격적으로 닭집을 차리든가!”
그렇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닭 장사가 아니다. 형사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눈에 보여지는 우리들이 아니다. 욕망의 세계에 취해 윤회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 탐진치를 모두 여의고 진정한 나로서 존재해보자.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