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기드온, 판관의 소명을 받다
기드온은 므나쎄 지파 출신의 판관입니다. 그가 백성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은 일은 판관 6장에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충실치 않은 대가로 노동의 결실을 적에게 빼앗기는 고통을 겪습니다. 백성이 씨를 뿌려 놓으면 미디안의 무리가 올라와 양식을 남겨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3-4절). 판관 드보라 시대에는 카인족 야엘, 곧 모세의 미디안 사람 장인 호밥의 후손(판관 4,11)이 이스라엘을 도와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쓰러뜨렸지만, 기드온 시대에는 미디안이 위협 세력으로 바뀌었습니다. 국제 관계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하는데, 이스라엘과 미디안이 바로 그랬습니다.
기드온이 판관으로 세워진 과정은 퍽 특이합니다. 그는 오프라의 집에서 적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밀을 몰래 떨다가, 향엽나무 아래에서 발현한 천사에게 메시지를 받습니다. 처음에는 천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천사들이 대부분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도 아들에 대한 수태고지를 전해들었을 때, 그 소식을 알려준 이가 천사였음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천사가 제단 불길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지요(13,16.20-21). 기드온의 경우에는 그가 정말 하느님의 전령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천사에게 징표를 청합니다. 이에 천사는 돌에서 불이 나오게 하여, 기드온이 놓아둔 고기와 빵을 불사름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였습니다(6,20-22).
그런데 사실 기드온은 겁쟁이였습니다(7,9-11). 그랬던 그가 용사로 거듭나 이스라엘을 구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이 판관으로 세워졌다는 천사의 말에 기드온은 하롯 샘에 진을 치지만(1절), 정작 그가 두려워 떨자 이를 아신 주님께서는 시종 푸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을 먼저 살펴보게 하십니다. 거기서 기드온은 적군이 꾼 꿈, 곧 보리 빵 하나가 굴러와 미디안의 천막을 쓰러뜨렸다는 꿈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냅니다(13-15절). 그 보리 빵이 자신과 이스라엘 군대이고, 농경민(보리 빵)이 유목민(천막)을 꺾는다는 의미임을 알아 차렸기 때문입니다. 그 뒤 기드온은 군사 삼백 명과 함께 미디안을 제압하기 위해 나섭니다. 이때, 미디안의 보초병이 교대하는 시간을 노리는데요(19절), 아마도 임무를 마친 이들은 피곤하고 막 교대한 이들은 잠에서 덜 깼을 터이므로, 그들을 쉽게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백 명의 병사가 단지를 깨고 나팔을 불어 적을 교란시키자, 미디안은 혼란에 빠져 자기들끼리 치고 받다가 쓰러졌으며, 이스라엘은 자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21절). 미디안은 한동안 서로를 죽이다가 요르단 동쪽, 곧 자신들이 쳐들어온 방향으로 도망쳤고(22절)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8,28).
성소 주일인 오늘, 참으로 부족한 우리 자신이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결핍까지 살펴 채우시어 당신의 도구로 쓰신다는 사실을, 처음엔 겁쟁이였다가 용사로 거듭난 판관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4월 21일(나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