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서영 아나운서의 미소는 얼굴에만 번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듯하여 보는 사람까지 상쾌해진다.
한때 아이돌그룹 가수로도 활동한 공서영은 프로야구에도 조예가 있어 한 채널에서 하이라이트를 매끄럽게 진행하고 있다.
타의에 의해 그룹이 해체된 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던 공서영은 KBS에 '고졸도 아나운서 응시자격이 있느냐'고 물어
KBS에서 학력제한이 없다고 답변해주자 열공모드로 돌입, 당당히 합격한 화재의 젊은이였다.
히든싱어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해서는 누구보다 열렬한 호응으로 시청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기 나라문고예요.”
“아, 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말씀하셨던 카잔차키스의 책이 들어왔거든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책 제목이 뭐지요?”
“영혼의 자서전과 최후의 유혹입니다.”
“미할리스 대장은 못 구했나요?”
“네, 그 책은 절판이 돼서 요즘은 안 나온답니다.”
“잘 알았습니다. 오후에 나갈게요.”
사실 카잔차키스보다 질박하게 살다 간 그의 아버지 미할리스 카잔차키스의 일생이 훨씬 매력적이어서 구해달라고 했던건데…
막 잠이 쏟아지던 참이라 마무리잠을 한숨 자고 서점으로 갔다.
대낮에 마무리잠이라니 무슨 얘긴가 싶겠지만,
택시 일을 그만두고 백수협회에 가입한 뒤로 낮밤을 가리지 않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다보니 그게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먼저 서점 여사장이 내미는 책 봉투가 너무 두터워서 의아했다.
꺼내보니 「영혼의 자서전」과 「최후의 유혹」이 각각 2권씩, 모두 4권이었다.
상‧하권으로 된 두 책은 분량도 각각 800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다가
책값 또한 예상을 헐썩 초과했지만 무를 수도 없어 돈을 치르고 서점을 나왔다.
지난번 동문체육대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이도 있고 하니 옷이나 좀 제대로 입고 다니라’고 충고를 하던데,
수입이 0인 사람은 옷은커녕 몇 푼 안 되는 책값에도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작년에 작은애가 내 생일선물로 사다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난 뒤였다.
작품에 너무 매료되어 그가 쓴 「미할리스 대장」을 주문하기 위해 서점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은 그 책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네 서점에 책을 공급해주는 도매상과 계약을 맺은 출판사의 책만 주문이 가능하다며,
나중에라도 책을 구하면 연락해주겠다는 성의 있는 대답이었다.
마침 읽을 책이 밀려 있던 참이라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는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벌써 7개월 전의 일인데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책을 구해놓고 연락해준 성의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했던 박채림의 성형하기 전 풋풋한 미모를 닮은 여사장은 생긴 것만큼이나 심성도 싹싹하다.
책을 번역한 안정효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영자 일간지 <The Korea Herald> 기자와 한국브리태니커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영화로도 나와 크게 성공한 「하얀 전쟁」「은마는 오지 않는다」「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 여러 편의 소설도 썼다.
번역서 가운데서는 버트런드 러셀의 「권력」,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등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윤기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에 비해 선택한 어휘는 거칠고 문장은 앞뒤가 엉켜 있어 새삼 故 이윤기가 그립다.
두 책의 ‘서문’을 읽어보니 절반의 성공이었다.
멋모르고 받아온 「최후의 유혹」은 예수의 삶을 그린 책이라 아무래도 읽어낼 재간이 없다는 얘기다.
「최후의 유혹」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토록 무섭고도 참혹한 골고다로 향하는 길을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가본 적이 없었고,
그토록 강렬한 감정과 이해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인류의 위대한 희망과 고뇌를 고해하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나는 어찌나 감동했는지 눈물이 가득히 고이곤 했다.
나는 그토록 깊은 고통을 불러일으키며 내 마음속으로 방울져 떨어지는 그리스도의 피를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런 고백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겐 감동적이겠지만 안 믿는 사람에겐 낯간지러운 자기기만으로 보여 혐오감만 준다.
나중에 「영혼의 자서전」을 읽다 보니 카잔차키스는 원체 감정과잉이 좀 심한 편이라 저러한 과장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예수(BC 7~AD 26 또는 BC 2~AD 36)가 언제 인류를 걱정하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단 말인가.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처럼 뚜렷한 목표의식도 없던 예수는 로마제국의 실정법을 위반한 죄로 처형당한 불행한 청년일 뿐이다.
니체는 서사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예수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 일찍 죽고 많은 사람들은 너무 늦게 죽는다.
천천히 죽을 것을 설교하는 자들이 존경하는 저 히브리 청년은 너무 일찍 죽었다.
그의 때 이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불운이 되었다.
내 나이만큼만 살았더라도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했을 만큼 선량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채 성숙하지 못했다.’
그렇다.
예수는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개인지도를 받은 훌륭한 스승도 없었고 이룩해놓은 업적도 없는, ‘채 성숙하지 못한’ 청년이었다.
지식, 지성, 지혜, 경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다른 사람을 이끌 만한 자질을 갖출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는 다만 일하기 싫은 열두 명의 건달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놓다가 당국에 체포되어 처형당했을 뿐이다.
이 미숙하고 불행한 청년에게, 그를 믿는 자들은 로마제국이 어깨에 지웠던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예수에 비해 공자와 석가는 당대 최고 지성인으로서 훌륭한 인품과 식견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르침에 깊이가 있는 것이다.
‘누구는 너만큼 안 똑똑해서 예수를 믿는 줄 아느냐’ 하는 비난은 반사한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이전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고 믿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도 그보다 똑똑한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다만 계란을 세로로 세울 때 미리 밑면을 톡 깨뜨려서 편편하게 만드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언젠가 아인슈타인 박사나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모든 인간이 신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날이 오면
전쟁과 탐욕과 갈등은 사라지고 모든 절집과 성당과 교회와 사원들은 서낭당처럼 추억 어린 유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인 「영혼의 자서전」 역시 하느님 얘기로 어수선했지만 그나마 참을 만해서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러나 카잔차키스처럼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의 일생은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어 걸러 가며 받아들여야 한다.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이라고 해놓고 보니 「야간 비행」 독후감에서 잠깐 언급한 체 게바라 생각이 떠올라 짚고 넘어간다.
우리 동기 가운데도 불꽃같이 살다 간 체 게바라를 흠모하는 친구가 있어 ‘파괴와 살상의 표상’이라는 평에 의아해할까 해서다.
체 게바라가 한 일은 혁명 당시 세계 최선진국 가운데 한 나라였던 쿠바 국민들의 삶을 북한 다음으로 비참하게 만든 것뿐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투쟁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서 자신의 폭력성을 마음껏 휘둘렀던 것이다.
체 게바라는 친구인 카스트로가 권력을 잡도록 도운 것이지 쿠바 국민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가 바라던 대로 상류층이 누리던 특권을 박탈하여 국민에게 되돌려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감추고 있던 욕심대로 저 혼자 독차지하여 바티스타 정권 때보다 훨씬 가혹한 독재와 부패로 쿠바를 망쳐놓았다.
이 나라 좌파들은 상굿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지만, 김일성이 북한 주민들에게 가져다준 결과는 과연 어떠한가?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에게 싫증이 나자 볼리비아로 건너가 새로운 싸움판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39세의 나이에 처형당했다.
그의 처형은 인류를 위해서는 천만다행이었다.
오래 살았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나라를 망치고 얼마나 더 많은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지 모르는 폭력적인 존재였다.
좌편향 인터넷사전인 <위키백과>는 체 게바라를 예수에 비견하지만,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예수만큼이나 억지논리다.
신의 아들은 대한민국에도 천지 삐까리다.
이회창의 두 아들처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병역을 면탈하는 소위 신의 아들은 1년에도 수천 명씩 ‘거룩하게’ 탄생한다.
「영혼의 자서전」 역시 서문이 비장하다.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덧없도다! 이 모두가 나와 더불어 무덤으로 가리라.
…나는 내 임무를 다했다. 잘 있거라!’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카잔차키스의 아내 엘레니도 이 대목에서 눈물이 치솟아 더 읽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다.
창작활동을 더 하고싶지만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다, 육신의 한계에 미련을 떨쳐보려는 작가의 방백(傍白)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지성은 오감의 총화니까 맨 뒤에 썼다 하더라도, 오감의 순서를 왜 시각-후각-촉각-미각-청각 순으로 나열했을까?
정보를 받아들이는 중요도에 따라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으로 표현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카잔차키스는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의 어느 날 밤에 경험했던 일을 격정적으로 회고했다.
산 위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던 카잔차키스는 격노해서 소리쳤다.
“난 너희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
놀란 친구가 달려와 카잔차키스의 팔을 잡고 누구를 죽이겠다는 것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어. 어떤 다른 사람이었어.”
아마 체 게바라도 어린 시절 같은 체험을 했을 터이다.
내면에 잠재해 있는 폭력성, 그 마성(魔性)이 카잔차키스와 체 게바라를 무자비한 투쟁의 장으로 내몰았을 터이다.
카잔차키스는 영혼과 신앙의 투쟁으로, 체 게바라는 인간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무력 투쟁으로.
소수에게만 깃들어 있는 그 마성은 때로 다정하게 어린애의 뺨을 쓰다듬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그 애의 목을 비튼다. (계속)
첫댓글 내가 읽기는 난해할런가?
그래도 도전해 볼려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성원이 친구가 쓰는 이 독후감으로 만족하려네.
냉중에 술 한 잔 권하는 것으로 그 값 치를 작정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