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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물코의 비밀
유경숙 지음|141×217×15 mm|240쪽
15,500원|ISBN 979-11-308-1421-6 03810 | 2019.4.30.
■ 도서 소개
세상의 세밀화를 포착해가는 작가의 시선
유경숙의 산문을 모은 『세상, 그물코의 비밀』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대뜸 “세상사, 창랑의 물이 맑은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맑고 흐린 세상 탓을 하기보다 자신이 결정한 삶의 방향을 거침없이 탐색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생물에는 그것만이 지닌 세밀화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작가만이 포착했을 세밀화의 진경이 궁금하다.
■ 목차
■ 책머리에
1. 모정
방언 / 배롱나무 아래에서 / 만쿠르트의 전설 / 탱자나무집 남자 / 아그배꽃 향기 / 어둠 속의 댄서 / 꼬마 천사 은성이와 이별 / 서랍 속 편지 / 굴뚝 낮은 집
2. 세상, 그물코의 비밀
툰드라의 야생화 / 종자의 비밀 / 에덴의 동쪽, 알혼섬 / 기다림이 낳은, 세한도 / 누가 부른 재앙인가? /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멈추다, 그 꽃에서 / 굴뚝 청소부 / 돌아온 꾀꼬리 / 절름발이 염소의 몫
3. 도원을 찾아서
보길도에서 취하다 / 잠향(潛香)이 흐르는 명화 / 탱자나무 가시는 제 살을 찌르지 않는다 / 그이의 무덤가에 조팝나무 한 그루 심어주고 싶다 / 기린에 대한 단상 / 천상의 방 / 되재공소를 찾아서 / 유림(柳林) 속을 걷다 / 문향(文香) / 파에야, 재회의 약속
4. 책과 영화의 뒷담화
유랑의 성자, 니코스 카잔자키스 / 소설은 회의주의자의 문학 / 누군가의 고뇌와 비통으로 태어난 문장들! / 현대인의 정신적 내상을 그린 소설 / 노학자의 깊은 눈길을 따라 겸재와 만나다 / 수상쩍은 경계를 맛보다 / 찬이슬 같은 소설 / 참 다행이었다, 놓칠 뻔했던 『위대한 개츠비』 / 아슬아슬한 감정의 경계를 실핏줄처럼 그려냈다 / 작은 소리지만 울림이 깊다 / 짭조름하게 간이 밴 중국 보고서 / 베르길리우스의 지팡이 / 암컷의 속울음 / <귀래(歸來)>를 보고 / 다문 입 / <간신>, 흥청의 제국
5. 내가 따를 사표
무(無)에의 추구 / 칠층산 / 눈먼 이의 소원 / 줄탁동시의 기적 / 파스카 신비 / 노회한 그물망 / 성 아우구스티누스 / 창공의 새들처럼 / 온생명
■ 저자 소개
유경숙(柳京淑)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경숙 작가는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첫 창작집『청어남자』(2011)와 e북 중편집『백수광부의 침묵』(2016) 그리고『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2017) 엽편소설집을 출간했다. 국제문학단체 ‘한국 카잔자키스의 친구들’ 회장을 역임했다.
■ 출판사 리뷰
소설가의 산문집이어서일까.『세상, 그물코의 비밀』은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자유로이 상상력을 뻗치는 작가 유경숙의 소설처럼, 볼 수 있는 것으로부터 볼 수 없는 것까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작가는 신화 세계든 현실 세계든 일단 호기심이 생기면 놓지 않고 끝까지 추적한다. 그 여정에 작가의 상상력과 경험, 지식이 더해져 종래에는 놀라운 이야기의 결정체를 이뤄낸다. 이 산문집에는, 충청도 깡촌에서 자란 작가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 동기 외에도 진솔한 개인적 고백이 덤으로 얹혔다.
1부 ‘모정’에는 세상 어미들의 무조건적이고 때론 맹독과도 같은 모성애를 주제로 아홉 편의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늙고 헐렁한 몸피에서 뿜어져 나오는 춤(몸짓)을 보며 ‘生의 방언’을 읽어내는 예지력 깊은 눈길이 인상적인「방언」, 전쟁 포로로 정체성을 잃고 노예가 되어버린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만쿠르트의 전설」 등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2부 ‘세상, 그물코의 비밀’「툰드라의 야생화」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경계선도 없이 공존하는 수상쩍은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티베트 성자 밀라레파의 이야기, <세한도>와 추사 김정희의 절대 고독이 세상의 비밀을 속삭인다.
3부 ‘도원을 찾아서’에서 작가는 ‘맹탕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면 동물원에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기린의 눈빛에 담긴 서정시를 읽고 신체의 부조화 속에 감춰진 신비, 비운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4부 ‘책과 영화의 뒷담화’에서 작가는 니코스 카잔자키스, 홀리오 꼬르따사르, 그 외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읽어냈는가를 신랄하고 품 넓게 그려내고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을 특유의 진솔한 문체로 써나간다.
5부 ‘내가 따를 사표’에서는 작가 자신의 인생 스승으로 삼은 여러 인물이 소개된다. 십자가의 성 요한, 토마스 머튼, 니체 등 작가의 생에 무한한 지식과 통찰을 안겨주었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미 유경숙의 소설에 매료되었던 독자라면 산문집『세상, 그물코의 비밀』을 통해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그 속에서 노니는 쉬리의 지느러미처럼 느리고 유연하게 몸을 풀며’ 걷는 작가의 여유로움에서 나온 졸박한 문체를 한층 농밀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머리말에서
세상사, 창랑의 물이 맑은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초사(楚辭)』 굴원 편에 나오는「어부사」의 노랫말이다. 나는 여기서 굴원의 청렴보다 어부의 노랫말에 방점을 찍어야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때, 고전은 나의 정신적 밥이었지만, 일찍이 곁길로 빠져, 상앗대로 장단을 치며 떠난 어부처럼 실용을 찾아 세상을 떠돌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즈음은 강물이 맑고 탁한 것을 따지기보다 그 물에 발을 씻고 어딘가 다른 여정으로 건너갈 것을 꿈꾼다. 내 더러운 발을 씻기에 탁한 물마저 고마울 뿐이다. 애초부터 내게는 추상(推尙)할 갓끈도 없었을뿐더러 따를 학파나 고귀한 이념도 없었다. 그런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고 글을 쓰려 노력했다. 그러기에 여기 실린 짤막한 산문들도 주류 문학이나 사상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강가의 늪이나 못가에서 어슬렁거리다 한 토막씩 건져 올린 잡스러운 것들이다.
세상의 사물과 생물에는 그것만이 지닌 세밀화가 숨겨져 있다. 제 살 궁리로 골몰하는 치열함, 그것이 어떤 그물코를 만들고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고 연결되어 하나의 종(種)을 유지하며 살아내는 것,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지? 내가 세상을 걸으며 만났던 모든 낱생명의 식물과 동물 그리고 무생물 앞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연현상과 세상과의 관계, 저들의 세밀화 속에 숨겨진 지문을 찾고, 생명의 들숨과 날숨소리를 듣고 또 미세한 떨림을 관찰하여 인간의 언어로 전하는 것, 그것이 나의 글쓰기 작업이다. 옛사람들은 사물 속의 정밀을 어떻게 관찰했으며 교감의 신호를 읽어냈고 메커니즘을 꿰뚫었을까. 책에서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의 의문이, 이국의 낯선 땅을 걷다가 번쩍하고 뒤통수를 칠 때가 있었다.
내 삶의 절반의 안내자는 여행이었고 책이었다. 여기서 얻은 소재나 경험이 글의 동력이었고 살게 하는 힘이었다. 이제 창랑을 건너왔고 맑고 흐렸던 때를 수없이 지나 강을 거슬러 고요한 골짜기에 다다랐다. 생(生)의 저물녘에 행운이 따른다면, 나의 민낯과 내면의 깊이까지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처럼 맑은 옹달샘 하나 만나서 깨끗하게 세수할 수 있었으면.
젊은 날, 내 꼴은 코나투스(conatus)와 이성 간에 고삐 채기 투쟁으로 여기저기 뿔이 솟아, 꼴불견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낸 상처 안에 갇혀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젊음은 쏜살같이 내빼버렸다. 이제야 내면의 힘이었던 코나투스가 보이고 그 뿔을 죄고 다스릴 감이 잡히는 중인데…….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라는 생각은 동종 생물에 대한 반칙이지 않은가. 그때, 상강(湘江)을 건너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늙은이로 강가에 쭈그려 앉아 세상 탓만 하고 있을까? 아찔하다!
■ 추천사
트로이 발굴로 유명한 하인리히 슐리만은 젊어서 막대한 부와 행운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신화에 빠져 고고학을 팠고, 파다 못해 고고학 자체가 되고서야 삶의 진정한 기쁨을 느꼈다. 유경숙 작가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슐리만 중 하나이다.『세상, 그물코의 비밀』에서 작가는 ‘시절 인연’을 만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장소가 인연이 되어 복으로 돌아왔던 사례를 소개한다.(「노학자의 깊은 눈길을 따라 겸재와 만나다」) 작가 유경숙은 그런 사람이다. 소위 시절 인연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제 몸에 불붙은 그 무엇을 뜨거운 줄도 모르고 황홀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발목이나 발가락을 다쳐 절뚝거리면서도 기어이 걸어갔던 그의 여행길이 궁금하다. 오늘부터 나는 이 책을 베개 밑에 넣고 잠들 테다. ― 노성두(서양미술사학자)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풍파를 겪지 않을 수가 없는데, 유경숙 작가의 산문집『세상, 그물코의 비밀』은 풍파를 겪더라도 너끈히 견딜 힘의 비밀을 제시한다. 그 힘은, 풍파가 나에게 닥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게 아니라 닥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 즉 정신적 지층에 경험의 공간을 확보해놓는 재기로부터 비롯된다. ― 조용헌(건국대 석좌교수, 칼럼니스트)
■ 책 속으로
종교는 정도(正道)의 사표인 동시에 인도자이다. 기독교는 그 정신을 ‘사랑’에 기본을 둔다. 민생이 고난을 당하면 선도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구제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어떠한가. 교회는 자기충족에 만족하려 한다. 성전은 고대광실처럼 거대하고 성직자는 민생을 구제하여 하나님 앞으로 전도하지 못하고 신도에게 전도의 의무를 강요한다. 목회자가 모범이 되지 못하고 말로만 성령을 강조한다. 진정 우리 교회는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가. 왕범지는 진실된 민심의 대언자 역할을 하였다. 그의 시는 빈부의 차별에서는 갈등과 각종 부역(賦役)에 시달리는 고통의 고발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죽기로 호소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이다. 그래서 두보(杜甫)의 시를 ‘시사(詩史)’라 한다면 왕범지의 시는 ‘시민(詩民)’즉 시를 통하여 민심을 대변하는 시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표현이 정제되지 않았을 뿐, 열정과 강개가 있고 기개와 용기가 발양되어 있기에 더욱 값지다. 시인은 백성들이 부병(府兵)과 요역(徭役), 그리고 각종 조세(租稅)로 인해 생활의 기반과 안정을 상실당했다고 보며, 신분과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극단적인 빈부 격차는 사회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본다. (42쪽)
불경에서 주장하는 “마음을 비우는”심적 경지는 기독교의 성경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간다”는 예수의 말씀과 비교할 때 소위 신인 일체적 신앙관이라는 관점에서, 시 창작의 정신적 자세를 입신적 단계까지 승화시켜야 함을 주창한 엄우 시론은 기독교의 입신 체험과 상통한다. 기독교의 ‘입신’이란 살면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신앙적 체험이다. 기독교의 입신은 영이 몸 안에서 빠져나와서 가사(假死) 상태에서 천국과 지옥을 보는 체험이니 그 수행 단계는 성경과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가능하다. 입신을 통해서 받는 신앙적 유익은 예수를 직접 만난다든가, 앞서간 성도를 만난다든가, 성경의 진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든가, 미래의 계시를 받는 등 신앙인으로서 특별한 신앙 간증을 체험한다. 그중에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입신 경험은 참선의 화두 단계에 상응하는 것으로 탁월한 시 창작 능력의 발휘를 의미한다. 필자의 이런 추리가 문학론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신집중의 절정 단계라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고 본다.
(94~95쪽)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위대한 작가로서 일본의 대학자 요시카와 고지로(吉川行次郞)는 루쉰은 노벨문학상을 백 번을 받아도 과하지 않다고 극찬하였다. 루쉰은 일본에서 유학하며 신학문을 습득하고 애국애민 의식이 강하고 중국에 대한 개혁의지가 깊어서 센다이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환등기를 통하여 중국인의 모멸적 자기학대와 몽매적 인간상을 목도한 후, 중국인의 신체 건강보다 정신 혁신이 더 다급하다고 절감하여 곧 귀국하여 은거하며 중국문학을 위시한 중국사상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루쉰은 불세출의 대문호로 탄생하고 중국 개혁의 선구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루쉰이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 기독교의 문화를 가장 심각하게 고찰하였고 그중에 예수와 십자가, 그리고 종교적 성격에서 예수의 영웅적 수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그의 창작의 근거로 삼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대문호 루쉰의 문학은 예수를 배제하고 논할 수 없고 그 바탕 위에서 루쉰의 문학가치도 거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루쉰의 작품의 주인공이 일관되게 영웅 수난적 성격을 지닌 요인이 예수의 십자가 고난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중국 대륙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종교 탄압을 지속하고 복음화선교가 미미한 현실에서 루쉰의 문학을 예수고난과 연관시키어 고찰한 이 글에 대한 착상이 의미 있음을 관련 분야에서 유의하기를 바란다. 중국 현대문학에서 기독교 정신이 차지하는 사상적 바탕이 적지 않은 점을 재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162~163쪽)
타이완에서 1960년대의 시가 시어와 의상(意象) 면에서 예술성을 추구한 반면에, 1970년대의 10년간은 소설의 향토적 제재의 영향을 받아서 시에서도 향수시(鄕愁詩)가 강렬하게 대두하는데, 거기에서 나름대로 나타난 모순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시대의 신시를 풍격 면에서 살펴보기 전에 모순점을 집약한다면, 먼저 향토적 시어(詩語) 가지고는 전통적인 결정체를 소화해낼 수 없으며, 둘째는 평범한 시어로는 시가 지닌 은근한 속뜻을 모두 포용할 수 없으며, 셋째로는 향토적 의식이 결여된 시인으로는 직접적이며 각별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문제점 때문에, 타이완 시단에서의 향토적 경향은 1970년대에 매우 중요한 시의식이면서도 시의 주류가 되기에는 다소의 이질적 요소가 된 것이다. 그 이질적 요소에는 서양종교 즉 기독교가 타이완 전통 중국종교에 침투한 내적 의식이 스며있다는 점을 거론해야 한다. 마오쩌둥 사회주의 집단과 전쟁으로 인해서 타이완에 피난처를 잡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에 정착하면서, 대륙에서 피난 온 수백만 실향민들이 타이완 사회의 지도층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비교적 지식층들이며 서구문물에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기독교 문화를 기반으로 한 서구문화를 수용하면서 기독교 정신을 통한 심적 안정과 망향의 비애를 정화하는 문인집단도 등장한 것이다. (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