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3,1-6.14-22; 루카 19,1-10
+ 오소서, 성령님
이제 연중 시기가 두 주간 남았는데요, 이 두 주간 동안 제1독서에서 요한묵시록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선 부활하신 주님께서 소아시아 서남쪽에 위치한 일곱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각각의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 즉 21세기의 그리스도교 교회에도 하시는 말씀으로도 이해됩니다.
오늘은 사르디스와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여기서 ‘천사’는 그리스어 ‘안젤로스’를 번역한 말인데요, ‘안젤로스’는 ‘천사’를 뜻하기도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는, 사르디스 교회의 주교, 혹은 영적 지도자를 의미할 수도 있고, 공동체 전체를 인격화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사르디스 교회의 수호천사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는 예수님을 의미하는데요, ‘일곱 영’은 ‘한 분이신 성령’의 권능을 강조한 말이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사르디스 교회가 사실은 죽은 것이라 하시며 “깨어 있어라.”라고 하십니다. 이어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고 하십니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사르디스는 경계에 실패하여 기습 공격을 당한 적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기원전 586년과 기원전 218년의 일인데, 주님께서는 그 일을 상기시키시며 ‘영적으로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으로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라오디케이아 근처에는 히에라폴리스와 콜로새라는 도시가 있는데요, 히에라폴리스는 뜨거운 온천수로 유명했고, 콜로새는 시원하고 신선한 물로 유명했습니다.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수는 식어서 미지근한 채로 라오디케이아를 통과했는데요, 주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고 꾸짖으십니다.
당시 라오디케이아는 부유했고, 옷감과 안약으로 유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비유로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불로 정련된 금’은, 시련으로 정화된 믿음을 상징하고, ‘흰옷’은 순수하고 의로운 행동을 의미합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라’는 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성령의 힘으로 식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의 문은 밖에서는 열리지 않고 오로지 안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자신에게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문을 열어 주님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위해 일하기보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사르디스와 라오디케이아 두 교회가 모델로 삼을만한 인물, 자캐오의 이야기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자기 영혼 안에 모십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은, 자캐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았던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놀리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돌무화과나무가 십자가 나무를 상징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달리신 그 나무 위로 올라가십시오. 그 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자캐오는, 그처럼 예수님을 만나 뵙기를 열망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예수님께서 자신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계셨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습니다. 독서의 말씀을 되새기며,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깨어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로 향해야겠습니다.
라오디케이아, 터키
출처: Laodicea on the Lyc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