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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1
거룩한 욕심을 가지라 / 이성우 목사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열왕기 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들인 여러 왕들의 역사를 선지자의 관점에서 기록한 선지자적 역사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열왕기 서를 기록한 사람은 여러 왕들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면서 그들의 정치적인 업적이나 외교, 군사, 경제적인 업적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왕이 남 왕국 유다의 왕이든지, 아니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오로지 왕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에서 생각해 볼 때, 한 나라의 통치자인 왕이 가지는 위치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왕의 생각이나 생활방식, 삶의 태도는 곧장 백성들의 삶이 되곤 했습니다. 왕의 뜻과 의지는 곧 법이 되었고 그 법은 백성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한 나라의 왕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취했는가 하는 것은 곧 백성들 전체의 삶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시대 백성들의 통치자였던 한 왕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곧 온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신 왕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져 나갔던 신정왕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이스라엘 나라, 그 백성의 경우는 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든가 법을 거스른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왕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백성들 전체의 삶에 대한 평가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고 한 시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치는 역할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 편에서의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하나님의 종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왕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관심과 왕들에 대한 그들의 평가의 근거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었던 언약이었으며, 그들의 관심사는 이스라엘 여러 왕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언약에 근거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언약을 저버리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의 기준이 결국은 왕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왕조 전체, 더 나아가서 민족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불행을 갈라놓는 운명의 시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정확히 말한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왕과 왕조, 민족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대전제 조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원하는 행복과 번영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노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이요 은혜와 축복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은 행복한 삶을 위한 모든 조건에 가장 앞서는 조건이요 행복이라고 하는 집을 지어가기 위한 기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행복한 삶은 절대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설령 누군가가 이 조건이나 기초가 없이 행복한 어떤 조건들을 쌓아 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얼마가지 못해서 무너져 내려 버리고 말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고 한다면 이 열왕기서의 처음 독자들로서 바벨론 땅에서의 포로 생활 중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망국의 고통은 바로 여기에 그 뿌리가 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식물이나 나무도 아무리 가지나 잎이 무성하다고 하더라도 그 뿌리가 썩어 가고 있다고 한다면 언젠가는 서서히 시들어 죽게 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도 사실은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통치의 뿌리와 삶의 뿌리를 하나님을 향하여 깊이 내리고 그곳으로부터 자양분을 끊임없이 공급받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부터는 점점 더 멀어져가고 우상에게로 뿌리를 점점 더 깊이 뻗어나가게 된 것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여러 가지 재앙과 징벌로 인해서 서서히 시들어버리게 만들었으며 종국에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으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버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열왕기서는 나라가 망하고 이국 땅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포로 생활 중에 처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던진 질문, 곧 ‘왜 우리 민족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가 찾아내게 된 해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서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두 나라의 분열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기까지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가감 없이 써 내려 감으로 해서 당대 사람들 자신들이 나가야 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깨달아 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후대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열왕기서의 내용은 역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적인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방법과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서의 범주에 포함시켜 놓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히브리 사람들은 역사를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신앙 고백과 자기반성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살아계셔서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던 한 시인은 시편 1편에서 감동적인 한 편의 신앙고백적인 시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열왕기서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열왕기 서에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의 활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와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한 왕, 한 왕조, 한 민족의 흥망성쇠가 결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곧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듯이 성도들의 흥망성쇠 역시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에 달려 있음을 열왕기서는 깨우쳐 주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숭배에 가장 깊이 빠져있던 시대는 아합 왕의 통치 시대입니다. 그는 시돈의 공주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바람에 그의 영향 탓에 바알 신 숭배와 아세라 신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주로 활동했던 예언자가 바로 엘리야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활동은 이미 갈멜 산에서의 대결을 통해서 드러났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사명을 용기 있게 수행하고 있는 장면이 본문 바로 앞장인 1장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의 우상 숭배 행위를 주저하지 않고 지적하며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거룩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멀리하며 거룩하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 곧 아합 왕이라든지 아하시야 왕의 모습과 함께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목숨을 걸고서라도 거룩한 것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엘리야 선지자의 삶의 태도와 그러한 두 가지 삶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합 왕과 그의 부인 이세벨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엘리야 선지자의 마지막 활동 기에 왕이었던 아하시야 왕도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국은 낙상으로 인한 부상으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들도 없어서 왕위를 상속해 주지도 못하고 죽음의 길을 가게 되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거룩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지켜 나가기 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엘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하 2장 1-1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가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상급에 의해서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엘리야 선지자,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엘리사 선지자의 거룩한 것을 향한 열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 들어감으로써 끝없는 타락과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위해서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거룩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새로운 일꾼을 준비시키시는 열심을 보여 주시고 있는데, 이것은 곧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엘리야 선지자의 거룩한 것을 위한 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서 거룩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선지자로 엘리사 선지자가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험한 여행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데리고 길갈에서 출발하여 벧엘을 거쳐 여리고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요단으로 이어지는 먼 길을 이동하면서 엘리사가 거룩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거룩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엘리사의 열정을 확인한 엘리야 선지자는 그에게 소원을 묻는 방법을 통해서 자기에게 메워져 있었던 선지자의 사명을 엘리사에게 넘겨줌으로써 사명을 완수하고 나서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의 거룩한 것을 향한 열정과 욕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 선지자가 승천하기 직전 소원을 묻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이러한 엘리사의 거룩한 것을 향한 욕심대로 그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엘리야 선지자보다도 더 큰 역사를 감당하게 되었는데, 우선 오늘 본문 후반부의 말씀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세 가지 기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거룩한 것을 소중히 여겨서 거룩한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구했던 그에게 그가 구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갑절로 임하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의 주인으로서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거룩한 것을 향한 욕심과 열정을 가진 일꾼을 찾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의 지나간 40년의 역사를 감당해왔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 시대에 하나님의 새 역사를 감당해 나가야 할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엘리사가 보여주었던 거룩한 욕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어두움과 죽음의 거대한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 하나님은 엘리사보다도 갑절의 영감을 가진 일꾼들을 애타게 찾고 계시며,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 시대를 맡겨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것을 믿으시고, 엘리사처럼 거룩한 것을 향한 열정과 거룩한 욕심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나가심으로 엘리야처럼, 그리고 엘리사처럼 새 시대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영광을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