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록 [소설 심문모전]
제3부 함안댁(제57회)
7. 마스코트(4)
(처음부터 읽지 못한 분을 위한 재수록입니다.)
득순은 그러한 문모가 측은하게 보였다. 어쩌면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실망도 크고 상실감으로 슬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우리 목사님 설교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 예수님이 원수도 사랑해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카더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기뻐하셨다고 했다 카데. 지금 내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구나.”
하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목사 될 사람보고 하나님 말씀을 읊어대다니.”
“아이고, 무신 말씸을……. 아입니더. 나는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제 목사는 아이거든예. 그러이까 모리는 기 더 많심더. 다만 하나 아실 거는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가 목사 말씀은 아니거든예.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풀어서 들려주시는 기지 목사 자기 생각을 말하는 기 아입니더. 만약에 목사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그 날 목사는 타락한 깁니더. 자기 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라 카마 그거는 신성 모독일 수도 있거든예.”
“그래 그 말은 맞는 거 같네. 목사한테 들었지만 성경 말씀인기다. 그런데 나는 성경 말씀을 우리 목사한테 들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기다. 하여간에 그분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이까 어떤 이유로도 미워해서는 안 되고 사랑해야 한다 카더라고. 또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도 미워한 남자가 안 많았던가베. 그런데 예수님께서 미워하신 여자도 없고, 예수님을 미워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적어도 성경에는 없다카더라. 맞나?”
“그런 거 같심더. 재밌는 말씀을 들으셨네예.”
“함안댁은 여자 아이가. 심 전도사 같은 사람이 사랑 안 해주마 누구한테 사랑 받겠노. 함안댁이 심 전도사한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동 모리겠지만도 아마도 싫어하는 거는 아일 기다. 그러이까 심 전도사한테는 적어도 미운 짓이나 미운 말이나 미운 감정을 드러낸 표정을 짓는 일도 없었을 거 같네. 아이가?”
“허 참, 숙모님도! 지 같은 기 어떤 여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심니꺼? 지는 여자의 사랑 받는 거 일찌감치 포기하고 살고 있거등예. 사랑 받는 거는 사실 언감생심이고예, 나한테는예,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부터도 오지랖이 넓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더.”
그러자 득순이 그의 얼굴을 말끄럼히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길자 오래비가 내 말을 오해한 거 같네. 그라고 보래. 오래비야, 무슨 그런 열등감에 빠져 있다 말이고?”
심 전도사라고 부르다가 옛날처럼 ‘길자 오래비’라고 하고는,
“그노무 자식이 우리 오래비의 팔만 잘라 묵은 기 아이라 그 씩씩한 기상도 자신감도 앗아갔구마는. 나쁜 놈!”
하고 한탄했다. 문모는 그 말에 속이 아려왔다.
“심 전도사도 예수님 맨치로 많은 불쌍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자격이 있다 그 말이다. 하기사 사랑하는데 무슨 자격이 있겄노?”
“하하하. 숙모님은 지가 무슨 카사노바나 박인수 쯤 되는 줄 아는 모양입니더. 하필 여자를 사랑해야 된다 캅니꺼? 하기사 박인수 그 자식도 재판정에서 자기 짓거리를 만민동포주의라 캤다캐서 폭소했심더만도 정말인지 모리겠심더. 그렇지만 그 자식이 사랑을 모독한 놈 아입니꺼? 사랑을 똥통에 빠자뿐 새낍니더.”
“하하하, 그런 기 아이다. 내 말이 서툴러서 이상하게 됐붓네마는, 문제는 함안댁하고 남녀간에 있을 수 있는 사랑이 아이락하는 말을 한다 카는 기 말이 우습게 꼬있붓다. 그기 여자든 남자든 처지가 불쌍하고 어렵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함안댁도 그런 맘으로 할 수 있을 기다 그 말이제.”
문모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전쟁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개미떼처럼 산하를 뒤덮고 오는데 그 세력은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불개미 떼를 보는 듯했다고 했다.
비29에 이어 비36이 떼를 지어 날아가서 융단 폭격을 해도 그들의 수는 줄어들 줄도 모르고 도망갈 줄도 모르는 짐승의 떼서리로 보였다고 했다.
한국군이 맡은 동부전선은 계속 북진하고 있는데 서부전선을 맡은 유엔군은 ‘작전상 후퇴’라는 말로 계속 남쪽으로 밀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보도와 소문이 서로 뒤엉켜서 무엇이 진실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국군은 죽을둥살둥 모르고 용감하게 싸우지만, 유엔군은 겁쟁이들이 되어서 조금만 불리해도 그저 후퇴밖에 할 줄 모르는 모양이라고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은 투덜대고 있었다.
그런 중에 동부전선의 상황은 이해 불가능하도록 아주 해괴하게 뒤엉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해안을 따라 북진하던 사단의 일부 병력은 혜산진을 점령했다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남쪽 후방 지역에 해당하는 원산에서 상륙해서 장진호 부근으로 진격했던 미군 해병대의 일부 부대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에게 궤멸되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래서 전체 해병대가 함흥과 흥남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말도 했다.
그 전투에서 죽은 중공군은 수십만이고, 미군은 수만 명이지만 후일 육이오 전쟁사에서 이 지역의 전투는 패배한 전투 중 가장 비참한 패배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투는 후일 함경도 피란민 수만 명을 구출해서 부산 지역으로 수송해낸 사건은 전쟁의 다른 한 면이 되는 배경적 전투였다. 이 전투와 사건은 가장 치욕적 패배와 위대한 휴머니즘이 연접된 전사(戰史)가 되었다.
그러한 사실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모두 후일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나서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이때 피란민으로 이산가족이 된 사람의 심정을 드러내어 크게 유행함으로써 이때의 일이 뒤늦게 전국민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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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토&일]마다 2회분씩 이틀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