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손의 노래 **
가을에는 빈 뜨락을
거닐게 하소서.
맨발 벗은 구름 아래
괴 벗은* 마음으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들길을 돌아와
끝내 빈 손이게 하소서.
가을에는 혼자 몸져 앓아 누워
담장 너머 성한 사람들 떠드는 소리
귀동냥해 듣게 하소서
무너져내린 꽃밭 귀퉁이
아직도 분명 불타고 있을 사르비아꽃 대궁이에
황량히 쌓이고 있을
이국의 햇볕이나
속맘으로 요량해보게 하소서.
들판이 자꾸 남루를
벗기 시작하는데,
나무들이 자꾸 그 부끄러운 곳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는데,
내 그대 위해 예비한 건
동산 위에 밤마다 솟는
저 임자 없는 달님뿐이다.
새로 바른 문풍지에 새어나오는
저 아슴한 불빛 한 초롱뿐이다.
누군가의 어깨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데,
누군가의 발자욱이 어둠 속에서 돌아오는데,
이 가을 다 가도록
그대 위해 예비한 건
가늘은 바람 하나에도 살아 소근대는
대숲의 저 작은 노래뿐이다.
아침마다 산에 올라
혼자 듣다 돌아오는
키 큰 소나무
머리칼 젖은 송뢰뿐이다.
애당초 아무것도
바라지 말았어야 했던 걸 모르고
너무 많은 걸 꿈꾸다가
너무 많은 걸 찾아다니다가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만
이제 또 가을.
문지방에 풀벌레 소리
다 미쳐 왔으니
염치없는 손으로
어느 들녘에 가을걷이하러 갈까?
하나, 더 늦기 전에
나도 들로 내려
드디어 낭자히 풀벌레 소리 강물된 옆에
실개천 물소리되어 따라 흐르다가
허리 부러진 햇살이나
주머니에 가득 담아가지고
한나절 흥얼흥얼 돌아올꺼나.
오는 길에 그래도
해가 남으면
산에 올라 들국화 몇 송이 꺾어들고
저승의 바닷비린내 묻어오는
솔바람 소리나 두어 마지기 빌려다가
내 작은 뜨락에
내 작은 노래 시켜보꺼나.
- 나 태주 - *괴 벗은: 헐렁한,풀어진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