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동공의 검은 하늘에서 기억을 긷는다
나란히 눈을 맞추며
한 움큼의 몸을 맞댄 첫날부터
사그라드는 박동에 손을 얹은 끝날까지
조각 빛을 나누어 베고 웅크린 시절로부터 빼곡한 날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충만하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품던 둥근 모양으로
네게 물든 내가
너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고스란히, 담아낸
무해한 시간들
완전하다고 믿는 관계란 따로 또 같이 있는 마음으로
각자의 공간을 내어주며 우리로 잇는 일이란 걸
너로부터 비롯하여 덧댄 전부라서
문을 열고 바깥을 포개어
별의 안부를 건네려 하면서도
속절없이, 돋아나는
간절로
무지개다리 너머로 향하는 나를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빛을 끌어모아 검은 하늘을 열고 싶은 마음을
또 어쩌지 못하고
네가 있던 침대 귀퉁이에서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을
훑는다
아직 살아본 적 없는 날들 사이로
잘자, 라는 말이 투명하게 우리를 비추고
멀어지지 않는다
―계간 《시산맥》 202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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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오늘은 다른 길로 가야지
싶다가도
늘 가던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
건널목을 건너려다
어느 쪽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저편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사이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있고
겹쳐진 시간으로 상자들이 분주하고
모서리가 짓눌린 채
조금씩 어긋나고
남겨진 자리가 짙게 저물어
헝클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발을 디딘다.
너무 먼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
다음의 다음을 겪어 내며
반복된 하루를 앞질러 걷는 사람처럼
그늘진 바닥이 흥건하고
어지럽고 어려운 방향이 머물러 있다.
좀 더 넓은 쪽으로 나뭇잎을 쓸어내다
구부러진 마음을 밟는다.
아프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멈출 수 없다는 걸 안다.
볕에 잠긴 사람이 까마득하다.
—계간 《시인시대》 2025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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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 1980년 인천 강화 출생.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2017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등단.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등. 평론집 『포기하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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