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
ㅡ신당서新唐書 배도전裵度傳
'일승일부一勝一負, 병가상세兵家常勢', 당(唐)나라 헌종(憲宗)의 말에서 유래되어,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가 되고,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로 주로 사용되어 왔다.
헌종(憲宗)은 중앙 궁중의 환관(宦官)과 지방 번진(藩鎭)의 절도사(節度使)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국운이 쇠락한 상태에서, 즉위했다.
헌종(憲宗)은 개혁을 하고자 환관(宦官)과 절도사(節度使)들의 통제에 나섰다.
그러던 중 회서(淮西)지방의 절도사(節度使) 오원제(吳元濟)와 싸움에 나섰던 당등절도사 고하우(高霞寓)가 패하고 돌아오자, 신하들은 오원제와의 싸움에 부담을 느끼고 이 싸움을 말렸다.
그러나 헌종(憲宗)은 '일승일부一勝一負, 병가상세兵家常勢' 라고 말하며 개혁을 계속할 의지를 보였다.
싸움을 여러 번 하다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한번 졌다고 포기해버린다면 큰 대의를 이룰 수 없으므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작은 승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승일부一勝一負, 병가상세兵家常勢'의 뜻을 전해들은 신하들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고, 헌종(憲宗)의 이런 노력 덕분에 당나라는 일시적이지만 중흥기(中興期)를 가질 수 있었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에서 유래한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을,
바람이 소개한 두목의 '제오강정題烏江亭'에서 처럼, 유방에게 패한 항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시에 나타나 있다.
수치를 참고 권토중래했더라면 다시금 지축을 울리고도 남았을 항우에게, 인생엔 병가지상사가 수두룩하다며 애도한 것이다.
첫댓글 제오강정(題烏江亭)/두목(杜牧)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전쟁에서 승패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부끄러움과 치욕을 참는 자가 진정한 사나이라네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항우의 고향 강동의 젊은이 중엔 뛰어난 인물이 많았으니
卷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권토중래하였다면 그 결과 아무도 몰랐으리라
오강은 항우가 유방에게 패하여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두 사람은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나누기로 했었으나
유방은 "항우를 살려두면 후환이 되니 그를 습격해서 죽여야 한다"는
장량과 진평의 진언에 따라 화의를 깨고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추격해 포위했다.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쳤는데
이때 배를 끌고 온 오강의 정장이
"고향 강동으로 돌아가서 재기하시죠" 라고 권했으나
항우는 "강동에서 함께 일어난 8천 장정들이 모두 죽었는데
무슨 낯으로 강동으로 돌아가나?"라면서
유방의 포위망으로 뛰어들어 최후를 맞이했다.
그로부터 천여 년이 지나
당나라 후기에 두목이 오강의 객사에 머무르다가
항우와 오강정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제오강정'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