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프W. 트라인 -
"한 마리 지네가 백 개나 되는 다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백 개나 되는 다리로 걸어가는 것은
(사실은 기어가는 것이지만) 하나의 기적이다.
두 개의 다리를 조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백 개나 되는 수많은 다리를 조절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네는 언제 어디서나 잘 조절해왔다.
이런 지네를 지켜보던 한 마리 여우가 의문에 사로잡힌다.
여우라는 짐승은 항상 호기심에 사로잡혀있다.
우화 속에 등장하는 여우는 물론 일종의 상징이다.
지식과 분석과 논리의 상징. 여우는 보고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런 다음 자기가 터득한 지식을 전파한다.
여우는 지네가 백 개의 다리를 가지고도
아무 탈 없이 잘 걷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네에게 다가가서 묻는다.
"얘, 잠깐. 의문 나는 점이 있다.
너는 어떻게 그 많은 발들을 조절하니?
한 발 다음에 어느 발이 뒤따라야 하는지를
어떻게 다 알고 있니?
백 개의 발이라니, 그 많은 발을 가지고도 너는
아주 유연하게 걷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과연 어떻게 이런 조화가 일어날 수 있니?"
지네가 대답한다.
"나는 평생을 두고 이렇게 그저 걸어 다 닐 뿐이야.
그러나 한 번도 네가 묻는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
내게 시간을 주면, 그 점에 대해서 한번 차분히 생각해볼게."
지네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지네는 처음으로 분리되었다.
관찰자로서의 마음과 관찰되는 자로서의
그 자신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지네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지닌 능력에 따라
언제나 살고, 걷고, 또 그렇게 되풀이 해 왔다.
다리를 움직이는 자신과 다리가 둘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전체로서 하나였다.
그런데 여우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자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지네는 다시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가 없었다.
이때 여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네가 걷는 게 무척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왔어.
나는 그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지네는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
"전에는 결코 어렵지 않았어,
그런데 여우 네가 문제를 일으킨거야.
이제 나는 다시 그 전처럼 걸을 수가 없게 되었어.“
지식이란 이와 같이 위험한 것이라고 우화는 넌지시 일깨워준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우처럼 의심이 많고 분별이 많으며
따지기 좋아하는 인물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출처 : 나에게서 구하라, 내 안의 무한한 지혜와 생명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