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고 마린스 극장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맨밑에는 1968년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노래와 동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즐감 바랍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탄생지를 찾아 ]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랑의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향이 이탈리아의 베로나입니다.
* 이탈리아 베로나
사이프러스 나무의 숲으로 둘러싸인 아디제 강변의 고도(古都) 베로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입니다. 로마제국 시대 및 르네상스 때의 유물들이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매년 여름 옛 투기장(鬪技場)에서 열리는 야외 오페라 공연은 특히 유명합니다.
베로나에 들어서면 구시가지의 중심이 에르베 광장이요, 여기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제1막 제1장에 나오는 거리입니다. 로마 시대의 공회장인 이 광장에는 분홍색 대리석 기둥의 옛 건물들이 남아 있고 화초와 청과물의 장이 서서 잡답(雜沓) 속에 색감(色感) 있게 생동합니다.
* 베로나 지도
에르베 광장에서 갈려나가는 좁다란 골목길의 하나가 카펠로 가(街), 꾸역꾸역 몰려나가는 사람들의 떼를 뒤따라 가보면 23번지가 카풀레티 가(街)의 고가(古家)입니다. 줄리엣의 집입니다.
이것이 줄리엣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베로나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줄리엣의 집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1302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20세이던 몬테키 가(家)의 로메우스와 14세이던 카풀레티 가(家)의 줄리에타와의 원수 집안 간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1531년에 출간된 루이지 다 포르라는 백작의 책에 처음 나옵니다.
저자는 베로나의 펠레그리노라는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후 1554년 마테오 만델라라는 성직자가 역시 같은 내용을 그의 책에 기록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책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습니다. 다 포르토의 책은 20판이나 거듭 나왔습니다.
단테는 두 가문의 이름을 시(詩)에 적었습니다. 1562년에는 영국인 아더 브루크가 반델로의 책의 불역본(拂譯本)에 의거해서 이 이야기를 장시(長詩)로 썼고, 1569년에는 영국 작가 윌리엄 페인터가 영어판을 내놓았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따온 것이 브루크의 시인지 페인터의 산문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 집 안뜰
하여간 셰익스피어 때문에 영원화(永遠化)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한낱 전설이라는 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사실(史實)로 굳어져 있습니다.
줄리엣의 집은 문을 들어서면 조그만 안뜰입니다. 이웃집의 높은 벽돌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4층짜리 벽돌 건물은 12세기 때의 것이라 낡을 대로 낡았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안에 들어가 보면 방들은 헛간처럼 텅 비어 있습니다. 가구도 벽 장식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볼 것이라고는 단 하나 발코니뿐입니다. 구경꾼들은 안 뜰을 향해 튀어나와 있는 2층의 발코니에 한번씩은 서 봅니다.
* 발코니
이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2막 제2장에 나오는 유명한 발코니입니다. 줄리엣의 집 과수원 마당에 뛰어든 로미오는 이 발코니에 나타난 줄리엣과 밤 깊도록 사랑의 밀어(密語)를 나눕니다.
발코니 아래쪽 벽에는 이 장면 첫머리의 대사가 명판(名板)에 새겨져 있습니다.
- 저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빛은 무엇인가, 그것이 동쪽이니 줄리엣은 태양이다, 나의 여인, 오 나의 사랑
로미오가 섰던 과수원 자리는 안뜰이 되어 관광객들로 득실거립니다. 발코니에 선 바지 차람의 줄리엣이 륙색을 짊어진 안뜰의 로미오를 향해 “헤이, 사진 하나 찍어줘!” 하고 소리를 빽 지릅니다. 발코니 옆의 벽은 온통 사인과 낙서 투성입니다.
“줄리엣, 나의 달아난 아내를 돌아오게 해다오”라는 궁상맞은 하소연도 씌여 있습니다. 아래쪽 안뜰 모퉁이에는 1972년 라이언즈 클럽이 기증한 줄리엣의 동상이 새침하게 서 있습니다.
* 줄리엣 동상
줄리엣의 집은 1905년 베로나 시(市)에서 사들여 일반 공개를 시작한 이후 요즘은 연 30만명이 넘는 인파가 6백년도 넘는 먼 사랑의 흔적을 찾아옵니다.
로미오는 걸어서 5분이면 줄리엣의 집에 왔을 겁니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의 스칼리제레 가(街)에 로미오의 집이 있습니다. 빨간 벽돌 담이 성벽 같은 이 집은 공개를 하지 않습니다. 벽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1막 제1장에 나오는 "로미오는 어디 있지? 오늘 그를 보지 못했는가?"라는 대사를 기념판으로 내걸어 오늘도 로미오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 로미오의 집
줄리엣의 집에서 로미오의 집으로 가는 중도에 팔라초 라지오네라는 커다란 건물이 나옵니다. 이 건물 안 마당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널따란 돌계단이 있는데 로미오가 티볼트를 칼로 찌른 장소라고 전해집니다.
* 로미오가 줄리엣 사촌 오빠 티볼트를 칼로 찔러 죽인곳
베로나의 알레아르디 교(橋) 가까이에 있는 산 프란체스코 알 코르소 옛 수도원에는 줄리엣의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은 긴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인 안뜰에서 지하실로 내려가야 합니다. 제단 입구의 벽에는 "여기 줄리엣이 누워 있다. 그 아름다움이 묘실 속을 빛이 찬란한 연회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제5막 제3장의 구절을 새겨 놓았습니다.
* 수도원 입구
지하실의 침침한 불빛 아래 허옇게 덩실 놓인 것이 줄리엣의 관(棺)입니다. 석관(石棺)은 뚜껑이 없는 채 텅 비었습니다. 묘실(墓室) 앞쪽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란히 죽은 모습이 그림으로 걸려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시킵니다.
수도원 뜰과 등이 맞붙은 건물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로렌스 신부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 교회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함께 죽은 후 이 교회의 담 밖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1세기가 지나자 무덤은 황폐해지고 관은 말의 구유통으로 쓰이기까지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오면서 이 관은 보물이 되어 수도원 안으로 모셔졌고 1842년 수녀들이 수도원을 떠난 후에는 한때 다시 버려졌다가 구경꾼들이 하도 모여들자 19세기 말에 지금의 묘실로 옮겼습니다.
* 텅빈 줄리엣 석관
1988년 베로나 시(市)는 이 묘역(묘역)을 보호지역으로 정했고 부근의 정화공사는 1937년에 끝냈습니다. 2차대전 때 폭격을 당했으나 다시 고쳤습니다.
옛날에는 연인과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젊은이들이 이 무덤을 찾아와 쪽지를 남겨두고 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연인이 이 무덤을 찾아오겠지 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은 이 세상 모든 끊어진 사랑의 접착제(接着劑)였습니다.
1816년 유럽 대륙 방랑길의 바이런은 줄리엣의 무덤을 찾아와 석관(石棺)의 돌 한 조각을 떼어갔습니다. 이미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후이던 마리 루이지는 이 무덤에서 가지고 온 조그만 돌로 목걸이를 만들기고 했습니다.
1828년에는 하이네가 방문했고 얼마 후에는 찰즈 디킨즈가 다녀갔습니다. 하이네는 후에 "시인은 전설을 믿는 고지식함을 스스로 웃으면서도 이런 곳을 제 발로 찾아온다"라고 말했고, 디킨즈는 그때 무덤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봄비와 시원한 바람과 햇빛이 들어오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고 그의 여행기에 적었습니다.
대시인이나 대작가조차도 셰익스피어의 주인공 앞에서는 이렇게 국궁(鞠躬)입니다. 국궁-극진히 공경하여 몸을 굽혀 절을 하는 것을 말함.
런던 북쪽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대작가 셰익스피어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영국의 스트래트퍼드 어픈 에이번은 가히 세계문학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인구 2만의 이 마을에 연 1백만의 순례자가 찾아옵니다. 셰익스피어 생가의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 놓고 가는 한국인만도 한 해 5백명이 넘습니다.
* 에이번 강
스트래트퍼드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에이번 강변에 세익스피어의 동상이 서서 사람들을 맞습니다. 1888년에 제막된 이 동상은 네 모퉁이에 햄리트, 맥베드 부인, 폴스타프, 할 공주 등 셰익스피어 주인공들이 둘러서서 모시고 있습니다.
* 셰익스피어 동상, 앞의 동상은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 햄리트 동상
목조 건물인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1847년 셰익스피어 생가 보존 위원회가 경매에서 사들인 것입니다. 안에는 엘리자베드 조(朝) 시대의 가구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관한 기록, 그림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쓰던 것이라고 전해지는 책상도 보입니다.
* 셰익스피어 생가
* 생가 내부
세익스피어는 스트래트퍼드의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그의 부인, 딸, 사위 곁에 묻혀 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무덤 앞에서는 "이 무덤에 손대는 자에게는 저주 있을진저"라는 유명한 묘비명을 숨을 삼키며 읽을 수 있습니다.
* 셰익스피어 묘지
30여 년 전까지는 이 묘비명의 탁본을 개인에게 살짝 허락했으나 하도 신청하는 사람이 많아 이 후부터는 일체 금지하고 대신 인쇄해서 팔고 있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로미오와 줄리엣> ]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초기 걸작입니다.
베로나의 두 명문 몬타규 가(家)와 캐플렛 가(家)는 원수 사이입니다. 몬타규 가의 아들 로미오는 캐플렛 가의 무도회에 가면을 쓰고 들어가 그 집안의 딸 줄리엣을 발견합니다. 두 사람은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약속하여 이튿날 로렌스 신부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식을 올립니다.
돌아오는 길에 로미오는 친구의 싸움에 말려들어 캐플렛 가의 티볼트를 죽이게 됩니다. 로미오에게 추방령이 내려집니다. 다른 백작과의 결혼을 강요당한 줄리엣은 40시간 동안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는 약을 먹습니다.
양친의 비탄 속에 줄리엣은 가문의 묘소에 안치됩니다. 로미오를 불러 깨어난 줄리엣과 도망을 시키려던 로렌스 신부의 계획이 빗나가, 로미오는 줄리엣이 정말 죽은 줄 알고 묘소로 달려와서는 줄리엣 옆에서 독약을 마십니다.
눈을 뜬 줄리엣은 뜻밖의 결과에 자기도 로미오의 칼로 자살합니다. 오랜 원수 집안이던 몬타규 가와 캐플렛 가는 두 젊은 연인의 슬픈 죽음 앞에서 화해를 합니다.
* 68년도 프랭크 제퍼렐리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영상, 젊은날 우리들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청순한 미모의 70년대 아이콘, 올리비아 핫세와 상대역인 레오나르도 화이팅도 함께 즐감바랍니다
첫댓글 젊은 시절 줄리엣역의 올리비아 핫세[올리비아 허쉬]를 보고 청초한 여성을 동경하며, 달콤한 사랑을 꿈꾸었던 시절이 아련히 생각이 납니다. 나이가 든 지금도 가끔 주제가인 ' A time for us '를 들을 때마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주책인가요 ?
올리비아 핫세, 17세의 어린 나이로 데뷔하여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 모았으나
딘 마틴의 아들과 20세의 이른 나이애 결혼한 탓일까. 배우로서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세번의 결혼으로 두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배우라고 합니
다. 지금도 본인 스스로 간간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고 하네요. 올해 나이 6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