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
석야 신웅순
손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 줄려고 나서는 참이었다.
“여보 머리에 쓰는 그거 있잖아.”
“그게 뭔데?”
“털실로 짠 귀까지 덮을 수 있는 그거, 비스름한 둥근 모자.”
이름을 알면 간단한 것을 몰라서 길게 용도를 설명했다. 아내와 함께 찾았다. 어디에 놓았는지 눈에 뵈지 않는다. 머리까지 둘러 쓸 수 있어 오늘 같이 추운 날은 안성맞춤이다. 또 잃어버렸구나. 어디 한 두 번이랴. 할 수 없이 귀가 나오는 캡모자를 쓰고 나갔다.
모자 가게를 지나가고 있었다.
둘째가 말했다.
“아빠, 비니 사줄게.”
“비니? 비니가 뭔데?”
내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랩 가수들이 눌러 쓰고 노래 부르는 거.”
그 때서야 그것이 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 번도 써보지 않았으니 이름도 모를 수밖에 없다.
둘째는 메이커가 있는 비싸고도 예쁜 비니를 사주었다. 귀까지 가리고 푹 눌러썼더니 따뜻했다.
지 엄마한테 전화가 온 모양이다. 둘째가 아빠 비니를 사주었다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엄마도 이미 샀다고 한다.
“참, 아빠는 행복하겠어.”
둘째가 말했다.
두 개가 한꺼번에 생긴 것이다. 서로 카톡을 주고 받더니 서로 자기가 사준 것이 예쁘다고 한다.
며칠이 지났다.
농 속을 뒤지다 잃어버린 그 비니를 찾았다.
“아, 요것이 이 속에 들어있었구나.”
어떨 결에 세 개가 생긴 것이다.
집 사람은 좀 싼 비니는 운동할 때 쓰고 밖에 외출할 때는 메이커 있는 것 쓰고 다니란다. 전 번에는 고급 목도리를 사주었는데 잃어 버렸었다. 그래도 좋은 것을 사주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내가 쓸모가 있는지,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가 ‘비니’라는 이름을 잊을까봐 ‘비닐’에 ‘ㄹ’자를 빼면 된다고 방법까지 알려준다. 사물을 기억할 때는 연상법에 의해 기억해야 오래갈 수 있다.
비니를 쓰고 어깨를 좀 구부리고 손 좌우로 흔들면 랩 가수 흉내는 낼 수는 있지 않을까. 전 번엔 둘째가 패딩을 사주었다. 5년 정도 젊어졌는데 이번에는 비니를 사주었으니 또 5년 더 젊어졌다. 아무래도 딸들은 애비가 젊어보이게 하고 싶은가 보다.
잃어버렸다는 말에 갑자기 비니 3개가 생겼고 덤으로 젊음까지 얻었으니, 아니 보온과 멋까지 살릴 수 있었으니 소소한 행복치고는 올 겨울 너무나 큰 선물이다.
불이란 뜻은 잘 모르나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일 게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았으니 결국 그 자리가 아닌가. 기쁨과 슬픔도 감정이야 다르겠지만 우리들에겐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쁨이 있어야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지 않은가. 기쁨과 슬픔 그 사잇길로 행복이 몰래 찾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 2022.12.22.
첫댓글 ㅎ ㅎ
향복하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